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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리뷰 #04]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스코어링 포지션』 : 가슴 졸이며 듣는 존재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스코어링 포지션』
648 /
음악 정보
발표시기 2006.08
장르
레이블 아름다운동행
유통사 유니버셜

다른 이야기로 시작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가 없다.

아마도 여기저기 정보에 밝은 후배 녀석이었을 거다. 나에게 「절룩거리네」를 들려준 놈이 말이다. 이런 경우, 음악을 들려주는 인물은 흔히들 ‘들어봐 죽여’라고 단발마의 소개사만을 남기고 CD를 틀기 마련이다. 반대로 소개 받는 인물은 다소 무뚝뚝한 얼굴로 팔짱을 낀다. 음악 좀 들었다는 인물일수록 팔짱이 견고하기 마련이다.

그 이후는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된다.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 노래에 열광하게 된 사람이 말이다. 특히나 이 구절, ‘이제 난 그 때보다 더 무능하고 비열한 사람이 되었다네’. 그리고 이 구절, ‘발모가지 분지르고 월드컵 코리아/ 손모가지 잘라내고 박찬호 20승’. 여기에 다가 ‘세상도 날 원치 않아/ 세상이 왜 날 원하겠어’라고 찍어대는 도끼 같은 종지부가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만들었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노래의 철렁함을 ‘루저의 정서’라고 말한다. 불안한 10대, 저열한 20대의 인생을 경험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다는 이 특별한 정서를 많은 사람들은 애정을 가지고 지켜본다. 꼭 몸으로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현대 음률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감수성이기도 하다. Radiohead와 Nirvana, Pearl Jam과 Beck을 즐기기 위해선 루저의 정서를 이해하지 않고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기파괴의 처절한 패배자의 가사들은 달빛요정만의 특허품은 아니다.

「절룩거리네」의 철렁함은 루저의 정서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분명한 가사 전달, 장음과 단음까지도 구분해 내고야 마는 탁월한 의사소통은 달빛요정이 골방에 처 박혀 기타나 튕기는 소심한 소년이 아니라 사람들과 간절히 소통하기를 원하는 커뮤니케이터로서의 창작자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가 대화하려는 소재는 진실했고, 진실을 제대로 전하기 위한 어휘적 기교도 출중했다. 게다가 대화 소재를 전달하는 방식이 물 흐르듯 깨끗했다. 한국어의 운율을 억지로 깨지 않는 멜로디 진행은 김민기를 원류로 김창기와 김광석을 저수지쯤으로 하고 있는 한국 고유의 노래 만들기 방식이다. 달빛요정을 포크로 규정하는 주장들은 여기에 많은 부분 이유를 기대고 있다. 그러므로 사운드는 부차적인 것이었는지 모른다. 「절룩거리네」가 시작할 때 싸구려 미디로 찍은 드럼을 애로배우처럼 적나라하게 노출시킨 것도 다분히 의도적인 행위였을 것이다.

여기까지가 심판에 의해 미리 결정되어 버린 『Infield Fly』의 전모라면 정규 2집인 『스코어링 포지션』은 달빛요정이 가진 미덕을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전작과는 정 반대편에 위치해 있는 작품이다. 「절룩거리네」가 시작할 때도 그랬었는데, 「제육볶음의 비밀」이 시작할 때에도 컴퓨터로 찍은 드럼 비트를 배치하고 있는 것도 그렇고, 물 흐르듯 노랫말을 침범하지 않는 잘 짜여진 멜로디 라인도 전 앨범과 같은 미덕이다. 두 앨범의 수록곡이 섞여 있어도 잘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노래들이 닮아 있다. 이렇게 같은데, 맞닥드리는 느낌은 정 반대다. 전작이 귀에 쏙 들어와 박히는 것이었다면, 이번 앨범은 한 번 들어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 이유의 대부분은 작곡의 유사함 때문이겠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결국 노랫말의 함량 미달로 귀결된다.

달빛요정은 결국 노랫말이다. 정직한 듯 내지르면서도 은근히 센스 있었던 맛이 이 앨범에는 없다. 되려 노랫말에 비중을 너무 크게 잡아 의미전달의 마지노선을 추월해 버린 것은 아닐까 생각될 정도다. 결국 「제육볶음의 비밀」이 무엇인지 단서조차도 주지 않으며, 내가 원할 때만 벗는다는 「혼자만의 에로티시즘」이 환유하는 것도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뭔가 심오한 것이 숨어 있는 듯 하지만 결국 이해되지 못하는 글은 듣는 이를 실망시키고야 만다. 그나마 「폐허의 콜렉션」 정도가 뛰어나 다행이긴 하다만, 이를 제외하고는 온통 평범한 ‘구애, 구걸’의 노래들일 뿐이다. 오히려 놀라운 부분은 가사가 부실하다고 음악 자체도 부실하게 느껴져 버리는 당혹스러운 청취 감상이다. 새삼 노랫말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게 해주었다.

그것을 제외하고는 순조롭다. 시원하게 내지르는 샤우트는 맑으면서도 무거워 호감이 가고 힘주어 포르세로 강조하는 구절에서는 맑은 영혼의 루저로 살아온 화자의 내면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보인다. 또한 멜로디를 뽑아내는 능력도 출중한데, 이는 달빛요정의 큰 미덕 중 하나이다.

자, 그럼 병주고 약주는 인사치레는 그만하고 결론을 내어보자. 내 결론은 앨범에 대한 이러쿵 저러쿵이 아니라 달빛요정이라는 존재가 주는 애틋함에 대한 감상이다. 노랫말의 질이 현저하게 떨어진다고 해도 달빛요정이라는 존재가 주는 남다름이 느껴진다. 그걸 구식 비유로 들자면 ‘21세기의 김광석’쯤으로 해두자. ‘한국 록과 한국 포크, 그리고 가요의 적절한 접점’이라는 수사는 더욱 구식이겠다. 하지만 닳고 닳았어도 존재의 의미는 집고 넘어가야 하겠다. 비록 「절룩거리네」의 신선함을 퇴색시키는 앨범일지라도 형식과 의미의 솔직함에 집착하고자 하는 노력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한 앨범이다. 21세기 포크가 내면으로만 침잠하고 같은 시기 록음악이 춤추자고 권하기만 할 때, 달빛요정의 노래 만들기는 정직하고도 우직하리만치 영향 받은 그대로의 창작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게 가슴을 졸이며 이 앨범을 듣게 만들었다. 특히 「역전 아라리」의 서글픈 인트로를 몇 번씩 말이다.
 

Track 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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