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완은 유달리 낮은 저음으로 「노인의 벤치」를 일관성있게 끌고 나간다. 기타 또한 희미한 스트로크로 일관한다. 피치가 어긋나는 곳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긴장감도 긴장감이지만, 곡 전체에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이는 앨범 전체에 나타나는 특징이기도 하다. 전체적으로 볼륨과 사운드 배치가 제각각인 곡들이 많다. 「시간」은 내레이션을 읊조리고 난 후에야 노래가 등장한다. 특유의 꺾는 멜로디가 등장하는 「먼길」 또한 어딘지 모르게 유장한 흐름을 더한다. 그나마 우리가 알던 김창완의 보컬은 「국수나무」라는 짧은 소품에만 등장할 뿐이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곡들 덕분에 그마저도 생경하게 느껴질 정도다. 앨범은 제각각 다른 곡들을 어떤 일관성도 부여하지 않은 채 하나로 엮은 듯하다. 앨범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싱글 모음집처럼 느껴진달까.

그러나 단정할 수 없다. 「노인과 벤치」의 지친듯한 목소리에는 스트로크가 주는 긴장감이 팽팽하다. 「옥수수 두 개에 이천원」에서 김창완의 관조는 여전히 제 위력을 발휘한다. 「시간」에서 고상지가 들려주는 반도네온은 마치 시간의 주름을 접었다 펴는 것같이 곡 전체에 끊임없이 음악적인 뉘앙스를 불어넣는다.

김창완의 노래 또한 어딘지 모르게 웅얼거린다. 때로는 같은 문구나 단어를 반복하기도 하고, 때로는 추상적인 내용을 드러내며, 때로는 제멋대로 나오는 목소리를 내버려둔다. 나이든 사람들이 때로는 같은 말이나 같은 단어를 주절거리듯이, 그는 같은 말을 오래 곱씹어본다. 「자장가」는 산울림 2집에 수록된 「기대어 잠든 아이처럼」(1978)의 명백한 연장선상에 있다. 「이제야 보이네」, 「보고 싶어」 또한 그리움의 변주일 뿐이다. 「엄마, 사랑해요」나 「비가 오네」 같은 연주곡 또한 시시하고 변변찮다.

시시한 소리를 듣자고 음악을 듣지는 않을 것이다. 남들 같으면 모든 생명이 아름답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코웃음을 칠 것이다. 추억이 시간을 여는 열쇠라는 말을 볼 때마다 되려 어색함을 느낄 것이다. 이 앨범은 그 모두가 전혀 꽉 막힌 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김창완이 지친 상태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노래하기 때문이다. 앨범의 일관성을 간신히 획득할 정도로 지친 상태에서 부른 노래는 어딘지 모르게 잠언이 아니라 육성처럼 들리는 효과를 불러온다. 들쭉날쭉한 사운드 스케이프도 이 앨범이 계획적으로 만든 잠언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시시한 소리도 지친 기색이 역력한 소리에 덧씌워져 과거지사의 뉘앙스가 덧붙여진 것이다.

물론 이는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고 코에 걸면 코걸이인 해석일 것이다. 그러나 잠언과 잠언을 내뱉는 사람들의 면모에 지친 나에겐 김창완의 지친 음색이 되려 반갑다. 그가 지극히 개인적인 목소리로 노래하기 때문이다. 성자도 악인도 아닌 그저 인간으로 말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그는 산울림 때부터 무언가를 전달하는 사람이었다. 대중을 가르치지도 않고, 대중을 대단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자기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을 그대로 전달하는 데만 애쓴 사람이다. 이 앨범의 미덕 또한 그 점에 있다. 그저 단순히 마음을 그대로 전달하려고 애쓴다는 것. 

시대를 통과한 지혜로운 노인의 관조를 원하는 사람들은 이 앨범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나이가 들어도 불안이 떠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 앨범은 몇 마디 말을 건넬 것이다. 불안이 평생 짊어지고 가야할 동반자라는 사실을 잘 안다면, 이 앨범은 그런 당신을 향해 수더분하게 미소할 것이다. 마치 오래전부터 비밀을 공유한 사람들처럼.

 

#김창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