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Review

묵직함 끝의 허전함

파워백두산 『Savage Viol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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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정보
장르 헤비니스
한국 헤비메탈의 전설, “백두산”의 컴백은 너무도 조용히 이뤄졌다. “주신 프로덕션”이 주최하는 공연에 백두산의 이름이 올랐을 때만 해도, 그저 해프닝일 것이라 여겼다. 심지어 백두산이라는 이름의 무단 도용이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했었으니. 그러나 지금 여기 백두산의 네 번째 공식 음반 『Savage Violence』가 눈 앞에 놓여있는 이 순간, 백두산의 컴백은 현실이다. 그렇다면 백두산 컴백에 있어 가장 먼저 궁금한 것은 무엇일까? 누가 뭐래도 누가 백두산의 멤버인가 하는 부분일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어떠한 음악을 연주했는지 일 것이고.

김도균-유현상 콤비가 중심이 되었던 백두산 1, 2집과 김도균이 주축이 된 3집을 거치면서 음악팬들 머리 속에는 자연히 ‘백두산=김도균’의 공식이 그려진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백두산의 신보에 김도균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물론, 유현상의 이름 역시 없다. 대신 놀랍게도 이건태와 김창식이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출신으로 「자존심」(1982)을 통해 한국적이면서도 세련된 드라이빙감 넘치는 연주세계를 들려준 바 있는 드럼 마스터 이건태의 등장은 놀라울 것이 없으면서도 놀라운 대목이다. 백두산 3집 음반의 드럼 녹음을 담당했던 양반 (최소리는 공연 활동만 했다) 이 이건태였다는 사실을 알고 보면 그의 헤비메탈 행보가 특별히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신보의 음악성이 백두산 3집과 같은 ‘정통' 하드록-헤비메탈이 아니라 스래쉬메탈에 가깝다는 것을 알고나면 이건태의 참여는 거의 충격에 가깝다. 백두산 1집과 3집에 참여했던(그리고 1970년대부터 활동해왔던) 김창식 역시 마찬가지의 이유에서 등장만으로도 충격적이다.

음반 속지를 열면 가장 먼저 보컬리스트의 사진이 보이고, 이어 기타리스트의 사진이 등장한다. 즉 기타와 보컬이 밴드의 핵이라고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노장들의 배려만 봐도 음악적인 면에 있어서도 새로운 멤버 두 명의 성향이 강하게 반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아닌 게 아니라 본 음반의 사운드는 ‘사악’하기로 소문난 밴드 닥설러지(Doxology) 출신의 기타리스트 문한규의 리프 메이킹이 중심이 되고 있다. 또한 1980년대 일본 헤비메탈 밴드들의 음반에서나 들을 법한 격렬한 음색의 보컬리스트 안승배 역시 파워메탈 밴드 거북선 출신이다. 이건태·김창식 + 문한규·안승배의 모양새는 참으로 독특하다 아니할 수 없다. 과거 백두산의 음악과 쉽게 연결되지 않는 인물들과 친숙한 인물들의 조합, 한국 록 1세대와 신세대의 조화로 만들어진 사운드가 바로 2006년 백두산의 음악이다.

음악은 곡에 따라 다르지만 두 음정 낮춘, 따라서 거의 찍어내리는 듯한 톤으로 거칠게 달리는 스래쉬 리프가 중심이 되고 있다. 때로 너무 무게와 속도에 중점을 둔 나머지 리프의 멜로디마저 잃어버린 듯한 기타라인이 음반의 중심에 놓여있다. 그렇다고 허술하게 볼 수 있는 기타는 아니다. 특히 불협화음으로 도약하는 브릿지들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은 철저하게 기타리스트의 센스있는 음의 분배 덕분이다.

