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Review

[공통리뷰 #23] 더블유앤웨일 『Hardboiled』 : 일렉트로닉 팝의 절대 강자

더블유앤웨일 『Hardboiled』
488 /
음악 정보
어쿠스틱 기타의 단아한 반주와 일렁이는 멜로디로 출발하는 낭만 가득한 포크. 그러다가 “More than a shining star/ 꿈을 꾸는 너의 눈빛”이라며 폭발에 가까운 훅(hook)을 선사하며 듣는 이를 완전히 사로잡는다. 곧 이어지는 2절부터 전자 사운드를 오돌도돌 둘러치더니, 느닷없이 “더 조금 더/ 너의 노래를 듣고 싶어”라는 또 하나의 강력한 훅을 터뜨린다. 이후 더욱 밀도를 높이는 전자 사운드로 감정을 추스르며 곡은 마무리된다. 본 앨범의 백미인「Stardust」에 대한 요약인데, 이 곡 하나만으로도 더블유(W)에 걸었던 기대는 말끔히 충족된다. 플럭서스의 신예 웨일의 목소리는 매우 전형적으로 들리지만 사람을 잡아끄는 마력으로 가득하다. 불분명한 믹스와 오버더빙으로 뭉뚱그려진 김상훈의 목소리를 가지고도 이미 전작『Where The Story Ends』(2005)에서 일렉트로닉 팝의 진수를 보여줬던 더블유는, 웨일을 영입하면서 한층 단단해졌다. 더 이상 당해낼 자가 없다. 더블유앤웨일(W&Whale)은 이 분야의 절대강자다. 

하우스의 빠른 템포와 보컬 멜로디의 절묘한 결합으로 앨범 앞머리에 잊을 수 없는 흔적을 남겼던 3년 전의 더블유는 어디로 갔을까? 대답은「Morning Star」가 해준다. 기타 스트로크와 전자 사운드의 결합은「Shocking Pink Rose」(2005)와 흡사한데, 템포는 한 단계 약하고 보컬은 명징하다. 그리고 멜로디의 서정이 분명하다. 한 번 더 옷깃을 여민 멜로디의 서정이 보컬을 아깝지 않게 만든다. “치약 향기”를 내뿜는 가사가 15년 전「그녀의 아침」(1993)까지 소급해 올라가니, 알싸한 맛을 부정할 방도가 없다. 3년 전의 알 듯 말 듯 아리송한 매력을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서정성으로 교체한『Hardboiled』의 앞머리는 이토록 강력하다.「오빠가 돌아왔다」,「Stardust」,「morning Star」의 삼각편대. 이 와중에 배영준은 변함없이 소소한 일상과 무거운 정치를, 발랄한 음악과 딱딱한 정치를 이으려고 한다. “한 마리 고독한 늑대처럼 세상과 화해하지 못한” 사람의 정체가 고작 “학교 앞 큰 길, 그 사거리의 미소년”이라고 밝히는 첫 곡「오빠가 돌아왔다」는 전작의 마지막 곡「경계인」(2005)을 그대로 잇는다.

사실 나는「Too Young To Die」에서 “결국 모든 게 부질없는 선택/ 무기력의 힘으로 튼튼한 미래”라 노래하는 더블유에 관해 많은 얘기를 하고 싶다. 나는 홍세화와 박노자와 광화문의 촛불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밴드의 음악이 영한 혼용 가사를 선호하는 최상의 팝송이며, 실제로 무기력하게 들리는「오빠가 돌아왔다」의 무심한 기타 백킹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나 같은 사람들의 처지를 깔끔하게 포장하는 것 같아 조금 불편하다.「R.P.G. Shine」에서 제아무리 “항상 말만 앞서고 행동하진 못해”라고 꼬집어도 그건 예외적으로 수다스러울 뿐, 그 곡은 앨범의 핵심적인 정서가 아니다. 제법 진퇴양난이다. 상황을 솔직하게 직접적으로 드러내면 식상하고, 모호하고 아름답게 포장하면 어딘가 부족하다. 지금 더블유를 SMP 따위와 동류로 취급하려는 게 아니다. ‘역시 록으로 돌아가야 돼!’라고 멍청한 선언을 하는 것도 아니다. 거듭 생각해봐도 더블유의 음악은 현재의 대중음악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정치성이지만, 이것이 ‘최종’은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거리를 제공한다는 것 자체에 이미 의미는 충분하다고? 이런 수습이 최종이 아니고 무엇인가? 일단 음악이 즐거운 지 안 즐거운 지 그것 먼저 따지자고? 이런 방향 전환이 최종이 아니고 무엇인가? 미안하다. 음악과 정치에 대한 어줍잖은 고민은 다른 곳에서 혼자 하겠다. 아무래도 나만의 맥거핀(MacGuffin)이었나보다. 앨범에도 맥거핀이 세 개씩이나 들어있지 않은가. 

*관련글: SMP에 관해~ http://cafe.naver.com/musicy/5821  
*관련글: 월간잡담 '음악과 정치' http://cafe.naver.com/musicy/5572

다시 삼각편대로 돌아가자. 이번엔 뉴웨이브 삼각편대다.「월광(月狂)」,「Too Young To Die」,「고양이 사용 설명서」는 뜡뜡거리는 80년대 풍 신스 사운드가 곡의 분위기를 일관되게 이끌어나간다. 단출한 구성과 우직한 보컬, 그리고 아스라이 흩어져 있는 낱말들이 일품이다. 이 삼각편대 앞에서 ‘복고다!!’라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이 별로 들지 않는다는 것, 대신 ‘팝송 잘 만드는 더블유네~’라고 되뇌게 만든다는 것, 이게 바로 더블유가 다른 일렉트로니카 뮤지션들과 구별되는 점이다. 아,「고양이 사용 설명서」는 나머지 둘과 조금 다르긴 하다. 재미있는 제목과 달리 고양이의 본질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는 가사가 놀랍다. 스트링을 동반한 막판 달리기가 없었다면 더 좋을 뻔했다.

