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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앞의 별이 떠나갈 때 #02] Lemmy : 죽는 날까지 오직 ‘록커’이길 원했던 레미, 안산밸리에서 그의 모습과 함께 추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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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정보

개인적으로 Motörhead, 그리고 Lemmy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나 뿐만 아니라 현재 40대 초반 아래의 한국의 록 팬들은 대충 비슷하겠지만) 아마도 Metallica에 대한 프로필과 정보를 익혀가던 고등학생 때였다. 당시 Metallica에 대한 여러 해설지나 잡지 기사들 속에는 드러머 Lars Ulich가 10대 시절부터 스스로 팬클럽 회장을 자처할 만큼 열광적인 Motörhead의 팬이었다는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그러나 그 때는 청계천 세운상가를 열심히 돌아다녀도 그들의 단색 빽판을 구하기는 너무나 힘들었다. 컬러 빽판으로도 이들의 음반이 나왔던 기억도 남아있지 않다. (혹시 있었다면 제보 부탁한다.) 결국 음악으로 직접 접하진 못하고 단지 음악 잡지에 가끔 실리는 화보에서 만난 Lemmy와 동료들의 모습으로만 그들을 기억했으며, Metallica의 멤버들이 존경한다는 이유로 나도 '자연스러운 존경심이 생겨'버린 게 아닌가 싶을 만큼 어느덧 친숙한 이름이 되어버렸다.



우정의 흔적


물론 대학교에 진학하고, 좀 더 내 힘으로 CD를 살 여건이 나아진 이후에는 결국 수입 CD로라도 이들의 음악을 구해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 더욱 확실히 깨달았다. Metallica의 스래쉬 메틀 속에 흐르는 스트레이트한 연주의 속도감과 강건함이 그들의 음악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것, 다시 말해서 1980년대 이후의 스래쉬 메틀에 그들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음악을 계속 접하고 나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이라는 땅에서는 심지어 인천에 있었던 전설의 '심지 음악감상실'에서도 영상을 신청해봤자 보기는 그리 쉽지 않았다. 그들은 꾸준히 신보를 내고 있었고,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었음에도 한국 땅에서는 일정부분 그들은 '전설같은 존재'로만 남아 대표 앨범들이 다시 소비되는 선에 머물고 있었다고 봐야할 것 같다.


그러던 2015년 여름, 바다 건너 일본에 그들이 (Foo Fighters의 투어 오프닝과 후지록 페스티벌 출연으로) 방문한다는 소식이 들렸고, 많은 이들의 예상대로 후지록과 계약을 맺고 있는 안산밸리 록 페스티벌에서도 그들을 볼 수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결과적으로 타 매체 취재를 위해 입장할 수 있었지만, 만약 그게 아니었더라도 1일권이라도 끊어서 그들의 공연은 반드시 보러 가리라고 결심했었다. 그리고 해당 매체에서 Motörhead와의 현장 인터뷰를 진행할 계획이 잡히면서, 정말 내가 Lemmy를 직접 눈 앞에서 만날 수 있을까에 대해 기대감은 부풀어있었다. 그러나 막상 공연 당일에 현장에서 진행 관계자들은 기타리스트 Phil Cambell만 인터뷰에 나올 수 있다고 밝혔고, 나와 해당 매체 취재팀은 조금은 아쉬움을 느끼며 취재를 진행해야만 했다.


그 상황에서 갑자기 그간 해외 언론을 통해 들었던 그의 건강 상태에 대한 이야기들이 다시 떠올랐다. 이미 고혈압과 당뇨 등을 지병으로 앓아왔고, 2013년부터는 삽입형 심장제세동기를 몸에 달고 다녀야만 했던 그였기에 혹시 컨디션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아무래도 건강 상태가 안좋은 상황에서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투어를 진행하려면 공연 시간 전에는 절대적 안정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으로 그를 만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랠 수 밖에 없었다.



영접의 현장


오후 7시 20분, 다시 무대 앞으로 돌아와서 기다리던 Motörhead의 무대를 영접했다. 무대 위에 올라온 그들의 모습은 그간 유튜브 영상에서 꾸준히 보던 그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물론 과거 1980~90년대의 영상들과 비교한다면 좀 더 노회한 모습임은 분명했지만, 공연이 시작되는 첫 순간부터 적어도 항상 거친 증기기관차처럼 쇳소리를 내며 달리는 그들의 연주는 전혀 약해졌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2000년 앨범의 타이틀 트랙이었던 「We Are Motörhead」를 시작으로 총 11곡을 특별히 긴 멘트 시간 없이 계속 이어갔다. 항상 마이크를 자신의 머리 위쪽으로 세우고 목을 위로 쳐들고 노래하며 베이스를 연주하는 Lemmy의 모습 역시 그간 영상에서 보던 모습 그대로였다. 그러나 지금 되돌아 생각해보면 그의 보컬은 (워낙 걸걸하고 허스키한 톤이었기에 별로 티가 나지는 않았지만) 조금은 힘이 빠진 느낌이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멘트나 노래 중 숨이 차서 힘겨워 모습도 가끔씩 드러났다.


그러나 Lemmy의 그런 모습은 애처롭다거나 아쉽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오랜 전장에서의 활약을 거치고 이제는 퇴역한지 한참 되었음에도 군복을 입고 있으면 전혀 그 기품이 변함이 없고 더 노련하고 원숙한 노병의 모습을 만난 느낌이었다. 게다가 그는 지난 30여년간 한 번도 ‘퇴역’이란 단어를 입에 올린 적이 없었던 록커이지 않았던가. Motörhead의 대부분의 팬들의 애청곡이자 그들의 대표 트랙이라 불러도 좋을 3곡 - 「Going To Brazil」(1991), 「Ace Of Spades」(1980), 「Overkill」(1979) - 으로 공연이 마무리 될 때까지 그는 자신이 무대에서 보여줘야 할 그 ‘록커의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했다. 그 모습을 나는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작년 새 앨범을 내고 그렇게 열정적으로 투어를 돌았던 것이 이미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기 때문인지는 우리는 알 수 없다. 그의 매니저에 따르면 Lemmy가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통보를 의사에게 받은 것은 그가 사망하기 2일 전이었다고 하기 때문이다. 생일 파티를 마친 후 얼마 뒤 몸의 이상을 느껴서 병원에 가 촬영을 했을 때 이미 그의 뇌와 목에 암세포가 퍼져버린 것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Lemmy는 매니저에게 자신의 발병 사실은 2016년 전반기 중에 때가되면 얘기해달라고 부탁했기에 사망 순간까지 우리는 그의 발병에 대해 전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Lemmy는 저승사자가 자신의 눈 앞에 와서 손목을 붙잡아 갈 그 순간까지는 한 순간도 자신이 록커임을 포기하지 않았을 사람이었다고 난 생각한다. 그래서 결국 저승사자 역시 그가 잠들었던 순간에 조용히 고통없이 그를 데려간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끝나는 그 순간이 올 때까지 아무도 몰랐던 그 시간이 오기 전에 우리가 그를 한국 땅에서 한 번이나마 만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내가 믿는 신에게 감사하고 있다. 그는 하늘에서도 분명히 쉼없이 틈만나면 자신이 좋아하는 바에 가서 먼저 간 록커 선배들 앞에서도 고개를 치켜들고 마이크에 입을 대고 노래할 것이라 믿는다. Lemmy, 천국에서도 열심히 달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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