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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리뷰 #22] 언니네이발관 『가장 보통의 존재』 : 달콤 쌉싸름한 아이의 증언

언니네이발관 『가장 보통의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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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정보

1.
언니네이발관(이하 ‘언니네’)은 특별한 밴드다. 너무 자주 들어서 엄마의 잔소리처럼 싫은 소리가 되어 버린 탄생설화부터 유별나다. 게다가 일본 포르노 제목을 밴드 이름으로 삼은, 지독히 모던록스런 까칠함도 결코 평범하지 않다. (여담이지만 그 포르노를 꼭 찾아보고 싶은데, 당췌 찾을 수가 없다.) 그리고 앨범마다 심장을 후벼 파는 아찔한 곡들이 있다. 돌이켜보면 목수가 처음 만든 책상 같았던 데뷔앨범 『비둘기는 하늘의 쥐』(1996)에 「동경」과 「생일기분」이 있었다. 옥상 위에 서 있는 처연한 뒷모습을 각인시킨 『후일담』(1998)에는, 단연 「인생의 별」이 있다. 「어제 만난 슈팅스타」와 함께 영원히 반짝거리는 노래다.

각자의 추억이 달라 좋아하는 곡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이 땅 인디 씬의 시발이었으며, 그러므로 언니네 이전과 이후로 한국 록음악을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에는 동의해야 한다. 역사에 기록될 밴드,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다. 어찌 특별하지 않을 수 있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니네는 이번 앨범에서 스스로를 ‘가장 보통의 존재’라고 칭한다. 무슨 노태우도 아니고 겸손하게 이미지 메이킹 하려는 건가? 갑자기 밸이 꼴린다. 그럼 네 번째 앨범 『순간을 믿어요』까지는 자칭 특별한 존재였다는 걸까?

2.
전작 『순간을 믿어요』(2004)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야겠다. 하드록을 연상시키는 탄탄한 기타 사운드의 지원 아래 현란하게 펼쳐지는 가공할 멜로디가 생쾌한 앨범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등을 보이며 곧 떨어지듯 위태위태했던 아이가 상처를 딛고 잘생긴 어른으로 성장한 느낌이랄까? 하지만 왜 언제나 아잇적에 보았던 인물을 어른이 되어 만나면 누구나 실망하게 되는지. 미래가 확정되지 않은 데서 오는 영리함과 순진함이 덧없이 사라지고 어느덧 피로한 듯한 교활함이 살갗에 실리는 것이다.1)

언니네의 매력은 깨어질듯 외로운 사춘기의 고민이다. 그게 죽음이든 이별이든 청승이든 뭐든 간에 누구나 소통하지 못하는 외로운 구석이 있기 마련이다. 그걸 알아채고 사람들이 공감한 것이다. 그래서 『순간을 믿어요』는 아쉬운 앨범이었다. 다시는 그 아이를 보지 못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아무래도 이번 앨범은 그런 아쉬움을 만회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언니네가 주창하는 ‘보통의 존재’란 그래서, 짐짓 겸손한 척하는 위악이 아니라 어른이 된 아이의 어떤 깨달음처럼 보인다.

3.
사실 위악은 언니네의 큰 특징 중 하나다. 터널이 더 환하다던가(「어제 만난 슈팅스타」) "당신이 아니어도 나는 괜찮아/ 그대 나를 떠나요"(「천국의 나날들」(2004))라는 증언들이 그렇다. 단순하게 외롭다고 토로하지 않고 살짝 비틀어 쓴 노래가 사랑을 믿지 않는 외로운 아이의 이미지를 더욱 공고히 했다. 지금까지는 이런 가사들이 단편적으로 머물거나 드문드문 등장했다면 이 번 앨범에서는 지속적으로 그리고 단호하게 펼쳐진다.

가장 뛰어난 싱글인 「의외의 사실」을 보자. "아름다운 세상이 나에게 말을 한다/ 너는 아무도 아니라고". - 괴로운 듯 말하지만 그건 결코 ‘의외의 사실’이 아니다. 언니네의 그 ‘아이’는 끊임없이 소외를 노래해 왔다. 아이는 그걸 숨기느라 "원래 타인의 상처따윈 신경쓰지 않"는다는 식의 빛바랜 「알리바이」를 짜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런 아이가 더욱 외로운 아이라는 것을. - 이런 애처로운 흡입력이 바로 언니네의 정체성이다. 만일 여기까지라면 이 앨범은 『후일담』의 재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어른이 된 외로운 아이가 부르는 「인생은 금물」을 들어보자.

