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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아 #3. 앨범 외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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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작업에서 계속 나의 이야기를 꺼내는 걸
예술가의 방식이라고 생각을 해왔는데,
그게 어느 순간 무척 힘들더라고요.”


: 『Short Film』을 제작하며 미디를 처음 익히고 실제로 사용했지만, 오히려 그 색깔이 너무 진해서 앨범에 포함 안 시킨 곡들이 꽤 있다고 했잖아요. 이런 부분들이 앞으로의 작업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 저는 이번 작업을 하면서 솔리스트 황진아로서 제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찾은 것 같아요. ‘황진아’라는 건 한 사람의 개인이지만, 아티스트 황진아를 자세히 살펴보면 활동하는 영역이 여러 가지란 말이에요. 그 여러 활동 영역 가운데 솔리스트 브랜드로서의 황진아는 ‘이런 음악들을 원하는구나.’라는 걸 구체적으로 확인하게 된 거죠. 이번 앨범의 특정 곡이 됐든, 다음 작업의 다른 곡이 됐든 제 음악이 영상화가 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계속해요. ‘Short Film’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이런 식으로 각 곡에 다른 화자를 등장하게 한 건 사실 제 얘기를 안 하기 위함이었거든요. 제 이야기를 숨기고 싶었어요. 이전까지의 나는 내 작업에서 계속 나의 이야기를 꺼내는 걸 예술가의 방식이라고 생각을 해왔는데 그게 어느 순간 무척 힘들더라고요. 계속해서 나의 이야기들을 꺼내게 되는 게. 그래서 이번에는 더 연기자 같은 마음, 연출자 같은 마음으로 ‘내가 아닌 다른 것들의 이야기들을 담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이번 앨범을 다듬고, 여러 이야기를 만들려고 분투한 건데. 사실 이전에도 이미 깨닫고 있었고, 말씀드리면서 다시 확신하는 건데, 이건 결국 제 이야기인 것 같아요. 황진아의 여러 가지 버전. 황진아가 만들어낸 캐릭터. 황진아의 분신, 아니면 결국은 나의 마음이 의인화된 무엇. 이런 것들의 이야기인 것 같아서 그냥 결국 ‘나일 수밖에 없구나.’ 이런 생각을 해요. 다시 돌아와서, 그래서 앞으로의 방향성이라면 이러한 것들을 좀 더 설득력 있는 방식으로 풀어내는 쪽으로 가지 않을까 싶어요. 그게 특정한 퍼포먼스가 될 수도 있고, 다른 작업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계속해서 나의 이야기들을 직설적으로 얘기하기보다... 제가 생각하는 이상이 굉장히 완성도 있는 작품의 전형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냥 가볍게 보기에도 괜찮고, 뜯어봐도 괜찮은, 그게 사실 감독의 진짜 이야기인지 어떤지는 결국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작품이 있잖아요. 그냥 자연스럽게 내 이야기가 되는 작품이나 영화들. 그렇게 되는 방향, 그렇게 프레젠테이션할 수 있는 방향을 찾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이번 인터뷰를 하면서 깨달았어요.
 

: 거문고를 시작한 지는 워낙 오래되었고, 솔리스트 황진아로서는 조금 늦게 출발을 했지만, 그것도 이제 5년이 넘었어요. 각각 새로운 경력을 시작할 때 그렸던 이미지와 지금의 이미지가 좀 많이 다른 것 같은가요?
 

: 아주 구체적인 측면에서는 상상과 실제가 다를 수 있는데, 사실 저는 그냥 한 결로 계속 가고 있는 것 같아요.
 

: 처음에 그렸던 이상대로 말이지요?
 

: 아주 어렸을 때는 사실 잘 모르고요. 그런데 그때와 비교해도, 당시와 지금 가지고 있던 열망이 크게 다르지 않거든요. 산조를 할 때도 ‘나의 이야기를 담고 싶다.’ 혹은 ‘이걸 듣는 사람과 지금 이 자리에서 공감하는 음악을 하고 싶다.’라든가. 그렇게 들리게끔 연습을 했고, 그런 표현 방식을 익혔어요. 정가악회에 들어가서 여러 활동, 창작 활동을 두루 경험했던 건 그래서였고요. 그런 경험과 시간이 있기에 이 자리에서 지금 하고 있는 활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결국 중학교 다닐 때 산조를 타던 황진아가 가지고 있던 열망과 정가악회에서 활동하던 황진아, 지금 『Short Film』을 만들어낸 황진아가 가지고 있는 열망의 방향은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여기서 나온 얘기는 아니지만 그런 질문을 무척 많이 받아요. 전통음악을 한 사람으로서 이런 창작을 하는 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많이 하는데, 저는 그것도 사실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해요. 같은 열망에서 출발한 거고, 전통도 똑같은 걸 반복하고 있는 게 전통이 아니거든요.
 


