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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 리드 추모 특집 #5] 80년대, 잃지 않은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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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정보


대학 시절, 오넷 콜맨(Ornette Coleman)의 'Lonely woman'을 창 밖에서 훔쳐 듣고 인생이 바뀐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 이하 ‘벨벳’)의 리더 루 리드(Lou Reed). 그의 솔로 시절 지향점은 “Loaded”에서 예고된 것처럼 오로지 로큰롤이었다. 그는 한 때 로큰롤을 신(God)이라 불렀고 자신의 종교는 "기타를 연주하는 것"이라 했다. 그래서 ‘Paint it black’ 같은 직설의 리듬을 타고 ‘I can't stand it’을 토했을 때 그의 음악적 지침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헤로인 중독자가 카뮈(Albert Camus)의 이방인처럼 "완벽한 날"을 읊조린 데 이어 우리의 귀를 사로잡았던 'Hangin' around'와 스트록스(The Strokes)의 등장을 예견한 듯한 ‘Good evening Mr. Waldheim’ 같은 곡들도 마찬가지다. 루 리드는 언제나 로큰롤을 지향했고 그의 80년대 역시 오롯이 그 로큰롤에 바친 뜨거운 10년이었다.


『Growing Up In Public』 (1980)

1980년에 루 리드의 80년대를 연 이 앨범은 뮤지션 루 리드의 특징과 업적을 고루 담고 있는 작품이다. 가령 레이건(Ronald Wilson Reagan)과 루소(Jean-Jacques Rousseau), 에셔(Maurits Cornelis Escher)와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My old man’), 그리고 게슈탈트(Gastalt) 심리치료와 에드가 앨런 포(Edgar Allan Poe, ‘Love is here to stay’)가 등장하는 대목에서 지적인 루 리드는 건재하다.

 

또, 엄마를 “심술궂은 노파”로 묘사하거나 그런 엄마를 때렸던 아빠의 기억을 풀 때, ‘The power of positive drinking’이라는 음주 친화적 개똥철학을 밝혀 말할 때 그의 냉소와 해학 역시 여전히 살아 꿈틀댄다. 여기에 릭 라이트(Richard Wright)와 제리 리 루이스(Jerry Lee Lewis)를 번갈아 들려준 척 해머(Chuck Hammer), 스네어 필인을 주로 쓰며 경쾌하고 박력 있는 드러밍을 구사한 마이클 수쇼르스키(Michael Suchorsky)의 존재가 더해지면서 루의 80년대는 긍정되었던 것이다.


물론 랩에 가까운 창법이 스민 ‘So alone’에서의 디스코 비트가 시스템 오브 어 다운(System of a Down)보다 앞선 "흥겨운 슬픔의 반전"이었다는 사실은 우연의 선견지명이랄 수 있는데, 이 정도면 70년대의 영광쯤 다시 누리기에 부족함이 없을 ‘잃을리 없는 10년’의 시작이었다 봐도 무리는 아니겠다.


『The Blue Mask』 (1982)


무릇 명반은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인지, “Transformer”를 검푸르게 클로즈 업한 “The blue mask”는 80년대 루 리드의 첫 번째 영광이었다. 그 안엔 당시 아내였던 영국인 디자이너 실비아 모랄레스(Sylvia Morales, 1990년에 이혼)에게 바치는 사랑 노래 ‘Heavenly arms’와 기타 톤, 보컬스타일에서 모던록을 예습할 수 있는 ‘Average guy’, 쟁글거리는 기타가 좋은 ‘My house’와 페르난도(Fernando Saunders)의 프렛리스 베이스가 부각된 여성 찬가(?) ‘Women’이 있다.


팔방미인 척 해머가 빠진 자리엔 리치 발렌스(Richie Valens)를 영웅으로 삼는 로버트 퀸(Robert Quine)이 가세해 ‘Wild child’의 스티브 하우(Steve Howe)와 ‘Vicious’의 믹 론슨(Mick Ronson)의 연주를 무색케하는 강력한 기타 솔로를 들려주었고, 벨벳 시절의 공간감을 재현한 ‘The Day John Kennedy Died’에서 재즈식 타임키핑을 잡은 돈 페리(Doane Perry)는 타이틀 트랙 'The blue mask'에서 심벌의 서스테인과 빠른 필인으로 역시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에 맞선 ‘수다꾼’ 루 리드의 장기는 ‘The heroine’이라는 곡에서 드러나는데, 일렉트릭 기타 한 대 만으로 풀어내는 그 발군의 스토리텔링 능력은 시라큐스 대학에서 만난 시인 델모어 슈왈츠(Delmore Schwartz, 루는 델모어를 가리켜 “내 생애 처음으로만난 위대한 인물”이라고 했다)의 유산 즉,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하고 짧은 언어로 가장 놀라운 경지에 도달하는 비법을 응용한 것이었다. 그렇게 1982년, 유력지 롤링 스톤은 이 앨범에 별 다섯 만점을 주었다.


