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Review

[공통리뷰 #17] 김광진 『Last Decade』 : 마이너리티 리포트 최종회 - 웃지 않겠다.

김광진 『Last Decade』
624 /
음악 정보

『Last Decade』라……. 난 한 뼘 더 늘려 ‘Last 2 Decades’라 생각했다. 지난 6년의 공백을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 이건 누가 봐도 ‘90년대 내내 있어온 김광진’을 지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에 라이브로 실린 「엘비나」는 쫄딱 망했던 솔로 1집 『Virgin Flight』(1991)에 있던 노래다. 그래서 깐깐한 앨범 리뷰 따윈 안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가 가사만 바꿔 다시 부른 「잘 지내나요」보다 이승환이 불렀던 원곡 「그가 그녈 만났을 때」(1997)가 훨씬 더 깔끔하고 좋다, 뭐 이런 얘기를 해서 뭐하나? 자켓에 오롯이 박힌 그의 절대 미소 앞에서 이런 짓은 무의미해진다. 이번 앨범의 의의에 대해선 이미 렉스님이 핵심을 충분히 짚어냈다. 박병운님이 파란 글씨로 콕 집어낸 「행복을 주는 노래」의 가사와 짠한 ‘Thanks To’로 모든 얘기는 끝이 난다. 우리는 김광진을 기다렸는데, 김광진은 ‘김광진의 음악’이 아니라 그냥 ‘김광진’으로 등장했다. 나는 이번에 이런 이야기를 두서없이 해보려고 한다. 김광진이 지목하는 90년대를.

사실 『Last Decade』라는 타이틀은 적절하다. 기 발표곡 11곡 중에서 『It's Me』(2000)와 『솔베이지』(2002)가 도합 6곡을 제공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묘하게도 이번 앨범을 고이 가슴에 품은 사람들은 90년대에 감사하는 듯하다.『솔베이지』는 일찍이 웹진 《가슴》의 박준흠 편집장이 김광진의 최고작이라 추켜세웠고, 나 또한 「동경소녀」(2002)를 비롯한 몇 곡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90년대의 음악을 감사하고 추억하는 사람 모두에게 그런 비평의 수사가 유효할까? 그때를 함께 소비했던 숱한 사람들 중에 2000년대(정확하게는 1990년대 말부터~)의 비평을 소비한(이건 거진 공짜다)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 때문에 난 신곡이 달랑 3개라며 불평할 수 없다. 이건 내 사정이고, 정작 당사자는 더클래식의 권위로 최근 10년을 재차 알리고 싶었을지 모른다. 나야 더클래식 시절이 짱이냐, 『솔베이지』가 짱이냐를 놓고 저울질하지만, 사회생활과 함께 대중음악 찾아듣기를 그만둔 친구 녀석들에게 그렇게 접근해선 안 된다. 그건 당사자가 제안했을 때 가장 확실한 효과가 있다. 자켓의 예쁜 일러스트를 보고 「마법의 성」(1994)을 떠올리고, 결국 지갑을 여는 것이다. 「동경소녀」를 들으며 “이것도 「마법의 성」만큼 좋네~” 하면 그만이다. 그렇다고 성실히 『솔베이지』까지 살 필요는 없다. 디스코그래피의 재인식 따위도 필요 없다. 두 곡 다 김광진이 만들고 불렀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래, 그는 90년대부터 있던 사람인 걸~.

그러니까 「오비이락」(1994)과 「시간이 사랑을 잊은 이야기」(1997)가 빠졌다고 섭섭해 하면 안 된다. 이건 내 사정이고, 친구 녀석들은 그걸 이미 다 잊어버렸다. 이제 90년대는 완전히 각각의 유명했던 노래로 기억되고 있다. 그 노래들은 당신에게, 또 누군가에게 저마다 시대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뾰족한 수가 없던 2000년대의 가수들이 리메이크로 90년대를, 그리고 80년대를 줄기차게 우려먹고, KBS 《불후의 명곡》이 그네들을 차례로 소환하자 저마다의 상징은 굳건히 정착했다. 예상했던 대로 7080은 8090으로 이어졌다. 8090은 단지 TV 프로그램만 없을 뿐이다. 온라인 음원 사이트로, MP3 플레이어로, 휴대폰으로 8090은 일찌감치 자리 잡았다. 이적의 『나무로 만든 노래』(2007)가 ‘올해의 앨범’으로 뽑혔어도 사람들은 타이틀곡인 「다행이다」를 들으며 90년대로 날아갈 것이고, 토이가 60분이 넘는 야심작 『Thank You』(2007)를 만들었어도 부클릿의 마지막 감사의 말 ‘Thank You’를 읽어내려 갈 때 귓가의 신곡은 가슴속의 90년대에게 자리를 내어줄 것이다. 과연 나는 90년대를 『90년대를 빛낸 명반 50』(2006)처럼 앨범으로 들었던 것일까? 그래, 나는 어느 정도 그렇게 들었던 것 같다. 친구 녀석 몇몇도 그랬다. 그런데 나머지 녀석들은, 아니 나조차도 때때로 앨범을 앨범의 ‘가치’로 바라보지 않았다. 그건 눈에 보이는 그대로 ‘물건’이었다. LP였고 테이프였고 CD였다. 그 속에 ‘노래들’이 있었을 뿐이다. 과연 90년대는 영민한 음악감독들의 시대였을까? 그들이 앨범을 기막히게 통제하던 시대였을까? 혹시 찬란한 노래들의 시대는 아니었을까? 그 노래들을 좋아하던 우리들의 시대, 아니 그냥 ‘우리’만 있던 시대는 아니었을까? 『Last Decade』에 오직 ‘김광진’만이 있듯이.

