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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아 #2. 『청파 소나타』의 수록곡과 가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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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정보

“어느 한편에 절망이 있더라도
다른 편에 분명히 희망 비슷한 게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조금 알잖아요.”

 


: 「환란일기」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질 것 같아요.


: 「환란일기」는 코로나19 상황을 그린 노래죠?


: 네.


: 사실 코로나19는 2020년의 전부나 다름없는 이슈인데, 현재의 대중문화, 대중예술 콘텐츠 중에 코로나19에 대한 이야기를 제대로 다루는 경우가 거의 없더라고요. 음악이든 영화든.


: 이적씨 노래 같은 것 있지 않나요?


: 예를 들어 이적씨의 「당연한 것들」(2020) 같은 노래는 사실 코로나19가 초래한 상황을 노래했다기보다 감정적인 위로나 응원의 메시지를 담은 노래잖아요. 그런 노래는 분명 적지 않았는데 막상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거나 묘사한 노래는 거의 없었다는 게 용민씨 생각인 것 같아요. 저도 그렇다고 느끼고요.


: 음악 말고 영화나 드라마 같은 매체에 그런 게 나오려면 시간이 좀 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작업 기간이나 작업량이 방대하니까요. 사실 이만큼 환란이 있되, 제가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사건이었다면 「환란일기」가 안 나왔을 수도 있는데요. 좀 기운 빠지는 대답일 수 있지만, 제가 이 곡처럼 무언가를 면밀히 살펴볼 수 있었던 배경은 밖에 다니지 못해서인 것 같아요. 관찰밖에 할 게 없는 상황. 제가 그 상황에 처한 사람인 동시에 관찰하는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거죠. SNS도 그 어떤 시기보다 자세히 봤고, 동네도 그 어떤 시기보다 많이 걸었어요. 그래서 「환란일기」가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코로나19 사태를 지켜보고, 이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경우는 봤지만, 「환란일기」는 일반적인 관찰자 시점보다 한층 깊고, 직접적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런 노래를 듣는 경험이 처음이라서 생경하기도 했고요.


: 『청파소나타』 CD 패키지 속을 보면, 「환란일기」 페이지 옆에 넣은 그림이 있어요. 오래전부터 매일 조금씩 계속하고 있는 작업인데요. 이 그림의 작업 형태와 제 태도가 약간 이어지는 것 같아요. 이게 작게 실렸지만 되게 큰 그림이거든요. 100호짜리에요.(162.2×130.3㎝) 이렇게 낱낱이, 하나하나, 꼬박꼬박 무언가를 기록하는 행위를 한 거고, 무슨 일이 있었고, 이런 것 같고, 여기에서 일이 터지면 저기에서 저런 반응이 있고, 또 그래서 어떤 반응이 나오고. 이렇게 살펴보는 일을 예전부터 좀 많이 해왔어요. 「환란일기」는 어떤 시기의 상황이나 풍경을 나열한 노래잖아요. 제가 했던 작업 방식과 연결되어 있어요.


: 기록 행위의 연장선인 거군요.


: 네. 그냥 덧붙이자면, 제가 비공개로 쓰는 블로그가 있거든요. 거기도 그런 식으로 나열해서 기록해요.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돼 가는지 저도 좀 알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매일 계속 뭔가를 기록한 행위에서 나온 곡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말씀하신 것처럼 관찰을 굉장히 많이 하시고, 본 걸 일일이 기록하시고. 이 과정을 통해 나온 앨범인데요. 문득 생각이 든 게, 『청파소나타』 재킷을 보면 밀아씨 시선이 어딘가를 뚫어지게 향해 있잖아요. 관찰과 기록이라는 과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 네, 사진에 멀리 보는 시선을 담고 싶었던 건 확실하고요. 거기가 또 공교롭게도 서울역 방향이에요. 그 너머에 있는 빌딩들이랑 저 너머의 인왕산까지 바라보는 시각인데요. 내가 매일 보고, 내가 매일 살고, 소리를 듣고, 매일 지나다니는 그곳을 좀 응시하고 싶었어요. 2집 『은하수』 앨범 재킷은 바로 앞 정면을 보고 있잖아요. 그것보다 더 확장된 시각 같은 걸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이 동네에 와서 ‘어, 이 동네 청파로. 청파동에 관해 이런저런 것들을 이야기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할 때부터 앨범 재킷에 대한 이미지가 있었어요.


