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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율 #1. 정규앨범 발매 전 이야기와 음악을 시작한 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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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정보



때때로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궁금한 음악들이 있다. 지난해를 돌아보면 앞서 비록 추상적이고 상징적이지만 비교적 명료한 단어들로 포크 데뷔작를 선보였던 뮤지션 조율이 별안간 서늘하고 불명료한 앰비언트 음악으로 정규앨범을 발표했을 때 특히 그랬다. 그렇게 물음을 던지러 간 자리에서 소리와 음악을 대하는 조율의 분명한 주관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활동명이 ‘조율’임을, 음악이 결국 ‘소리의 예술’임을 모처럼 다시 되새겼다. 


○ 인터뷰이 : 조율
○ 인터뷰어 : 정병욱 (음악취향Y)
○ 일시/장소 : 2021년 11월 21일 18:00~20:00, 연희동 모처
○ 사진 : 조율
○ 녹취 : 정병욱 (음악취향Y)
(편집자 註. 본 인터뷰의 일부 내용은 웹진 《Indie Post》에도 게재되었습니다. [클릭])


 

“이제 겨우 시작점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병욱 (이하 '정') : 첫 EP 『보물선』(2019) 과 이번 『Earwitness』(2021) 사이의 간극이 상당히 커요. 『보물선』은 포크인데 『Earwitness』는 앰비언트잖아요.
 

조율 (이하 '조') : 특정한 장르에 매혹돼서 음악을 시작한 건 아니었거든요. 일단 활동을 시작할 수 있는 수단으로 포크(『보물선』)를 생각했던 것 같아요. 간단히 기타 한 대만으로 노래를 할 수 있었고, 제가 정식으로 음악 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서 음악가로서 기초 작업을 해본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당시 EP에 대해 반응이 많이 있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엄청 열심히 작업했어요.
 


 

: 그 과정에 관해 더 들어볼 수 있을까요?
 

: 네. 공연을 2015년에 시작했고, 이후에 시간이 좀 걸려서 3년 후에 EP가 나왔어요. 그동안 가끔 공연을 하는 정도였는데, 공연할 때마다 굉장히 치열한 기분으로 했던 것 같아요. 관객이 없더라도. 창작을 위한 기본기를 다지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말하자면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의 큰 그림을 그리는 시작점이었어요. 그렇게 발매를 하고 난 다음 해부터 일렉트로닉 씬에서 활동했죠. 다음 과정으로 가는 흐름이었던 것 같아요.
 

: 자연스럽게 씬을 옮겨 간 거군요.
 

: 네. 엄밀히 말해 ‘나 포크 뮤지션으로 계속해서 잘 될 거야.’로 시작한 게 아니라 그냥 내가 하고 싶었던 음악 중에 포크가 있었고, 이제는 다른 걸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거죠. 그동안 조금씩 공부했던 DAW (편집자註. Digital Audio Workstation, 고성능 사운드 카드 등을 활용하여 디지털 음성 편집·처리·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전문가용 컴퓨터)를 그때쯤 이제 써볼 수 있겠다고 생각할 만큼 뭔가 생기기도 했고요. 그런데 아무래도 시장에서는 씬이라는 걸 구분하니까, 저 자신에게는 그게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씬을 옮기게 된 거죠.
 

: EP와 정규앨범 사이에 있었던 시간이 말하자면 일종의 다음 작업을 이것저것 시도해보는 시간이었을까요?
 

: 본격적인 시도까지는 아니어도 준비 정도는 되었던 것 같아요. 각종 툴을 좀 더 많이 다룰 수 있게 준비하는 등의 과정이었어요. 그런데 포크로 음악을 시작하기 이전에도 앞으로 내가 만들 음악에 관해 계속 생각했던 시간이 있었어요. 상상한 것을 앨범으로 내놓는다고 했을 때 처음에는 그게 『보물선』이었고, 그 다음이 『Earwitness』였던 거죠.
 

