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Review

소녀는 울지 않는다

에프엑스 (f(x)) 『Red Light』
1,367 /
음악 정보
발표시기 2014.07
Volume 3
레이블 SM
공식사이트 [Click]

곡의 진행, 메시지 등에서 안정감을 택한 『Pink Tape』에 비해 그 균형을 곳곳에서 의도적으로 무너뜨린 앨범이다. 타이틀곡 「Red Light」는 f(x)가 오랜만에 과격하게 달리는’ 곡이지만 완성도보다는 이번 앨범의 변화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성에서 선택되었다고 읽는 것이 더 적합할 것 같다. 최근 유행이라는 트랩 스타일을 끌어들인 것보다 더 주목할만한 대목은 혼란, 위기, 총체적 파국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도록 ‘쉴 틈 없이’ + ‘급격하게’ + ‘기울어진’ 구성이다. 실제로 상당수 수록곡들이 통상적인 메이저/마이너 코드의 진행에서 이탈해 색다른 정서를 유도하는데, 「Red Light」의 레퍼런스가 서태지와 아이들의 「환상 속의 그대」에 있다는 지적도 가능할 것이다. 랩과 테크노 사운드, 샤우팅 록을 섞은 「환상 속의 그대」의 역시 모호하고 난해했지만 당시 젊은이들은 이 곡의 포인트를 정확하게 짚어냈다. 구체적인 설명보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중요한 것이다. 그 점에서 『Red Light』는 여전히 SM이 f(x)를 통해 들려주는 21세기 소녀들의 무의식적 발산이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 역시 이 '기묘함'이 도드라지는 능숙한 연출에서 나온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당연한 듯이 한데 엮어버리는 것이다. 「Milk」는 데인 마음 위에 차갑고 하얀 우유를 붓는다는 초현실적 심상을 가져오고, 「Dracula」에는 화자가 언제 습격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과 이미 전염당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심지어 “널 지키는 나”마저도 드라큘라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동거한다. 그리고 (문제의) 「무지개」가 있다. 이 곡은 트랩 위에 오리엔탈/트로트 풍의 멜로디를 합치고, 취한 어조의 랩으로 무지개빛 팬시한 색깔들을 하나하나 거명하면서 발음의 질감을 녹여낸다. 여기서 포인트는 화자가 사랑의 판타지에 빠졌다는 게 아니라 환상을 보고 있다는 명확한 자각이다(“멍한 사랑에 취해 환상을 보니 내가 미쳤네”). 달달한 연애의 외피를 쓴 서사들이지만 대부분 뭔가 뒤틀린 상황인 것이다.


완급 조절에 있어 ‘급’이 과잉되어 있고 ‘완’이 제 역할을 온전히 하지 못한다는 「Red Light」의 구성상 약점도 앨범 전체의 맥락에서 보면 이 ‘기묘함’의 그럴듯한 조각이 된다. 위에서 언급한 트랙들과 청량감을 전달하는데 주력하는 (상대적으로 멀쩡한) 여름 노래/사랑 노래들(「나비」, 「All Night」, 「바캉스」, 「Summer Lover」 등)이 번갈아 등장하는 배치는 분열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뭐 했다 하면 너는 그냥 쓰러져 너 순식간에 벌써 게임 끝이야”(「Boom Bang Boom」)라고 뽐내는 허세와 “네가 너무 좋아서 사실은 약간 겁이 나”(「종이 심장」)라는 두려움 사이를 서성이고 있는데, 그 와중에 등장하는 “모두 행복해 보여(…) 우린 자유로워 이대로 난 다 좋아” 같은 가사(「바캉스」)도 더 이상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게 된다.


무엇이 이 소녀들을 이런 불안에 빠뜨리는가? 회자되는 바와 같이 세월호를 거론해도 좋고, 아이돌의 성장 서사를 따라 “졸업하고 꿈꾸던 회사에 들어갔지만 예상치 못한 현실을 마주했을 때 느끼는 심정”이라고 설명해도 좋을 것이다. 관건은 이렇게 세대를 미분화하는 스토리텔링이 얼마나 보편적인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느냐 하는 점일 것이다. 「Nu ABO」의 소녀들이 자신도 종잡을 수 없는 히스테리를 날카롭게 발산함으로써 '병맛'을 구현했다면, 『Red Light』의 양가적 인격은 반대로 발화를 어느 정도 제한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것 같다.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성을 연기하고 있음을 암시하면서도, 자아의 내/외부에 혼재하는 비정상성을 포착하는 대목에서는 패셔너블한 연출과 시적 심상을 부각시킨다. 격한 감정 표현을 가급적 소거함으로써 신비주의적인 암시만을 남기는 것이다.