이어지는「Whale Song」은 또 하나의 서정 폭탄이다. 듣고 있노라면 정치성이고 뭐고 다 미뤄둘 수밖에 없다. 웨일이 곡도 진실하게 쓰고 노래도 참 잘 부르는 뮤지션이란 생각에 깊이 빠지고 만다. “Radiohead의 음악을 느끼며 이슬이 스며든 런던을 꿈꾸지” Radiohead의 행보에 대해 평론가들 사이에서 말들이 많고, 그 밴드가 제국주의적 영미 팝 문화의 첨병이라고 해도, Radiohead의 음악은 어찌됐건 “포근한 엄마의 멜로디” 못지않게 좋지 않은가! 좋은 걸 어쩌란 말인가! 다음 곡이 곧장「최종병기 그녀」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궁합이었을 것이다. 재미있는 제목은 이번에도 겉모습일 뿐이다. 《에반게리온》(1995)의 소녀 전사 레이가 머물던 희뿌연 골방에 딱 어울리는 테마곡이 아닐까 싶다. 후렴의 멜로디가 통속적이면서 심히 애잔하다. 간단한 비트 한 조각만 깔아준 한재원의 편곡은 더블유의 가치를 새삼 증명한다. 아, 두 곡 사이에 놓인 두 번째「R.P.G.」는 앨범 맨 뒤로 가거나 차라리 없었으면 더 좋을 뻔했다.

마지막의「Dear My Friend」와「우리의 해피엔드」는「Stardust」의 외전(外傳)같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적당한 하우스 비트, 적당한 공간감, 적당한 보컬, 적당한 훅, 적당한 의미. 어설픈 짝퉁이 아니라「Stardust」가 도달한 밴드의 경지를 하나의 종합적인 상징으로 재현하고 있다는 뜻이다. 앞선 트랙들에서 맛본 더블유의 매력이 바로 이 두 노래와 같은 것들이라고 재차 말하고 있는 거다. 13번까지 쏠쏠하게 들었다면 마지막도 문제없다는 얘기. 이제 뭘 해도 더블유의 팝송은 믿게 된다. 그만큼 앨범의 후반부는 속이 꽉 찼다.

리뷰를 마치면서 할 얘기라곤 결국 맥거핀뿐이다. 앨범에 대해선 ‘「R.P.G.」두 곡 빼곤 다 좋다’, ‘더블유와 웨일의 결합은 기똥차게 성공적이다’라고 말하면 대략 틀리지 않다. 자, 맥거핀은 영화감독 Alfred Hitchcock이 정립한 개념으로, 이를테면 《미션 임파서블 3》(2006)의 '토끼발' 같은 것이다. 토끼발의 정체가 뭔지 주인공과 관객 모두 궁금해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그걸 훔쳐와야 Tom Cruise의 애인이 목숨을 건질 수 있다는 내러티브다. 이처럼 이야기의 큰 줄기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아무 것도 아닌 해프닝이지만, 관객의 긴장감을 은은하게 자극하는 영화적 장치를 ‘맥거핀 효과’라 부른다. 그래서 나도 따져본다.『Hardboiled』에 있는 세 개의 맥거핀은...... 결국 아무 것도 아니다. 이 세상 모든 앨범의 인트로, 아웃트로, 간주(Interlude) 등이 대부분 아무 것도 아니듯. 또 감동 발라드 궁합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두 번째「R.P.G.」도 맥거핀이다. 잠깐, 세 개의 맥거핀에 들어간 음향들이 모조리 범죄현장을 지목하고 있으므로 앨범 타이틀『Hardboiled』에 부합한다고? 그래, 하드보일드 문학이 추리소설에서 유독 도드라진 건 사실이다. 그럼 그 밖의 다른 관련성은? 그냥 농담이니까 타이틀도 맥거핀일까? 아니면 더블유의 찬란한 팝송이 나의 어줍잖은 고민 앞에서는 굳건한 하드보일드의 위치를 점하는 것일까? 뭔가 은은하다. 에이, 그만두자, 그만둬. 당사자를 직접 만나기 전엔 모를 일이다. 

Credit

[Member]
배영준 : Guitars
한재원 : Piano & Keyboards
김상훈: Bass, Guitars & Drums
웨일 : Vox & Guitars

[Staff]
Produced by 더블유
Mixed by 심진보 except Track 08·09·14 by 이용섭(a.k.a DJ Kan-G), Track 13·14 by 임진선(a.k.a Rainbow Tape)
Recorded by 심진보, 임진선 & 민성환
Mixed & Recorded@Fluxus Studio
Mastered by 전훈(a.k.a Cheon "big boom" Hoon)
Mastered@Sonic korea
In the memory of 이용섭
A&R: 김병찬/이준성
Executive Producer: 김병찬

Track List

  • No
    곡명
    작사
    작곡
    편곡

  • Warning: Invalid argument supplied for foreach() in /www_root/common/includes/ui.review_view_ko.php on line 273

Editor

  • About 윤호준 ( 84 Article )
SNS 페이스북 트위터
TOP
Error Message : Query was emp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