: 『보물선』 냈을 때와 『Earwitness』 냈을 때의 발매 후 심정이 아무래도 각기 다르겠죠?
 

: 네, 느낌이 다르죠. 일단 『보물선』 때는 모든 걸 혼자서 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사람들이 대개 마감이 있어야 좀 움직이잖아요. (웃음) 당시 《제8회 서울레코드페어》에 최초 공개반으로 내놓고 싶어서 지원했는데, 정말 그렇게 하기로 결정되어서 나오게 된 작업이거든요. 그야말로 음반을 내기로 한 거라서 녹음이랑 작업을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비록 생각보다 오래 걸렸지만 『보물선』을 통해 그동안 작업한 것들을 한 번 갈무리하자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진행할 수 있었어요. 반대로 이번 앨범은 준비 기간이 조금 더 많이 길어요. 아무래도 헬리콥터 레코즈와 같이 앨범을 내면서 판이 조금 더 커졌기 때문인 것 같아요. EP 발매 당시에는 제가 프로모션이나 발매 과정 전반에 관해 능숙하지 못했고 조금 어수선했는데, 이번에는 확실히 그런 부분에서도 조금 더 능숙하고 본격적으로 하고 있고, 도움도 많이 받고 있어요.
 

: 이번 앨범 발매 후의 구체적인 심정이 어때요?
 

: 시작, 이제 겨우 시작점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들어요.
 

: 데뷔 EP 때보다는 지금이 더 시작 같다는 말씀이시죠?
 

: 네. EP라는 건 어쨌든 뮤지션에게 있어 중간 과정이라는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번 작업은 저 자신도 ‘정규’ ‘앨범’이라는 이름을 붙였으니까 마음가짐이 확연하게 달라요. 비장함이나 결연함 같은 게 있어요. (웃음) 그래서 그런지 발매 후에 사람들의 반응을 더 유심히 관찰하게 되더라고요.
 

: 반응이 어떤가요?
 

: 반응을 잘은 모르겠지만, “좋다.”라고 해주시는 분들이 좀 있어요. (웃음)
 

: 발매와 제작 과정에 있어 스스로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요?
 

: 아직은 아쉬운 면을 얘기하긴 좀 이른 것 같아요. 반응을 더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만 최종적으로 완성이 되어 음원이 나온 건 2021년 초였는데, 발매(10월 29일)까지 시간이 좀 걸렸잖아요. 주변을 보면 대부분 그렇긴 한데, 저는 아직 처음이나 다름없다 보니까 발매가 늦어지면서 발매 전에는 ‘이게 제대로 되는 게 맞나?’ 하는 불안이 좀 있었어요. 그런데 막상 발매된 후에 보니 다 필요한 과정들이었던 것 같아요. 어쩔 수 없다고 느끼는 부분도 있고요. 판도 커지고, 함께한 사람들도 많이 있으니까요.
 

: 사실 『보물선』 이후에 『Earwitness』가 갑자기 나온 건 아니에요. 그 사이에 『Intimate Ghosting』(2020) 컴필레이션에 참여했어요.

: 레이블 ‘Psychic Liberation’을 운영하는 Nick Klein이라는 친구가 먼저 제안을 했고, 소설도 쓰고, 음악도 하는 위지영씨가 앨범 큐레이션을 맡아 함께하게 됐어요. 신을 옮겨가는 도중에 변화하는 제 음악 스타일을 보여줄 기회였던 것 같아요. 당시에도 공연으로는 제 현재진행형의 작업을 계속 풀어내고 있었지만 공연을 오시는 분들만 확인할 수 있는 거고, 그렇다고 이걸 포트폴리오로 보여주기에도 한계가 있잖아요. 그런 면에서 마침 에 참여한 게 좋았던 것 같아요.
 

: 당시 컴필레이션에 「5 Summerhouse Lane」라는 곡으로 참여하셨어요. 무척 인상이 강렬하더라고요.
 