이 와중에 드러나는 것은 어떤 단절의 이미지다. 20대의 다면적인 인격의 외양들 사이 단절감을 표현하는 화법이 앨범 전체를 풍성하고 입체적으로 만들어주고 있는데, 화자와 청자 사이/청자와 청자 사이의 단절 역시 끌어들이고 있음을 또한 지적하고 싶다. 다시 말해 소비자들에게는 보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만 취하게 될 공산이 높은 앨범이라는 건데, 이건 당시 서태지에 대한 집단적 열광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물론 SM이라고 그걸 모르는 것 같진 않다. 일례로 뱉어내에서 소녀들은 상대를 향해 소통을 갈구하지만, 각 버스(verse)를 마무리하는 도시적/미래적/해방적인 일렉트로닉 사운드는 역설적으로 아무런 진심을 들을 수 없는 침묵의 시간이다. 어쩌면 SM의 신비주의는 진솔한 직설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곧이곧대로 들어주는 건 아니라는, 이제 막 어른이 된 소녀들이 으레 깨닫기 마련인 경험적 교훈의 소산일지도 모른다.


이 돌고도는 혼란 속에 덩그러니 던져진 『Red Light』가 흥미로운 이유는 혼란을 정면으로 지시하면서도 그 혼란과 적절하게 동거하는 감각에 있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꾸고 새롭게 도전하자”는 혁명가의 카리스마가 아직 유효했던 과거에 비해 세계는 보다 거대해졌고 개인은 작아졌다. “겉은 강한 척 해보지만 내 심장은 종이 같아”(「종이 심장」)라는 현실 인식이 전세계를 상대로 하는 아이돌에겐 더 실용적인 태도가 된 것이다.

Track List

  • No
    곡명
    작사
    작곡
    편곡
  • 1
    Red Light
    Kenzie
    Maegan Cottone, Allison Kaplan, Sherry St.Germain, Daniel Uilmann, Bryan Jarett
    Maegan Cottone, Allison Kaplan, Sherry St.Germain, Daniel Uilmann, Bryan Jarett
  • 2
    Milk
    Kenzie
    Kenzie, Teddy Riley, 이현승, Engelina Larsen
    Kenzie, Teddy Riley, DOM, 이현승, Engelina Larsen
  • 3
    나비(Butterfly)
    신진혜(Jam Factory)
    Thomas Troelsen, Engelina Larsen
    Hitchhiker
  • 4
    무지개(Rainbow)
    Misfit
    Will Simms, Ylva Anna Birgitta Dimberg
    Will Simms, Ylva Anna Birgitta Dimberg
  • 5
    All Night
    Jinbo, 김미영(Jam Factory), 이은진
    Teddy Riley, 이현승, Jinbo, Ylva Anna Birgitta Dimberg
    Teddy Riley, 이현승, Jinbo, Ylva Anna Birgitta Dimberg
  • 6
    바캉스(Vacation)
    Kenzie
    Kenzie
    Kenzie
  • 7
    뱉어내(Spit It Out)
    Misfit
    Caesar & Loui, Olof Lindskog, Jasmine Anderson
    Caesar & Loui, Olof Lindskog, Jasmine Anderson
  • 8
    Boom Bang Boom
    서지음(Jam Factory)
    Eirik Johansen, Jan Hallvard Larsen, Carl Johan Isac Gustafsson, Fredrik Haggstam, Sebastian Per Emi
    Eirik Johansen, Jan Hallvard Larsen, Carl Johan Isac Gustafsson, Fredrik Haggstam, Sebastian Per Emi
  • 9
    Dracula
    조윤경
    Joachim Vermeulen Windsant, Willem Laseroms, Maarten Ten Hove
    Joachim Vermeulen Windsant, Willem Laseroms, Maarten Ten Hove
  • 10
    Summer Lover
    김영후
    Amber J. Liu, Sean Alexander
    Sean Alexander
  • 11
    종이 심장(Paper Heart)
    서지음(Jam Factory)
    Chris Wahle, Didrik Thott, Dianna Corcoran
    Chris Wahle

Editor

  • About 이철수 ( 2 Artic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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