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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율 #2. 『Earwitness』 이야기, 그리고 이후 계획에 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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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정보


"소리로 시작해서 소리로 끝났으면 좋겠어요."
 

: 『Earwitness』 얘기로 넘어가 볼까요? 제목이 일단 호기심을 끌어요.
 

: 처음부터 결정해서 붙인 제목은 아니에요. 음악 작업을 다 해놓은 상태에서 R. Murray Schafer의 책으로 접한 개념이거든요? 우리말로 '귀의 증인' (earwitness)이라고 번역이 돼있는데 그걸 보니 마음에 들고, 괜찮겠다 싶어서 앨범 제목으로 정했어요. 애초에 내가 앨범으로 만들려고 하는 방향에 그 말이 있었던 게 아니라 '귀의 증인' 이라는 말과 내가 만든 음악이 만났을 때 느껴지는 일치하는 이미지에 매력을 느꼈던 것 같아요. 한편으로 그 어감이나 인상이 좀 세서 망설이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제가 받아들이는 사운드를 표현하는 과정과 그걸 표현한 후 청자가 받아들이는 과정에는 당연히 오해와 오류가 생길 수밖에 없잖아요. 증언이라는 건 꼭 내가 본대로 말하지 않을 수 있고, 해석 역시 주관이나 관점이 들어가는 거니까 제가 증언이라고 인식하고 말함으로써 이런 균열을 잘 드러내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괜찮을 거라 생각했어요. 더 나아가서 '사실'이라는 것도 우리가 그것이 진짜라고 확신을 할 수는 없다고 평소 느끼거든요. 소리도 사람마다 다르게 듣고, 받아들이는 방식도 다른 거죠. 그런 자세로 작업했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그 단어를 들었을 때 갖게 되는 자세나, 또 그 자세들을 바라보면서 제가 제시할 수 있는 음악가로서의 혹은 청자로서의 자세라든가. 지금은 이렇게 여러 관점에서 생각하게 되지만, 처음에는 그냥 감각적으로 좋았어요. (웃음)


: 증언이라 함은 결국 그걸 전하기 위해 이미 지니고 있는 기억이나 감각이 존재해야만 하잖아요. 어떤 것을 보셨고, 들으셨고, 그것을 또 음악으로 작업하시는 데 있어서 그걸 어떻게 담아내고자 했는지 궁금해요.


: 작업할 때 저만이 아니라 많은 분이 그렇겠지만 소리에 대해서, 혹은 음악에 대해서 좀 강박적으로 생각하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소리라는 게 소리에서 와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 편이거든요? 작업하는 과정을 생각해보면, 어떤 커다란 콘셉트이나 결과를 미리 상상해서 하기보다 그 소리가 나오는 과정에 좀 더 집중을 해요. 그래서 내가 최초에 어떤 소리를 들었을 때 그 소리로 인해서 상상하는 또 다른 소리가 생기고, 그 소리를 통해 다른 소리가 나오고. 이런 식으로 계속 확장하면서 새로 만나는 소리가 있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처음에는 내가 어떤 결과물을 만들게 될지 짐작을 하기가 어렵고, 오히려 이러한 과정 자체에서 즐거움을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그래서 가사에 관한 질문도 자주 받는데, 제가 음악 작업할 때는 가사와 같은 요소조차 사운드의 소스로 여기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 아무래도 작업 과정을 보면 조율님 음악의 가사라는 게 이미 다른 소리가 있는 상태에서 이후에 얹어지는 것들이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시는 걸까요?


