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Review

이 음반은 지금 현재 한국 힙합 최선의 모습입니다

피앤큐 (P&Q) 『Supremacy』
600 /
음악 정보
장르 힙합
7월 초 본 앨범의 프로듀서 14명의 이름이 공개되었을 때, 폭풍은 시작되었다. 팔로알토와 더콰이엇 두 사람 모두 "MC의 역할에 중점을 두겠다" 라고 미리 밝히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개코, 타블로, 디제이소울스케이프, 킵루츠, 사탄, 이밀라국거리, 프라이머리 등등등. 오버와 언더를 총 망라하는, 크루와 레이블을 불문한, 내놓으라 하는 비트쟁이들이 사이좋게 한 곡씩 맡은 것이다. 이건 완벽한 전대미문은 아니라 하더라도, 최소한 전대미문에 육박하는 사건임에는 틀림없었다. 뭐, 더콰이엇의 성장과정을 주목해온 분이라면, 특히『Q Train』(2006)에 감동 먹었던 분이라면, 되려 실망이 컸을 수도 있다. 그 역시 이번 앨범에선 딸랑 곡 하나 밖에 안 실었으니까. 하지만 이러한 아쉬움도 본 앨범이 성취한 프로듀서 총망라의 역사적 의의를 갉아먹기엔 역부족이었다. '오버와 언더는 랩 피쳐링으로만 띄엄띄엄 왕래하는구나' '언더 레이블들은 혹 자기네들끼리만 놀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던 필자 같은 아둔한 사람들을 위해 피앤큐는 아예 프로듀싱을 이슈로 들고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본 앨범의 의의는 7월 초에 이미 끝장을 본 것일까? 타이틀을 보면, 당연히 아니다.『Supremacy』. 지존, 최고, 패권. 제각각 다른 14개의 비트가 엠씨잉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면 피앤큐 두 청년은 지존에 등극하고 앨범의 의의는 두 배로 증폭되겠지? 하여 들어보았더니, 5번 트랙까지는 정말로 지존이다. 우선 주인공 두 청년의 엠씨잉부터가 다르다. 팔로알토는 자신의 솔로 앨범『Resoundin'』(2005) 때까지 남아있던 거친 억양을 매끈하게 다듬었고 더 콰이엇은『Music』(2005) 의 투박함을 상당 부분 부드러움으로 바꿔놓았다. 혹 당신이 두 청년의 엠씨잉 합작을 두고 지레 '어설프겠지?' 넘겨짚었다면 안심해도 좋다. 가사도 마찬가지다. 두 청년이 이전까지 보여줬던 작법에 비한다면, 뭐랄까, 재치가 늘고 보다 현실적으로 디테일해졌다고나 할까? 혹 당신이『Resoundin'』을 도배하고 있던 팔로알토의 너무 일반론적이고 추상적인 고민의 단어들에 손사래 쳤었다면, 역시 안심해도 좋다. 사실 어떻게 보면, 두 청년의 엠씨잉을 확연히 긍정적으로 보게끔 만드는 건 바로 두 청년일지 모른다. 두 명의 청년이 버스(verse)를 오가며 주거니 받거니 랩을 하는, MC 조인트라는 컨셉 자체에 있는지도 모른다. 혹 당신이 키비와 마이노스의 조인트인 이루펀트의『Eluphant Bakery』(2006) 를 들어봤다면 쉽게 수긍할 것이다. 이루펀트와 피앤큐 둘 다 소울컴퍼니의 'ACL(A Class League) 시리즈'이기 때문이다. 소울컴퍼니 소속 MC 한 명과 타 레이블 소속 MC 한 명을 1:1로 짝꿍 맺어주는 ACL 시리즈는 이제 겨우 2탄이 나왔을 뿐인데도 톤, 억양, 스타일이 전혀 다른 두 MC의 조합으로 시너지 효과를 쏠쏠하게 얻고 있다. 참고로, 차례로 소울컴퍼니의 부름을 받은 마이노스와 팔로알토는 둘 다 '신의의지' 레이블 소속이다.    