『Legendary Hearts』 (1983)


명반의 기운은 다음 작품으로도 이어졌다. 비록 드러머는 프레드 마허(Fred Maher)로 바뀌었지만 존 맥러플린(John Mclaughlin)부터 슬래쉬(Slash), 제프벡(Jeff Beck), 심지어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와도 협연했던 페르난도의 베이스는 리듬보다 화음에 주력하며 ‘Legendary hearts’, ‘Home of the brave’, 그리고 마지막 곡 ‘Rooftop garden’을 빛냈다.


세상 모든 ‘근로자’들이 외치고 싶어 할 말을 제목으로 쓴 ‘Don't talk to me about work’는 깔끔한 로큰롤 비트로 무장한 루 리드의 쓰디 쓴 유머 감각이며, 희망적인 사운드로 절망의 메시지를 건네는 ‘Bottoming out’, 콜럼버스와 인디언을 등장시킨 미국 역사로부터 분쟁 종식이란 의미를 끄집어내는 ‘Pow wow’에서 팬들은 다시 한 번 루 리드의 진지한 성찰과 맞닥뜨리게 된다. 더불어 미끈한 베이스 프레이즈로 계엄령을 다룬 ‘Martial law’의 일렉트릭 기타 리프는 80년대 최고의 것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지경이고, ‘Make up my mind’와 ‘Turn out the light’의 무심한 흐름에선 톰 웨이츠(Tom Waits)와 닐 영(Neil Young)이 함께 들려 따로 흥미로울 수 밖에 없다.


1970년, 뉴욕 맥시스 캔사스 시티 클럽에서 처음 만난 루 리드를 떠올리며 벨벳의 음악을 “서프 록과 두왑의 기묘한 조화”라 했던 패티 스미스(Patti Smith)의 정의는 이처럼 한 동안, 그리고 철저히 유예되기에 이른 것이다.



패티 스미스와 루 리드


『New Sensations』 (1984)

1984년. 조지 오웰(George Orwell)이 상상한 디스토피아는 리들리 스콧(Ridley Scott)의 “애플 광고” 한 편으로 박살났다. 밴 헤일런(Van Halen)과 유리스믹스(Eurythmics)는 앞 다투어 “1984”를 앨범으로 박제했고, 대중음악은 바야흐로 전기 악기와 전자 악기가 밀애를 나누던 시기였다. 빌리 아이돌(Billy Idol)의 ‘Eyes without a face’, 카스(The Cars)의 ‘Drive’, 케니 로긴스(Kenny Loggins)의 ‘Footloose’, 웸(Wham!)의 ‘Freedom’이 모두 이 시기에 작렬했다.

 

섹시한 팝 사운드와 뉴웨이브, 소프트록과 헤비메탈이 공존하던 이 시기를 루 리드도 그냥 지나칠 순 없었다. 건반주자 피터 우드(Peter Wood)의 역량에 빚을 진 ‘Endlessly jealous’는 바로 그 시대 소리를 대표하는 곡이었고, 필 콜린스(Phil Collins)와 록시 뮤직(Roxy Music)에 키스(Kiss)를 버무린 듯한 ‘My friend George’ 역시 이 시대를 반영하는 트랙이었다.

 

물론 50년대 로큰롤의 흥을 살린 ‘I love you Suzanne’ 같은 올드한 취향이나 내레이션과 래핑 사이 어딘가에 걸친 특유의 라임을 펼치는 ‘My red joystick’의 스마트한 발상은 여전한 가운데, 깡마른 기타 리프에 가스펠과 베이스, 드럼을 수줍게 입혀나가는 ‘Turn to me’는 페르난도의 펑키 베이스가 주도(‘Fly into the sun’에서도 그렇고 이 앨범에서 페르난도의 역할은 아주 중요하다)하는 ‘New Sensations’와 더불어 앨범의 백미로 손꼽힌다. 아울러 스리슬쩍 ‘High in the city’에서 건드린 레게는 이 시기 루 리드의 일탈 의지를 증명하는 유쾌한 센스라 보면 맞을 것이다.


『Mistrial』 (1986)

2년 뒤, 우리는 역대 가장 하드한 루 리드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당시 평단은 데프 레파드(Def Leppard)와 인엑시스(INXS)를 들고 온 루 리드가 못마땅했는지 이 작품에 그리 달지 않은 평점들을 퍼부었는데, 아마도 색소폰을 발라 느끼한 80년대 팝튠(‘No money down’) 따윈 접고 거칠고 탄력적인 ‘I remember you’ 정도에서 일탈이 멈추길 바란 것이리라.

