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Review

[마이너리티 리포트] vol.2 내가 그린 기린 그림은 잘 그린 기린 그림이고......

박선주 『내가 그리고 싶었던 그림』
319 /
음악 정보
장르
젊은 친구들 중에 박선주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녀에게 보컬 트레이닝을 받은 가수가 김범수, SG 워너비, 유진, 시아준수, 손호영 등등등 셀 수 없이 많다보니 자동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무슨무슨 대학의 실용음악과 보컬 담당 교수더라, 라는 소문이 잽싸게 따라 붙은 것은 당연지사. 이 상황에서 나얼이 타이밍 적절하게「귀로」(2005)를 리메이크해주면서 그녀의 유명세는 절정에 달했고, 마침내 11년 만에 발표한 네 번째 앨범『A4rism』(2006) 은 매체의 집중 조명을 받게 되었다. 그녀는 졸지에 밥도 못 먹고 하루종일 인터뷰를 해대는 행복한 신세가 되었다.

그렇다면 11년 전엔 어땠을까? 박선주는 이현도식 구수한 랩을 메인 디쉬로 내세우고, 사이드 메뉴로는 알앤비를 곁들인 앨범『Alphabet Soup』(1995)를 발표했다. 그러니까 이 얘기는 곧, 그동안 얼마나 숙성했느냐는 문제를 뺀다면 그녀의 음악적 지향점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 11년 동안 그녀는 계속 흑인음악을 붙들고 있었다. 그럼 11년 동안 도대체 뭘 한 거에요? 그야, 젊은 친구들은 이미 다 알고 있겠지만, 그녀는 오랫동안 유학생이었다. 뉴욕에서 심리학, 일본에서 뮤직 퍼포먼스학을 전공했다. 아니, 심리학은 또 뭐에요? 음악 공부하러 간 거 아니었나요? 그녀의 고백을 인용해보자면, 그녀의 유학은 도피성이었다. 박선주는 1993년 돌연 유학길에 오른다.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그럼『Alphabet Soup』는요? 그렇다. 세 번째 앨범은 분명 방학 프로젝트였거나 아니면 잠시 귀국 프로젝트였을 것이다. 질문 한 개만 더요. 도대체 박선주는 왜 13년 전 사람들의 시선을 부담스러워했대요?

바로 지금이『내가 그리고 싶었던 그림』이 등장할 타이밍이다. 정확히 몇 월 인지는 모르겠으나 본 앨범이 바로 1993년 작품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본 앨범에선 흑인음악의 기운이 단 1%도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또 질문. 그럼 어떤 음악이죠? 저 위에 조그만 글씨 보이는가. 동.아.기.획. 그렇다. 그녀는 유학을 떠나기 전, 흑인음악에 경도되기 전, 동아기획이라는 거대한 물줄기에 살던 작고 예쁜 물고기였다. 또, 또 질문이요! 동아기획하면 80년대를 주름잡던...... 저도 그 정도는 알거든요. 근데 왜 그 거대한 물줄기를 박차고 나왔대요?

답은 간단하다.『내가 그리고 싶었던 그림』이 흥행에 실패했다. 필자는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다. 90년대 초반 신뢰할 만한 거의 유일한 가요 차트였던 '뮤직 박스'에서 본 앨범이 40위 권으로 낮게 '첫등장' 했다가 금새 사라져버린 사건을. 서태지가 등장했잖아요!! 맞다. 서태지가 가요판을 홀딱 뒤집어 놓으면서 뿌리를 80년대에 두고 있던 옛날 제작사들은 졸지에 인기가 급락했다. 가요판은 졸지에 10대 전용 놀이터가 되고 말았다. 그래도 그렇지, 80년대를 같이 버텨온 20대 중반 넘어선 사람들은 죄다 뭐하고 있었대요? 맞다, 맞다. 그 사람들은 왜 박선주를 외면했지??

답은 좀 더 복잡하다. 그러니까,『내가 그리고 싶었던 그림』의 흥행 실패엔 동아기획 내부의 문제도 엄연히 존재했다. 앨범의 포문을 여는「그때 너는」과「지난 겨울」을 들어보자. '동아기획 사운드'라 불리는 특유의 퓨전 스타일 편곡이 깔끔하다. 앞의 곡은 조규찬의 형 조규만이, 뒤의 곡은 빛과 소금의 장기호가 편곡했다. 비트가 분명한 드럼과 음색이 청명한 키보드의 결합! 비단 드럼과 키보드만이 아니라, 세션진의 위용은 전체적으로 기가 막히다. 김형석, 손진태, 김원용, 조준형, 박성식, 김희현... 그런데, 이럼에도 불구하고 동아기획 사운드는 박선주의 곡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박선주의 곡에 워낙 대중적인 훅(hook)이 없어서... 라고 둘러댈 수도 있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책임은 분명 동아기획 사운드, 즉 이런 식의 사운드 메이킹에 있다. 결론을 내리자면, 동아기획식 퓨전 스타일은 박선주의 감성과 맞질 않았다.