 

: 그때 Pittsburgh사의 Lifeforms SV-1 이라는 세미 모듈러를 하나 샀는데 그 소리에 굉장히 심취해 있었어요. 그래서 그걸 적극적으로 많이 활용한 곡이죠. 자연스레 곡에서 주가 된 사운드는 보컬과 SV1이었어요. 최대한 이 두 가지 소리만으로 가보자는 생각이었고, 나중에 부가적인 사운드가 더 들어가기는 했지만 원칙은 지키려 했어요. 지금 당장 시도해보고 싶은 것을 했던 곡이에요. SV-1을 플레이하여 녹음한 사운드를 여러 개 쌓고, 뜻이 없는 단어를 반복하여 부르는 보컬을 드라이한 톤으로 올리고, ‘스포큰 워드’(Spoken word)는 그 뜻이 잘 들리지 않도록 작업했어요. SV-1으로 곡의 서사를 만들고, 입을 통해 나오는 선율이나 스포큰 워드는 모듈러의 사운드에 동반되는 느낌으로 만든 거죠. 특정 단어를 발음할 때만 들리는 숨소리나 쉿소리 등을 살리기 위해서 톤을 드라이하게 잡았고요. 당시 제가 집중하고 있던 사운드를 곡으로 구현한 작업입니다.


Pittsburgh Lifeforms SV-1
 

: 이야기를 듣다 보니 처음에 어떻게 음악을 시작하게 됐는지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면 좋을 것 같아요.
 

: 처음 음악을 시작한 건 학생 때 스쿨 밴드에 들어갔을 때예요. 당시 밴드에서 이것저것 습득하고 경험했죠. 그 이후에는 먹고 살기 시작하면서 따로 음악 활동을 하지는 않다가, 2015년부터 활동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본격적인 활동 시작 전에도 언젠가는 음악 활동을 할 거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이를 위한 아이디어나 구상을 노트에 정리하거나 꾸준히 쌓아 뒀거든요. 다만 일하면서는 다른 활동에 집중하기 어려우니 언젠가 할 거라고 생각만 하면서 미루고 있었죠. 그러다 어느 순간 ‘이제 좀 해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활동을 시작한 게 그때예요.
 

: 아닌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스쿨 밴드 활동은 대체로 커버 곡 위주로 소화하는 등 실제 뮤지션으로서 활동의 토대를 쌓기에는 한계가 많잖아요.
 

: 네. 당시 저는 보컬이었고 곡은 전혀 안 썼어요. 개인 활동을 시작하면서 처음 작곡을 시작했고, 제가 곡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그때 깨달았죠. 써보니까 계속 쓸 수 있을 것 같고, 써도 괜찮겠더라고요. 곡을 써본 이후 활동에 확신을 가진 것 같아요.
 

: 이번 앨범 같은 사운드에 관심이나 확신을 가진 때는 언제인가요?
 

: 제가 음악을 인식하는 방식을 생각해 봤을 때,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전 특정한 장르에 매혹돼서 시작한 건 아니에요. ‘귀에 들리는 모든 소리를 잡아서 곡으로 만든다.’라는 기본 자세가 있었어요. 악기나 보컬 같은 경우에는 평소에도 악기를 몸의 일부라고 생각해서 이런 소리들이 나온 것 같아요. 그저 상상만 했을 때 예측할 수 없는 소리를 이렇게 저렇게 다루고 가공하는 데서 재미를 느끼다 보니 만난 장르가 앰비언트였던 것 같아요.
 

: 음악을 시작한 계기의 경우 단순한 스쿨 밴드 경력 외에 기억나는 좀 더 개인적인 차원도 있을까요?
 

