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fragile」

[열심히] 같은 지붕 아래의 뉴진스가 자연스러운 감상을 유도하기 위해 극한의 프로듀싱의 디테일을 최대한 수면 아래로 내리려 한 접근을 보여줬다면, 한 해 동안 두 번의 발매와 집중적인 활동을 보여준 르세라핌은 멤버-그룹-활동 모두를 어떠한 기승전결의 서사 아래서 빡세게 몰아부치는, BTS 이후 관습처럼 확대되어온 ‘세계관형 아이돌’의 가장 인텐시브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일장일단을 논할 것은 아니고 취향의 차이일텐데, 르세라핌의 접근은 아무래도 코어팬들의 충성도를 단기간에 끌어올리며 그룹의 차별화된 정체성을 빠르게 잡을 수 있는 것이 장점이겠지요. 반면, 진입장벽이 짧은 시간에 빠르게 높아지기 때문에, 활동 초기에 대중적인 곡을 만나기 전까지는 깊은 팬덤에 의존하되 그 영향력의 ‘범위’가 제한적인 그룹이 될 수도 있죠. 그런 점에서, 라틴-정글 리듬에 비트와 그루브 파트를 극대화하고, 움직임의 획과 폭이 화려한 군무를 조화시킨 「Antifragile」은 르세라핌에게 긴히 필요하던 ‘데뷔 초 대중적인 곡’의 이상적인 예에 해당할 겁니다. 특히나 초창기부터 이들의 퍼포먼스에 숨을 불어넣는 핵심 역할을 수행하는 프로듀싱팀 13은, 마치 와이지에서 초이스37이 그랬듯, 뼈대를 공격적으로 드러내는 비트와 베이스 중심의 감각적인 그루브 라인 디자인을 통해 이 그룹에게 타 걸그룹과 확연히 차별화된, 세련되고 시크한 댄스음악의 근간을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정병욱] 아이돌 랩은 (어쩔 수 없는) 퍼포먼스의 한계와 더불어 곡에 있어 다소 부수적인 역할에 머물 때가 많은 탓에 그들이 내세우는 미학과 가치가 여러모로 과소평가되어 있다. 사랑이나 정체성 타령을 벗어나 강인한 여성성을 내세우는 4세대 걸그룹의 (그와 같은 ‘주제의식’에 충분히 미치지 못하는) 안일한 가사 쓰기도 마찬가지. 「Antifragile」는 이 모두를 정면돌파한다. 여전히 스킬 자체로는 절대 유려할 수 없는 아이돌 랩 파트의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해 멤버들의 각기 다른 음역과 개성을 다채로운 변주와 곡 안에 녹아들게끔 조화롭고 매력적으로 배치했다. 앞선 데뷔곡 「Fearless」(2022)와 대조해 보더라도 라인의 완벽한 분배, 무게감을 양껏 덜고도 힘있게 전진하는 비트, 주체적인 태도에도 낯뜨거울 일 없는 중독적인 가사가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이 같은 조율을 통해 빠른 전환에도 절대 산만하지 않고, 잦은 반복에도 쉬이 지치지 않는다는 게 강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