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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리뷰 #21] 한희정 『너의 다큐멘트』 : 또 다른 정답 2

한희정 『너의 다큐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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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정보
얼마나 하고 싶었을까. 한희정의 첫 솔로 앨범을 듣고 처음 들었던 생각이다. 더더로 출발하여 솔로 앨범을 내기까지 한희정은 꽤나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더더를 떠나 푸른새벽으로 활동하고, 다시 한희정이라는 이름만으로 자신의 첫 음반을 내기까지, 한희정은 점점 자신과 함께 음악을 만드는 사람의 숫자를 줄여왔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러한 행보를 지켜보면서 그녀가 오로지 기타와 목소리만으로 자신의 음악을 표현할 수 있기를 바랐던 것처럼 생각해왔다. 그도 그럴 것이, 푸른새벽을 떠난 2006년 이후 한희정이 줄곧 공연에서 보여준 것이 그러한 '포크 음악'이었으니 사람들의 '오해'는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다.

한희정에 대한 이 오해는 아마도 그녀가 걸어온 활동내역에서 비롯하였을 것이다. 밴드에서 듀오, 그리고 이번에는 솔로로 규모를 줄여왔고, 악기의 숫자도 줄어들며 밴드의 모던록에서 듀엣의 일렉트로닉-네오 포크로 전환되었고,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한희정이라는 뮤지션에게서 바라는 음악도 결국은 포크-모던록으로 좁혀졌다. 많은 사람들이 푸른새벽의 EP 『Submarine Sickness / Waveless』(2005)를 들으며 전자는 Dawn(한희정), 후자는 Sorrow(정상훈)을 떠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편리한 구분이 과연 얼마나 정확한 것일까.

다시 더더 시절로 거슬러올라가서, 나는 그녀가 더더 4집 『THe ThE Band』(2003)에서 유일하게 작사·작곡을 도맡아 한 「뚜뚜뚜」 같은 곡이나, 「In...」, 「소(炤) 소(笑)」, 「Alice」처럼 한희정이 작곡에 참여한 곡을 들어보며 사람들이 지금까지 상상해온 한희정의 지향점에 대해서 한 번 더 고민해볼 것을 제안한다.

더더 4집에서 그녀가 참여한 곡들은 「작은 새」 이후의 미니멀한 작법이 아닌, 오히려 조밀하고 소스가 다양한 곡들이었다. 백그라운드 보컬이 멜로디를 이끄는 보컬과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밴드의 형태 안에서 자연스럽게 녹여넣을 수 있는 한도 내의 음향 효과가 꽤나 많이 사용되었다. 이러한 특징은 네오 포크의 방법론을 통해 만들어진 푸른새벽 1집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푸른새벽은 그저 포크라고 부르기 어색할 정도로 기타 외의 사운드가 앨범에서 많은 양을 차지한다.

또한 한희정이 작곡한 곡들은 기존의 정형화된 모던록, 포크의 곡 전개를 생각하고 들었다가는 당황하기 십상이었다. 더더 시절의 곡도 그러하지만 특히 푸른새벽의 「April」 (2003)같은 곡은 채 2분도 되지 않으며 1절-후렴-2절-후렴 같은 평범한 진행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하다 만 느낌, 허탈감을 줄 정도이다.