: 언제부터인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항상 음악이 가까이 있기는 했어요. 학창 시절에는 그냥 남들 듣는 것처럼 가요 많이 듣고, 가요 많이 듣다 보니 해외 음악들도 듣게 되고 다들 그렇잖아요. 그냥 그런 과정이 있었고, 저희 어렸을 때는 피아노 몇 년씩 배우니까 그런 정도였거든요. 조금 이상한 기억이다 싶은 건 초등학생 때 당시 EBS 라디오에서 나오던 동요들과 집에 있던 클래식 기타 모음곡 테이프를 많이 들었고, 용돈을 조금씩 받을 때마다 동네 레코드점에 가서 서양 전통음악 테이프를 하나씩 샀어요. 뭔지 잘 알지는 못하는데 그냥 음악이 좋고 앨범 자켓 디자인이 예뻐서... (웃음) 만화 잡지를 매달 사는 기분으로 사 모았던 기억이 나네요. 그러다가 슬슬 서태지의 노래로 넘어갔던 것 같아요. 또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당연하게 ‘나는 아마 음악을 할 거야.’라는 생각을 계속했던 것 같고요. 뭔가 특별한 계기가 있지는 않고, 노래를 시작한 것도 친구들이랑 노래방에 가고 싶어서 했던 것 같아요. (웃음) 제가 음악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고 말하는 건 조금 오글거리고요. (웃음)
 

: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면 막상 ‘나는 정말 음악을 위해서 태어났어.’ 수준은 아니라도 그냥 막연하게 ‘이렇게 내가 음악 좋아하고, 하다 보면 음악을 하고 있지 않을까?’ 정도의 생각을 했던 뮤지션은 많은 것 같아요.
 

: 사람이 살면서 여러 길을 택하고 다양한 직업을 가질 수 있잖아요. 다행히 저는 그냥 제가 잘 할 수 있는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아요.
 

: 반대로 도중에 생업을 위해 음악을 놓으셨을 때는 기분은 구체적으로 어떠셨나요?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나요?
 

: 그렇죠. 아무래도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닌 다른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만 제 욕망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된 건 최근인 것 같아요. 계속해서 뭔가 욕구불만의 상태가 이어져 왔거든요. 그런 시기를 경험해보니까 준비를 정말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요. 너무 힘들었는데, 한편으로는 이렇게 하니까 내가 제대로 ‘음악인’이라는 직업인으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내가 이것에서 가장 기쁨을 많이 얻고, 만족감이나 성취감도 여기에서만 얻을 수 있는 걸 깨달았어요. 달리 돈을 벌기 위한 일들도 열심히 했지만, 만족감의 정도가 다른 것 같아요.
 

: 만족감 역시 이번 앨범에서 더 특별했다는 말씀이시죠?
 

: 네. 이전에는 아무래도 좀 현실적 조건에 맞춰서 적당히 할 수밖에 없는 부분들이 있었는데, '가능하면 끝까지 밀어붙여서 해보자'라는 결과물들이 모인 게 지금 이 앨범이 된 것 같거든요. ‘어떤 결과가 되든 아쉬우면 안 된다. 아쉬우면 계속해서 미련이 남으니까.’ 이런 마음을 많이 가졌기 때문인 것 같아요.
 

: 그래서 아까 『Earwitness』에 대한 아쉬움에도 조심스러운 반응이셨군요.
 

: 맞아요. 반대로 『보물선』이 여러 가지로 정말 아쉬운 게 많아요. 녹음도 집에서 급하게 했고, 후반 작업 역시 만족스럽게 하지 못한 부분이 있어요. 음악가가 음악만 잘해서는 음악 활동을 이어갈 수 없는 게 사실인데, 그런 부족한 부분들을 많이 보충하지 못했거든요. 앨범을 내고나서 활동을 계속 이어가지 않기도 했지만, 이어가지 않은 게 아니라 그러지 못했다고 생각한 부분도 있고요. 여러모로 많은 게 아쉬웠는데, 어쨌든 지금은 그런 외적인 부분도 확실하게 노력하고 있어서 그런지 아쉬움은 없는 것 같아요.

 





(... 다음 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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