: 저는 이 질문을 드리고 싶었어요. 사실 청파동을 예술의 소재로 삼는 게 흔한 일은 아니잖아요. 예를 들어 홍대를 둘러싼 마포처럼 인디 음악가들에게 익숙하거나 젠트리피케이션 같은 이슈가 집중되는 곳도 아니고, 광화문 같은 사회적, 정치적 격동의 장소도 아니잖아요. ‘공업 도시 안산’처럼 특별한 이미지나 스토리가 있는 곳도 아니고요. 『청파소나타』를 듣기 전까지는 어떻게 보면 청파동이 작품 소재로 삼기에 특징이 확 띄지 않는 동네라고 생각했거든요. 어떤 계기로 이 동네를 하나의 앨범으로 풀어도 괜찮다고 여기게 되었을까요?


: 제가 예전에 여기 바로 옆 동네 살면서도 여기가 어떤 곳인지 몰랐어요. 출퇴근할 때 매일 이 앞을 지나다니고 했는데도, 이 골목에 뭐가 있는지 잘 몰랐어요. 예를 들어 그 당시 이 블록에만 아파트가 없다던지 하는 특징 같은 거. 그리고 이곳이 예전에는 재개발 지역이었거든요. 밤에 동네를 지나다닐 때 좀 무섭고 그랬는데, 도시재생구역이 되면서 뒤에 있던 봉제공장이나 적산가옥 등 여기만의 독특한 풍경 같은 게 주목을 받더라고요. 그런 세세한 사실을 여기 이사 와서야 알았어요. 산책 다닐 때도 많은 걸 봤어요. 완전히 서울 한가운데 위치했고, 서울역 근처고. 따지고 보면 그 어떤 지역보다 유동인구가 많은데 여기만 안 건드린 느낌이었죠. 마구 휘젓다가 어떻게 여기만 유일하게 쏙 비껴나간. 그래서 오히려 지켜진듯한. 그런 인상이 흥미로웠고요. 실제로 살펴보면 정말 이상한 형태의 골목이랑 계단도 있고, 다른 곳들과 비교해서 구조 자체가 특이해요. 물론 언덕만 넘어가면 바로 빌라 단지라서 그쪽은 많이 정비가 되어있지만, 아주 오래전에 그냥 어쩌다가 집이 지어지고, 그 위 빈터에 또 지어지고 그래서 집들이 층층이 언덕까지 이어진 그런 구조가 그대로 남아 있거든요. 그런게 신기해서 ‘기왕에 여기 살 거, 이곳을 한번 파보자.’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 당시에 별로 하는 일도 없었으니까요. (웃음) 처음엔 몰랐다가 그렇게 부대끼며 살아보니 보이는 부분이 많았어요.
 


정밀아의 시선 


: 관찰과 기록을 많이 하시는데, 이를 바탕으로 가사도 워낙 많이 쓰시잖아요. 그러다보니 유독 가사 텍스트 속 어휘 사용으로부터 밀아씨의 관심사나 생각들을 잘 가늠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일일이 세봤는데, 실제로 앨범마다 주로 쓰인 단어들이 달라요. 이번 『청파소나타』의 경우 ‘살다’, ‘집’, ‘시간’, ‘기차’, ‘밝다’ 이런 단어가 많이 쓰였어요.(‘노래’, ‘길’, ‘겨울’, ‘이별’(1집), ‘꽃’, ‘바라보다’, ‘저녁’, ‘말’(2집)) 반대로 매 앨범마다 항상 똑같이 잘 쓰인 단어들은 ‘사랑’, ‘마을’, ‘오늘’, ‘바다’ 같은 것들이고요. 실제로 느끼신 것과 비교해서 공감이 되시나요?


