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Review

느껴진다

선글라스 『Russia Romance B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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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정보
장르 포크
음악을 듣지 않아도 대강 짐작이 가는 앨범들이 있기 마련이다. 예상의 가장 확실한 단서는 비주얼이다. 앨범 자켓의 비주얼은 음악 장르를 구분하는 중요한 항목에 포함되기도 한다. 우리는 예쁜 여가수의 얼굴이 앨범 자켓에 가득 차 있는 음반에서 기묘한 음악적 실험을 기대하지 않는다. 피 흘리는 해골이 그려져 있다면 그 음반은 십중팔구 강력한 헤비메탈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의미에서 김성민의 프로젝트 이름인 ‘선글라스’의 2005년 앨범은 앨범 자켓으로 음악적 내용을 가늠하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눈매만 크게 클로즈업 되어 있는 이 음반, 눈썹은 옅고 쌍꺼풀이 있는 작은 눈과 낮은 콧대는 몽골리안 인종의 특색을 그대로 담고 있다. 흑백의 톤이 진중한 느낌을 주지만 멋들어진 뉘앙스라기보다는 솔직하고 벌거벗어 있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게다가 앨범 표제는 ‘러시아 로맨스 베스트’다. 도무지 그 속을 알 수 없어서 더욱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간의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이런 알 수 없는 비주얼을 가진 음반은 지나치게 몰입된 아티스트의 자의식이 채 걸러지지 않은 상태로 표현되어 있는 음악이거나 정형화된 음악스타일 밖에서 만들어 낸 신선한 음악, 둘 중 하나일 가능성이 많다. 이 앨범은 후자다. 마치, 80년대 후반 사심 없이 들었던 동아뮤직 음반들에서 느꼈던 어떤 진정성이 느껴진다. 실로 오랜만에 만나는 기분 좋은 발견이다.

물론 아티스트의 자의식과 신선한 음악스타일의 구분은 종잇장 한 장 차이일 것이다. 아마도 북클릿에 쓰여진 과도한 멘트들은 첫 앨범을 발표하는 아티스트의 못 다한 자의식이 표출된 것이리라. 「숨잔」같은 곡에서 ‘손가락 하나로 마주할 수 없고’같은 가사도 문맥의 이해가 어려운 것으로 보아 채 번역되지 않은 아티스트의 날감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음반이 기분 좋게 들리는 것은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고 자기 음악을 연주해 내려는 순진무구한 진심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진심은 앨범의 몸통을 이루고 있는 「손톱」, 「천명」, 「숨잔」, 「엉클톰즈하우스」 네 곡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블루스를 바탕으로 하는 연주스타일과 정박자의 내재율을 벗어나지 않는 투박한 리듬 위에 실린 차분한 작곡(「손톱」, 「엉클톰즈하우스」)은 결코 뽐내지 않으면서도 빛을 발하는 천연진주같은 곡들이다. 김현진이라는 보컬리스트가 참여하고 있는 「천명」은 낮선 코드만을 사용하면서도 (이 앨범 특유의) 차분한 연주 패턴을 놓치지 않음으로서 굳은 신뢰를 선사하게 만든다. 아코디언의 애잔함이 뉘앙스의 90%를 담당한 「숨잔」은 왜 ‘러시아 로맨스 베스트’라는 표제를 달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선사하는 트랙이다. 아티스트가 북클릿에서 자칭하듯 이 앨범은 ‘거친 서정성의 애시드포크 앨범’인 것이다. 별다른 테크닉도 없이 특출난 음악적 효과도 없이 이런 진한 맛을 낼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아티스트의 내공이라고 판단한다. 원조 함흥냉면처럼 첫 맛은 싱겁기 그지없어도 먹다보면, 듣다보면 은근한 매력을 뿜어내고야 만다. 그러므로 결코 질리는 법이 없다.

선글라스 김성민은 대구출신의 기타리스트이며 ‘김마스타’라는 닉네임으로 90년대 초반부터 세션 활동을 해 왔던 인물이다. 홍대 부근으로 올라와서는 이한철의 튜브앰프와 어울리며 재즈 아카데미 출신 보컬리스트 조미자와 듀엣 앨범을 발표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2004년 『Cheap Sunglass』라는 펑키한 EP를 발표했었는데 애시드 펑키 스타일을 들려주었었다. 전작에 비하면 180도 변화라고 하겠다. 그러나 굳이 판단착오를 지적하라면 전작이지 이 앨범은 아니다. EP는 그루브한 분위기 보다 「이제는(...As Now)」에서 잠깐씩 들려주었던 질박한 기타톤으로 더 기억되어 있으니 말이다.

EP에서 긴 벤딩으로 듣는 이의 감수성을 난타했던 연주곡 「잘 지내세요」는 이 앨범에도 같은 제목으로 실려 있다. 그러나 1년의 간격을 두고 다시 연주한 이 곡은 본래의 모습을 찾은 듯 의연하고 탄탄하다. 「Cause We've Ended As Lover」의 선글라스 버전 같긴 하지만 온 진심을 다해 한 음 한 음 타전해 내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이 연주는 자신의 벤딩, 자신의 톤을 가지려는, 척박한 음악환경에 처해 있는 어리숙한 기타리스트의 위대한 시도이다. 물론 Jeff Beck에 비하면 조금 투박한 손가락 움직임이지만 이 세상엔 완벽하지 않아 더 사랑스러운 것들이 수만가지는 된다.

아웃트로 「귤사러가는 길」과 어쿠스틱으로 조용히 연주한 보너스트랙 「A Suite for 22 Feb.」으로 앨범을 끝까지 들으면 결국 긴 상념에 빠져들고야 만다. 스타일이고 연주 실력이고 다 내팽개친 듯 벌거벗은 듯한 솔직함이 그대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을 음악 듣는 즐거움이라고 아니 말 할 수 없다. 

Track 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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