한국에서 앨범의 시대는 2000년대(정확하게는 90년대 말) 부터 비로소 시작됐다는 생각이 퍼뜩 든다. 누구에게든 다 같이 열광하고 절망하던 90년대가 돌연 주류와 인디라는 두루뭉수리한 두 영역으로 갈라서면서 열광과 절망은 분열을 겪었다. 그래, 쉽게 말해 나는 인디에 열광하고 주류에 절망한다. 그런데 지금 나의 열광은 90년대의 습관에서 왔다는 생각이 또 퍼뜩 든다. ‘물건’을 사 모으던 습관을 나는 버리지 못했다. 그 습관이 우연찮게 인디 쪽으로 스며들면서 ‘물건’은 ‘앨범’이 되었다. 90년대에 나는 친구들과 다 같이 노래를 들었거나, 혹은 때때로 앨범을 들었다. 지금 나는 ‘물건’과 ‘앨범’과 ‘노래’에 골고루 열광한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반쪽 공간의 앨범 시대에 포섭되지 않는다고 해서 친구 녀석들이 달라진 건 아니다. 그들은 90년대에도 노래를 사랑했고 지금도 노래를 사랑한다. 해당하는 물건이 좀 다를 뿐이다. 혹시 90년대가 하필이면 ‘물건’의 시대였기 때문에 녀석들은 그때를 대단하게 추억하고 있는 것 아닐까? 어쨌거나 그들은 지금도 노래를 사랑한다. 과연 90년대는 특별한가? 80년대는? 70년대는? 지하로 숨어들어 앨범이란 걸 붙들고 있는 00년대의 나 같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옛 시대를 향해 구제의 손길을 뻗친다. 시대는 누구에게는 구제되고 누구에게는 구제되지 않는다. 2년 남짓 이어져 온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소박한 호떡바보 개인의 구제 리스트였다.

90년대에 어쨌든 같이 물건을 사 모았고, 때때로 그걸 하나의 앨범으로 들었던 친구들은 왜 지금 나와 함께 있지 않을까? 내가 앨범에 열광하는 사람이 된 것도, 친구들이 그저 그런대로 노래를 사랑하고 있는 것도 결국 우연이겠지만, 노래를 듣는 틈틈이 재테크에 여념이 없는 녀석들 앞에서 나는 멋쩍을 따름이다. 마찬가지로 “돈은 주식으로 벌자”, “여유 자금은 펀드로”를 어눌하게 내뱉는 김광진도 멋쩍다. 1997년 언젠가부터 세상이 돌변했고, 그래서 90년대의 음악은 풍부한 추억이 되었고 00년대는 삭막한 디지털 음악 세계가 되었을까? 그렇지 않다. 그것이 후기 자본주의든 신자유주의든 처음엔 점진적이었다가 나중에 급진적이 되었을 뿐이다. 나는 개나 소나 세계화를 부르짖던 시절에 서태지와 신해철을 들었다. 나는 지금 88만원 세대와 함께 「Tell Me」(2007)를 흥얼거린다. 도대체 무엇이 달라졌단 말인가? 그제나 저제나 사람들은 노래를 사랑했고 사랑하고 있으며, 음악은 영원히 소중하다. 세상은, 여전히 음악을 사랑할 만한 세상이다.

어느덧 물건 사는 습관에 가치를 부여해버린 나는 계속 고집피우며 그 가치를 붙잡는다. 물론 무슨 절체절명의 위기를 느끼는 건 아니다. 세상과 음악은 긴밀히 내통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있는 듯’의 문제다. 그 ‘있는 듯’의 자질구레한 감상들을 이래저래 늘어놓는 것이 내 습관이 도달한 종착지다. 그게 전부다. 지난 1세기 동안 대중음악의 정치성은 한 번도 제대로 증명된 적이 없다. 그러므로 나는 습관이 변형된 그 가치를 최소한 90년대에(혹은 어느 시대든) 무리하게 적용시키지는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가치는 어정쩡하게 갈라선 두 영역이 존재하는 지금, 지금에만 어울린다. 단지 특별한 습관이 있었을 뿐인 그때를 왜 자꾸 ‘음악이 충만했던 그때’로 포장하려 드는가? 음악이 결코 정치적일 수 없다면, 결코 외따로 충만할 수도 없다. 친구 녀석들이 그렇게 똑같이 노래를 사랑하고 있다면, 그냥 그대로 내버려두자. 굳이 아부할 이유가 없다. 내가 꾸며내고 있는 가치는 지금과 미래를 위해 남겨두면 그만이다. 그래, 『Last Decade』엔 90년대의 김광진이 있고 90년대의 나와 당신이 있다. 하지만 자켓 속 그의 웃음에 똑같이 화답하진 않겠다. 당신더러 웃지 말라고 강요할 권리가 나에겐 없지만 나는 웃지 않겠다. 정신 차리자. 어영부영 2년만 지나면 2000년대의 10년도 끝이다. 이제 살찐 90년대는 건넌방으로 살짝 치워두고 싶다.

[관련글]
돌발 에세이『90년대를 빛낸 명반 50』을 읽고...  http://cafe.naver.com/musicy/145
마이너리티 리포트 vol.6 - 테잎돌이의 끝자락  http://cafe.naver.com/musicy/690

Track List

  • No
    곡명
    작사
    작곡
    편곡

  • Warning: Invalid argument supplied for foreach() in /www_root/common/includes/ui.review_view_ko.php on line 273

Editor

  • About 윤호준 ( 84 Article )
SNS 페이스북 트위터
TOP
Error Message : Query was emp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