: 아무래도 그렇죠. 누구나 환경의 영향을 받고, 생각하는 바가 그대로 나타나기도 하는 거니까. 먼저 보내주신 질문지의 단어들을 보다가 ‘아, 내가 이런 걸 썼구나’ 싶었어요. 사실 제 머릿속에는 1집은 ‘그리움’, 2집은 ‘무언가를 바라봄’, 3집은 ‘오늘’. 이런 단어로 딱 요약되거든요. 당시의 저는 그 세 가지 말들을 가장 강하게 생각했던 것 같은데, 조금 다르다는 사실이 일단 흥미로웠고, 그렇다고 영 다르지는 않아서 그랬을 법하다는 느낌도 듭니다.


: 언급된 단어들 중에서 밀아씨가 생각했을 때 가장 이상향에 가까운 단어, 그러니까 가장 지향점에 가까운 단어는 무엇일까요?


: 음…. 현재 시점으로 얘기하면, 「서시」에 나왔던 단어인데요. ‘오늘’, ‘여기’, ‘지금’, ‘이곳’ 이런 정도일 것 같아요.


: 함의하는 게 많은 단어들이네요.


: 네, 지금 오늘 기점으로 ‘사랑’이나 이런 건 아닌 것 같고요.


: 그러면 이전 시점에는 사랑이 들어갈 수 있겠군요.


: 사랑 얘기하면 또 말이 길어지는데. (웃음) 전에는 ‘사랑’, ‘이별’ 이런 걸 꼭 얘기했는데요. 아시다시피 이번 앨범에는 그런 곡이 없어요. 곡을 써둔 건 있어요. 로맨스에 관한 노래도 있고요. 그런데 다른 곡들과 밸런스도 안 맞았거니와 이번 앨범에는 그게 아니라도 써야 할 얘기가 충분히 많아서 빠진 거거든요. 사실 사랑의 의미 같은 것도 예전에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라진 것 같고 해서 이건 다른 한 꼭지로 빼서 얘기를 해도 될 것 같더라고요.


: 이번 앨범에서 빠졌다고 해서 여전히 관심사가 아니라는 말은 아니신 거죠.


: 네, 그런데 그 의미는 예전과 조금 다를 것 같아요.


: 안 그래도 『청파소나타』에 일반적인 사랑 얘기가 하나도 없다는 얘기를 저희끼리도 했었거든요. (웃음)


: 앨범 내면서 반응이 어떨지, 매체나 평론가들이 어떻게 들을지에 대한 짐작이나 기대는 전혀 없었어요. 너무 바빠서 그런 것까지 할 정신이 없었거든요. 다만 한 가지는 로맨스를 다룬 달달한 노래가 없고, 굉장히 신나는 「내 방은 궁전」(2014, 1집 수록곡) 같은 노래도 없고 해서. 2집에도 이별 얘기 있고, 막 「달 가는 밤」(“...너를 바라본다. 다른 마음이다. 그래도 사랑이다. 괜한 미움이다. 우리 사랑이란 길을 잃은 눈동자...”), 「애심」(...“어쩌면 이리 어여쁜 걸까. 예쁘다 했어. 그 말도 모자라 더 고운 말을 생각하다가 그냥 한참을 바라보았네”...)처럼 엄청 달달한 노래 있잖아요? 그래서 듣는 분들이 혹시 그런 거 기대하셨을까봐. (웃음) 그런데 작업 당시에는 그런 노래 전혀 넣고 싶은 마음은 없었거든요. ‘약간 실망하시려나? 그래도 에라, 모르겠다.’하고 그냥 했어요.


: 그래서 『청파소나타』가 콘셉트와 메시지에 충실하게 잘 나온 것 같아요.


: 맞습니다.


: 가사 관련해서 한 가지 더 여쭈면, 때때로 분명 어두운 현실이나 힘든 상황을 다루면서도 그것을 굳이 어휘 사용이나 메시지에까지 부정적으로 녹이는 걸 본 적이 없어요.