자, '5번 트랙까지 지존'의 다음 얘기는 당연히 프로듀싱이다. 일단 공교롭게도, 비트 메이커가 다 다름에도 불구하고 모든 곡이 그루브를 머금고 있다. 타블로가 만든「내일은 오니까」가 댄서블하다는 것, 프라이머리가 만든「웃어넘겨」가 단촐하다는 것만 빼면 나머지 셋은 흐느적거리고 묵직하고 껄렁하다는 것까지도 똑같다. 이처럼 다섯 곡 모두 언더 힙합의 투박한 비트와는 거리가 먼데, 이 점이 전보다 세련되면서도 언더그라운드의 테를 일정 부분 간직하고 있는 두 청년의 엠씨잉과 맞물려 또 하나의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아무튼, 그리하여 결론인즉, 5번 트랙까지『Supremacy』는 인상적인 순간들로 가득하다. 버스 단위가 아니라 문장 단위로 랩을 주고받는「수수께끼」엔 "팔로알토와 더 콰이엇 가여운 당신의 대책없는 꼬라지를 봐요" 라는 기막힌 라임이 등장하고, 사랑에서 이별까지를 꼼꼼하게 써내려간「Love Evolution」엔 여성 보컬이 가미된 죽이는 훅(hook)이 등장한다.「웃어넘겨」는 또 어떤가.『Resoundin'』의「People」과『Eluphant Bakery』의「원님 비방전」에 이어 다시 한 번 아이에프(IF)가 참여했는데, 네 MC가 차례차례 따로따로 들려주는 자기만의 고민이 무척이나 다정하게 느껴진다. 뭐, 본 앨범의 최고 이슈라 할 수 있는, '무브먼트(Movement)' 크루의 개코와 타블로가 프로듀싱한「수수께끼」와「내일이 오니까」는 주인공 두 청년의 엠씨잉과 환타스틱하게 어울리며 세련된 포스를 뿜어댄다.  

자, 그럼 지존은 겨우 5번에서 끝장을 본 것일까? 다행히 후반부 역시 만만찮게 지존이다. 11번부터 14번까지. 이 중에서 최상의 트랙은 단연 디제이소울스케이프가 밝고 소박하게 주조한「Imagine That」. 제목 그대로 피앤큐 두 청년이 갖은 상상을 펼쳐보이는데, 상상 자체가 현실에 대한 고발로 자연스레 연결되는 것이 일품이다. "침체된 음반시장에 피앤큐 대박/ 신승훈, 김건모 다음 우리의 시대다", "남북통일과 동시에 병역의무 폐지/ 걱정이 없이 오로지 음악에만 매진" 등이 특히 그렇다. 이 후반부 지존은 밝고 따뜻하고 담백한 비트로 점철되어 있는데, 따라서 전반부의 껄렁한 지존과 훌륭한 대비를 이룬다. 한편, 스토리 텔링의 대가 키비가 만든 비트를「못다한 말」이라는 제목을 붙여 마지막 트랙으로 배치한 것도 눈에 띈다. 

자, 그럼 본 앨범의 문제점은 당연히 전반도 후반도 아닌, 중반부에 있겠지? 그렇다. 이 놈의 가운데가 문제다. 우선 5번까지 이어지던 그루브의 단절이 귀에 거슬린다.「지켜볼게」는 어쿠스틱 기타 샘플이,「보여줘」는 피아노 샘플이 중요한 소스로 쓰이고 있는데, 이것들이 비트와 엠씨잉의 결합을 방해하고 있다. 중반부의 문제는, 그러니까 전체적으로 비트가 건조하고 엇박이며 악기 샘플링이 유독 튄다는 데에 있다. 그러나 이에 못지 않게 두 청년의 가사 또한 문제다. 이미 전반부의 소재로 쓰인 힙합퍼로서의 자존심, 엉터리들에 대한 디스(diss), 남녀간의 사랑, 사회 비판, 이 네 가지 이야기가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그것도 전반부만큼이나 그럴듯하지 못한 모양새로. 때문에「지켜볼게」의 지독한 디스는 재미없고「보여줘」의 사랑 얘기는 상투적이며,「We Are」로 말하는 자기소개는 너무 늦다. "사랑은 어디있지? 대체 어디있는 거지?" 라며 세상을 통째로 비판한「Cold World」는 그 취지와 가사는 좋으나 방법론에 있어「Imagine That」만 못하다.