: 아무래도 그런 고민이 있을 것 같아요. 흔히 개념적으로 대중음악의 상대적인 영역으로 서양 고전음악과 각 문화권의 민속음악, 전통음악을 구분해서 이야기하잖아요. 그런데 클래식이 (물론 현대 음악이 계속해서 나오기도 하지만) 주로 같은 레파토리를 활용하는 가운데 스타가 탄생하여 대중과의 접점이 만들어진다면, 반대로 전통음악은 반드시 새로운 레파토리나 퍼포먼스를 통해야만 대중적인 관심이나 그래도 스타라고 할 수 있는 존재가 탄생하는 구조잖아요. 한편으로는 그렇게 해서 특정 영역이 개발되면 반대로 그 이면의 영역은 관심이 아예 끊기거나 외면받는 측면도 있고요. 그로 인해 어려운 점도 있고, 거문고라는 악기가 주목을 받은 지도 얼마 안 됐지만, 블랙스트링의 허윤정 선생님이나 잠비나이의 심은용님, 지난해 《슈퍼밴드2》(2021)를 통해 인지도를 얻은 박다울님이라든지 전통음악의 다른 영역에 비해 꽤 대중음악적으로 그 가능성이 발굴되고 있는 측면이 많아요. 이런 점에서 오는 좋은 시너지나 에너지도 있을 것 같아요. 은용님, 다울님은 같이 공연하기도 했고요.
 

: 있죠. 그리고 말씀하신 것처럼 그런 분들이 몇 명 안되기 때문에 서로 다 알고 친해요. 말씀대로 심은용님, 박다울님 모두 작년에 공연을 같이하기도 했고, 공연을 준비하면서 나눴던 얘기들도 그런 이야기들이 많아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각자 자기가 과거에 말했던 것처럼 여전히 살고 있는 것 같거든요? 그 시너지가 분명히 있고, 이 가운데 거문고가 지금처럼 대두되는 건 우연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러니까 거문고 주자들이 침체되어 있던 기간이 상당히 길었고, 각자 포기하고 있는 시간이 훨씬 더 길었다고 봐요. 왜냐면 과거 전통음악계 전반에서 형성된 분위기에 1차적으로 거문고가 낄 자리가 별로 없었고요.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퓨전국악’이라는 개념으로 나온 음악들에도 거문고는 정말 낄 자리가 별로 없었어요. 아예 관현악단에서도 거문고가 없어지는 추세였고요. 워낙 힘든 상황이다 보니까 거문고 연주자들은, (전통음악 연주자들이 모두 그랬지만) 특히나 자기 길을 자기가 찾아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 거예요. 말씀하신 것처럼 계속 소비되는 곳이 있으면 거기 가서 그 일을 하면 바빠지는데, 그게 없으면 내가 내 길을 찾아야 하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거문고에 어울리는 음악 작법이 뭘까? 거문고와 어울리는 사운드의 자리는 뭘까? 이런 생각이 계속 이어지다가 여기까지 오게 된 거죠. 제가 처음에 시작할 때는 5년 전이었는데, 그때는 정말 몇 명이 없었어요. 현장에 잠비나이가 있기는 했지만, 정말 잠비나이만 딱 있었고, 은용 언니도 솔로로 활동하기 전이었고요. 그런데 그 고민을 각자 하다가 한두 명씩 자기 작업물을 내놓기 시작하면서 서로 교류와 시너지가 확 생긴 것 같아요. ‘아, 저 사람은 이걸 이렇게 표현하는구나.’ 이걸 알음알음으로 인지하다가 직접 만나서 실제로 얘기했던 게 여우락 무대였고요. 그런 식으로 시너지를 주고받고 있어요. 사실은 이런 주제들이 훨씬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것도 흐름이 있겠죠. 거문고도 지금처럼 확 올라갔다가, 어느 순간 내려가겠죠. 어쨌든 활발히 활동하는 거문고 주자들은 몇 없어서, 오히려 서로에게 더 좋은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아요. 응원해 주고요.
 


블랙스트링-허윤정 (출처 : 국립극장 공식블로그), 잠비나이-심은용 (출처 : 해외문화홍보원), 카디-박다울 (출처 : 《슈퍼밴드 2》캡쳐)


: 밤새 프로젝트도 꾸준히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어요. 다른 악기나 영역의 아티스트들과 하는 협업의 경우 솔리스트로서 작업에 임하는 입장이나 관점과 좀 다르실까요?
 

: 네, 달라요. 솔리스트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현재 프로듀서의 입장에 가깝게 임하고 있어요. 분명하게 짜인 틀이 있고, 그 틀에 의해 의도하는 바가 명확하게 있거든요. 그리고 그것을 매번 안정적으로 표현해내기 위해서 고심하고요. 게다가 저는 컴퓨터를 가지고 작업하기 때문에 여기서 발생하는, 뭔가를 계속해서 생겨나는 변수를, 그 자리에서는 최대한 만들지 않으려고 해요. 솔로 작업을 할 때는요. 그런데 이제 협업할 때는 그런 부분이 훨씬 더 자유롭고, 창작자 황진아로서 임하기는 하지만 전통적인 의미의 연주자로서 황진아의 페르소나나 그런 것들을 상당히 많이 유지하려고 하거든요. 그렇게 했을 때 실제로 즉흥적으로 나오는 연주들을 해내기도 하고요. 점점 그게 구분되고 있는 것 같아요. 솔로 작업을 할 때는 ‘거문고 소리를 어떻게 다르게 쓸 수 있을까?’ ‘어떻게 평소와 다른 걸 배치할까?’ 이런 구조를 고민한다면, 밤새라든지 프로젝트 활동을 할 때는 비슷한 고민이긴 하지만 여기서 나의 자리를 어떻게 잘 마련하고, 이 사람들과 어떻게 잘 협업할지에 대한 방식을 계속 고민하게 돼요. 그래서 더 연주에 집중된 것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거고, 그런 협업을 즐겨요.
 

