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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앞의 별이 떠나갈 때 #03] Lemmy : Goodbye, Ace of Iron Fi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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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정보

1965년 The Rockin' Vickers에 가입하여 녹음한 싱글로 레코딩 아티스트의 경력을 시작한 Lemmy가 자글대는 록에 완전히 불타오르게 된 것은 아파트를 나눠 쓰던 The Jimi Hendrix Experience의 베이시스트 Noel Redding 덕분이었다. 헨드릭스의 밴드에서 로디로 일하며 그 사운드를 자신의 것으로 집어삼키기 시작한 Lemmy가 록계에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1971년 Hawkwind에 베이시스트로 가입하면서부터다. 이 시절 이미 Lemmy는 싱글 노트 중심의 베이스 플레이가 아닌 코드 중심으로 “후려갈기는” 특유의 베이스 라인을 완성한 상태였다. Lemmy가 뿜어내는 에너지는 호크윈드 최고의 히트작 중 하나인 라이브 앨범 『Space Ritual』(1973)을 견인했다. 그러나 지독한 알콜과 약물, 무절제한 섹스 행각으로 인해 다른 멤버들은 Lemmy를 버거워하기 시작했고, 1975년 투어 중 미국-캐나다 국경에서 약물소지로 체포되는 해프닝 속에서 밴드는 그를 해고했다.



호크윈드의 포스


Lemmy에게 이 사건은 중요한 모멘텀이 되었다. 독하게 Bastard라는 이름으로 새 밴드를 결성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 밴드의 정식 이름은 호크윈드에서 발표했던 Lemmy의 곡 중 가장 시끄러웠던 노래인 「Motorhead」로 확정되었다. 제목 그대로 도발적인 사운드로 점철된 밴드였다. Lemmy 못지않은 똘끼로 무장한 "Fast" Eddie Clarke(기타)와 드러머 Phil "Animal" Taylor를 멤버로 받아들인 Motörhead는 호크윈드 시절보다 훨씬 간략해진 곡과 (당시로선) 엄청난 속도감으로 무장한 정규앨범 『Motorhead』(1977)를 발표한다. Motörhead는 1979년 3월과 10월 연거푸 쏟아낸 기념비적인 작품 『Overkill』과 『Bomber』를 통해 Lemmy의 유작이 된 『Bad Magic』(2015)까지 이어지는 독자적 사운드의 얼개를 구축한다. 1984년 가입한 기타리스트 Phil "Wizzö" Campbell는 밴드의 마지막까지 Motörhead로 달려 나갔고, 더 빠르고 정교한 트윈 페달 플레이를 원했던 Lemmy의 요구에 분노하며 밴드를 두 번째로 등진 "Animal" Taylor를 대신하여 1992년 Motörhead 드럼 키트에 앉은 Mikkey Dee 역시 마지막까지 밴드를 지켰다. 생각해보면 장구한 밴드의 역사에서 정식 Motörhead의 멤버는 (훗날 편집음반 『On Parole』(1979)을 통해 공개된 정식 레코딩 데뷔 이전의 초기 라인업 제외) 기타리스트는 4명, 드러머는 단 3명뿐이다. Lemmy는 외모에서 풍기는 바 그대로 의리의 마초였던 것이다.



의리의 세남자


Metallica와 Slayer에 빠져들기 시작하던 시절 Motörhead는 언제나 언급되는 이름이었다. 그러나 인터넷도, 음악 정보도 흔치 않던 그 시절, 전설의 소리와 대면하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필요했다. 개인적으로 처음 만난 Motörhead 음반은 라이브 『Nö Sleep at All』(1988)이었다. 고품질의 녹음 상태는 아니었으나 여기에 담긴 「Overkill」과 「Ace of Spades」, “우리의 빅히트 곡”이라 소개하는 「Killed by Death」 (이 곡은 정규반이 아닌 1984년 발표된 모음집 『No Remorse』에 실려 있다)는 이상하게 귀를 떠나지 않았다. 내가 Motörhead의 마력에 빠져들기 시작한 첫 장면이다. Ozzy Osbourne의 앨범 작업에 참여한 인연으로 Epic과 계약을 맺고 발표한 『1916』(1991)과 『March ör Die』(1992)는 한국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작품이었고, 한참을 나의 워크맨 안에서 반복재생 되었다. 역설적이게도 두 장의 앨범을 발표하던 시절의 Motörhead는 밴드 전체 커리어에서 가장 혼돈스러운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애니멀” 테일러의 탈퇴로 드럼머신 녹음을 감행하기도 했고, Tommy Aldridge가 드럼 세션으로 녹음 부스에 앉아있기도 했다. 그러나 바로 그 때 오지와 Slash 같은 초특급 게스트의 소리를 담을 기회가 만들어졌고, 한국에도 정식 라이선스가 이뤄졌다. 한국의 팬들은 상업적으로 정점에 오른 Motörhead와 만난 것이지만, 밴드 내부적으론 라인업 재구성을 두고 내홍을 겪던 시기를 경험한 것이기도 하다. 묘한 인연이다.



질풍노도의 시기


몇 년간 4인조로 활동하기도 했지만 Motörhead는 극으로 치고 달리던 초반 전성기는 물론 후기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3인조를 유지했다. 이 3인조가 쏟아내는 직선적이고 지글대는 헤비니스 사운드는 (개인적으로 1990년대 초반 푹 빠져있던) Sodom이나 Coroner 같은 후배 3인조 쓰래쉬 밴드들과 질적으로 달랐다. 말 그대로 ‘날 것’의 기운이 가득했다. 그렇다고 Venom처럼 어둡게만 채색된 것도 아니었다. 펑크의 ‘똘끼’와 메탈의 ‘날끼’를 이상적으로 조합한 모습이랄까? 로큰롤의 긍정으로 펑크와 메탈을 우악스럽게 섞어낸 특제 사운드에 반했던 것은 나나 팬들만이 아니었다. 메탈리카, Overkill, Testament, Exodus, Sepultura, 등 헤아리기 힘들 만큼 많은 후배 아티스트들이 한 결 같이 Lemmy를 연호했다. 마침내 2015년 여름, Motörhead의 처음이자 마지막 내한공연에서 가사를 따라 부르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의 짜릿함은 이제 영원히 재현될 수 없을 것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똘끼’와 ‘날끼’의 기운이 단 한 번도 쭈그러들지 않았던 Lemmy의 그 지독한 사운드 탐험에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한다. 우리 시대의 진정한 마초맨,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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