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Review

애달프고 선연한 분노의 건너편에 버티고 선 아이러니

강백수 『설은』
1,057 /
음악 정보
발표시기 2016.08
Volume 2
레이블 북극곰사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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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가 노래의 핵이 되면 몇 가지 곤란한 문제가 생긴다. 간단히 말해서 비교다. 가령 「24시 코인 노래방」은 「울산」보다 별것 아니고 「타임머신」처럼 사람을 종일 아무것도 못하게 만들 수 없으며 「벽」을 두고 비웃을 여지마저 없다. 그런데 내가 현재 처절하게 겪고 있는 문제를, 남에게는 그저 사소했을 이야기를 누군가 가만히 지켜본다. 또 그러다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잠시 흘러 어느 순간 서로를 위한 모두의 고통으로 이해했을 때, 말끔한 포크록 사운드에 목소리가 끼어들면 참, 살고 싶어진다.


적당히 뭉근하고 쫀득한 리듬은 흐릿한 생기처럼 남아 곡을 끝낸다. 적어도 강백수의 음악은 두 가지 이유로 내게 있어 무척 훌륭하다. 먼저 페미니즘 이슈가 활발해지며 지금껏 강제로 사장시키다시피 무시해온 문제들, 손쉽게 미화된 찌질과 루저와 개저씨의 있지도 않은 미학을 떠올리면 거의 전형적인 남성이 주요 등장인물이자 심상인 이 음악은 아주 쉽게 해로워질 여지가 있었다. 허나 화자는 해롭지 않은 길에서 가만히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그가 무해할 수 이유는 가슴속의 윤리도, 신념도 아닌 원치 않은 가난과 무력감 때문이다.


앨범에서 유일하게 ‘돈이 없어 팝콘을 들고 유곽을 돌아다니기만 하는’ 경멸스러운 인간을 그대로 전시하면서도 별다른 욕망과 모순의 언어 없이 내보이는 「와일드 사파리」 같은 곡에서도 이 태도는 여전하다. 암만 봐도 역시 이건 위험하다. 침묵은 동조가 되고, 관찰자의 시선은 늘 염치없이 연민을 품고, 마침내 지 혼자 아름답다. 비겁하게 적당히 오늘 하루도 예술가인 척하기 딱 좋다. 그러나 강백수의 가사는 영리하게도 선 위에 서 있다. 함부로 악한 말을 토해내지 않는다. 맥락 없고 희한한 분노를 표할지언정 다소 조심스럽다. 그의 의도와는 별 상관없이 무해한 곳에서 해로운 이들을 위한 곡을 불러준다. 힘겨운 삶이 타인 혹은 약자를 향하지 않고 속에서 고여 썩을 때, 강백수의 음악은 주로 이 초기의 절망을 포착하고 있다.


프레임 바깥이 어떨지 우리는 알고 있다. 애달프고 선연한 분노의 건너편에 아이러니가 버티고 서 있다. 이 또한 필요할 것이다. 한없이 불쌍해지고 싶은 자들의 수요를 위해. 짐작과 의심의 기폭제로, 또한 그저 슬프기 위해서라도 이 음악은 적절하다. 그러니 아직까지는 지지할 수 있다. 마지막, 김태춘의 신보와 더불어 저절로 떠오르는 신파라는 단어. 강백수는 지나간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까? 어쩌면 세상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는 행동 자체가 다들 너무 지긋지긋해서, 피로하기 짝이 없어서, 그게 전부 소용없고 물색없는 것 같아서 이제 철 지난 브라스를 대동하든 재미없는 록을 하든 전부 신파라는 딱지가 붙는 게 아닐까? 음악의 텍스트 말고 다른 것도 작용하는 게 아닐까? 비약이다. 그러나 의심은, 누가 뭐래도 살기 위한 필수 덕목이다. 적어도 강백수의 경우에는 그 정도의 믿음을 견지해야 한다.


Track List

  • No
    곡명
    작사
    작곡
    편곡
  • 1
    24시 코인 빨래방
    강백수
    강백수
    강백수, 이윤재, 황치, 이원진, 하헌재
  • 2
    오피스
    강백수
    강백수
    황치
  • 3
    삼겹살에 소주
    강백수
    강백수
    강백수, 이윤재, 황치, 이원진, 하헌재
  • 4
    울산
    강백수
    강백수
    황치
  • 5
    일회용 라이터
    강백수
    강백수
    강백수, 이윤재, 황치, 이원진, 하헌재
  • 6
    와일드 사파리
    강백수
    강백수
    강백수, 이윤재, 황치, 이원진, 하헌재
  • 7
    가르시아
    강백수
    강백수
    강백수
  • 8
    기억해
    강백수
    강백수
    강백수, 김홍용, 황치
  • 9
    거지폴카
    강백수
    강백수
    강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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