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Review

코스모스걸 코스모스되다

에레나 『Say Hello To Every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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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정보
장르
필자가 정우민의 존재를 따로 떼어 생각하기 시작한 건 그녀가 게스트 보컬로 웨어더스토리엔즈 1집 『眼內閃光』(2001)의「Going Home (Puritanical Mix)」이란 곡에 참여하면서부터다. 담담하면서도 서늘한 기운을 뿜어내는 매력적인 목소리에 반한 것이다. 물론 이 곡에서 그녀가 들려준 목소리는 이미 코스모스 1집 『Standard』(2000)의「Starless Man」에서 똑같이 등장한 바 있었지만, 역시 코스모스는 ‘지독한 남자’ 김상혁의 포스가 지배하는 밴드였기에, 그녀는 코스모스의 어엿한 멤버였음에도 불구하고 단순 조력자로 밖에 각인되지 못했었다. 아무튼 이「Going home」사건 이후로 필자는 그녀가 부른 코스모스의「Starless man」과「오늘은 또 뭘 하나」를 더 좋아하게 되었고 그녀가「Going Home」전에 ‘에레나정’ 이라는 닉네임으로 참여한 앨범들에 재차 주목하게 되었다.

뭐, 아쉽게도 에레나정은 별다를 것 없었다. 결과는 볼빨간과의 트로트 듀엣「난 몰라 정말 몰라」(2001)처럼 뜬금없거나, 줄리아하트 1집 『가벼운 숨결』(2001) 의 키보드 세션처럼 또 한 번 조력자이거나 그랬다. 게다가 이렇게 아쉬워하던 차에 2001년 12월 나온 코스모스 2집에선……. 에구구, 정우민은 주구장창 같은 스타일로 하몬드(hammond) 오르간을 길게 ‘꾸우우우우웅~~’ 눌렀거나, 아니면 혹 그녀가 보컬로 나선 몇몇 곡은 대충 흘려들으면 김상혁의 목소리와도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몰개성 그 자체였다. 아! 때문에 그녀에 대한 필자의 인상은 2001년 말「Going Home」과「Starless Man」에 완전 고정되고 말았다. 그렇게 과거로 시선이 향한 채로 4년이 넘게 흘렀고, 그 시선 그대로 2006년 가을 필자는 에레나(Elena)를 정식 이름으로 내세운 그녀의 갑작스런 앨범을 손에 쥐게 되었다. 

허나 이를 어째! 과거의 향수에 취해 정신 못 차리는 필자를 화들짝 깨우려고 작심이라도 한 듯, 그녀의 곡과 그녀의 목소리가 너무도 생기발랄하다. 자켓만 봐도 코스모스 1집 때의 우중충한 분위기하고는 완전 딴판이다. 그녀가 침대 위에 뽀샤시하게 앉아있다. 부클릿의 일러스트레이션은 또 어떤가! 라이너스의 담요(Linus' blanket)의『Semester』(2003)와 너무 흡사하지 않은가! 자, 일단은 여기까지. 청취 1회전이 남긴 이러한 몇몇 정황들은 필자를 살짝 실망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청취 2회전, 청취 3회전을 거듭하면서 필자의 생각은 완전히 바뀌고 말았다. 그녀의 ‘너무 생기발랄함’에 두손 두발 다 들고 말았다. 왜냐구? 그 생기발랄함이 너무 듣기 좋은걸 어떡해~~. 특히 1번부터 5번 트랙까지는 뭐랄까, 향기 좋은 공기청정기를 잔뜩 흡입한 기분이랄까, 광릉수목원에 나들이 온 기분이랄까, 남산 위에서 서울의 야경을 예쁘게 바라보는 기분이랄까, 아무튼 시큼달큼 산뜻 그 자체다. 그녀의 목소리가 서늘하다구? 천만에.「입맞춤의 Swing」「Holidaymaker」의 정우민은 세상에서 가장 예쁜 목소리를 들려준다. 그녀의 하몬드 오르간이 ‘꾸우우우우웅~~’ 소리만 낸다구? 천만에.「입맞춤의 swing」「물빛의 여름」의 정우민은 그 누구보다 톡톡 튀는 오르간 연주를 들려준다. 결국 필자의 생각은 이 지경에까지 이른다. ‘왜 이제야 나타났어~. 진작 이런 음악 들고 나오지. 너무 좋잖아~~!’ 그렇다. 코스모스의 정우민,「Going Home」의 에레나정은 진짜 정우민이 아니었다. 이토록 밝은 그녀, 이토록 새침한 그녀가 진짜 정우민이다. 과거 코스모스걸이었던 그녀가 지금 이 순간 진짜 산들산들 코스모스가 되어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주목해야할 한 가지는, 필자를 완전 무장해제 시켜버린 본 앨범의 공로가 전적으로 그녀의 아이디어와 목소리와 빼어난 멜로디 감각 덕택은 아니라는 점이다. 짜잔~! 바로 에스피오네(Espionne)로 이름을 올린, 디제이 소울스케이프(DJ Soulscape)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에레나와 공동으로 앨범을 프로듀싱하고 수록곡 대부분을 편곡했으며, 믹싱 또한 대부분을 해치웠다. 그의 첫 앨범『180g Beats』(2000) 에서부터 주목했고, 아이에프(I.F.)의 『We are music』(2005) 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업에 쭉 지지를 보내온 사람이라면 에레나와의 작업은 당연히 군침이 도는 사안일 터. 과연 에스피오네는 팬들의 군침이 헛되이 흐르는 걸 용납하지 않았다. 아이에프의 곡「Dialogue part2 (soul trip)」의 상쾌함과 낙관을 에레나의 앨범에서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신선한 충격은, 소울스케이프라는 디제이 이름 대신 에스피오네라는 이름을 택한 것을 마치 강조라도 하듯 그가 다양한 악기들을 손수 연주해냈다는 사실이다. 본 앨범의 핵심 트랙이라 할만한, 에레나가 꼭 해보고 싶었다는 ‘보사노바튠’ 넘버「Holidaymaker」, 「물빛의 여름」, 「밤, 테라스」, 「Good Night Sweet Heart」에서 그는 그야말로 핵심이 되는 어쿠스틱 기타 연주를 모조리 도맡았다. 또한 그는 에레나를 대신해 팬더 로즈(fender rhodes)와 오르간 연주도 한 차례씩 선보이고 있으며, 놀랍게도「하얀색 행진곡」에선 클라리넷과 플룻 연주까지 감행한다. 뭐 당연히, 엄청난 연주력을 과시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가 에레나의 원곡을 가장 잘 살려낼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자신이 의도한 편곡에 가장 적합한 연주를 들려주는 건 틀림없다. ‘보사노바튠’ 넘버 4곡이 그의 비슷비슷한 기타 연주에도 불구하고 ‘지루한 반복이다’라는 느낌을 주지 않는 건 그 외 나머지 악기들의 배치가 너무 좋고, 그에 앞서 편곡이 너무 좋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하면 뻔한 팬시팝으로 전락할 수도 있는 에레나의 곡들이 그의 치밀한 사운드 설계 덕에 하나하나 꼼꼼하게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아마도 이런 결론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디제이 소울스케이프의 마인드로 설계하여 에스피오네의 몸뚱이로 표현하다!  