: 이건 개인의 마음 상태 같은 걸 말씀드려야 해요. 제가 부정적인 걸 굉장히 잘 느끼고, 깊이 느끼고, 한 번 느끼면 세게 맞는 타입이기는 하거든요. 나이 들었다고 더는 안 느끼는 것도 전혀 아니거든요. 여전히 예민한 구석도 있고요. 그런데 그걸 그대로 입 밖으로 꺼내는 것에 대해 작업을 떠나 평소에도 좀 지쳤어요. 지루하고, 지겹고요. 그런 감정이 귀찮기도 하고… 질문하셨듯이 굳이 말로 하지는 말자는 게 요즘 상태입니다. 그런 의지 같은 게 가사에도 묻어 나오는 것 같아요.


: 말씀하신 면이 과거의 밀아씨와는 많이 다른 태도인가요?


: 뭐, 좀 그렇죠. 사람이 미세하게나마 변하고 그러잖아요. 어릴 때야 제가 외롭고, 아프고, 슬픈 것을 최대한 표현할 수 있는 만큼 표현을 해야 조금이라도 뭔가 치유되고 나아지는 게 있었는데. 요즘은 그 감정까지 안 가도록 중간에서 잘라내는 태도도 좀 생긴 것 같고, 그렇습니다.


: 말씀하신 내용이 「어른」이라는 곡에 묻어나는 것 같아요. 저는 이 노래 들으면서 느낀 게 단어 하나로 딱 요약되었거든요. ‘체념’. 그런 감정이 물씬 풍기면서도 가사 중에 “괜찮다”고 말하는 부분이 눈에 띄었어요.


: 앨범이 전체적으로 조금 담담하다는 느낌을 저도 다 만들어놓고 나서 느꼈어요. 「환란일기」도 그렇고, 「어른」도 그렇고. 어느 한쪽으로 크게 감정이 쏠리거나, 슬프지도 말고, 깊어지지 말자는 태도가 약간 묻어나온 것 같더라고요. 왜냐하면 뭔가 굉장히 슬프거나 그렇더라도 어디 한 구석에서는 분명히 그 반대의 감정이나 일들이 생겨나고, 어느 한편에 절망이 있더라도 다른 편에 분명히 희망 비슷한 게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조금 알잖아요. 그런 태도와 현재 상태 같은 게 묻어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른」이라는 곡을 쓴 그 날, 막걸리를 마시던 그 밤은 오만 생각이 다 든 날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지금까지 이렇게 만들어 온 내 인생이 뭐가 그렇게 나쁠 게 있겠나.’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그런 내 인생이 괜찮은 것 같기도 해서, 비속어로 표현하면 ‘쪼대로’ 좀 살아도 괜찮을 것 같다는 이상하면서도 담담한 자신감 같은 게 들어서 그런 가사가 나온 것 같아요.


: 말씀을 들으니 제가 체념이라고 표현한 게 오독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드네요. (체념과 같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었던 거네요. 개인적으로는 조금 충격적인 답변이에요.


: 아, 그래요? (웃음)


: 깨달은 게 좀 있어요.


: 답변이 되기는 했나요?


: 네, 잘 알 것 같아요. 그러니까 완벽히 이해는 못했지만.


: 평소에도 사람들을 많이 관찰하시는 것 같아요. 무언가에 대해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같이 아울러 말씀 하시잖아요. 어떻게 보면 관찰을 정말 많이 해야 보이는 것들이라고 생각이 들거든요.


