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Review

기타 & 목소리 +α

이영훈 『내가 부른 그림 2』
1,840 /
음악 정보
발표시기 2015.02
Volume 2
레이블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공식사이트 [Click]

이영훈의 전작은 중요한 작품이다. 옥상달빛과 비슷하게 등장하거나 뒤따른 여성 뮤지션들의 어쿠스틱 중심 음악들, 포크와 팝과 일렉트로닉의 소소한 버무림 위에 일상의 소재와 정서를 끼얹은 노래들이 나름대로 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그곳에 『내가 부른 그림』(2012)은 가만히 앉아있었다. 포털 사이트들이 찾아 나선 듣기 좋고 의미도 있는 노래들 틈바구니에서 이영훈도 똑같이 어쿠스틱 또는 포크로 소비될 운명이었지만, 그의 음악은 그들의 ‘어쿠스틱 흐름’과는 궤를 달리하는 특질을 품고 있었다. 통기타 연주의 비중과 밀도가 대단하여 포크의 순수 이데올로기에 가까웠고, 차분한 곡조와 목소리는 이병우와 조동익의 80년대 정서까지 상기시켰으며, 기억과 그리움과 머뭇거림과 회한으로 점철된 노랫말은 철저하게 마음의 안쪽을 헤집었다. 『내가 부른 그림』은 팝 지향의 웹 미디어에 포섭되지 않고서도 그 지형 속에 나란히 자리 잡았던 포크의 수작으로 당분간 계속 효력을 발휘할 것이다. 더 나아가 '21세기에 한국 포크의 명맥을 이은 뮤지션이 있기는 했소?' 라고 누가 묻는다면 루시드 폴의 『Lucid Fall』(2001), 손지연의 『The Egoist』(2005), 소규모아카시아밴드의 『입술이 달빛』(2006)과 더불어 꽤 괜찮은 대답이 되어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부른 그림 2』라고 똑같이 명명된 이영훈의 차기작은 어떨까? 전작의 판박이일까? 글쎄, 대답은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 앞에 열거한 특질들을 재차 느끼고 싶었던 사람의 입장에서는 동그라미도 아니고 엑스표도 아닌, 세모를 줄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단적인 예는 「일종의 고백」과 「기억하는지」가 제공해주고 있다. 이 두 곡을 시종일관 지배하는 기타의 차분하고 단아한 핑거링은 전작의 핵심이었던 바로 그것이다. 이영훈의 꾸밈없는 목소리도 그대로이고 마음을 헤집는 노랫말도 그대로여서 모든 것이 좋다. 특히 「일종의 고백」에 등장하는 “계절 같은 것에 취해 나를 속이며 순간의 진심 같은 말로 사랑한다고 널 사랑한다고”는 앨범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상 깊은 구절이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스트링 사운드가 발라져있다. 표현그대로 시멘트처럼 발라져있다. 이걸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다. 프로듀서가 선우정아더라도 거부감을 막을 길이 없다. 통기타가 잘 들리도록 내버려두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세모로 판단하고픈 노래들이 더 있다. 「멀리 있는 그대에게」에는 오르간 연주가 들어가 있는데 차분한 기타 반주 밑에 지그시 깔리는 이 연주는 이영훈의 음악이 표방하는 기억, 추억, 과거의 정조와 잘 어울린다. 그런데 이것도 필수 요소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있어서 괜찮지만 없어도 괜찮은 것이다. 「무얼 기다리나」에 참여한 조원선도 그렇다. 전작에서 들었던 같은 소속사 식구 조예진(루싸이트 토끼)과 김윤주(옥상달빛)의 고운 목소리보다 조원선의 먹먹한 목소리가 이영훈과 더 잘 어울리는 조합인 건 분명하다. 하지만 고운 목소리는 또 나름대로 주변 공기를 환기시키는 역할을 했었다. 이번의 선택은 그걸 놓친 셈이다. 게다가 드럼은 또 왜 그럴까. 가만히 토닥거리며 분위기를 맞춰가던 드럼이 마지막에 두두둥거리며 존재를 과시하는 것도 뭔가 사족처럼 느껴진다.

 

물론 천하의 선우정아가 아무런 성과도 못 낼 위인은 아니다. 그녀의 감각은 통기타가 중심축을 이루지 않고 드럼과 베이스가 주인공이 되는 모던록 편성의 「돌아가자」와 「안녕 삐」에서 빛을 발한다. 「돌아가자」는 펜더 로즈의 꽁한 음색과 터벅터벅 걷는 드럼이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가는 모습이 좋고, 「안녕 삐」는 기타 핑거링과 피아노뿐이던 전작의 곡을 풀 편성으로 확장하여 원곡의 절절한 감정을 제대로 증폭시켜놓았다. 그렇다면 선우정아 프로듀싱의 어긋남은 결국 충돌의 문제였던 것일까? 이영훈의 기타 핑거링은 침범 자체를 허락하지 않는 그의 본질적 정수이기 때문에 과도한 음악적 장식은 애당초 성립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기다리는 마음 하나」를 놓고 보자면 확실히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간주에 살짝 들어간 더블 베이스가 있을 뿐, 그의 클래시컬한 기타와 목소리만 있는 이 노래의 흡입력은 포크 싱어송라이터 이영훈의 가치를 가감없이 드러낸다.

 

어쨌든 결론은 세모다. 이영훈도 또 레이블도 단조로움과 변화 없음이라는 지적을 떨쳐버리기 힘들었을 것이다. 결국 이들의 고심은 「안녕 삐」처럼 제대로 살려낸 것과 「일종의 고백」처럼 시멘트를 발라 죽여 버린 것들이 뒤섞인 결과로 나타났다. 결과가 우려스러운 건 아니다. 『내가 부른 그림 2』에는 그냥 하던 대로 해서 좋은 노래도 있고 다르게 밀어붙여서 방향 전환의 모범이 된 노래도 있다. 뭐가 됐든 이영훈의 특질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으니 기꺼이 다음 작품을 기다리면 되는 일이다. “나는 또 누군가에게 반하고” “웃고 있는 너와 절벽 위의 나”같은 펀치 라인을 기다리면 되는 일이다.


Credit

Executive Producer : Soda
Producer : 이영훈, 선우정아
Co-Producer : bk!, 곽은정
Vocal Direction : 곽은정
Mixing Engineered by 곽은정 at KWAK studio
Mastered by bk! at AB room
Management by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Promotion by 홍달님
A&R Operation by 김지웅, 안성문
Artwork by 이규태
Design by Sparks Edition

Track List

  • No
    곡명
    작사
    작곡
    편곡
  • 1
    Intro (inst.)
    -
    이영훈
    이영훈,선우정아
  • 2
    멀리있는 그대에게
    이영훈
    이영훈
    이영훈,선우정아
  • 3
    무얼 기다리나 (feat. 조원선)
    이영훈
    이영훈
    이영훈,선우정아
  • 4
    일종의 고백
    이영훈
    이영훈
    이영훈,선우정아
  • 5
    돌아가자
    이영훈
    이영훈
    이영훈,선우정아
  • 6
    위로
    이영훈
    이영훈
    이영훈,선우정아
  • 7
    기다리는 마음 하나
    이영훈
    이영훈
    이영훈,선우정아
  • 8
    기억하는지
    이영훈
    이영훈
    이영훈,선우정아
  • 9
    안녕 삐
    이영훈
    이영훈
    이영훈,선우정아
  • 10
    가만히 당신을
    이영훈
    이영훈
    이영훈,선우정아

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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