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4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 헤비니스 씬에서조차 “멜로딕 스피드/파워 메탈”을 추구하는 아티스트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보컬을 비롯한 모든 연주 파트가 극한의 역량을 자유자재로 구사해야하는데다, 장르를 이해하는 레코딩 테크닉까지 가미되어야만 좋은 작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태초에 Helloween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고, 멀리는 Avantasia 같은 록 오페라를 구현한 밴드를 위시하여, 가까이는 Galneryus 같은 일본의 여러 밴드들을 접한다면 이 장르가 지닌 높은 벽을 실감할 수 있다. 우리나라 밴드들의 도전 또한 면면히 이어졌다. 김경호와 이현석의 역작 「Shout」(1998)가 맨처음 떠오른다. 이후, 지하드를 필두로 하여 타임콘체르토, 레전드, 휘모리 같은 밴드들이 2000년대 중후반에 반짝 활동하다 헤비니스 씬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여기, 『Hegemony Shift』는 전무후무한 작품이다. 이전의 어떤 한국 헤비니스 음반에서도 느낄 수 없는 격(格)이 흘러넘친다. 이는 장르의 에센스를 짚어내어 정확히 구현해낸 김성훈(Mevin Kim)의 개인 역량에 오롯이 기댄다. 그가 무려 데뷔 20년을 바라보는 보컬리스트라는 것에 먼저 주목하자. 목소리야 말로 세월의 위력을 정확히 측정하는 악기일진대, 데뷔작인 지저스밴드의 『Kingdom Come』(2004)에서나 이름을 알린 지하드의 『Life Of Passion』(2007)과 비교해도 전혀 차이를 느낄 수 없는 보컬 역량은 『Hegemony Shift』가 지닌 격의 보증수표이기도 하다. (「Hegemony Shift」마지막의 샤우팅은 짜릿함 그 자체다.)

연주 역량 또한 빼놓을 수 없겠다. 김성훈이 적을 둔 일본 밴드 Rachel Mother Goose의 멤버들이 리듬 파트를 완력으로 지배한다면, 지저스밴드에서 함께 활동한 기타리스트 최정현과 Rachel Mother Goose의 기타리스트 히데시 우에키 (植木英史)가 섬세하면서도 박력을 겸비한 리프와 솔로로 곡의 뉘앙스를 웅장하게 살린다. (Rachel Mother Goose의 음악과 미묘하게 다른 아그네스 스타일을 비교하는 것도 또다른 즐거움이다.) 아울러, 김성훈이 도맡은 키보드나 프로그래밍은 때로는 분위기 전환을, 때로는 유니즌 플레이로 경외감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이 음악 전체의 설계를 김성훈이 한땀한땀 했다는 것에 있다. (이런 꼼꼼함이라니!) 듣는 내내 압도당하는 느낌이다. 요즘 시대로 표현하자면 아무 정보 없이 조광일의 랩 4마디를 마주하는 그 순간과 비슷하달까.

음반을 듣는내내 미소지었던 부분이 있다. 「Areumda War」(실제 “아름다워”가 제목이다!) 라든지, 「Forget Me Not」, 「Wings Of The Dawn」 같이 어울리지 않는 듯 어울리는 메탈 발라드를 마주하면, 마치 1980년대 쯤의 어느 외국 헤비메탈음반을 듣는 회상에 잠기다 빠져나오곤한다. 아마 나와 같이 헤비메탈에 빠져본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누구나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부클릿이 암시하는 것으로 보이는 ‘기계문명에 대한 경고’랄지, 수록곡들의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는 기독교적인 상징까지 다루자면 지면이 부족해질 지경이다. 이런저런 흥분과 설명이 길었지만, 《음악취향Y》가 이 음반을 여러분들에게 추천하는 이유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멋진 팝의 멜로디를 지닌 박력 넘치는 멜로딕 파워 메탈”이라 해야겠다. 누군가에게는 능력에 대한 경탄을, 누군가에게는 어린 시절의 회상을 제공하기에 한 점의 부족함이 없다. 이런 음반이야말로 올해의 목록, 그리고 시대를 아우르는 명반의 목록에 반드시 기록해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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