: 네. 사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하고 복잡한 오브제가 인간이잖아요. 그래서 사람에 대한 관찰은 영원한 숙제이자, 작품의 주제일 것 같기는 해요. 개인적인 관찰의 방식 이라든지 그런 건 변하고 달라지고 하겠지만요. 끝까지, 죽는 날까지 ‘사람’을 “알겠다,”고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요. 저도 관찰만 하다가 끝날 것 같기는 한데. (웃음)


: 아까 전 가사 관련 질문이나 부정적인 감정을 대하는 밀아씨의 태도에 덧붙여서 ‘구원’에 대한 밀아씨의 생각을 여쭤보고 싶었어요. 매 앨범마다 구원이라는 단어가 가사에 등장을 했는데, 그것이 담고 있는 의미나 이미지가 매번 달랐거든요. 1집 「낭만의 밤」에서는 “나를 구원할 그곳은 어디려나 내 사랑하는 이여, 우리 바다에 가자”라고 했고, 2집 「봄빛」에서는 “내 한 몸 겨우 고대하는 건 벼락같은 구원 아니라 움직이지 않는 찬 공기 뚫고 스며들 봄빛”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3집 「환란일기」에서는 “인간을 구원하는 건 그 어떤 따스함일까?”라고 했어요. 3인칭이고, 의문형이에요.


: 네. 주신 질문지에서 그 부분을 굉장히 재밌게 봤어요. ‘내가 구원을 그렇게 썼구나.’ 1, 2, 3집에 다 썼다는 사실도 그때 인지했죠. ‘나의 구원’을 생각을 하다가 3집에서는 이제 심지어 남을 넘어 인간의 구원까지 생각하나 싶어서. ‘오지랖인가?’ 이런 생각도 했죠. (웃음) 1, 2, 3집의 주제와 감정이 점차 변화 했듯이 제 생각도 약간 변했어요. 1집에서는 단어가 쓰인대로 좁은 의미의 구원, ‘낭만적인 그날의 구원’을 떠올리며 단어를 사용했다면, 2집을 거쳐서 3집으로 가면서는 나와 다른 이들이 처한 상황을 의식하고 떠올린 구원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각 앨범이 다루는 영역 또는 범주가 다르잖아요. 1집은 좀 작고, 2집과 3집으로 가면서는 더 커지고. 구원도 각 상황에 맞게 쓴 것 같아요. 종교적인 의미를 의식하거나 한 건 아니었어요. 물론 그런 환경에서 많이 들었던 단어라서 낯설지는 않았고요.


: 그런데 어떻게 보면 그 구원이라는 단어와 개념은 내가 밑바닥에 있거나, 바닥을 쳐야만 체감이 되는 느낌이 있거든요?


: 음. 사실 특별한 것 이라기보다 누구나 몇 번씩 바닥을 친다는 느낌을 받잖아요. 그럴 때마다 스스로 강력하게 붙들었던 단어인가 봐요. 깊이 박힌 단어랄까? 자연스럽게 나온 생각인 것 같아요.


: 앨범 제목으로 『청파소나타』 외에 다른 후보도 있었나요?


: 네, 여러 개 있었어요. 벽에 여러 개 쫙 붙여 놨었어요. 제 노래 들어주는 모니터 요원들이 몇 명 있거든요. 그 친구들한테 보냈을 때 다 까였고요. 그나마 입에 달라붙는 게 ‘청파소나타’였어요. ‘청파’는 이 동네 이야기니까 자연스러운 것 같고, ‘소나타’를 붙인 이유는 제가 앨범 10곡을 다 한꺼번에 붙여놓고 작업을 했거든요. 종이 열 장을 붙여놓고, 열 장을 다 채워가면서 곡을 썼단 말이죠. 그래서 전체 흐름을 처음부터 고려하면서 했는데, 이게 소나타(sonata)의 형식처럼 전반이 있고, 전개부가 있고, 다시 한 번 발전시켜 나가는 형태가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재미있는 건 집 뒤에 만리동 고개가 있거든요. 거기 보면 세광출판사라고 있어요. 예전에 악보 만들던 회사요. 제가 꼬맹이 때 피아노 학원을 다닐 때 세광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보고 했단 말이에요. 그래서 그 옆을 지나가는데, ‘아니, 그 출판사가 여기 있었단 말이야?’ 그러면서 인상이 깊이 남았어요. 마침 그때 클래식에서 쓰는 용어나 관련 아이디어가 많이 떠오르면서 쓰게 된 이름이죠. 그렇게 마지막으로 당첨된 게 소나타였어요. (웃음)


: 그게 아직도 거기 있구나.


