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림] 데뷔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밴드 ‘실리카겔’은 늘 독특하다는 인상을 남기곤 한다. ‘독특’이라는 표현으로는 이들을 담기엔 한없이 빈약하지만, 서늘함과 뜨거움이 양립하는 음악을 달리 표현하기도 참 어려운 일이다. 싱글 「No Pain」(2022)에서 보여준 칠한 바이브가 활기찼던 것에 비하면, 『Machine Boy』는 울적한 면이 도드라지는데, 타이틀 「Realize」는 이를 극대화하는 곡으로 가장 격렬한 에너지를 보여주는 곡이다. 이 곡 역시 라이브에서 더 큰 매력을 표출하기는 하지만, 음원만으로도 쉼 없이 고저를 오가는 다이나믹한 전개가 흥미롭다. 나른한 보컬과 둔탁한 드럼 사이로 날카롭게 파고드는 기타 연주가 인상적이며 특히, 파괴적인 드럼과 기타 연주를 과하다는 느낌보다는 화려함과 풍성함으로 만드는 절묘한 볼륨의 조절이 뛰어난 곡이다. 이러한 균형감의 저변을 받치는 동시에 후반부에 등장하는 찰진 베이스 슬랩은 곡에 감칠맛을 더해 듣는 재미를 증폭시킨다. 선공개 곡 「Mercurial」과 동일한 소품을 활용한 뮤직비디오의 유기성 외에도 「Machineboy(空)」의 실험적인 면이 눈에 띄는 앨범이며, 초기에 비해 가볍지만 세련된 사운드로 실리카겔 표 모호한 아우라가 여전함을 보여준다. ★★★★☆

[이정희] 실리카겔의 음악에는 항상 순수한 기대와 호기심의 물음표가 있었다. 실리카겔은 그러한 물음에 자신들만의 방식, 소리, 언어를 조합한 음악으로 답해왔다. 실리카겔이 그 동안의 음악에서 다양한 사운드를 시도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한 다양한 시도가 실리카겔이 현재의 음악씬에서 실리카겔의 독보적인 위치를 만들어 왔다고 말할 수 있다. 신보 『Machine Boy』의 타이틀 「Realize」는 싱글 「Desert Eagle」(2021)과 「No Pain」을 지나오며  실리카겔만의 음악이 완성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반전을 다시 던진다. 곡을 여는 김춘추의 기타와 각각의 악기 소리는 분명히 실리카겔이 만들어온 사운드의 완성을 알리지만, 이 사운드가 만들어내는 폭발력은 밴드가 가진 힘이 여전히 무궁무진 하다고 외친다. 「Realize」는  어쩌면 소리의 연결들인 음악이 뮤지션의 에너지를 품을 때 얼마나 큰 힘을 가질 수 있는지를 뮤지션 스스로가 자각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그리고 이 의문은 또다시 다음 실리카겔이 만들어낼 소리의 세계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을 의미하는 거대한 물음표로 이어진다. ★★★★☆

[조일동] 팝, 펑크, 전자음악, 하드록. 실리카겔의 음악을 구성하는 요소는 말 그대로 무궁무진하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렇게 다양한 스타일과 형식이 복잡하게 얽혀있어도 전혀 인위적이거나 어색하지 않다는 점이다. 초기와 달리 ‘이질적인’ 연주와 톤, 요소를 직조한 사운드가 이제 더 이상 ‘튀거나’ ‘특이’하게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 모든 게 ‘실리카겔 사운드’로 자연스럽게 수렴된다. 다른 밴드에겐 버거운 도전일 수 있는 시도들도 실리카겔에게는 기본값처럼 되었다. 실험과 진보를 뼈대로 삼고 있다는 건 밴드에게 음악적 아이디어를 계속 길어 올리게 만든다는 점에서 약이기도 하고, 낯선 사운드의 동력을 발견하지 못하게 될 때는 독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현재 실리카겔 멤버 모두가 새로움을 하나씩 실리카겔의 소리로 둘러치는 재미에 빠졌다는 사실이다. 말 그대로 물이 오른 EP의 한복판을 지키는 즐거운 싱글. ★★★☆

[차유정] 시끄럽고 혼란한 자아의 소리들에서 멀리 도망쳐서 나름 냉정하고도 은근한 멜로디들을 찾은 것 같은 안정된 소리들을 들려주고 있다. 보통 슬픔을 남발하는 도구로 쓰였던 마이너 코드가 차분한 이야기 형식의 전달력도 가지고 있음을 이 곡으로 어렴풋이 알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