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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나 #2. 배경 &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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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정보

 

“영상 속 화면이나 배경이 완전히 비현실적인 건 아니지만
가사를 비롯해 조금 추상적이고 현실과 동 떨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그렇지만 그 배경이 된 이야기는 제게 현실이니까요.”


: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게 ‘안산 음악’이라는 소개를 전면에 하셨어요. 그런데 실제로 제가 생각했을 때 워나님의 음악이 안산을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와 딱 맞아 떨어지거든요.


: 아, 정말요?


: 네, 정말 그래요. 음악을 들을수록 안산이라는 도시가 왠지 익숙한 것처럼 그려지더라고요.


: 흔히 지역성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음악을 소개할 때 “어떤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한다.”*라는 문구를 굳이 넣지 않잖아요. 생각하셨던 특별한 맥락이나 계기로써 말씀해주실 만한 게 있을까요?
* “서울 남부에 위치한 공업도시 안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전자음악가” – 워나의 앨범 소개 중에서


: 우선 제가 안산에서 나고 자랐어요. 물론 현재 작업실은 서울에 있지만, 거주는 안산에서 계속하고 있고요. 처음 음악을 시작한 것도 안산에서였고, 본격적으로 음악을 배우러 간 학교도 안산에 있었다 보니까 ‘안산’이라는 말을 붙이고 싶었던 것 같아요. 물론 개인적으로 안산이라는 곳이 무척 흥미롭다는 생각도 해요. 대한민국에는 이미 엄청 크고 화려한 서울이 있지만, 안산 역시 그 못지않게 화려하고 사람이 많거든요. 사람들이 많이 찾지는 않지만 많은 것들이 뒤섞여 있는 도시라고 생각해요. 이국적인 분위기를 엄청 풍겨요. 제가 알던 한국이 아닌 느낌. 그래서 그런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서 일부러 안산역 근처를 거닐러 가기도 해요.


: 말씀하신 사운드에 관한 관심 측면에 있어서 워나 음악의 얼터너티브 테크노나 인더스트리얼 계열의 사운드 질감이 안산이라는 공업 도시의 공장이 돌아가는 소리처럼 느껴지기도 했거든요. 실제로 그런 소리들을 직접 들으신 적 있나요?


: 그런데 막상 공단 근처나 그런 곳에 간다고 해서 우리가 아는 그런 소음들이 막 크게 들리지는 않아요. 다만 소리가 들리기보다 공기가 달라진다는 느낌은 있어요. 공장지대의 그건 비슷할 것 같으면서도 흔히 도시 주변에서 보는 주차장이나 공사장에서 나는 냄새와 다른 무겁고 탁한 공기예요. 소리도 들리긴 하는데 그것보다 분위기가 많이 다른 것 같아요.


: 「Lament」의 뮤직비디오 촬영지는 어디였나요?


: 인천공항 부근이었어요.


: 정규앨범 8곡 중 절반에 해당하는 4곡에 가사가 있는데 대부분 이마저 가사가 짧고, 추상적인 한 장면만 그리고 있어요. 그에 반해 「Lament」는 뭔가를 더 얘기하려고 하고 있고, 뮤직비디오에도 나름의 서사가 있어요. 아까 전 「Lament」에 대해 개인적인 경험의 계기로부터 비롯된 음악이라고 하셨는데요.


: 당시 ‘구원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지만, 그에 가까운 존재)를 만나게 되면서 쓴 가사였어요. 그런데 음악을 듣고 대화를 나눌 때 뮤직비디오 감독님(Nany Kim, Bang Jae Yeob)이 뭔가 생각나는 게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해석과 아이디어를 말씀해 주시는데 잘 맞아떨어지더라고요. 영상 중간에 댄서 말고 등장하는 할머니 한 분이 바로 ‘구원자’ 역할입니다.


: 뮤직비디오 마지막 부분에 직접 출연하시기도 했어요.