: 앨범 작업 과정을 벽에 붙여놓았다고 하셨잖아요. 「서시」가 가장 오래 전에 쓰인 곡인데 그걸 최초로 벽에 붙여놓고 전체 앨범 구상을 했다는 말씀을 봤어요. 「서시」가 근간이 되고, 첫 트랙이 된 특별한 이유나 계기가 있을까요?


: 네. 일단 시기적으로도 제일 먼저 썼고요. 2집이 끝날 때 그 곡이 나왔고, 이야기를 이어간다면 이 지점, 이것부터다 라고 생각했어요. 그때(2017년)부터 「서시」를 마음에 1~2년 정도 담아 두었어요. 절반 정도만 써둔 상태여서, 여기부터 어떻게라도 시작해봐야겠다 그런거죠. 노래 가사 자체도 첫 트랙에 놓기에 가장 적절하지 않았나요? (웃음) 시간대로도 새벽을 다룬 곡이라서 자연스럽게 제일 앞에 배치됐습니다.


: 그런데 이 곡이 맨 앞에 배치돼서 그런지 저는 앨범 전체 구조가 시에서 출발해 현실로 확장되어가는 느낌을 받거든요. 물론 시(詩)라는 게 현실의 반영이기는 하지만 시의 언어를 차용한 가사를 들었을 때 은근히 이질감이 느껴질 때도 있어요. 이번 앨범 작업에서 그러한 이질감을 극복하거나 해소하기 위해서 공을 들인 부분이 있을까요?


: 저는 일단 이질감을 인식하지 못했어요. 제 안에서는 그게 두 개로 분리돼서 작용을 하지 않았고, 그냥 처음부터 같이 굴러갔거든요. 그런 부분을 해소해야 한다는 어려움은 못 느꼈어요. 제 노래 「서시」의 경우에도 대표적인 네 단어(‘하늘’ ‘바람’ ‘별’ ‘시’)가 윤동주 시에서 따온 거고, 노랫말에 정제된 단어들을 쓰고, 운율이 있어서 시와 같다고 느낄 수 있지만, 저는 이걸 ‘시의 형식’이라고 느끼지는 않았어요. 제가 쓰는 가사의 어투는 굉장히 구어체 잖아요. 말하듯이 쓰는 거요. 그래서 저는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은 없습니다.


: 저는 용민씨의 질문과 반대로 느끼긴 했어요. 이번에 윤동주의 「서시」(1941)를 텍스트로 쓰신 것처럼 이전에도 헤르만 헤세의 작품을 바탕에 둔다든지(「방랑」(2014)) 나태주 시인의 시에 선율을 붙인다든지(「꽃」(2016)) 꾸준히 문학 텍스트를 인용해 오셨는데요. 그게 밀아씨의 다른 세상과 유리되기보다 무척 잘 어우러진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인지 오히려 텍스트에 대한 진한 애정이나 친숙함이 느껴지기도 하더라고요.


: 막상 읽는 것들을 보면 대단히 시를 많이 읽거나 그러지는 않아요. 다만 독특한 어투나 단어, 문장이 있으면 그에 대한 탐닉이 있기는 합니다. 그래서 아주 오래된 시나, 예전에 번역된 책들을 무척 좋아해요. 작품 자체를 읽어야 하는 부분도 있지만, 문장이나 문체를 너무 재미있어 하는 거죠.


: 사람 관찰하고, 소리 채집 하듯이 하시는 거군요.


: 네, 너무 재미있지 않아요? 원문은 이전에도, 지금도 분명히 같은 문장이었을 거란 말이죠. 그런데 1970년대에 번역한 문장과 2000년대에 번역한 문장은 서로 다르단 말이에요. 번역한 사람도 달랐을 테고, 단어들은 물론 말투까지 요즘 시대에 맞춰서 바뀌잖아요. 그런 게 너무 재미있어서 헌책방이나 이런 데 가면 오래된 책 사놓고, 번역서 같은 것도 사놓고, 성경도 다른 가지 버전으로 읽어보고 그래요.