이러한 행보를 걸어왔던 뮤지션이 낸 첫 솔로 앨범이 우리가 예상하는 예쁘장하고 단순해서 듣고 흥얼거리기 좋은 모양새를 하고 있을 리가 없다. 첫 곡인 「너의 다큐멘트」부터 「우리 처음 만난 날」까지는 앨범의 리듬을 따라가기가 쉬운 편이다. 하지만 「Drama」에서 「Glow」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은 한희정의 특징을 적확히 인식하지 않는다면 헤메기 딱 좋은 지점이다. 솔로 앨범에서 호화 피쳐링 총출동을 보는 것이 익숙한 인디에서, 한희정 정도로 꾸준히 활동한 뮤지션에게 외부의 참여가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챘다면, 그녀가 피쳐링을 맡긴 유일한 곡이 「Drama」이며 이 곡의 구성이 어쿠스틱 기타 한 대뿐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너의 다큐멘트』는 작사, 작곡, 편곡, 연주, 녹음, 프로듀싱까지 혼자의 힘으로 해낸 음반이다. 이 말은 그녀가 '밴드'나 '듀오'의 기본적인 포맷이나 악기의 활용에 대한 정석적인 접근을 전혀 신경쓸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너의 다큐멘트』에서 보컬을 포함한 각 악기는 철저하게 어떤 형성하고자 하는 지향점을 위해서만 존재한다. 키보드와 기타 솔로의 구분은 무의미하며(「휴가가 필요해」) 일렉트릭 기타는 베이스처럼 활용되기도 하고(「우리 처음 만난 날」) 귀 기울여 듣지 않으면 무슨 악기가 내는 소리인지, 머신을 쓴 건지 미디를 찍은 건지 키보드로 연주하는 건지 알 수 없기도 하다.(「Glow」) 『너의 다큐멘트』에서 악기의 활용은 악기가 어떠한 소리를 내느냐의 문제일 뿐 기본적인 활용이나 고정관념은 필요가 없다. 악기는 서로의 영역에 은근슬쩍 끼어들기도 하고 어느새 서로 자리를 바꾸기도 한다. 이러한 '공간 활용'은 그만큼 한희정이라는 뮤지션이 각 악기를 다루는데 있어 능숙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물론 아쉬움도 있고 문제도 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앞서 말한 앨범 중반부의 혼란은 그만큼 중반부의 곡들이 지닌 특징들이 앨범 전체의 흐름에 맞물리지 않아서가 아닐까 한다. 중반부에 스킷곡이나 브릿지 역할을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면, 혹은 좀 더 앨범의 흐름을 고려하여 곡을 배치하고 명확하게 곡의 차이를 느끼게 만들 수 있었다면 해결될 문제였다. 하지만, 이 역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한희정은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각 곡의 특징이나 악기의 활용, 전달하려는 정서가 다름에도 이 앨범이 '하나의 곡'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은, 어쩌면 그만큼 그녀의 프로듀싱 능력이 상당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일 수도 있다. 놀랍게도 『너의 다큐멘트』는 앨범 전체를 통틀어 어느 곡 하나 '비어 있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또한 각 곡을 하나씩 떼어놓고 따로 감상하면 곡들이 지닌 특성의 차이도 어느 정도 드러난다.

그러한 점에서 한희정이라는 솔로 뮤지션이 1집에서 내놓은 접근법은 상당히 특이하다. 스웨터는 정석적인 의미의 밴드 사운드로 회귀하며 여기에 키보드라는 복병을 집어넣었다. 언니네이발관은 강박적일 정도로 미니멀한 사운드와 그 사운드가 표현해내고자 하는 질감을 최대한 증폭시키는 프로듀싱, 그리고 앨범 단위의 작곡을 보여줬다. 한희정의 시도는 그녀가 밴드에 속해있지 않다는 점, 그녀가 모든 사운드를 연주하고 총괄한다는 점에서 스웨터나 언니네이발관이 찾은 돌파구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모던록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밴드들은 한국 모던록이 정체된 것에 대해서 어느 정도 느끼고 있고, 제각기 돌파구를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 듯하다. 그만큼 한국 모던록이 어떤 식으로든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지 않으면 안 될 시기에 다다랐다는 위기의식을 지니고 있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상황에서 스웨터의 『Highlights』(2008), 언니네이발관의 『가장 보통의 존재』(2008), 한희정의 『너의 다큐멘트』가 내린 결론에 대해 이후의 모던록이 어떻게 움직이게 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내게는 그들의 노력과 그로 인해 나온 결과물이 적어도 현재의 상황을 극복하려는 의지 이상의 무언가를 담고 있다고 느껴진다. 그중에서도 한희정의 『너의 다큐멘트』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모던록 1세대 뿐만 아니라 막 성장하고 있는 여타의 밴드 뮤지션들에게도, 또한 한국 모던록에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청자나 한국 모던록을 좋아하는 청자, 한국 모던록을 높게 평가하지 않는 청자들에게도 어떠한 생각거리를 던져줄 수 있으리라고 본다.

Credit

[Staff]
Produced by 한희정
Mixed by 이언
Mastered by 전훈@Sonic Korea

Track List

  • No
    곡명
    작사
    작곡
    편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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