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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리뷰 #18] 눈뜨고코베인 『Tales』 : 사소하고 하릴없는 진심

눈뜨고코베인 『Ta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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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정보
얼마 전에 일 때문에 사람을 만나는 장소에서 눈뜨고코베인(이하 ‘눈코’)의 노래 「말이 통해야 같이 살지」후렴구를 수차례 되내었다. 노래 구간반복은 나의 고쳐지지 않는 몹쓸 버릇이긴 하지만, 하지 말아야 할 장소에서도 하게 되는 멜로디는 엄연히 눈코의 매력이다. 눈코에 대해 누구나 공감하는 것이 있다면 세 가지 정도가 아닐까? 입에 맴도는 멜로디와 가벼우면서도 진지한 생활 밀착형 가사, 그리고 그것을 탄생시킨 비틀어대는 유머 말이다.


네오 조선펑크?

그들의 조악한 뮤직비디오 「외로운 것이 외로운 거지」를 보면 뮤지션이라고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친구들의 ‘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노브레인의 「청춘98」 (1999) 클립을 연상시킨다. 뮤직 비디오 전반에 흐르는 저렴한 아우라와 등장인물들의 몸부림, 우연찮게도 스카를 가미한 펑크라는 점에서 그렇다. 홍대 부근과 봉천동 쑥고개라는 지형학적 위상은 다르지만 음악적 맥락을 따지고 볼 때 눈코는 분명 조선펑크의 심정적 후계자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건 음악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것인데, 예를 들자면 현실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 놓는 가사, 역설적인 유머, 장르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분위기, 아마추어리즘의 발현같은 것들 말이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청춘98」에서 보이는 자기 부정 세대의 비장함이 이들에게는 없다는 것이다. 눈코는 체질적으로 비장함을 싫어한다. 이들이 집착하고 있는 산울림, 송골매, 신중현의 유산들도 음악적 완성도나 역사적 계승을 고려했다기보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고, 카피하지 않으려 하는 음악이라는 데 더 방점이 찍힌다. 세상을 비틀어 보고 다르게 표현해 보려는 전형적인 펑크 정신이다. 조선펑크의 밴드들이 나이가 들면서 추억과 행사, 혹은 펑크라는 장르 자체에 매몰하게 되는 것과 달리(그래서 별로 재미가 없어지는 것과 달리) 눈코는 여전히 재미있는 밴드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가사에서 발현된다. 제목만 봐도 알 만하다. ‘말이 통해야 같이 살지’, ‘얄리는 내가 죽였다’, ‘그대는 냉장고’ 등등. 특히 「외계인 날 납치할 거야」에서는 기막힌 나레이션이 등장하는데 그 내용은 외계인이 침공했으니 국민 여러분들은 알아서 하시라는 것이다. 확실히 21세기 한국 록음악은 이런 비틈의 유머가 대세다. 더 이상 록음악은 분노의 저항음악이 아닌 것이다. 방패로 위협하는 전경들 앞에서 춤을 추며 웃을 수 있는 정서, 이것이 21세기 한국 록음악의 저항성이다.


단순하고 느슨하게

하지만 이런 블랙코미디는 자칫 잘못했다간 키치의 가벼움으로 읽히기 십상이다. 키치의 가벼움은 밴드라는 행위를 ‘젊은 애들의 재미있는 놀이’에 국한시키는 우를 범하게 된다. 눈코는 똑똑한 밴드다. 그런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데뷔 앨범 『Pop To The People』(2005)에서 화끈한 개러지 록을 구사했다. ‘복고-키치’의 인식에서 ‘복고-키치-트렌드’의 삼각주를 구성하려는 의도가 엿보였다.「내가 그렇게도 무섭나요」를 들어보라. Arctic Monkeys나 Kasabian의 사운드가 연상 될만큼 드럼은 필인에 충만해 있고 연주의 구성도 제법 복잡하게 꾸렸다. 그러나 이게 좀 ‘어색한 관계’가 되어 버렸다. 요소요소 아이디어들은 재기발랄했지만 연주의 밀도가 느슨했다는 것이 치명타였다. 복고도 있고 개러지도 있고 유머와 페이소스도 있지만 그것들 중 어느 하나도 우선순위를 꼽을 수 없는 앨범이었다. 사람들이 눈코에게 기대하는 것은 좀 더 진한 페이소스로 통쾌하게 웃겨주길 바라는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4년 후,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두 번째 앨범 『Tales』가 발표되었다. 밴드가 전작의 ‘어색한 관계’를 인식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과장된 필인을 없애고 사운드를 단순화 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이 과정은 기타 놀음과 함께 건반 놀음의 강화로 나타난다. 최근 한국 록의 트랜드인 신스 팝과 디스코가 적절히 가미되었다. 자의든 타의든 ‘복고’를 주무기로 하는 눈코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러우면서도 효과적인 변화다. 「엄마 몰래 Space」의 뿅뿅 사운드와 「지구를 지키지 말거라」의 롤라장 인트로를 들어보라. 지금까지 눈코의 사운드를 배재하지 않으면서도 안정된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아빠가 벽장」, 「바훔톨로메」에서 베이스로 코러스를 이끌어 가는 아이디어도 단순한 사운드로 재정비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사운드의 단순화는 이 앨범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규정할만큼 전면적이다. 하지만 고질적인 문제점은 노출된다. 여전히 사운드가 비어 있다. 직선적인 록음악에서 기대하게 되는 소위 ‘댐핑’이 없다. 부분부분 악기들의 솔로(혹은 음악적 효과)를 민주적으로 배치하고 있는 느슨한 구성이 결정적이다. 물론 복고적인 스타일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고 펑크 밴드의 시적 허용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연주를 잘 하지 못해도 긴장감을 줄 수는 있었을 것이다. 결코 놀라지 않을 사운드는 이 앨범의 가장 큰 적이다.