: 그렇죠. 결국 음성도 사운드니까요. 그런데 작업 방식을 말씀하셔서 생각났지만 『보물선』 작업할 때는 또 달랐던 것 같아요. 기본적인 전제, 내가 소리 자체에 집중하는 음악을 만든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당시에는 ‘포크'라는 게 장르적인 문법이 굉장히 확실하니까 그 부분에 전념해보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때는 오히려 제 음악 작업 과정이 더 '일반적인 의미의 창작'이라는 말에 가까웠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 그런데 그때도 가사가 그저 음악의 일부로 보였으면 했어요. 뭔가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느낌보다는요. 음성이든 기타 사운드든 듣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게 내가 짚은 (기타) 코드 자체가 아니라, 그 코드와 통기타의 나무가 만나서 만들게 되는 나만 들을 수 있는 소리에 더 집중하고 있는 순간들이 있었거든요. 또 노래할 때에도 이게 내 입 밖으로 나가서 특정한 선율과 소리로 사람들에게 가서 닿는 과정도 있겠지만, 목소리가 나오기 전 내 머릿속에서 상상할 때, 사람이 실제 말할 때, 그걸 다시 자신이 듣는 소리가 다르니까 이와 같은 과정 자체를 관찰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이 있었어요. 아까 전에 제가 소리를 듣고 상상하는 영역이 있고, 그 영역을 계속 넓혀가는 과정을 밟고 있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소리라는 건 물리적으로 파형이 부딪혀서 만들어지는 것이고, 그 원리엔 내가 일일이 다 알 수 없어도 계산으로 다가설 수 있는 필연적인 뭔가 있는 거잖아요. 상상을 어떻게 증언하느냐에 따라서 한편으로는 새로운 사운드라고도 말할 수 있고요. 지금은 그런 것들을 탐구해가는 과정을 좀 즐기고 있는 것 같아요.

: 말씀하신 작업 과정을 단순화해서 말하면 태초에 외부의 소리가 있고, 그 소리를 조율 님이 감각한 후에 점차 조율 님만의 소리로 확장하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수록곡마다 최초 소리가 차지하는 지분도 각기 다를 테고, 그걸 비교하고 상상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어떤 건 처음부터 여러 개의 어떤 감각이 합쳐져 있는 것도 있을 것이고, 어떤 건 그보다 단순한 감각으로 출발해서 변화한 것도 있을 것 같고요. 한 곡, 한 곡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네요. 「A Stage」의 경우는 어떻게 출발했나요? 일단 물 소리가 들려요.

: 바닷가에 갔다가 거기서 녹음한 소리를 가지고 작업을 시작했어요. 그렇게 노래를 만드는 방식 자체는 어렴풋이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당시 녹음해온 소리가 너무 마음에 든 거예요. 그걸 그냥 에이블톤에 올려놓고 여기에 “뭘 넣지?” 하는 식으로 계속 작업했어요. 예전에 제가 사운드 클라우드에 올렸던 곡 중에 「Horn」이라는 곡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곡의 연장선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 그래서 앰비언트 사운드를 곡의 서사를 이룰 수 있는 요소로 활용했고요. 멀리서 들려오는 화성이 있었으면 해서 신시사이저 사운드를 조금 넣었어요. 사실 만드는 과정에서는 복잡한 생각을 많이 안 하기는 해요. 오히려 만들고 난 뒤 뭔가 말을 덧붙여야 할 것 같을 때 이것저것 생각하는 것 같아요. 만들 때는 그냥 “이거 넣을까?” “저거 넣을까?” 하고요.


: 다른 곡도 그렇지만 소리의 레이어를 무척 섬세하게 쌓은 트랙인 것 같아요. 주의 환기 면에서 시작으로 굉장히 좋은 트랙이었던 것 같아요.


: 그 트랙에 공을 굉장히 많이 들였거든요. 시작 곡으로 하고 싶었어요.


: 처음부터 첫 곡으로 염두에 두셨군요.


: 네. 순서는 나중에 바뀔 수 있는 거지만 일단 첫 곡으로 하면 괜찮겠다 싶었죠.


: 그리고 바로 타이틀 곡 「Marginalia」로 이어져요.
 


: 더 편한 마음으로 작업을 했던 것 같아요. 이전에 만들어 놨던 기타와 보컬 트랙을 가져와서 작업했어요. 가장 처음에는 옛날에 만든 기타 리프에서 출발한 것 같아요. 그 위에 덧댄 보컬과 가사에 있어서는 아직 저 스스로 혼란스러운 면이 있기도 한데, 보컬이라는 게 저에게 무척 중요한 정체성이긴 하지만, 그걸 너무 전면적으로 드러내고 싶지도 않거든요? 그래서 이 곡에서는 보컬에 효과를 많이 입혔어요. 트랙에 등장하는 보컬과 기타, 앰비언트 사운드들이 다 같은 비중과 무게로 들리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작업했어요.


