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상처 주는 키를 우리는 모두 가지고 있어 (이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는 킬링 트랙이다. 3분에 가까스로 못 미치는 곡이지만, 김사월의 세계가 한도 끝도 없다는 사실을 거뜬하게 증명한다. 일렉트릭 기타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김사월은 논리의 범주를 벗어나 아름다움으로 이탈한다.  

혼비백산하여, 다시 살핀다. 이 앨범은 당신을 생각하기보다 당신을 잃은 내가 어떻게 다른 공간에 놓이는 지를 추적한다. 앨범에 얽힌 사건들은 이미 과거가 되었고, 부재중이며, 또한 불완전한 상상에 머물러 있다. 「내가 사랑할 그 사람은」의 ‘그’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다. 모두가 사랑하는 사람도 존재하지 않듯이, 내가 사랑할 사람도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래서인지 「일회용품」부터 심상치 않게 들린다. 구음(口音)을 베이스로 삼은 사운드나, 한결 올라간 음과 다소 거친 방식으로 내는 발성이 ‘기쁨이 스쳐간다’는 한탄의 뉘앙스를 차가운 맥락에 푼다. 드럼이나, 베이스를 비롯한 밴드 세션 또한 이 뉘앙스를 은근히 살리는 데까지만 거들어줄 뿐이다. 스캣을 비롯한 재즈의 흔적 또한 이 뉘앙스를 강조하기 위해 깊숙이 내려가지 않는다. 

앨범은 소리뿐만 아니라 소리가 맺히는 공간을 들어보라고 넌지시 권한다. 「확률」에서 백마스킹 소리와 겹친 하프 소리, 「스테이지」의 비트와 노래의 밀고 당기는 텐션, 「나방」의 무전기 소리. 다분히 노래가 있는 공간이 어떤 곳인지를 헤아려주길 바란다. 그래서 목소리도 목소리지만, 음악 전체에 자연스레 귀 기울일 수밖에 없다.

「내가 사랑할 그 사람은」이나 「확률」에서 ‘잡음’들이 등장하지 않는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버성기고, 삐걱대는 감정을 지그시 누르자 되려 분을 이기지 못하고 더욱 이탈을 감행한다. 「오늘 밤」의 피아노는 불꽃이 사라지고 화약 연기만 남은 밤하늘처럼 차분하게 감정을 내려놓는다. 

앨범은 결국 이탈로 치닫는 힘이 어디서 왔는지를 곱씹어보길 주문한다. 누군가는 연애를 주목할 것이고, 누군가는 실존주의적인 감각을 꺼내들 것이고, 누군가는 니힐리즘적인 근원을 생각할 것이다. 모든 훌륭한 아티스트들이 그렇듯, 김사월 또한 여기에 섣불리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 「오늘 밤」의 나긋하고도 착 가라앉은 음색을 넌지시 음미해보라고 권할 뿐이다. 이런 맥락을 통과한 뒤에야 「헤븐」의 이율배반에 수긍할 수 있다. 애매한 희망을 말할 수도 없고, 있는 힘껏 저주를 퍼부을 수도 없게 된 상실감을 김사월은 양가적인 접근법으로 풀어낸다. 그녀의 전작들보다 훨씬 정교하고, 훨씬 선명하다. 이 앨범은 김사월의 가장 잘 벼려진 칼날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리라. 

남을 찌르기 전에 스스로 한 번 더 깊게 찔려봐야 지옥으로 추락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 앨범은 잘 알고 있다. ‘세상이 이대로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김사월의 저주에 우리가 보다 자세히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싱글아웃 #김사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