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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리뷰 #08] 고찬용 『 After Ten Years Absence』 : 노련한 독선이 돋보이는 쾌작

고찬용 『After Ten Years Abs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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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정보
발표시기 2006.11
고찬용은 《제2회 유재하음악경연대회》(1989)를 통해서 음악계에 등장했다. 당시 대상을 수상한 「거리풍경」(1989)은 세련된 귀를 가진 사람들의 마음을 강력하게 잡아끌었다. 교묘하지만 자연스럽게 배치된 당김음이 매력적이었다. 그 후 ‘낯선사람들’을 결성해서 아카펠라와 컨템포러리 재즈에 기반한 멋진 데뷔 앨범을 발표했는데 그 참신함이 이젠 명반이라는 칭호를 받고 있다. 그 멋진 앨범에서 고찬용은 모든 곡을 작곡한 작곡자로서 프로듀서로서 역량을 뽐내었었다.

「거리풍경」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조규찬의 「무지개」(1989)를 즐겨들었고 김현철의 「동네」(1989)를 아꼈다. 조금 더 거슬러 오르면 빛과소금의 차가우면서도 따뜻한 감성과 가까웠고 봄여름가을겨울의 네 번째 앨범에 대한 지지도 대부분 같은 취향이었다고 여겨진다. 지금 거론된 음악인들은 물론 각기 다양한 색깔들을 가지고 있지만 퓨전재즈라는 커다란 자장 안에 포섭될만한 음악들이다. 장르에 대한 규정이 정확하냐에 대한 논쟁을 떠나 이런 취향은 분명 한국의 컨템포러리재즈(Contemporary Jazz : 물론 재즈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영향이 짙은 것만은 사실이다)라고 부를만하다.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으로 이동하는 시기, 다양하고 풍성했던 한국대중음악 씬에 이렇게 싱코페이션을 적극 활용한 팝음악들은 중요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런 음악을 하는 이들이나 이런 음악에 귀를 기울이는 팬들은 경제개발도상국의 빈약한 음악문화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다고 판단된다.

물론 이런 흐름에도 전범은 존재했다. MTV의 시대라고 명명된 80년대 팝음악계의 변방에서 Al Jarreau나 Spyro Gyra, Nile Rodgers같은 인물들이 일궈놓은 쉬크한 팝음악들 말이다. 사실 따지고 들면 Micheal Jackson의 『Thriller』(1982)도 결국 훵키한 소울과 컨템포러리 재즈, 댄스 팝이 복잡하게 혼합된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한국의 이런 경향은, 영향 받았으되 지극히 독창적인 아티스트의 내면을 거쳐 분출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을 ‘가요적인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천편일률에서 벗어나려는 동아기획, 하나뮤직의 영향, 어떤날, 유재하 같은 언더그라운드(?)뮤지션의 그림자는 팝음악의 지배를 거부하는 독창성의 유산으로 90년대 이후 뛰어난 음악인들에게 각인되어 있다. 김현철이 피아노 발라드를 중심으로 점진적으로 재능을 드러냈고, 조규찬은 내재된 에너지로 다양한 음악적 재능을 쏟아내는 스타일이었다면 고찬용은 이들보다 꾸준하고 보수적인 스타일을 고수하는 인상이다. 낯선사람들 2집 이후 10년 만에 발표한 데뷔 앨범이 이를 증명한다.

고찬용의 데뷔 앨범을 이야기하는데 이렇게 많은 사설을 늘어놓아야 하는 이유는 음악이 설명해준다. 첫 곡 「꿈 꾸는 아이」부터 강한 리듬의 텐션이 귓가를 때린다. 이어지는 짧은 곡 「고백」의 기타 솔로는 80년대 중반, 소울을 연주하기 시작한 하드록 기타리스트의 연주처럼 들린다. 앨범 전체를 지배하는 신시사이저의 고풍스러운 편곡은 또 어떠한가? 거론한 80년대 컨템포러리 재즈가 연상되는 순간이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복고’가 먼저 떠올려지는 것이 아니라 2000년대 발표된 그 어떤 음원에서도 들을 수 없는 ‘새로움’이 먼저 만져진다는 것이다. 복고라고 한다면 어떤 특정한 스타일, 특정한 시대의 클리셰를 활용하는 방법론으로 실행되기 마련인데 이렇게 전폭적이고도 완벽한 복고는 오히려 새롭게 들린단 말이다.