: 보컬 정체성으로서의 욕심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겠어요?


: 아무래도 사람이 연주자로서 누릴 수 있는 기쁨을 포기하기는 힘드니까요. 제가 직접 노래할 때 신체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느낌이 즐겁고, 좋고요. 그걸 내가 할 수 있고, 더 해보고 싶고, 탐구할 게 남았다는 사실을 자꾸 생각하게 돼요. 그런데 제가 '가수'라는 이미지에 관해서도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가수도 좋지만, 가수로 계속 활동하고 싶은 게 아니라 음악적으로 조금 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싶거든요. 궁극적으로는 음악 감독 같은 일을 하고 싶어요. 그런데 '보컬'이라는 게 이미지가 워낙 세다 보니 그걸 덜 드러내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창작자로서 단순한 호기심으로 보컬 사운드로 이렇게 저렇게 비틀어보는 것도 있고요.


: 어쩌면 처음에 얘기했던 씬을 옮겨 오는 과정과도 관련 있는 것 같아요. 포크 뮤지션의 이미지는 아무래도 가수의 정체성이 짙고, 다양한 음악 활동과도 거리가 있으니까요.


: 사실 포크 음악을 하면서 무섭다고 느낀 것도 있어요. 무대에서 달랑 기타와 내 목소리만 있으니까 '아무 것도 숨길 수 없구나'라는 느낌을 굉장히 많이 받았어요. 내가 숨길 수 없다는 게 내가 잘못되고 틀린 점이 드러나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냥 단순히 '있는 그대로 내가 많이 드러나는 장르구나' 생각했죠. 어쨌든 처음 시작했던 것에 비해 좀 더 가고 싶었던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기는 해요. 가수로 시작을 했기 때문에 가수 이미지에서 더 나아가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았거든요. 많이 드러난다는 측면에서 가사 얘기를 더 해보자면, 사전 질문에서 『Earwitness』 수록곡 가사의 공통 키워드가 「몸」이나 「소통」인 것 같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생각해본 적 없는데 그걸 보고나서 생각해보니까 실제로 그런 측면이 있고, 재미도 있더라고요. 소통이나 몸은 '관계'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잖아요. 이것들은 실제로 제가 굉장히 많이 생각하는 소재예요. 평소에 감각적인 부분을 놓치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하는 편인데, 관계를 생각할 때 관계는 눈에 전혀 안 보이는데 존재하고, 그것들을 확인할 수 있는 게 몸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거든요. 몸의 반응은 솔직하니까요. 이미 일어난 일이 아니라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현재 진행형으로 감각한다는 인상에 집중해서 이를 가사로 넣었고, 다만 거기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서 가사의 역할을 조금 제한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가사가 소리나 멜로디와의 만남을 통한 감각적인 기능 이상으로 너무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지 않을까 염려했던 거죠. 가사를 쓸 때 멜로디에 붙여보고, 멜로디에 안 붙으면 다 버리거든요. 물론 다른 분들도 그렇게 작업하겠지만, 그 과정이 저에게는 유독 좀 중요한 부분이에요. 가사가 어떤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스윽 들어오는 소리로 들렸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요.


: 가사 못지않게 수록곡의 제목 역시 사람들이 곡을 받아들일 때 그 의미나 이미지를 상상함에 있어 많은 영향을 미치잖아요. 제목 같은 경우 어떻게 결정하시나요?


: 그것 역시 앨범 제목처럼 단어를 가져와서 붙여보고, 음악과 맞는 느낌인지 판단하는 게 제일 중요했어요. 이렇게 답하면 너무 성의 없어 보일까요? (웃음)


: 아니오. (웃음) 그렇다기보다 궁금했어요. 예를 들어 네 번째 트랙 「Chant」의 경우 초반과 후반부의 왜곡된 신스 사운드가 정말 교회 음악이나 성가에 등장하는 소리 같은 인상을 주거든요. 제목과 음악의 이미지가 맞아 떨어지는 지점을 저도 궁금해했던 것 같아요.


