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註 : 리뷰의 제목은 황정은의 장편소설 『계속해보겠습니다』(2014)에서 빌려왔습니다.)

앨범은 「Pride」에서 갑자기 정체를 드러낸다. 레이어로 켜켜이 쌓은 사운드 스케이프, 원만한 상승과 하강, 에코와 중얼거림이 가미된 보컬을 다른 수록곡에서 선보일 때, 이 곡에서는 대뜸 보컬부터 먼저 나온다. 그러다 가성 위주의 보컬로 한 차례 꺾는다. 코러스를 가미했기에 전환은 부드럽게 이어진다. 곡은 이내 어그러진 질감의 보컬을 조심스레 삭이는 방식으로 잦아든다. 이 앨범의 가치는 이것으로 해야 할 말을 했기에 충분하다. 해야 할 말의 길이가 길어야 하는 작품이 있고, 짧아야 하는 작품이 있다. 『Jay Knife』는 후자에 속한다. 생각보다 청각적인 표현이 두드러지는 앨범이기 때문이다. 

앨범은 반복과 반목이 끊임없이 뒤엉킨다. 현기증처럼 모호한 소리가 반복되는 형국을 일컬어 「Familiar Sounds (친숙한 소리들)」이라고 이름 붙인다. 타인과 나는 다르다는 사실을 거듭 풀어낸다 (「When You Fall In Love」). 엇나가는 파편은 반복적이고 ( 「Nighttime」), 깔끔한 팝은 모호한 메시지를 답보한다(「Do What You Want」). 

대체로 전자음악의 범주에 속하는 곡들이 많지만, 「Is there any way you could change?」의 신경질적인 보컬에는 컨트리의 성향이 잔잔하게 드러난다. 「Untitled 2」와 같은 곡은 일렉트로니카에서 출발하여 포크 록으로 점차 뻗어나간다. 「Dream」은 오롯한 베드룸 팝이다.

이 작품의 장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이 앨범은 일종의 강박관념에서 자유롭다. ‘루프’를 뼈대삼은 앨범은 음악 자체보다 악곡을 어필하려는 강박관념이 먼저 드러날 수 있다. 때문에 답답해질 우려가 있다. 이 앨범은 이러한 리스크를 날렵한 프로듀싱으로 완화한다. 앨범의 가장 간결한 곡들조차도 깊은 호흡을 갖춘 것 또한 이 앨범의 장점이다. 곡 안에 여백이 충분하다. 그렇기에 청자들에게 음미할 틈을 준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결국 하나로 간추려서 말할 수 있겠다. 이 작품은 앨범에 맞는 호흡과 구조를 지녔다. 

그래서 더 궁금하다. 앨범이 뼈대로 삼은 ‘루프’는 무엇이란 말인가. 파편을 모으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 앨범은 끊임없는 고통, 자기 자신에 대한 불확실함, 상대방에 대한 염려, 아픔을 통해 드러나는 관계, 꿈과 현실의 괴리감, 슬픔과 밀접하게 연관된 기쁨, 가벼운 회피와 묵직한 직설이 빚은 현실감 등이 알알이 박혔다. 기쁨도, 꿈도, 질문도, 음악도 계속되기에, 아픔도 계속되고, 고통도 계속되고, 번민도 계속되고, 괴리 또한 계속된다. 이 앨범의 ‘루프’는 결국 계속 이어지는 삶, 반복되는 삶을 은유한 것이 아닐까.  

어쨌든 이 앨범은 그 모두를 나름의 폼으로 담뿍 껴안는다. 그 점이 미쁘다. 「Myp3」의 소란스러운 수더분함마저도 즐겁게 들을 수 있다. 이쯤 되니 「Pride」의 뒷부분이 다시 궁금하다. 무엇이 다정의 보컬을 일그러트렸을까. 무엇이 다정의 보컬을 잦아들게 했을까.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지만, 앨범은 대답 없이 끝났다. 확실하지 않은 것은 말하지 않는 게 낫다. 그게 건강에도 좋다. 

쓸데없는 말까지 나왔다. 한 가지 질문만 남았다. 다정은 다시 시작할까. 그랬으면 좋겠다. 그때가 되면 다정도 다정의 음악도 다음 장으로 수월하게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