이어지는 「스물셋」과 「어느 지난 얘기처럼」은 앨범의 핵심적인 트랙이다. 특히 「스물 셋」에서 탄력 넘치는 리듬은 온 몸을 빨아들이는 강력한 흡판 역할을 한다. 거기에 한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는 후렴구는 파괴력을 더해 듣는 이를 굴복시키고야 만다. 이렇게 복잡한 리듬을 사용하지만 일호의 거부감 없이 편안한 감상을 일으키는 능력은 앨범 전반을 통해 마구 뿜어져 나오는데 미들템포의 「어느 지난 얘기처럼」 인트로에서 키보드 타건의 강약만으로 만들어 내는 리듬의 입체감도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부분이다.

직접 연주하는 기타 솔로를 많이 내세운 「길」과 「값진 충고」역시 리듬을 가지고 노는 쾌감을 적극적으로 선사하는 트랙들이다. 여기까지 듣고 계속되는 텐션 강한 리듬이 피곤해질 쯤 「겨울이 오네」의 독특한 하모닉스 인트로를 만나게 된다. 이 곡은 고찬용이 리듬의 변형이나 조바꿈, 코드 구성같은 기술적인 측면만을 중요시하는 세션형 아티스트가 아니라 상상력 넘치는 예술가임을 증명한다. 적막한 새벽녘의 눈 오는 풍경을 그려내는 독특한 코드 구성과 기타의 트레몰로, 여기에 군더더기 없는 기타 솔로의 쉬어감까지 청각적 이미지를 시각적 이미지로 완벽하게 변환시키고 있는 멋진 트랙이다. 이렇게 상상력을 자극하는 감상은 정적을 음악으로 표현한 듯한 「너 머물러 있던 순간」까지 지속된다. 이 곡은 고찬용이 아니면 어떤 누구도 부를 수 없는 완연한 그의 분신이다.

이렇게 고찬용의 데뷔 앨범은 기대를 넘어선 감탄을 자아내며 들려졌다. 조규찬이나 김현철보다 하드코어한 80년대 컨템포러리재즈의 싱코페이션과 자유자재로 자신의 리듬을 가지고 노는 노련미, 지극히 개인적인 상상력이 만들어 낸 아우라가 어울어진 앨범이다. 여기에 음악 스타일의 복고는 아무런 비판거리가 아니다. 그 시절의 음악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반가움이고 익숙하지 않아도 너무나 새로운 산뜻함이다. 무엇보다 이 앨범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은 고찬용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해낸 인디펜던트 음반이라는 사실이다. 모든 악기 연주와 프로그래밍, 작곡, 편곡, 가사와 사운드 디자인까지 혼자서 해 냈다. 그 어떤 경향에도 속하지 않는 21세기의 진기한 복고를 내놓은 근간엔 고찬용이라는 인물의 고집, 혹은 혼자서만 했어야 하는 말 못할 사연이 숨어 있는 것이다. 때문에 다소 독선적으로 들리는 점이 있다는 사실도 언급해야겠다. 노래들의 개성보다는 아티스트의 개성이 더 진한 앨범이라는 사실이 이 앨범의 유일한 단점이다. 이런 특징은 사운드의 비중 때문에 가사가 묻혀져 잘 식별되지 않다는 데에 기인한다. 하지만 베스트 앨범으로 꼽기엔 별 어려움이 없으며 오히려 그 독선이 이 앨범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다.
 

Credit

[Staff]
Excutive Producer : 고찬용
Recorded & Mixed by 고찬용
Chorus : 고찬용, 허은영
Mastered by Tom Brick

Track List

  • No
    곡명
    작사
    작곡
    편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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