: 네, 맞아요. 제가 곡을 만들면서 마음에 드는 단어나 떠오르는 것들을 가끔 적어 놓는데, 적은 것 중 「Chant」가 있어서 붙여 봤더니 「어 이거 챈트네? 잘됐네.」 이러고 그냥 붙였거든요. 골조가 되는 소리가 반복되는 곡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 실제로 그런 경우 꽤 있나 보더라고요. 습작이나 데모에 감각적으로, 직관적으로 붙여 놓은 제목이 결국 진짜 제목으로 나오거나 하는 경우요.


: 제목을 정하는 게 어렵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 다시 소리 얘기를 하자면 「Mirror Ash」는 강렬한 노이즈가 인상적인 곡이에요.
 


: 드럼 샘플 소리를 뒤틀어보는 과정에서 나온 건데요. 하나의 드럼 샘플을 가지고 피치와 BPM을 조절한 다음 레이어를 굉장히 많이 쌓았거든요. 그렇게 쌓은 소리가 본래 샘플의 소리와 부딪치고 박자가 맞아떨어지는 것을 굉장히 즐겁게 작업한 곡이에요.


: 겹겹이 쌓은 왜곡된 소리가 무척 강렬한 인상을 주다 보니 앨범 중간에서 한창 고조되는 느낌을 주기도 하더라고요.


: 제가 앨범을 내놓기 전에는 라이브 셋 위주로 작업을 계속 했거든요. 그래서 음악만으로도 기승전결 같은 서사를 만들고 싶어하고, 그 구조에 항상 매여 있는 것 같아요. 「Mirror Ash」도 마침 서사의 절정 위치에 있는 거죠.


: 「Mirror Ash」 다음에 이어지는 곡은 이제 8곡 중 여섯 번째 곡이니까 순서상으로도, 절정 다음에 온다는 측면에서도 기승전결의 '전'에 해당하는 곡이잖아요. 제목이 「Audible Distance」이고, 그 의미는 '가청 거리'라는 뜻인데 가사는 반대로 시각 정보를 담고 있어요. 가사 의미의 무용함을 앞에서 한참 이야기해주시긴 했지만, 혹시 일부러 아이러니나 공감각적인 면을 의도하신 건가요?


: 아니오. 지금 처음 생각해봤어요. 그렇네요? (웃음) 그런데 아무래도 말씀하신 기승전결의 '전'이라는 측면에서 절정 뒤에는 사운드적으로 정확히 떨어지지 않는, 조금 혼란스러운 사운드로 채우고 싶다는 의도가 있었어요. 보컬도 정박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다른 사운드로부터 파생하는 다른 리듬을 따라가려고 했고요.


: 그러면 제목에서 의도한 이미지는 이 소리의 소스와 관련 있을까요?


: 네. 이 곡에 라디오 노이즈 소리가 들어가거든요. 그게 제가 워크맨을 사고 AM 주파수를 맞춰봤는데, 주파수에서 다른 주파수로 넘어갈 때 잡음이 생기는 구간이 되게 매력적이라서 그걸 녹음을 한 거예요. 녹음 해놓고 여기저기 막 썼었는데, 저는 그 소리가 「Audible Distance」에서 중요한 사운드를 담당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의외로 선율에 서정적인 느낌도 있고, 한편으로 그것을 일그러뜨려보려는 시도도 있었는데 이 부분을 좀 더 증폭해주는 게 그 AM 사운드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 그리고 거기에 피아노 튜닝하는 소리가 들어있어요. 제가 녹음한 건 아니고 인터넷에서 받았는데 제가 매혹을 느끼는 소리들을 본격적으로 넣어본 게 그 곡인 것 같아요.


: 「Marginalia」의 새 소리도 혹시 직접 채집하신 건 아닌 거죠?