하릴없는 상상력

그렇다면 이 앨범의 가장 큰 미덕은 무엇일까? 역시 웃음과 회한을 동시에 전하는 진한 페이소스다. 「횟집에서」를 들어보자. 하릴없는 일상의 장구한 대서사시다.

달이 높이 떴는데 너는 아직 가지 않았다.
횟집에서 사람들 떠드는 소리가 무심해질 만큼.
말 할 것이 있는데 손가락을 꼬물거리다
“다시 술 마시러 들어갈까요?”
“저는 먼저 집에 들어가봐야 될 것 같아요 피곤해서”
“그래요 가서 쉬어요.”
내가 가면 이번에는 그 속내를 다른 사람에게 털어 놓겠지.


노래의 분위기는 비장하다. 횟집을 묘사하는 가사와 어울려 사뭇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도 풍긴다. 뭔가 중요한 일이 일어날 것 마냥 폼을 잡았는데 결국 사랑 얘기다. 사랑 얘기도 드라마같은 이별이 아니라 그저 내가 가면 그 속내를 다른 사람에게 털어 놓을 것이라고 말하는 소심한 마음뿐이다. 《고래사냥》(1984)의 병태도 결국 자신감을 찾고 고래를 찾으러 동해바다로 떠나는데 이 노래의 화자는 어물쩡거리다가 다른 사람에게 여자를 놓쳐버리고 말 것 같다. 너무 사소해서 들을 가치도 없는 내용 같지만 눈코의 존재 증명은 이런 사소한 상상력에 있다. 선배 조선펑커들이 세대의 분노에 대해 노래했다면 눈코같은 네오 조선펑커들은 이렇게 하릴없는 일상에 대한 증언으로 세상을 깨운다. 이 노래가 명곡의 반열에 오를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지금 여기, 여전히 딱딱한 대한민국에는 가장 필요한 상상력이다.

여기서 또 한 번의 ‘그러나’를 써야 할 것 같다. 「횟집에서」는 좋은 가사지만 다른 곡은 그렇지 않다. 고속도로에 살고 있는 원숭이를 노래하고 외계 괴물 바훔톨로메를 이야기하고 염라대왕을 만나고 온 경험도 토로하지만 이 앨범의 제목처럼 ‘이야기’가 성립하지는 않는다. 비틈의 상상력으로 충만하긴 하지만 아이디어들의 단편일 뿐이다. 사실 사운드의 허함보다 더 아쉬운 것이 이 부분이다. 조금만 더 스토리텔링을 보강했다면 사운드의 느슨함 따위야 UFO에 띄워 머나먼 우주까지 날려버릴 수도 있었다.


첨언 : 솔직한 음악

「횟집에서」가 아무래도 너무 사소하다고 생각한다면 「납골묘」를 추천한다. 아무런 정보도 없는 개인적인 추론이지만 아마도 노래를 만든 깜악귀의 개인사가 아닐까 생각한다.(그게 아니라면 웃기는 얘기지만) ‘아빠가 벽장 안에 있을 리가 없잖아’라고 노래하는 첫 곡에 이어져 한 개인의 가정사를 연상시킨다. 마치 김창완의 발라드 창법을 연상시키는 깜악귀의 목소리는 전혀 슬프지 않은 슬픔을 자아낸다. 거기에 진심이 있다. 거창한 작가주의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노래가 상품에 머물기를 거부하는 순간은 이런 진심을 담는 순간이라는 걸 말하는 거다. 눈코는 앞으로도 이런 진심을 지켜야만 한다. 사소하고 중요한 진심 말이다.

Credit

[Staff]
Produced by 깜악귀 & 눈뜨고코베인
All Music Played by 눈뜨고코베인
co-player 김남윤 (아빠가 벽장에, 바훔톨로메, 횟집에서)
co-woman chorus by 나비, 상은(바훔톨로메)
Mixed by 김민오
Mastered by 채승균@Sonic korea

Track List

  • No
    곡명
    작사
    작곡
    편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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