물론 메시지는 들어맞았다.「내 맘의 작은 평화」에 등장하는 "난 찾을 수 없었어 내가 그려왔던 많은 꿈을" 이라든지,「진실」에 등장하는 "무엇이 이렇게 우리를 가난하게 만드는 건지" 등의 가사는 80년대 어떤날의 감성과 분명 닿아 있다. 그러나, 이럼에도 불구하고 박선주의 감성은 달랐다. 특히 목소리가 달랐다. 이 점은「시간 속에서 2」와「착각」을 들어보면 확실해진다. 특히나「시간 속에서 2」는 그녀의 자유로운 보컬을 위해 후렴구의 반복 없이 곡이 일자 곡선으로 진행되는데, 그녀가 직접 편곡하고, 드럼 연주가 없고, 동아기획 계파가 아닌 김형석이 키보드를 연주하는 바람에 서늘하면서도 호소력 짙은 곡이 되었다. 박선주의 내면을 가장 잘 드러내는 곡이 되었다.

당연히 반론의 여지는 있다. 박선주 앨범 하나 때문에 동아기획이 망하기라도 했나요?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본 앨범이 나온 93년 무렵 동아기획의 후발 주자 김현철, 푸른하늘 등은 90년대 초반 가요 부흥에 휩쓸려 포크/재즈적 감수성에서 팝적 감수성으로 이미 이행을 완료한 상황이었다. 박선주의 본 앨범 이후에 동아기획에서 데뷔한 이소라의 경우엔 애초부터 80년대적 감수성을 지우고 나왔다. 한마디로 구식 동아기획은 박선주가 머무를 그릇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구식 동아기획은 엄청난 초호화 세션맨들을 불러다가 80년대적 사운드로 최후의 몸부림을 쳤던 것이다. 결과는... 많은 부분 시대착오였다. 물론 이처럼 시대를 껴안고 머리를 긁적거리는 동아기획이 싫었던 조동진, 조동익 형제는 92년 하나뮤직이라는 곳에 소박하게 새 둥지를 튼다. 뭐, 이 얘기는 3탄 권혁진 편에서 다시 하기로 하고......

아무튼... 따라서 필자는 박선주가 도피 유학의 근거로 들은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럽다' 라는 말을 과감하게 '동아기획이 부담스럽다'로 해석하려 한다. 그래서 박선주는 흑인음악으로 돌아선 것 아닐까? 이제부터 자신에게 필요한 건 소울이기 때문에. 실제로「시간 속에서 2」는 상당히 소울 적이었으니까. 11년 만에 발표한『A4rism』부클릿 안에도 힌트는 충분하다. 박선주는 80년대부터 지금까지 자기와 함께한 사람들에게 죄다 고마움을 표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1993년을 유독 '세상을 알게 된 후'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그녀의 고마움 명단엔『내가 그리고 싶었던 그림』의 선배들의 이름은 거의 없고, 대신 그 이후 그녀의 도움을 받은 디제이디오씨, 쿨, 디바 등 후배 뮤지션들의 이름이 잔뜩 나열돼 있다.

그런 고로, 필자의 최종 결론은 다음과 같다. 박선주, 80년대의 영광에 눌려 90년대 초 소울의 막바지 희생자가 되다. 영광이 마이너리티가 되자 덩달아 자신도 마이너리티가 되다. '내가 그리고 싶었던 그림'이 자신의 소울 안에 있었으나, 캔버스를 잘 못 만나 '내가 그린 기린 그림은 잘 그린 기린 그림...' 이라는 엉뚱한 암호를 오래도록 헤매었다.

Credit

★★★



팬 카페 http://cafe.daum.net/psjfanclub



●Track list 

01. 그때 너는

02. 지난 겨울

03. 내맘의 작은평화

04. 시간 속에서 2

05. 착각

06. 이런 내마음을

07. 새로운 날들이

08. 나의 그대

09. 진실

10. 도와 주오  



●앨범정보

프로듀싱: 박선주

레코딩: 송형헌

믹싱: 송형헌

마스터링: 임창덕

디자인: 정희정

Track List

  • No
    곡명
    작사
    작곡
    편곡

  • Warning: Invalid argument supplied for foreach() in /www_root/common/includes/ui.review_view_ko.php on line 273

Editor

  • About 윤호준 ( 84 Article )
SNS 페이스북 트위터
TOP
Error Message : Query was emp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