: 맞아요. (웃음) 성경도 버전마다 단어와 말투가 다르죠.


: 네. 그리고 문학 작품 얘기 나왔던 것과 연결해서 말씀 드리자면 「서시」를 쓴 이유가 있어요. (웃음) 이건 그냥 사설인데요. 가사 절반을 써 놓고 나머지 부분을 못 쓰고 있었어요. 대충 이런 얘기가 앞부분에 들어가면 좋겠다는 생각만 얼기설기 엮어 놨었거든요. 그런데 때마침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에서 발행한 버전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가 창문 앞에 있었어요. 그걸 발견한 순간 ‘오호라, 잠깐만’ 싶었죠. (웃음) 큰 그림만 있었던 부분에 시의 단어들을 맞춰보니까 모든 게 딱 들어맞더라고요. 그렇게 곡을 마저 쓰게 되었어요.


: 어떻게 그걸 딱 캐치하시고. (웃음)


: 정말 오~래 보고 있으니까요. (웃음)


: 많은 시간을 들이고, 깊이 관찰한 결과네요.


: 특정하게 꽂히시는 것들이 많은 것 같아요.


: 하는 일이 뭐 그런 것밖에 없어 그렇네요. (웃음)


: 여담이지만 말씀하신 옛날 책들 있잖아요. 꽂히셨던 내용이나 단어 중에 생각나는 게 있을까요?


: (근처에 놓인 책을 하나 집어 문장을 하나 찾아 읽는다.) 김영랑의 시(「언덕에 누워」)인데요. “나는 이졌읍네 눈물 도는 노래를. 그 하늘 아슬하야 너무도 아슬하야.” 이런 표현을 써요. 요즘 같으면 “잊었네”라고 할 텐데 이때는 “잊었습네”라고 표현을 한 거죠. 그 뒤 문장도 그렇고, 심상은 비슷한데 너무 예쁘고 새롭잖아요. 못 알아듣는 것도 아니고, 같은 우리말인데 이렇게 쓰니 색감과 온도가 이렇게나 달라지나 싶고. 너무 신기한 것 같아요.


: 아까 말씀하신 성경 같은 경우도 예전 버전은 단어만 봐도 절로 성스러워지는 표현 있었잖아요. “가라사대” 이런 단어. 요즘 버전에는 절대 안 쓰는 표현인데 그렇게 묘한 이질감이 드는 표현에 꽂힐 때가 있는 것 같아요.


: 또 구어라고 할까요? 말할 때 쓰는 문체들 있잖아요. 이런 것도 되게 재미있는 것 같아요.


: 재밌게도 김영랑의 시구를 밀아씨가 직접 읽으시니 자연스럽게 밀아씨 음악 이미지가 또 연결이 되네요. (웃음) 「무명(無名)」(2018)  
생각도 나고요.


: 네. 감사합니다. (웃음)


: 아까 정희씨 질문과 연결되는 여담이기는 한데요. 이번 앨범에 어머니라든지 친구 ‘주희’라든지 구체적인 인물들이 많이 나왔어요. 등장했던 인물 중에서 사전이나 사후에 노래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던 적 있나요?


: 아, 노래 나오기 전 가사 다 쓴 뒤에 통보는 다 했어요. 나 이거 이렇게 쓴다고요. (웃음) “앞뒤 내용 이런데 괜찮겠어?”라고 허락 받았어요. 그 후에 노래 나온 후 듣더니 별 반응은 없더라고요. ‘어 그냥 그런가 보다.’ 어머니에게는 끝까지 말 안 하고 있다가 나중에 발매되고 나서 형제들이 들려줬나 봐요. 들으신 후에는 한동안 아침마다 계속 전화가 왔어요. 그 노래가 아침에 전화 온 내용이잖아요. 거기에 몰입하셔서 아침에 그렇게 전화를 하셨던걸까. 전화 안 해도 되는데. (웃음) 너무 재미있었어요. 다른 실존 인물들은 별 인기 없이 그냥 슥 지나갔네요.