: 네, 그 소리도 인터넷에서 받았어요. 채집하는 과정을 처음에는 많이 생각했었데요. 이걸 내가 녹음기를 들고 나가서 이렇게 해야 내가 뮤지션으로서 진정성을 좀 내보일 수 있는건가? (웃음) 이런 생각도 했는데 각자 집중할 수 있는 영역이 다른 것 같아요. 「필드 레코딩」이라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고 싶은 사람들의 태도도 있는 거고, 저는 그걸로 만든 음악적인 결과물에 좀 더 집중을 하는 사람이라 생각하는 이미지에 맞는 로열티 프리의 사운드들을 인터넷에서 많이 찾으려고 노력했어요. 물론 직접 녹음한 것들이 들어 있기도 하지만 소리들 사이에 위계를 두지는 않으려고 해요.


: 그러고보니 곡이 만들어진 시기는 다 비슷한가요?


: 대부분 올해 작업했는데요. 마지막 두 곡이 조금 오래됐어요. 「Prayer's Stone」은 2019년, 「Backstroke」는 지난해 초에 만들었습니다.


: 안 그래도 마지막 두 곡의 분위기가 이전 트랙과 조금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만든 시기와 관련이 있을까요?


: 「Backstroke」는 사실 처음부터 앨범에 넣으려고 했기보다 당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뭐라도 할까?'라는 기분으로 기타를 잡고 만들어본 곡이에요. 원래 「Prayer's Stone」을 가장 마지막에 넣고 싶었거든요? 평소 공연에서 그 곡을 늘 마지막에 하기도 하고, 제가 약간 한국 사람 같은 서사에 집착하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웃음) 「Prayer's Stone」처럼 선율이 확실한 곡이 마지막에 정리해주는 느낌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그 노래에서 뭔가 새로운 요소라고 말할 만한 건 별로 없잖아요. 정직하게 멜로디와 화성으로 승부를 한 노래, 사람들이 가장 익숙하게 들을 수 있는 형태의 노래. 그런 노래가 마지막에 있을 때 생기는 효과를 밀어붙여보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이제 마지막에 「Prayer's Stone」 이 아니라 「Backstroke」를 넣을까 말까 하는 시점에 한 번 넣어 보니까 좋더라고요. 오히려 서사가 끝난 후에 에필로그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 그러고 보니 저도 딱 그렇게 느낀 것 같네요. 에필로그요. (웃음)


: 아 다행이네요. (웃음) 앞에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산만하게 해봤다가 마지막에 기타랑 보컬로 심플하게 정리하는 느낌이 마음에 들기도 했고, 또 뭔가 결말이 열리는 느낌이 들기도 했어요. 제가 앞에서 음악 감독이나 프로듀서가 싶고 하는 욕심을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싱어송라이터'라는 것도 제게 중요한 정체성이니까, 그걸 뒤에서 한 번 이렇게 약간 배신하는 듯 넣는 느낌을 재밌는 구성이라 생각한 것 같아요.


: 이 트랙 「Prayer's Stone」과 「Marginalia」이 더블 타이틀인 거죠? 「Prayer's Stone」이 함께 더블 타이틀이 된 건 그런 의도에서였을까요?



: 네. 「Prayer's Stone」은 사람들이 잘 들을 수 있는 곡이라서, 두 곡이 함께 있을 때 제가 가진 두 가지 자세를 동시에 대표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Marginalia」는 보컬 자체보다 가공한 소리로 출발한 『Earwitness』의 색을 잘 보여줄 수 있는 타이틀 역할인 거고요.


: 앨범 발매 이후 활동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으신가요? 『보물선』의 경우 활동하면서도 이후 작업을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해봤다고 하셨잖아요. 지금도 다음을 위한 새로운 곡이나 음악작업도 계속 병행하고 계신 걸까요?


: 올해는 거의 이번 앨범 작업과 관련 업무에 몰두했고, 그 후에는 외주 작업을 조금 했어요. VR 게임에 들어가는 배경음악 사운드 작업을 했고요. 다음 앨범 작업을 빨리 시작하고 싶기는 해요. 이후에 LP가 나올 예정인데요. LP 발매까지 일단락이 되어야 시작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크고 작게 기획하고 있는 것들은 있거든요.


