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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나 #1. 근황 & 앨범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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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정보


“워나가 올해의 신인 중 하나가 된 이유는
낯선 장르 때문이 아니라, 어떤 희소한 가치 때문이 아니라,
거기에 그렇게 존재하는 입지(立地) 때문이다.”
(윤호준, 《음악취향Y》 2020년 '올해의 신인' 리뷰 중에서)


괜스레 이것과 저것을 섞어보고, 이때와 저때로 자꾸 되돌아가는 현상은 오롯이 지금 자기 것으로 새로운 무언가 될 수 없다는 노파심이나 소통에 대한 의식 때문일지도 모른다. 반대로 (그 안에도 무수히 많은 하위 장르와 씬이 있기는 하지만) 거의 무한에 가까운 자유가 주어진 전자음악에 있어서는 때때로 작품이 지나친 추상의 영역으로, 혹은 (정체를 가늠할 수 없는) 작가의 자의적인 무엇으로 휘발되는 순간이 있다.

지난해 첫 앨범을 발표한 워나의 음악은 꽤 확고하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보였다. 괜한 메시지를 욱여 넣거나 구체적인 장면을 제시하지 않았는데 어렴풋한 이해와 남겨진 미지 사이, 익숙한 무의식 속 장면과 정답을 잡을 수 없는 의식 사이로 자꾸 대화를 걸어 왔다. 인터뷰를 청한 이유는 그러한 대화에 응한 것뿐이었다.


○ 인터뷰이 : WONA(워나)
○ 인터뷰어 : 김용민, 정병욱 (음악취향Y)
○ 일시/장소 : 2021년 1월 31일 21:00~22:30, 온라인 비대면 진행
○ 사진 : 워나
○ 녹취 : 정병욱 (음악취향Y)
(편집자 註. 본 인터뷰의 일부 내용은 웹진 《Indie Post》에도 게재되었습니다. [클릭])
 


 

“일일이 글로 적다 보면 그러한 문장과 같은 감정을 느끼는 저에 대해
굉장히 맹목적으로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음악을 끌어올 때는 조금 다르더라고요.”

 

정병욱(이하 ‘정’) : 지난해 데뷔 정규앨범을 발표했고, 얼마 되지 않아 올해 초에 정규앨범의 리믹스 앨범을 바로 발표했어요. 상당히 바쁜 일정이었을 것 같은데, 최근에는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워나(WONA, 이하 ‘워’) : 사실 『Thanatoid Butterfly』(2020)가 뚜렷한 제작 기간을 두고 만든 앨범은 아니에요. 5년가량 작업해왔던 곡을 모으다 보니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앨범인데요. 1년 동안 앨범화를 하면서 많은 것을 쏟아낸 기분이 들었어요. 게다가 이후에 리믹스 앨범을 바로 준비하느라 쉬질 못해서 지금은 잠시 휴식 중이에요. 음악에 관련된 것을 전혀 하지 않고, 다음에 어떤 음악을 낼지 고민하는 정도입니다. 음악과 관련된 것들은 전혀 안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근래에는 음악 감상도 안하고 있고, 잠을 평소보다 많이 자기도 하고요. 요즘 외출하기도 힘드니까 게임도 하고 있고. (웃음)


김용민(이하 ‘김’) : 제가 게임을 좋아해서 게임 얘기 나오니까 반갑네요.


: 아, 정말요? 저는 《Stardew Valley》(2016)라는 게임을 하고 있는데, 제가 워낙 낚시 관련 콘텐츠를 좋아해서 게임 안에서도 계속 낚시만 하고 있는 것 같아요.


: 말 그대로 힐링을 하고 계시군요. (웃음)


: 네, 그렇기도 하고. 평소에 작업을 안 할 때는 아무런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아서, 생각을 많이 비우는 데 게임이 제일 좋더라고요.


: 앨범을 내신 게 쏟아낸 기분이셨다고 했는데, 쏟아내고 나니 좀 어떠셨나요?


: 사실 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조금 지나서 생각해보니 후련했던 것 같아요. 이 감정이 ‘뭘까?’, ‘어떤 걸까?’ 싶었는데 속이 시원하더라고요. 굉장히 시원했어요.


: 후련하고 시원했다는 것은 반대로 생각하면, 앨범 작업을 일종의 마음의 짐이나 과제처럼 품고 있었다는 말이기도 하잖아요. 5년 동안 쌓아온 작업을 발표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나 경위가 있을까요?