: 술은 어떠신가요? 공연에서 직접 말씀하신 적도 있고, 언뜻 느끼기에도 일상에서 술과 굉장히 친하실 것 같은데, 막상 노래에는 처음 쓰였잖아요.(「어른」)


: 쓸 얘기 정말 많죠. 제가 언젠가는 위스키에 관해서도 쓸 거예요.


: 그 노래 미리 팬 하겠습니다.


: 지금 여러 가지 다 벼르고 있어요. 이번에 노래 쓰면서 마음에 뭔가 들어왔어요. (웃음) 좋아하는 술 많고, 중요해요. 감정을 증폭시키는 데에도, 가라앉히는 데에도 굉장히 효율적으로 작용하잖아요. 사람을 모으는 데에도 쓸모 있고, 사람과 멀어지게 하는 데에도 쓰이고요. 아무튼 술이 굉장한 요물인 것 같아요.


: 그 동안 노래 소재나 가사로 의식적으로 배제하신 건 아니죠?


: 네, 그런 건 아니에요. (웃음) 그냥 나오는 대로 해왔던 거죠.


: 저는 「서울역에서 출발」 여쭈고 싶은데요. 저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는데 사실 이 곡을 들으면서 약간 과장법이 좀 있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곡 분위기가 마치 봇짐 매고, 한양 가는 것 같다고 느꼈어요. 오래 전 영화에서나 나올 법 하게. 긴 시간의 변화가 함축돼서 담겼다는 인상이 드는데, 사실 숲 속에 있으면 그 변화가 잘 안 보이기 마련이거든요? 밀아씨도 이제 서울에 꽤 오래 사신 건데 그러한 변화를 어디서 어떻게 느끼셨는지 궁금해요.


: 저는 서울의 변화를 자주 느껴요. (웃음)


: 아 그래요? 저는 제가 서울 안에 사니까 뭐가 변했는지 잘 못 느낀다고 생각했어요.


: 노래가 서울역을 다뤘으니까 서울역에 관해서만 얘기를 하자면, 봇짐 메고 왔다는 게 과장이 아니에요. 제가 실제로 미대 입시를 보러왔을 때 봇짐보다 더 많은 재료와 화구들을 들고 왔거든요. 주변 풍경도 실제로 그러했어요. 그리고 밤에 서울역을 보면 조명이 대단하단 말이죠? 지나다닐 때 매번 사진을 찍다보니 그 변화가 와 닿아요. 「서울역에서 출발」 문장의 몇몇 아이디어는 ‘레코드페어’에서 얻기도 했어요. 제가 몇 년 연속으로 레코드페어에 갔는데, 예전의 저는 분명 이 건물의 실제 플랫폼으로 걸어 나왔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아, 여기가 이렇게 바뀌었고, 옆에는 공연장이 됐고, 안에서는 이렇게 음악을 하는데, 나는 여기 그저 구경꾼이 아니라 3분의1 정도는 업자의 마음으로 여기를 오게 되었구나. 이제 더는 고향 갈 때 새마을호를 안타고 KTX를 타는구나.’ 이런 변화의 감각을 느끼는 거죠. 이렇게 저렇게 변화를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 저는 전라도에서 올라왔거든요. 처음 올라올 때 서울역이 아니라 고속터미널을 통해 올라오기는 했지만, 같은 감각으로 공감이 많이 됐어요.


: 아, ‘고터’도 진짜 추억 많죠. 고속터미널에 관련된 노래도 하나 만들어야겠네요. (웃음)


: 반포에서 출발. (웃음)


: 네. 그리고 경부선 건물이 호텔 지하상가와 연결돼 있잖아요. 그러다 나중에는 백화점까지. 그런 것들도 굉장히 충격이었어요. 아무튼 서울의 변화된 모습들에 관해 할 얘기가 많네요.


(... 다음 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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