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 프시케 그리고 푸른 수염의 아내」

[안상욱] 시작은 정규앨범 『Unforgiven』 발표 후 1개월쯤 지났을 때이다. 「Unforgiven」에 집중했던 대중들의 시선이 무뎌지던 시점,  "Boom Boom Boom 내 심장이 뛰네"라는 가사와 이에 어울리는 박진감을 선보이는 (그러면서도 SNS 챌린지 도전 의욕을 고취시키는) 코레오로 가득찬 뮤직비디오를 발표하고, 음악 방송 순회를 시작했다.  이후 물오른 유머감각을 선보이는 르세라핌의 자컨을 연이어 공개했고, 다수의 챌린지가 몇백만뷰를 가뿐히 넘기며 SNS를 점령했다.  최근 K-Pop에서 흔히 접하기 힘든 '후속곡 전략'으로 첫 정규앨범에 대한 장기간의 집중도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차트의 뒤따르는 호성적이 이를 증명한다.) 이 곡의 성공에는 여러 요인들이 있다. 소속사가 면밀하게 설계한 홍보 전략의 결과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K-Pop씬에서도 보기 드문 '좋은 곡'이라는 원료에 대해 짚어볼 필요가 있다.  르세라핌에 설정한 '(외부의) 역경을 뛰어넘는 나'라는 기존 세계관과는 결이 다른, '(내면의) 금기에 도전하는' 가사로 기존의 세계관에서 오는 무뎌진 감흥을 보완했다. 아울러, 랩과 노래를 오가며 여러 종류의 스타일로 조립하여 자칫 산만해질 수도 있었던 가창은,   파트의 톤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달라지는 저지클럽 비트를 중심축으로 일관성을 확보하며 장르 음악의 쾌감까지도 제대로 전달하는데 성공한다.  (같은 저지클럽 비트인 뉴진스의 「Ditto」(2023)와 비교해 본다면 이 곡의 비트가 지닌 박진감의 강도를 체감할 수 있다.) 그 밖에도, 전작 『Antifragile』(2022)의 트레일러 영상 「The Hydra」의 BGM이 깜짝 등장하는 도입부,   예상을 뒤엎는 동작으로 가득한 코레오그래피,  다양한 국내외 아티스트들과 협업한 리믹스 프로젝트,  곡의 제목인 '이브', '프시케', '푸른 수염의 아내'가 지닌 각각의 함의 등 촘촘히 숨어있는 파생 정보들은  K-Pop 팬들에게 아는만큼의 재미를 전달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곡이 좋다는 것은 차트에서 성공하기 위한 필수요소(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이 정도의 정성과 노력이 더해진 '좋은 곡'이라면 듣는 이들이 오랫동안 기억해둘만 가치가 있다.  

[유성은] 뉴진스가 먼저 선보였던  「Ditto」(2023) 의 장르 ‘저지클럽’을 바탕으로, 꾸준히 밟아온 세계관과 한 번 들으면 떨쳐낼 수 없을 정도의 중독성을 더해 「이브 프시케 그리고 푸른 수염의 아내」가 탄생했다. 그동안 르세라핌이 발표했었던 곡들에서 접할 수 있던 거창하고 극적인 마이너 멜로디와 코드 사용을 배재하고, 단음 반복에 가까운 구성, 신나는 리듬을 크게 강조한 클럽튠을 완성했다. 수록곡들의 플로우와 스타일로 넘실대던 Rosalia의 기운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시대의 금기를 모두 어겼던 세 인물의 이름을 조합한, 길어서 기억하기 힘들지만 강하게 인상에 남는 제목이 우선 독창적이다. 상대적으로 친절하고 검증된 방식의 전작들에 비해, 무척 속도가 빠르고 아이돌답지 않게 어두운 이 곡에 대중들은 훨씬 극적으로 반응했다. 세상 모든 자주적인 의지가 다 담긴 기획 의도에 일정 부분 벗어난 곡들로 동세대의 경쟁자 아이브나 뉴진스와는 또 다른 대중들의 큰 선호를 얻어내었다. 노래만큼이나 중독적이고 각종 챌린지에 최적화된 무척 인상적인 군무 역시 이 곡이 크게 사랑을 받은 주요한 원인이다. 저음과 고음, 중음이 잘 조화된 멤버들의 가창과 랩핑 역시 상대적으로 밋밋한 구성의 곡을 총천연색으로 만드는데 기여했다. 세상은 생각했던 대로 돌아가지 않는 법이고, 수록곡에도 정성을 다한 프로듀싱은 대중들의 큰 사랑으로 보답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