: 네. 제가 영상에 꼭 개입했으면 좋겠다고 감독님이 요청하셨어요. 저도 제안주신 게 정말 좋았던 게 제가 영상에 들어감으로써 현실성이 생긴다고 해야 할까요? 영상 속 화면이나 배경이 완전히 비현실적인 건 아니지만 가사를 비롯해 조금 추상적이고 현실과 동 떨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그렇지만 그 배경이 된 이야기는 제게 현실이니까요. 영상의 일부 비현실적인 요소 역시 제가 직접 출연하면서 현실성이 생기는 측면이 있다고 여겼어요.
 


「Lament」 M/V


: 그 밖에도 가사 없이 소리의 연출과 분위기로 이루어진 곡들이다 보니 아무래도 음악을 제목과 매칭해 이미지를 연상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8」과 「Raw Idol」 같은 곡들에 관해 이야기해주실 수 있을까요?


: 「8」의 경우에는 (트랙과는 크게 상관없을 수 있는 얘기일 수도 있는데) 예전에 비주얼 이펙트(visual effects)를 잠시 배웠던 적이 있어요. 그걸 활용해 당시 작업하던 음악에 입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때 쓰던 가사가 “내가 당신의 슬픔을 담을 테니 가슴을 다 뜯어 먹어라.” 이런 내용이었어요. 그런데 이걸 영상에 나타날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하던 차에 나온 형상이 ‘나비’였고, 나비를 단순화할 때 숫자 ‘8’ 같은 모양도 나타나면서 가슴의 모양 같기도 하더라고요.


: 아~.


: 마침 잘 맞아 떨어진 게 「8」을 작업한 시기가 8월이더라고요. (웃음) 그런데 이 곡도 제가 특히 박자를 가지고 장난을 많이 친 음악인데, 작업을 하다 보니까 이렇게 하다 보면 정말 끝도 없이 장난을 치겠더라고요. ‘8’을 눕혔을 때 무한대 기호(∞)가 되기도 하는 게 생각이 나고, 비주얼 이펙트 배웠던 기억도 떠오르면서 그렇게 제목을 짓게 됐어요. 「Raw Idol」은 앨범 수록곡이 두 번째 버전인데, 첫 번째 버전이 테크노를 염두에 두고 쓴 곡이었거든요. 곡을 정말 ‘raw’하게 썼어요. 이 곡은 제목을 특별히 생각하지 않고 짓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raw’라고 할 마음도 있었는데, 관련해 어떤 영어 단어(지금은 기억 안 납니다.) 조합을 번역기에 넣었더니 우리말로 ‘날쌘돌이’라고 나오더라고요. 그걸 다시 영어로 번역했더니 ‘raw idol’이라고 나왔고요. 두 단어 조합이 제가 이 트랙에 지닌 느낌이기도 하고, 그냥 ‘raw’라고 하면 재미 없기도 해서 (웃음) 이렇게 제목을 지었습니다.


: 전자음악의 경우 말씀하신 비주얼 이펙트처럼 비주얼 아트와 무대가 떨어질 수 없는 관계라고 생각하거든요. 발매 시기에 시국이 좋지는 않았는데 공연은 어떻게 하셨나요?


: 작년 앨범 발매 한 달 후 10월에 《UNDERRAID 2020》에서 뮤지션과 DJ 20팀 정도 모여 스트리밍 페스티벌을 한 적 있어요. 앨범으로 한 첫 공연이었어요. 이후 11월에는 SCR(서울 커뮤니티 라디오)에서 Two Tone Shape 등과 함께 두 번째 라이브 공연을 했고요. 아무래도 모처럼 앨범을 낸 만큼 영상과 함께하는 공연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는 했는데, 나만이 아니라 모두가 공연하기 어렵게 된 상황이라 그런 시도를 하지 못한 게 아쉽기는 했어요.


: 그러면 앞으로는 그와 같은 비주얼 작업을 섞은 공연을 하실 생각도 있으신가요?