: 그동안 내가 만든 것을 내보이는 것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많았어요. 작업물을 쌓아온 5년 동안 기간이 늘어나면서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도 있었고, 단순히 작업 자체에 대한 슬럼프도 있었고요. 한동안 작업을 안하기도 했어요. 혼자 힘들어하던 순간에는 작업 자체가 손에 안 들어오기도 해서요. 그런데 어느 순간 고착화된 궤도를 틀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당시 제작 방식을 이전까지 쓰던 DAW(Digital Audio Workstation) 툴에서 에이블톤(Ableton Live)으로 바꿨어요. 작업 방식이 변하니까 뭔가를 시작한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처음 나온 곡이 「When I Was Dead」였거든요. 어떻게 보면 특별한 계기보다 그 순간 용기와 절실함이 있었던 것 같아요. ‘내가 차곡차곡 쌓아온 작업들을 이제 내보이자.’ 하는.



: 처음 전자음악을 시작하신 경위는 어떠셨나요?


: 음악을 직접 만들고 한지 이제 10년이 넘은 것 같은데, 어렸을 때 음악을 듣는 것 말고 만드는 걸 해보고 싶었거든요. 혼자서 모든 걸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찾다 보니까 DAW라는 게 있더라고요. 그걸로 이것저것 해보다가 진짜 배움이 필요하겠다고 싶어서 다른 분들에게 배우기도 하고, 음악으로 대학을 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돼서 대학에 가고. 정말 자연스럽게 시작했어요.


: 요즘은 정규앨범 자체를 찾아보기 힘든데, 특히 신인 아티스트가 첫 공식 음원을 정규앨범으로 발표하는 건 더욱더 흔치 않은 일이에요. 그런데 모처럼 발매를 한 것 치고는 무척 덤덤한 출발이라는 인상도 있어요.


: 발매하면서 뭔가를 기대했던 게 아니거든요. 그냥 제 음악 활동의 시발점이었어요. 딱 거기에만 초점과 의미를 두다 보니 홍보라든지 다른 것에는 크게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 그런데 그렇게 출발하신 것 치고는 반응이 좀 있었잖아요. 매체의 리뷰라든지, 《음악취향Y》 올해의 신인 순위에 든 것도 그 반응의 일환이고요. 직접 확인하시거나 실감하신 것들이 있나요?


: 말씀하신 것들 정도인 것 같아요. 말했던 것처럼 저는 사실 크게 신경 쓰고 있지 않았는데, 감사하게도 주변에서 잘 듣고 있다고 하거나 리뷰를 쓰시거나 하는 피드백에 감사한 마음이 너무 컸어요. 제 예상보다도 많은 분들이 듣고, 알아주신 것 같아서.


: 리믹스 앨범의 발매가 굉장히 빨랐는데 정규앨범 작업할 때부터 염두에 두셨나요?


: 앨범 준비 및 발매 당시에는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어요. 그런데 앨범이 나온 후 ‘이 음악들이 조금 다르게 나온다면, 다른 아티스트의 손을 거치면 어떻게 될까?’라는 궁금증이 들더라고요. 마침 레이블(노바디노우, NBDKNW)에서도 리믹스 앨범에 관한 언급을 하셔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죠.


: 정규앨범과 리믹스 앨범의 타이틀이 절묘하게 연결돼서 전 처음부터 계획이 있었나 했거든요.


: 아, 네. 미리 계획된 건 아니었어요. 정규앨범 제목이 번역하면 ‘가사(假死) 상태의 나비’(Thanatoid Butterfly)잖아요. 나중에 리믹스 앨범을 생각하면서 ‘온전히 죽지도, 살아 있지도 않은 이 나비가 다른 사람 손에 의해 다시 태어나면 어떤 상태가 될까?’ 이런 기대를 갖고 아티스트 분들에게 부탁을 드렸더니 기대 이상의 멋진 곡으로 다시 보내주시더라고요. 그런데 이 과정에서 ‘부활’이라는 키워드에 강렬히 끌렸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부활한 나비’(Resurrected Butterfly)’가 된 거죠.


: 리믹스 앨범 참여 아티스트들은 기존에 알던 분들이었나요?


: 네, 대부분 원래 잘 알고 있던 친구들이거나 음악을 이미 들어서 알던 지인이에요. 대표적으로 투톤셰이프(Two Tone Shape)는 음악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알던 친구들이었고, 살라만다(Salamanda)님은 NBDKNW의 추천과 소개가 있었어요. 가까이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나 이미 알고 있는 친구들에게 부탁하는 게 자연스럽기도 하고, 제게 의미도 더 크다고 생각했어요.


: 선곡도 참여 아티스트 분들이 직접 하셨죠? 중복 트랙이 있는 걸 보니 그렇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 네. 저는 자연스러운 게 좋더라고요. 제가 하나씩 골라서 부탁드릴 수도 있지만, 오히려 참여 아티스트분이 건드려보고 싶은 곡을 자유롭게 만져 주시는 게 더 좋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트랙 중복 상관없이 아티스트분들께 맡겼어요.


: NBDKNW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을까요?


