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담스럽지만 끈적한 분위기를 머금은 심플한 곡의 향연들이 가득한 이 앨범이 발매된 직후, 사람들은 앞다투어 이 앨범을 언급하곤 했다. 단순히 좋아하는 감정을 넘어, 숨겨둔 마음을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뉘앙스는 작품의 완성도를 뛰어넘은 지점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쏟아지는 찬사 속에서 자주 발견되는 단어가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그건 바로 '에로틱'이라는 표현이다. 일반적으로 남녀혼성 듀엣으로 부르는 곡은 사랑에 강박증에 영혼을 묶어두거나 사랑할 수 없는 아픔을 호소하는 것이 노래의 전부인 경우가 많았다. 사랑의 통증이 어디에서 왔는지 내가 널 왜 사랑하는지에 대한 성찰은 뒤로 미루고 일단 사랑하고 보자는 분위기가 주를 이뤘던 것이다.

하지만, 『비밀』은 이런 과거의 답습에서 벗어나 관계의 익숙함이 주는 두려움, 그리고 어쩔수 없이 꼬이는 진한 감정을 최대한 냉정하게 바라보려고 한다. 현기증이 날수도 있지만 자신들이 유지하고자 하는 세계가 어떤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그들은 끝까지 붙잡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렇게 서늘한 기운 속에 흐르는 애틋함이 이 앨범을 지탱하는 힘이다. 그것을 사랑이나 에로틱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오로지 그것뿐인가?'라고 묻는다면 '절대적으로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비밀』을 구성하고 있는 음악들은 한발치 물러나서 상대를 보는 것, 그리고 독이 되지 않을만큼의 경계선 위에서 서로를 생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나아가 진실에 다가가는 길임을 말하고 있다. 냉정하면서도 영악한 시선도 아름다움이 될 수 있다는걸 들려준다는 점에서 이 앨범은 단연 최고다. 그리고 아직까지 이를 넘어설 적수를 만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