 

어쨌건 그럼에도 페르난도의 뭉툭한 슬래핑이 멋스런 ‘Outside’, 그리고 혹자의 표현대로 “오리지널 래퍼(Rapper)” 루 리드를 만날 수 있는 디스코 트랙 ‘The original wrapper’의 밀도감엔 쉽게 물리칠 수 없는 매력이 있었다. 장르를 바꿔도 루 리드는 루 리드였다는 얘기다. 가령 내 사랑(‘Don’t hurt a woman’)과 엄마의 사랑(‘Mama’s got a lover’)을 함께 노래하는 모습, 6살 때 첫 여자를 8살 때 첫 음주를 14살 때 첫 운전을 경험했다는 상상으로 뻣뻣한 기득권과 답답한 관습에 반기를 드는 ‘Mistrial’과 넥스트의 ‘Turn off the T.V.’에 앞서 영상 문명의 폐해를 까대는 ‘Video violence’는 그 훌륭한 방증이다.


『New York』 (1989)

소울(Soul)이 있었던 ‘Lisa says’를 제일 좋아한다는 페이브먼트(Pavement)의 스티븐 말크머스(Stephen Malkmus)의 말이다.

 

“나는 91~97년까지 뉴욕에 살았는데 정말 멋진 곳이었다. 벨벳과 루 리드, 나에겐 그들이 곧 뉴욕이었다.”

 

유투(U2)의 보노에 따르면 제임스 조이스(James Augustine Aloysius Joyce)에게 더블린이라는 도시가 ‘완벽한 도시’였던 것과 같이 루 리드에겐 뉴욕이 그랬다고 한다. 굳이 밖엘 나가지 않아도 사랑과 미움에 관한 모티프가 넘쳐났던 곳. 인간은 바보 같지만 뉴욕은 그렇지 않았다고 루 리드는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앨범 “New York”의 발매는 필연으로 보인다. 루 리드가 음악을 시작한 이유가 무엇이었나. 바로 로큰롤로 소설을 쓰는 것이었다. 지난 수 십 년간 그는 그 꿈을 조금씩 이뤄왔지만 이렇게 전면적이었던 적은 없었다. “New York”에 수록된 곡들의 가사 길이는 그래서 하나 같이 평균 이상을 자랑한다. 음악 보단 가사에 더 치중한 앨범이란 뜻이다. 이 작품에서 음악은 중심에서 벗어나 이야기와 이미지의 배경이 되고 있다. 붓다와 마이크 타이슨(Mike Tyson), 제시 잭슨(Jesse Jackson)과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는 그 캐릭터요 노숙인과 아동학대, 위증자를 각각 도마에 올린 ‘X mas in February’, ‘Endless cycle’, ‘Strawman’은 그 주제 의식이다. 에이즈에 대한 편견을 일갈하는 ‘Halloween parade’는 중에서도 “소설 또는 영화 같은 음반”이라는 혹자의 평에 가장 부합하는 지점이었다.

 

더불어 80년대식 흥청망청 팝 사운드를 뒤로 하고 벨벳의 감각(‘Last Great American Whale’)을 소환한 점, ‘부름’보단 ‘주절댐’에 가까운 창법(‘Romeo had Juliette’)을 다시 구사한 점 등에선 루 리드의 음악적 회귀도 엿볼 수 있다. 뿌리로 돌아가려는 그 의지는 구수한 블루스(‘Beginning of a great adventure’)와 흥겨운 서던록(‘Busload of faith’), 아련한 컨트리(‘Hold on’)를 전면에 까는 식으로 14트랙 속 곳곳에 박혀 있는데, ‘Dirty Blvd.’의 명쾌한 기타리프와 ‘There is no time’에서 마이크 레스케(Mike Rathke)가 들려준 짜릿한 노이즈 기타 솔로는 그 안의 근사한 보너스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루 리드와 보노(U2)


Outro : 너무 좋아하니까...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가 말한 “추잡한 현대의 조류”를 음악으로 풀어낸 팝계 최대의 포커 페이스. 우연일까. 루 리드가 사망한 10월27일은 딜런 토마스(Dylan Thomas)와 실비아 플러스(Sylvia Plath)의 생일이었다고 한다.


“너무 좋아하니까. 좋아하면 해야지. 좋아하는 걸 하지 않는 인생은 체포 당한 인생이라구.”

 

언젠가 “왜 음악을 하게 된 거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루는 이렇게 답했다. 2011년 11월 25일 라스베가스 코스모폴리탄 호텔 첼시볼 룸 실황에서 ‘Satellite of love’를 헌정한 모리세이(Steven Patrick Morrissey)도 비슷한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의 말을 끝으로 이 글을 맺는다. RIP, Lou Reed......

 

“루 리드처럼 자신이 생각한대로만 살아온 사람들로부터 입은 은혜를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겠나.

루 같은 사람이 없었다면 세상은 얼마나 지루했을지, 상상이 안 될 정도다.”

모리세이와 루 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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