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환] 미국 캘리포니아 팔로알토 태생의 힙합 뮤지션 겸 프로듀서 슬롬(본명 김민우)이 데뷔 4년만에 발표한 첫 번째 정규 앨범 『Weather Report』의 타이틀곡. 이미 데뷔 전부터 박재범, 자이언티, 후디 등과의 작업 등을 한 적이 있었고, 《Show Me The Money 10》(2021)에서 자이언티와 팀을 이루며 대중에게 처음 얼굴을 공개했고, 최근에는 자이언티의 레이블인 스탠다드프렌즈와 계약하면서 확실한 활동 거처도 마련했다. 그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번 첫 정규작 『Weather Report』는 ‘일기예보’가 아니라 ‘일기 보고서’가 더 정확한 의미라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그날의 관계적인 상황은 날씨와 같다’는 생각에서 출발해 (날씨의 결과를 사람이 바꿀 수 없듯) 인간관계도 너무 걱정하고 준비해봐야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담은 제목이라고. 그간에도 ‘드럼 비트-베이스 리듬을 잘 뽑는다’는 칭찬을 받아온 만큼, 이번 앨범 속에서도 화려한 피쳐링 라인업의 랩과 보컬보다 더 귀에 잘 들어오는 소리는 바로 그가 뽑아낸 리듬의 향연이다. 특히 전편에서 흐르는 70년대말~80년대초 미국식 AOR 세션의 향기는 시티팝 사운드를 좋아하는 음악팬들의 귀도 만족시킬 것 같다. (실제로 장기호를 트리뷰트하는 의미의 연주곡으로 「그대에게 띄우는 편지」(2002) 를 커버했다.) 곡의 스토리라인을 나름 충실히 반영한(?) 뮤직비디오와 함께, 「아니라고」는 앨범 전체가 추구하는 사운드 의도를 인상적으로 잘 표현한 곡이라 생각한다. 70~80년대 팝의 분위기가 물씬 나는 드럼 터치가 전편을 장악하는 가운데, 심지어 베이스 라인과 기타의 깔끔한 스트로크까지 모두 그 시대의 향수를 느끼게 할 것들로 가득하다. 이와 같은 편곡 위에서 마치 『Off The Wall』(1979)시대의 Michael Jackson을 떠올리게 하는 감성으로 자이언티의 간드러지는 보컬이 가진 장점을 극대화한다. 20세기 AOR 세션의 수혜를 받은 알앤비가 21세기 한국 알앤비에서 그 가치를 어떻게 재활용하는지 잘 보여주는 좋은 트랙이다. ★★★☆

[열심히] 프로듀서로서의 균형감이 특히나 비범한 곡입니다. 몽글거리며 차오르는 신스와 탄탄하게 자리를 잡은 리듬, 쫄깃함이 가득한 자이언티의 보컬까지 말이죠. 애시드 재즈의 취향을 살짝 머금은, 리듬과 멜로디가 유기적으로 맞물리는 팝 음악이라는 점에서 D'Sound나 The Brand New Heavies의 즐겁던 시절을 떠올리게도 합니다. 앨범 전반적으로 풍성하면서도 재료를 알차게, 낭비하지 않고 웰메이드 프로듀싱의 왕도를 보여주는데, 그 머릿곡으로 부족함이 없습니다. ★★★★☆

[정병욱] 슬롬이 현재 주류 신에서 가장 핫한 프로듀서 중 하나라는 점은 《제19회 한국대중음악상》(2022) 노미네이트와 수상 그리고 《Show Me The Money》시리즈에 연이어 참가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대신 설명 가능하다. 중요한 사실은 방송이 이용하는 게 단순한 명성이나 경향성이 아닌 실제 그의 감각이라는 거다. 지난 세기의 여명에 모던과 컨템포러리의 경계에서 비밥이 소울을 만났을 때처럼, 알앤비가 팝과 록을 장착했을 때처럼 슬롬의 비트는 간결하게 끊어지고 흐르는 방식을 선호한다. 그리고 절묘한 신시사이저의 톤과 사운드 밸런스를 통해 뻔한 맛이나 레트로의 잔향을 완벽히 피함으로써 현재 진행형의 팝을 완성한다. 가사의 활용 역시 인상적이다. 자이언티의 보컬과 나른한 대화체의 가사 그대로, 진심 섞인 화자의 농염한 수작을 연출함에 있어 작위성 대신 감정에 취한 순간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단순히 곡이나 퍼포먼스의 영역 너머 좋은 프로듀서의 역량을 다시금 확인하게 하는 대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