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뮤지션으로서 신해철의 삶은 언제나 "Myself"였다. 으깨진 장르, 날선 사유를 통한 발견과 혁파, 그리고 통제는 결국 그의 손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지 않은가. 실제로 그에겐 모노크롬, 비트겐슈타인 같은 몇 차례의 혼자 놀기가 있었고 밴드 형식이지만 넥스트를 신해철이라는 개인과 떼어 생각한다는 것 역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번 솔로 EP 제목이 살짝 새삼스러운 건 그래서다.

리부팅하는 마이 셀프. 텍스트로만 보면 23년 전 앨범의 연장선으로 볼 수도 있지만 강산은 이미 두 번이나 변한 상황. 그 시절의 낭만과 미디 활용이라는 소소한 작법 실험은 증발했고 남은 건 "돈, 큰집, 사회적 지위"를 생각한 비판 의식이다. 그것은 「껍질의 파괴」나 「백수의 아침」이 아니라 『개한민국』에서 내비친 새까만 분노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인데 그래서 이 앨범의 주제는 사회학보단 정치학에 좀 더 다가가 있다.

화성과 비트, 믹싱과 어레인지, 아날로그와 디지털에 대한 완벽한 이해 없이 만들기란 꿈도 꿔볼 수 없을 「A.D.D.A」가 이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나라에서 어떻게든 살아보려 발버둥치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위로라면 일렉트릭 펑키 그루브가 불을 뿜는 「Catch Me If You Can (바퀴벌레)」는 나라를 이리 만든 자들에 대한 신해철의 노골적인 분노요 풍자다. 곡 끝을 장식하는 "다 죽이라 싹 다 죽이라 몽땅 죽이라 바퀴벌레 죽이라 어여 죽이라 싹다 그리 죽이라 단디 죽이뿌라 마"라는 라임에서 경상도 사투리는 그래서 특정 정당을 비꼬는 것일 테고 그 사투리로 다시 "죽이라"고 선동하는 가수의 서슬 퍼런 역습은 때문에 내뱉는 사람에겐 통쾌함을, 당하는 이에겐 섬뜩함을 안겨줄 만하다.

이어지는 「Princess Maker」는 제목부터 본작이 왜 '정치적'인질 말해준다. 뮤즈(Muse)의 「Panic Station」과 퀸(Queen)의 「Another One Bites The Dust」에 라운지 소스를 얹은 음악은 맛깔나지만 그 음악이 "쓰다만 너의 일기는 오 그 비루함 나약함 무엇보다 지루함"이라는 은유적 독설의 배경 음악이 되는 지점에선 우리에게 남은 칠흑 같은 4년을 절망의 눈길로 바라보는 신해철의 우울한 감상이 담겨 있다. 다시, 감상은 감성을 부르는 것인지 마지막 곡 「단 하나의 약속」은 앨범에서 가장 대중적인 멜로디와 따뜻한 메시지를 풀어내며 나름 휴머니즘 냄새를 낸다. 정치적으로 해석하자면 영화 <또 하나의 약속>과 엮을 수도 있겠지만 신해철 본인이 밝힌 것처럼 중요한 건 자기 개발서가 아닌 "아프지나 말아라"는 할머니 말씀이라는 비화에서 이 곡의 성격과 주제는 어느 정도 규정되고 있는 것이다. 17년 전 싱글에서도 믿었던 단어들(약속(Promise), 헌신(Devotion), 운명(Destiny), 영원(Eternity), 그리고 사랑(Love))을 다시 한 번 나열하면서 그가 말하고 싶었던 건 결국 "이 지옥 같은 세상, 아프지나 말고 잘 살자"가 아니었을지. 가을에 나온다는 넥스트 신보까지 신나게 또는 화나게 곱씹어볼 수 있을 음악을 선물해준 그에게 고맙다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