그럼에도 솔직히 기타 리프보다 먼저 귀에 들어오는 것은 드럼 연주다. 단순히 이건태의 이름 값에 대한 클리셰적 칭찬이 아니라, 거의 한국 헤비메탈 역사상 최고의 드러밍에 속하는 정교한 연주이기 때문에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본 음반에서 들을 수 있는 이건태의 연주는 한 마디로 발과 손이 완벽하게 구분이 된다고 보면 된다. 드러머라면 당연한 일 아니냐고? 직접 들어보라고 얘기할 밖에 없다. 조금 설명을 해보자면 살벌한 속도의 트윈 페달 드럼의 연주 사이로 섬세한 하이햇 연주가 들어가 있으며, 스냅으로 쳐도 될 부분도 롤링으로 맛을 더하지 않나, 상상도 못한 격한 지점에서 눈부신(!) 카우벨이 등장하여 곡의 분위기를 장악하며, 허투루 하는 필인 따위는 아예 찾을 수 없는 ‘특급’ 드러밍이다. 몇 년 전 재즈 베이시스트와 함께 듀오를 이뤄 개성있는 퓨전 음악을 들려주던 이건태는 이제 데스-스래쉬 메탈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나이를 잊은 끊임없는 실험정신에 박수를 보낸다. 여기에 기타와 톤을 맞춘 베이스 연주는 드럼과 가히 환상적인 (흔히 하는 말로 베이스와 드럼이 ‘쩍쩍’ 달라 붙는) 호흡을 들려준다. 격한 리프를 생산하고 곡을 이끄느라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는 듯한 기타에 비해 드럼과 베이스가 들려주는 완전히 농익은 연주는 그래서 다른 악기 소리보다 더욱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기타와 호흡을 강조맞추기 위해 묵직함에 과도하게 신경을 쓰다보니 악기들의 톤이 탄력을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안승배의 보컬은 이 엄청난 중압감의 연주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기 위하여 피를 토할 듯한 절창의 절창을 선보인다. 그의 보이스 톤은 그 자체로 음반의 제목 『Savage Vilolence』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목소리 재질에 비해 보컬 멜로디 라인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조금 모자란 느낌이다. 연주를 휘어잡는 보컬 라인이라기 보다 연주 위에 거칠게 얹혀진 인상이 짙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보컬리스트로서의 평가를 이렇게 단정할 수는 없다. 보너스 트랙인 슬로우 넘버「피해자」에서 한국적인 그루브를 선보이는 보컬 라인은 의외로 담백하고 신선하기 때문이다. 그의 목소리는 「우리는 하나다」와 같이 한국어 가사와 그루브가 있는 곡에서 더 빛을 발하는 듯 하다. 그렇다면 밴드의 곡쓰기와 보컬의 매치가 조금 문제가 있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솔직히 말해서, 압도적인 연주력으로 가득한 새롭게 출발하는 백두산의 4번째 음반인 본작을 맞는 나의 심정은 조금 당황스럽다. 데스와 스래쉬메탈을 넘나들던 음반 마지막에 등장하는 다소 당황스런 발라드 「피해자」를 만날 때의 기분과 비슷하다. (이 곡은 사실 백두산 3집 사이에 넣어 놓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러나, 이 곡을 제외하고 음반을 본다면 리듬 파트의 연주에 있어서는 최상급의 수준이며, 꽉 짜여진 구성력도 호락호락 볼 수 없는 음반이다. 정말 묵직한 연주가 빛나는 음반인 것이다. (참 뭐라하기 힘든 수준의 녹음에도 불구하고 리듬 연주는 죽여준다!!!!) 그러나 여전히 음반 ‘전체’를 봤을 때는 무언가 많이 허전하고 심지어 아직 완성되지 않는 작품을 듣는 듯한 게 사실이다. 음반의 내용과 별개로 개인적으로 백두산이 돌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 좋다. 작은 바램이 있다면 지난 3집 때와 같이 그냥 사라지지 않았으면, 무대에서 자주 만났으면, 그리고 좀 더 자신들의 음악을 가다듬어 나갈 수 있었으면 한다. 

Credit

●수록곡
01. Invictus
02. Adventure
03. Success Is Counted Sweetest
04. Do Not Stand At My Grave And Weep
05. 우리는 하나다
06. I Heard A Fly Buzz When I Died
07. Theology
08. Mutability
09. 피해자 (Bonus Track) 


●멤버
보컬 안승배
기타 문한규
베이스 김창식
드럼 이건태


●음반정보
Produced by 김창식
Recorded at KAMI Studio
Mixed & Mastered by 김재만
Engineered by 황경수, 박채옥
Assistant by 백창호

Track List

  • No
    곡명
    작사
    작곡
    편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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