때문에 본 앨범에서 아쉬운 부분은, 당연히 에스피오네의 손길이 닿지 않은 2개의 트랙이다. 줄리아하트의 정바비가 편곡한「Lens Flare」는 지나치게 로파이(lo-fi)한 드럼과 노이즈가 제법 들어간 기타 때문에 상대적으로 튀고, 더군다나 에레나의 보컬에 이팩트를 걸어 청명한 기운을 지워버렸다. 페어브라더(Fairbrother)가 편곡한「토끼구름」역시 유독 두텁게 들리는 베이스가 레게의 자의식을 너무 강하게 드러내고 있어 문제다. 그러고 보니 가사도 튀는 게 하나 있다. 정바비가 작사한「촛불의 미로」. 은유의 촘촘한 그물로 짜여진 에레나의 가사에 비한다면 정바비의 것은 너무 헐렁하다.

자, 이제 슬슬『Say Hello To Every Summer』에 대한 감상을 마무리 짓자면, 필자는 이번 에레나의 작업을 한껏 지지하려고 한다. 아무리 곡이 좋고 아무리 목소리가 예쁘고 아무리 편곡이 훌륭해도 결국은 뒤늦은 ‘인디팝 따라하기’ 아니냐며 딴죽을 걸 수도 있지만, 최소한 음악 자체에 있어서만큼은 그렇지 않다고 변명하고 싶다. 예쁜 은유로 짠 가사야 뭐 그닥 변별력이 높지 못하다고 쳐도 음악만큼은 그렇지 않다고. 굳이 기존의 팝 뮤지션들과 비교해야 한다면 에레나는 댄스클럽의 새침떼기 같은 허밍 어반 스테레오(Humming Urban Stereo)와도 다르고, 한없이 상큼하고 한껏 댄서블한 페퍼톤스(Peppertones)와도 다르며, 보다 멜로딕하고 보다 처연한 미스티 블루(Misty Blue)와도 다르다. 뭐, 에레나의 정체를 보다 정확히 파악하자면 9회전, 10회전 청취까지 가봐야 하고 또 2집의 가사까지 훑어봐야 하겠지만, 아무튼 그녀만의 포스가 있는 건 분명하다.

하긴 에레나의 『Say Hello To Every Summer』은 인디팝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한국 인디씬 전체의 차원에서 조망하더라도 충분히 흥미로운 앨범이다. 그것이 노이즈가 됐든 쟁글쟁글이 됐든 결국은 기타와 한판승부를 벌였다고 볼 수 있는 90년대 말 모던록. 그 인기 있던 모던록 패밀리 내에서 단순 조력자에 지나지 않던 여성 뮤지션이 와신상담 끝에 독립하여 내놓은 결과물이 팝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와신상담과 청명한 팝의 결합! 이거 참, 한국의 인디팝을 인디씬의 ‘가벼운 타락’으로 치부하는 몇몇 지인들의 우려가 자꾸 기우(杞憂)라는 생각이 든다. 이거 혹시 여자들 수다의 반란/귀환/복권, 그러니까 다분히 정치적 사건이 아닐까! 

Credit


홈페이지 www.elenajung.net

 

●Track list 

01. Say hello to every summer

02. 입맞춤의 swing

03. Holidaymaker

04. 1-2-3-4-5 carrots

05. 물빛의 여름

06. 촛불의 미로

07. Lens flare

08. 토끼구름

09. 밤, 테라스

10. 하얀색 행진곡

11. 밤이 듣는다

12. Good night sweet heart







●앨범정보

Executive produced by Jeon Hong Phill

Produced by Elena, Espionne(Park Min Jun)

Recorded at Stone age recording studio

Mixed by Espionne

              Chung Bobby (track 7)

              Fairbrother, Espionne (track 8)

Mastered by Cheon "bigboom" Hoon at Sonic Korea

Photographs by Yu.Rub(Park Ui Ryung, More)

Makeup by Cho Jae Eun

Illustrated by Han Sun Myoung

Art directed by Elena

Track List

  • No
    곡명
    작사
    작곡
    편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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