인생은 금물 함부로 태어나지 마
먼저 나온 사람의 말이
사랑 없는 재미없는 생을 살거나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네


사실 이런 말은 술을 진창 먹고 난 절망적인 상황에서 이외수같은 도인이 해야 어울린다. 결코 업템포의 쟁글 기타에 얹어져 할 말이 아님에도 언니네는 매우 유니크한 방법으로 청승을 떤다. 유니크함을 너머 보편적 삶에 대한 선언이랄까? 삶의 고통을 알아버린 외로운 소년의 쓸쓸한 일기랄까? 이번 앨범에는 유독 이런 삶의 각성이 많이 등장한다. 사랑과 우정도 모두 괴로움이라는 고백(「너는 악마가 되어가고 있는가?」)은 무차별한 삶의 진실이다. 슬픈 이야기로 남아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100년 동안의 고백」)는 단정은 가슴을 서늘하게 만든다. 심지어, 이 어른 아이는 그저 하루를 넘기며 살아가는 외로운 나그네(「나는」)라고 마침표를 찍어 버린다. 지금껏 조금씩 자기를 드러냈던 한 아이가 이번엔 작정하고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4.
메시지가 이렇다보니 사운드는 일관된 분위기로 흐른다. 재즈 같기도 하고 어쿠스틱 느낌도 난다. 무심한듯 하면서도 따뜻하다. 우선 이능룡의 기타 플레이의 독특함이 두드러진다. 전통적으로 보컬과 기타의 이중주가 중요한 밴드였다는 사실을 환기시키는 걸까? 전 앨범 『순간을 믿어요』에서 뜨거운 기타 솜씨를 보여주었던 이능룡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뛰어남을 증명한다. 톤의 명도만을 조절하는 선에서 다양한 느낌을 선사하는 연주가 놀랍다. 앨범을 지배하는 ‘청승의 깨달음’은 이능룡의 기타를 통해 청각적 이미지로 다시 한번 확인되거나 환기된다. Morrissey와 Johnny Marr의 또 다른 조합이랄까? 보컬과 기타가 텍스트에 단단히 붙들어 매 있다보니 베이스와 드럼의 발걸음도 훨씬 더 분명히 들려온다. 몇 번씩 뒤집었다는 공들인 믹싱이 빛을 발한다. 특히 「의외의 사실」과 「알리바이」에서 깔리는 트럼펫은 일관된 연주를 다시 도드라지게 하는 화룡정점이다. 진정 아름다운 밴드 음악이다.

생각해보면 언니네의 사운드는 계속 변해왔다. 『후일담』이 정대욱의 기타가 두드러진 앨범이었다면, 『꿈의 팝송』(2002)은 데이트리퍼와 정무진의 뽕뽕 사운드가 색채감을 만들었다. 반면 『순간을 믿어요』는 웰메이드 모던록을 지향했다. 주요 멤버들의 교체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잦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역시 가사와 멜로디의 밴드라는 점에서 사운드는 변화 속에서도 중심을 가지고 항상 신선했다.

5.
슬픔을 슬프다고 이야기하지 않고 사랑을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 불구의 의사소통. 그 안에 상처받을까봐 조마조마한 마음, 사랑받지 못할까봐 불안불안한 마음이 느껴진다. 달콤쌉싸름한, 비터스윗한 무엇이 언니네를 듣는 참맛일 것이다. 이번 앨범도 여전하다. 조금 더 탄탄한 문장, 생각보다 훨씬 더 비극적인 삶의 성찰을 포함해서 말이다. 이건 지금까지 흩뿌려 왔던 청승 바이러스가 우글거리는 둥근 샤레에 담긴 배양액이다. 어찌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서 앨범의 마지막 트랙 「산들 산들」이 어색하게 들린다. ‘외로워도 웃음 지을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간다’는 다짐은 지금까지 세계와의 불화를 한 순간에 화해로 바꿔놓기 때문이다. 글쎄 모르겠다. 내가 새디스트적 성향이 있는지도. 책상 위에 위태하게 올라선 그렁그렁한 눈망울로 돌아보는 아이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맘이 없나보다. 어쩌면 스스로 고통을 생산하는 매저키스트여서 그런지도 모른다. 저 원숭이처럼 파리한 아이에게 감정이입했던 내 삶이 이 노래처럼 그렇게 쉽게 세상과 화해 할 수 없기 때문일지도. 

Credit

[Member]
Vocal : 이석원
Guitar : 이능룡
Drum : 전대정
Bass(객원) : 유정균@세렝게티

[Staff]
프로듀스 : 언니네 이발관 with 김대성
녹음 : 톤 스튜디오
레코딩 엔지니어 : 김대성, 이태섭
어시스턴트 엔지니어 : 고정은, 신봉원, 유상재, 신경범
믹스 : 김대성
마스터링 : 김대성(톤 스튜디오)

[Musician]
피아노 : 임주연(산들산들), pc2x(인생은 금물)
트럼펫 : 배선용(의외의 사실, 알리바이)

Track List

  • No
    곡명
    작사
    작곡
    편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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