: 앨범을 내겠다고 용기를 낸 순간부터 음악 색깔이 가장 잘 맞을 것 같은 레이블을 모색했어요. 그 중에 NBDKNW가 제 음악을 가장 잘 이해해줄 것 같다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다행히 바로 인연이 닿아서 데모 트랙을 보냈어요. 당시 현재 정규앨범에 나온 트랙들을 전부 보냈습니다. 물론 현재 버전과 완전히 같지는 않아요. 예를 들어 타이틀곡 「Lament」는 발매 곡이 세 번째 버전인데, 첫 번째 버전의 리듬이 현재 앨범의 「Bathe」이고, NBDKNW에 보낸 데모는 두 번째 버전이에요. 다행히 보낸 데모 트랙들을 NBDKNW에서 좋게 들어 주셔서 함께하게 되었어요.


: 아까 전 「When I Was Dead」는 작업 방식을 바꾸면서 탄생한 곡이라고 하셨잖아요. 타이틀곡 「Lament」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 「Lament」를 작업하면서 그 당시에 오랫동안 저를 개인적으로 옭아매던 굴레를 떨치고 부술 수 있었어요. 「When I Was Dead」는 분명 작업에 있어서의 시발점이자 전환점이지만, 「Lament」는 제 생각이 많이 바뀌게 된 계기를 주기도 해서 「Lament」를 타이틀로 정했어요.


: 일종의 어두운 기억이나 감정, 힘들었던 시기와 순간들을 작업에 다루는 데에 있어서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 제가 이전에는 감정과 생각들을 주로 글로 기록했어요. 그런데 일일이 글로 적다 보면 그러한 문장과 같은 감정을 느끼는 저에 대해 굉장히 맹목적으로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글로 적은 게 있는 그대로의 나인 것 같아서 오히려 어떤 텍스트 안에 갇힌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요즘은 굳이 글로 적지 않고, 그 순간 있는 그대로 저를 바라보려고 하고 있어요. 대신에 당시 스케치했던 음악을 끌어올 때는 조금 다르더라고요. 제가 그 안에 갇히거나 감정이 되살아나기보다 그냥 ‘아, 이랬었지.’라고 넘기게 되거나, 그 사운드에 몰입하느라 상황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었어요. 물론 특정한 기억이나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음악은 분명 있잖아요. 슬픈 음악을 들으면 실제로 좀 슬프고. 그냥 그 정도인 것 같아요.


: 곡에 얽혀 있는 사연이나 감정 때문에 그렇기도 하지만, 음악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나 일관성 있게 추구하는 사운드를 보면 평소 좋아하는 음악이 특별히 있을 것 같습니다.


: 네. 제가 음악을 처음으로 꼭 만들고 싶다는 크게 갖게 된 건 Portishead 음악을 들었을 때예요. 저는 기본적으로 Portishead의 음악을 먹으면서 자라온 사람이고. (웃음) 그 밖에 레이블 Tri-angle Records나 Modern Love의 아티스트들이 하는 음악을 무척 좋아해요. 그 영향을 받아서 제 작업물에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묻어나게 된 것 같아요. 특별히 어떤 방향을 염두에 두거나 콘셉트를 잡았던 것은 아니었어요.

 


  
워나의 최애 레이블


: 말씀하신 Portishead도 있고, 리뷰들 중에 Björk 언급도 공통적으로 있었어요. 저는 앨범 재킷의 이미지에서 Björk와 작업한 아티스트들의 아트워크와 콘셉트 이미지, 패션이 떠오르기도 했고요.


: 네, Björk도 너무 좋아해요. 말씀하신 아트워크의 경우 제가 물과 나비 모형을 함께 이미지로 남겨 놓았던 적이 있거든요. 그런데 JULIAN.NET님이 그걸 받아 보시고 요리조리 잘라 붙여서 형상화해 주셨어요.


: 직접 찍으신 이미지를 아트워크에 녹여냈다는 건 ‘나비’라는 상징이 워나의 음악에서 어떤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뜻일까요?


: 개인적으로는 나비가 중요한 매개체인데, 제 음악에는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 질문을 바꿔서 음악과 앨범에 의미 있게 담고 싶었던 게 무엇일까요?


: 사실 아트워크의 나비도 그렇고, 제 음악에 특정한 분위기와 정서가 담기는 부분도 있지만, 이는 제가 그런 감정을 지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이라고 생각해요. 평소 음악 작업을 할 때 감정이나 정서 외에 사운드와 텍스처에도 특히 집중하는 편이어서, 앨범을 만들 때도 내가 지닌 생각을 담겠다고 의도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나비도 언젠가 제 음악에 등장해 영향을 미칠 수도 있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에요. 다만 그런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닌 게 듣는 사람들이 단지 소리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재미를 찾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분명히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소리와 박자를 엄청나게 쪼개기도 했고요.

 

(... 다음 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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