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환] 소위 ‘빌리버스(Billie+Universe)’라 불리며 스토리라인을 갖춘 시리즈 음반을 통해 개성을 추구하는 걸그룹 빌리의 네 번째 EP 『the Billage of Perception: Chapter Three』(2023)의 타이틀곡. 전작의 타이틀곡 「RING ma Bell(What A Wonderful World)」(2022)의 분위기가 하드한 펑크록 스타일의 사운드였다면, 이번 신보의 사운드에서는 과감한 전환을 선보인다. 픽셀웨이브 등 새로운 작곡팀이 가세했고, 그 결과로 일렉트로닉-신스 팝 및 80년대 일본 시티팝의 감성들이 녹아든 세련된 훵키함이 앨범 전반에서 도드라진다. 「Eunoia」의 사운드는 80년대와 90년대식 사운드의 지혜로운 믹스를 선보이며, 복잡한 구성과 격렬한 전자음이 ‘걸크러쉬’라는 이름으로 주류를 지배했던 흐름에 역행한다. 어떤 면에서는 매우 세련된 신스 웨이브 트랙이기도 하지만, 이 곡에 담긴 비트에는 1990년대 초반의 미국 주류 알앤비/힙합의 요소도 잘 녹아있기 때문이다. 복고적 신시사이저 톤의 전주, 부드럽고 유연한 멤버들의 가창, 신스베이스-드럼비트임에도 따스하게 매만져진 리듬, 후반부 엔딩으로 향하며 점점 강조되는 깔끔한 훵키 기타 스트로크까지 편곡도 탄탄하다. 주류 K-Pop이 챌린지와 쇼츠, 릴즈에 갇히지 않는 ‘제대로 된 감상용 댄스 팝’으로 트렌드가 점점 이동하고 있음을 상징하는 트랙이다. ★★★☆

[이아림] 빌리를 함축하는 단어가 있다면 ‘독특함’일 것이다. ~, @, $ 등 각종 특수문자와 부제를 붙인 곡명, 빌리에는 존재하지 않는 빌리란 인물, 그를 중심으로 구성된 미스터리 추리물이란 세계관까지 그룹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분명 독보적이다. 이는 빌리의 진입장벽으로 보이지만, Lewis Carroll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1865)를 닮은 의뭉스러움 속 몽환과 발랄함은 빌리만의 매력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빌리를 첫 1위 가수로 만든 곡이자,  Billage 시리즈의 3편을 장식한 「Eunoia」는 신스 웨이브를 기반으로 비트와 볼륨의 파열이 강렬했던 전작들에 비해 신비롭고 온화하다. 뉴진스의 「Ditto」(2023)를 연상시키는 뮤직비디오를 비롯해 타 그룹이 떠오른단 점이 아쉬우나, 하이톤의 보컬 사이에서 무게를 싣는 문수아의 랩은 명확한 차이를 만들고 멤버들의 목소리를 조화롭게 구성하여 듣기 편안하다. 중반부 션-수현-하람으로 이어지는 구간의 보컬이 주는 안정감이 인상적이며, 올라운더가 기대되는 션과 날카로운 눈빛으로 무대를 장악하는 시윤의 힘, 리드미컬한 음색과 매끄러운 발음으로 곡에 강약을 조절하는 하루나의 역할 또한 눈에 띈다. 중심을 잡는 하람과 매끄럽게 잇는 수현의 보컬부터 통통 튀는 음색과 특유의 발음으로 감칠맛을 더해주는 츠키까지 각각의 구성원들을 고르게 조명한다는 점에 있어 빌리의 매력이 가장 잘 드러난 곡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