: 두 가지 방향성을 계속 병행하게 될 수밖에 없겠네요.
 

: 네. 솔리스트 황진아가 즉흥 연주를 엄청나게 할 것 같지는 않아요. 왜냐면 그 솔로 프로젝트에서 만들어낸 음악들이 표방하는 바가 그런 즉흥 음악은 전혀 아니기 때문이에요.
 

: 지난해 11월에 있었던 공연, ‘무성영화극장 2021 : 황진아 × 버스터 키튼’ 《제너럴》*은 어떻게 하시게 된 거예요? 마침 『Short Film』을 준비하는 과정이었을 거라서 절묘하다고 느꼈어요.
* 버스터 키튼의 무성영화 《제너럴》(1927)을 상영하며 현장에서 음악을 연주한 무대
 

: 피크닉(piknic) 측에서 직접 섭외가 들어와서 했고. (웃음) 저도 무척 반가웠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제가 영화 음악을 주제로 작업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진짜, 정말 힘들었어요. 그 작업을 하려고 일부러 이 음반 녹음도 빨리 마무리했거든요. 행사가 11월 초였는데, 음반을 10월에 서둘러 마무리해놓고, 무대에서는 2집에 실린 곡을 1~2곡 정도만 연주하고, 원래 있던 곡과 이 무대를 위해 만든 곡, 그 다음에 즉흥으로 연주하는 곡들이 있었죠. 아, 솔리스트 황진아가 즉흥을 하긴 하네요. 하긴 해요. (웃음)
 

: (웃음)
 

: 그 작업을 하면서 영화의... 모르겠어요. 우리가 영화를 볼 때, ‘음악을 생각보다 안 듣는구나.’라는 생각도 좀 들고.
 

: 특별히 그렇게 생각한 계기가 있을까요?
 

: 네. 왜냐면 제가 관련 작업을 다 마치고, 영화를 틀어놓고 모니터할 때도 음악이 들리지 않는 순간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나중에는 ‘이 영화에 방해되지 않는 음악’ 쪽으로 정리를 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뭔가 나를 더 보여주거나 하는 쪽보다, 정말 이 영화에 동화돼서 만들어내는 작업을 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그건... 어렵지만 너무 재밌는 작업이었고 다시 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약간 ‘영화 음악가가 된다면 이런 기분이겠구나.’를 간접적으로 느낀 경험이었어요. 훨씬 더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더라고요

: 이 얘기를 듣고 나니까, 황진아가 머릿속에 그리는 미래의 황진아가 궁금해져요.
 

: 이번에 생겼어요. 그걸 하면서 좀 생긴 것 같아요. 하면 재밌겠다 싶은.
 

: SNS에서 2집 아티스트가 목표였다는 얘기를 본 것 같아요.
 

: 일단 2집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건 1집의 한계를 넘고 싶다는 게 사실 제일 컸어요. 1집 활동을 하면서 음악적으로 내면적인 충돌이 되게 많았거든요. ‘음악이 여기서 더 발전될 수는 없는 걸까?’ ‘발전시키려면 뭐가 필요할까’ 이렇게 엄청 고민하던 시간이 2집을 낼 때쯤에는 끝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죠. 어느 정도는 해결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해결할 방법을 찾은 것 같아요. 그런데 2집을 내고 나니 다른 고민들이 생겼죠. 아까 말씀드린, 이것을 어떻게 설득력 있게, 그러나 내 이야기를 전면에 드러내지 않고, 계속 내 이야기만 하지 않는, 완성된 작품으로 만들어낼까? 이런 고민이 생겼죠. 그리고 아티스트가 1집을 내는 건 할 수 있지만, 2집을 내는 건 더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했거든요. (2집은) 방점을 찍는, 방향성을 제시하는 일이 될 거고, 1집은 할 수 있는 걸 다 한 거라면 2집은 훨씬 더 절제되고 ‘나는 이래.’라는 걸 보여줄 수 있는 작업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2집에 큰 의미를 뒀어요.
 

: 하반기에 있는 단독 콘서트 이외에도, 미리 말씀해 줄 수 있는 올해 계획이 있으실까요?
 

: 상반기에 밤새의 정규음반을 계획하고 있고, 그에 맞춰 여우락 페스티벌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또 그와 별개로 새로운 밴드를 메이킹하고 있기도 해요. 그것을 올해 안에 선보일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에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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