자, 그래서 최종 결론은 지존의 끝장을 보았다는 거냐, 못 보았다는 거냐? 답은 당연히 '끝장까지는 가지 못했다' 이지만, 사실 이 답은 그리 중요한 사항이 아니다. 사실 쟁점은 결국 7월 초에 이미 결정나버린 앨범의 의의, 즉 초유의 프로듀싱에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 자체가 앨범 타이틀의 포부와 무관하게 최소한 별 셋 반 이상의 점수를 처음부터 따고 들어간다는 데에 있다. 그러니까 피앤큐 프로젝트는 한 때의 오기나 힙합으로서의 거들먹거림이 아니라, 한국 힙합의 현실을, 그 성장을 진솔하게 대변하고 있는 셈이다. 부클릿에 적혀 있는 다소 투박한 "이 음반은 지금 현재 저희의 최선이 모습입니다" 라는 글귀처럼. 필자 같은 아둔한 사람들 때문에 혹 한국 힙합의 저변 확대가 여전히 요원하다고 해도, 한국 힙합은 이와는 상관 없이 분명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올해만 해도 이미 피앤큐보다 앞서 두 개의 듀오 프로젝트가 있었다. 하나는 앞서 언급한 ACL 시리즈 1탄 이루펀트의『Eluphant Bakery』고, 또 하나는 라임어택(RHYME-A-)과 마일드비츠(Mild beats)의 공동작업『Message From Underground 2006』이다. 두 쌍의 듀오 모두 언더라 일컬어지는 곳에 위치하며 빈번히 교류하고 있지만, 전자는 동방신기 팬들에게도 어필할 만한 감수성 가득한 이야기들을, 후자는 순수하리만치 강직한 언더 힙합의 번뇌를 다뤘다. 그러니까, 좀 과장되게 말한다면, 현재 한국의 언더 힙합은 뭐든 게 가능한 곳이다. 완벽한 한 통속이면서도 자켓을 저토록 다르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신감 속에서 피앤큐의『Supremacy』는 앞선 듀오들의 종합판인냥 당당히 탄생할 수 있었다.

한 가지 더 고무적인 일은, 무브먼트 크루와의 협연 때문인지 피앤큐의 본 앨범이 CJ 뮤직을 통해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Supremacy』는 대형 할인 마트의 작디 작은 음반 코너도 당당히 점령할 수 있었다. 필자가 살고 있는 일산의 음반 소매점 곳곳에서『Eluphant Bakery』와『Message From Underground 2006』은 진작부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소매점에서 취급하는 한국 인디의 대표주자가 말랑말랑한 일렉트로닉 계열과 언더 힙합 두 가지인 까닭이다. 하지만 이제 한 발 더 나아가,『Supremacy』는 모종의 종합을 이뤄내면서 마트까지 진출하기에 이르렀다. 이건 결코 흉 볼 일이 아니다. 투째지님이『90년대를 빛낸 명반 50』(2006) 에서 증언하는 아이돌 스타와 뮤지션의 간격이 거의 없던 시대, 그 시대를 대표했던 신승훈과 김건모의 맥빠진 요즘 신보도 여전히 마트를 장식하고 있는 판에, 피앤큐라고 왜 그러지 못하겠는가. 혹 당신이 2000년대에도, 아니 2010년대에라도, 간격이 없는 시대가 다시 도래할 희망을 품는다면 그 선봉은 아마도 힙합이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피앤큐는 어엿한 출발점으로 남을지 모른다.『Supremacy』는 이와 같은 'Imagine that'을 불러일으킬 충분한 자격이 있는, 훌륭한 대중음악이다. 아무래도 별 반 점 더 줘야겠다.

Credit




홈페이지 www.soulcompany.net



●Track list 

01. Supremacy [produced by Pen2y]

02. 수수께끼 [produced by Gaeko]

03. 내일은 오니까 [produced by Tablo]

04. Love evolution [produced by DJ Zio]

05. 웃어넘겨 (feat. IF) [produced by Primary]

06. 지켜볼게 (feat. 도끼 & E-Sens) [produced by NuoliuNce]

07. 보여줘 [produced by Paloalto]

08. 날으는 새처럼 [produced by 이밀라국거리]

09. We are [produced by SaaTan]

10. Cold world (feat. Soulman) [produced by 도끼]

11. Life goes on (feat. Tiger JK & T) [produced by The Quiett]

12. Imagine that [produced by DJ Soulscape]

13. 고해 (feat. Koonta) [produced by Keep Roots]

14. 못다한 말 [produced by Eluka]



 ●앨범정보



Executive produced by Soul Company

Recorded by The Quiett at Quiett Heaven

(except: 05 by 조승완 at Macho Studio/ 11 by 박재선 at 지하 Studio/ 13 by The Quiett at Quiett Heaven & NuoliuNce at Wing's town Studio?!)

Mixed by The Quiett at Quiett Heaven (except: 01, 08 by 서명주 at Macho Studio/ 03 by The Quiett at Quiett Heaven & 이용섭 at Fluxus Studio/ 04 by Dj Zio at Fader Works/ 09 by SaaTan at Artisan Beats Studio/ 12 by DJ Soulscape at Strange Sweet Studio)

Mastered by 채승균 at Sonic Korea

Designed by Jay at Virtualsoundtrek project

Photography by Sin                      

Track 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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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사
    작곡
    편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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