: 물론 생각이나 관심은 있는데요. 영상의 경우 저는 실사를 더 좋아하는 편이어서 만일 작업을 한다면 실제 촬영한 영상이나 사진들을 가지고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실제로 계획하고 있는 것들이 좀 있고요.


: 말씀하셨던 좋아하고 찾아 들었던 음악처럼 평소 좋아하는 영상이나 찾아보는 이미지가 있나요?


: 제 취향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예를 들어 Portishead의 음악을 들을 때 음악만 듣는 게 아니라 유튜브 같은 곳에서 ‘대자연’ 이런 키워드를 검색해서 3시간짜리 영상 있거든요. (웃음) 이런 걸 멍하니 봐요. 아니면, ‘해파리’..


: 짐작이 됩니다. 반드시 4K UHD로 보실 것 같아요.


: (웃음) 맞아요. (비록 수족관이겠지만) 해파리가 파란 물 속을 부유하는 영상을 보면서 가만히 있곤 해요.


: 그것도 보셨을 것 같아요. 넷플릭스의 모닥불 타는 영상.(《넷플릭스 벽난로》)


: (웃음) 어? 그것도 봤어요. (웃음) 그 영상 없어진대요. 서비스 종료한다고 해서 (웃음) 아쉬워요.


: 앨범에 앞서 사운드 클라우드에 올리신 믹스테입 『Amylase』(2020)도 들었어요. 여러 곡이 17분짜리로 쭉 이어져 있는 형태예요.


: 저는 작업을 할 때 원래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하면서 오랜 기간을 두고 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Amylase』 같은 경우 대여섯 곡이 연달아 나오는데 그 곡들이 전부 이틀, 사흘 만에 작업한 곡들이거든요. 처음으로 복잡한 생각 없이 작업해본 곡이었어요. 그렇게 총 한 달 가량 작업한 곡들을 이어 붙여서 가벼운 마음으로 공개한 믹스테입이었고, 『Thanatoide Butterfly』와 결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 다음 앨범의 경우 조금 고민이 되기도 해요. 예를 들어 전과 다르게 하기 위해 좀 더 많은 가사를 쓰고, 노래를 부른다면 제가 그 정서에 너무 깊숙이 들어가 영향을 미칠 것 같더라고요.(이후 3월에 공개한 싱글 「Gasi」에서 실제로 긴 우리말 가사를 소화했다.)
 


믹스테잎 『Amylase」 (2020)


: 혹시 음악 외에 자주 접하거나 좋아하는 예술 장르가 있으신가요?


: 요즘 거리를 두고 있기는 한데, 원래 시집을 굉장히 좋아해요.


: 거리를 두고 있다는 건 아까 전 글 쓰기 말씀하신 것과 비슷한 맥락 때문일까요?


: 아무래도 시를 좋아하고, 그로부터 영향을 받다 보니 가사나 글을 쓸 때 비유적인 표현을 너무 많이 쓰게 되더라고요. 오히려 저에 대해서 직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되는 강박이 생겨서. 사실 노래에 있는 가사들은 전부 예전에 썼던 일기에서 발전시킨 게 많아요. 가사 자체가 몇 개 없기는 하지만 이 가사들은 제가 어렸을 때 많이 읽은 시집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 앞으로 어떤 음악을 하고 싶다거나 어떤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는 비전이 있으실까요?


: 음악을 처음 시작할 때 생각했던 게 있어요. 다른 많은 분들도 비슷할 거라 생각하는데 ‘워나’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게 분명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제가 워낙 사운드에 관심이 많으니까 사운드 같은 것을 비롯해서 제 음악이 누구를 따라한다거나 ‘제2의’ 누구라는 것보다 그냥 ‘워나의 음악’이었으면 좋겠어요. 그게 음악 처음 할 때부터의 바람이었던 것 같아요.

 


워나의 음악, 『Thanatoid Butterfly」 (2020) Full Streaming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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