: 지금까지의 작업이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고 하셨잖아요. 바로 다음 작업을 상상했을 때 이번 작업의 연장선에 있을 것으로 추측하시나요? 아니면 뭔가 또 다른 작업이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 저는 다른 작업이 나오면 좋겠어요. 다른 게 나오면 좋겠는데 내가 그동안 쌓아온 사운드를 다루는 스킬이나 방법론이 전혀 배제되지는 않겠죠. 그런 것들을 가지고 또 뭔가 새로운 것을 계속 해보려고 하긴 할 것 같아요.


: 은연 중에 말씀을 해주셨는데 음악을 계속 해가는 데에 있어 신념처럼 지키고 싶은 방향성이나 콘셉트가 있을까요?


: 소리에서 시작해서 소리로 끝났으면 좋겠어요.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저한테 그게 가장 잘 맞는 방식으로 여겨져요. 그게 제가 잘 할 수 있는 것 같고요. 사람은 계속 변하는 거니까 알 수는 없지만. 지금 제가 음악을 대하는 방식은 일단 그런 것 같아요. 아직은 그 큰 전제 안에서 『보물선』이든 『Earwitness』든 하고 있다고 생각 들고요.


: 마지막으로 『Earwitness』를 듣는 청자가 이런 걸 느꼈으면 좋겠다. 혹은 이렇게 앨범을 들어줬으면 좋겠다. 하는 점이 있다면요?


: 누군가 이걸 들었을 때 압도돼서 아무것도 못하고 이것만 들었으면 좋겠어요. (웃음)


: 그냥 배경음악이 되는 게 아니라?


: 아, 배경음악이 되어도 좋아요. 그저 거기에 압도되는 느낌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그랬으면 좋겠다는 거지 절대적인 바람은 아니에요. 사실 사람들이 이걸 듣고 어떻게 말을 할 지가 제일 궁금하기도 해요. 이번 앨범이 기획성 결과물이 아니라 곡들을 하나로 모아봤을 때 어떤 그림이 되는지 저도 계속 관찰을 하면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들릴지 궁금해요. 병욱님이 말씀해주신 것처럼 사람들이 가사의 키워드를 찾거나 사운드와 음악의 레퍼런스에서 다른 걸 느끼거나 이런 반응이 저는 무척 재밌거든요. 그리고 어찌 됐건 그리고 어쨌든 그런 피드백이 나오기 위해서는 음악을 집중해서 들어야 되니까요. 양가적인 감정이 들기도 해요. 얘기 나온 것처럼 그냥 배경음악으로 아무 때나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이 됐으면 하기도 해요. 전에 라이브 셋을 작업할 때는 확실히 사람이 공연장에 가서 음악을 들으려고 앉아 있으면 그 음악을 집중해서 들을 수 있으니까, 그게 전제된 관객들이 온다는 확신이 있어서 그런지, 저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을 할 거니까 나는 「한 번 들어봐라.」라는 마음으로 조금 더 제 멋대로 작업을 했던 것 같거든요. 어쨌든 저 사람이 지금 30분 동안 저기 앉아서 들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런데 앨범으로 만들 때는 조금 더 청자 친화적이라고 해야 하나? (웃음) 조금 더 편하게 들었으면 했어요. 진짜 그냥 아무 때나 틀어도 들을 수 있게.


: 말씀하신 측면에서 이 앨범의 수록곡이 공연에서 라이브셋으로 연주될 때 좀 더 다르게 변주될 포인트가 있을까요?


: 평소 라이브 연주는 조금 더 마음대로 하거든요. 관객이 어떻게 들을 지 모르겠지만 템포도 약간 더 제 마음대로고요. 그런데 이 앨범은 총 길이가 33분으로 그리 길지 않거든요. 전체 러닝타임이 너무 길지 않았으면 했어요. 곡 단위로 뭔가 보여주고 싶었고, 주의를 잃지 않게 하고 싶었어요. 라이브 셋에서 가능하면 새로운 걸 해보고 싶어 하지만, 이 앨범의 공연은 원래 버전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애초에 트랙 순서도 라이브셋을 염두에 두기도 했고요. 물론 순서를 조금 바꿔 보거나 효과를 다르게 넣는다는 식의 변주는 하지 않을까 싶어요.
 


Photo by James Gui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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