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Zine

황진아 #1. 앨범 제작기

835 /
음악 정보


올해 한국대중음악상이 장르 분과를 개편하면서 크로스오버 음반 부문이 일단 사라지게 되었다. 다양한 장르 혼종이 대중음악계 일상이 된 현 상황에서, 크로스오버 성격이 짙은 음악의 경우 해당 음악의 중심이 되는 장르 분과가 이를 흡수하면 된다는 취지였다. 근래 대표적인 국악 크로스오버 음반이었던 이날치의 『수궁가』(2020)를 모던록 분과가, 추다혜차지스의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2020)를 알앤비 분과가, 해파리의 『Born by Gorgeousness』(2021)를 일렉트로닉 분과가 가져간 것처럼 말이다. 일견 이해와 공감은 간다. 다만 황진아의 이 음반 『Short film』(2022), 박지하의 『The Gleam』(2022) 처럼 현재 시상식에 마련한 장르 분과로 분류하기에 모호한 음반의 경우 설사 비슷한 장르 분과를 찾아 들어간다 한들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 아쉬움과 걱정이 앞선다.

내부자로서 마치 외부인처럼 말하기는 했지만, 반대로 이 같은 경계와 영역을 가로지르는 아티스트와 음악을 마주하는 상황은 한국대중음악상의 고민임과 동시에 개인적으로는 큰 반가움이다. 황진아는 전작 『The Middle』(2019)로 연주자로서의 고민을, 김보림·서수진과 함께 프로젝트 팀 '밤새'로 활동하며 본격적인 영역 넘나들기를 선보였고, 올해 두 번째 음반을 통해 또 다른 시야와 정체성을 확보했다. 눈비가 길에 날리던 지난 1월, 황진아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 인터뷰이 : 황진아
○ 인터뷰어 : 정병욱 (음악취향Y)
○ 일시/장소 : 2022년 1월 19일 15:00~17:00, 양재동 카페
○ 사진 : 황진아
○ 녹취 : 정병욱 (음악취향Y)


 

“이 음반을 만들면서 ‘황진아의 2집이 너무 궁금하다.’라는 생각이
그냥 한 사람으로서 계속 들었거든요”


 

정병욱 (이하 '정') : 『Short film』을 발매하고 이제 2주 정도 지났죠? 관련해서 소화하시는 일정들은 어떻게 되세요?
 

황진아 (이하 '황') : 《i-D Korea》라는 음악, 패션, 문화 등 예술 전반을 다루는 웹진이 있어요. 거기서 인터뷰(링크)를 했고, 오늘 화보랑 릴스 같은 형태로 앨범의 한 곡을 연주했는데 그게 아마 공개(링크)가 될 거에요. 사실 이 앨범을 준비하는 데에 2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거든요? 이 음반을 퍼포먼스로 보여드릴 수 있는 공연을 준비하고 있어요. 중간 중간 라이브 무대를 선보이면서 이 무대들을 종합해 올 하반기에 1집 레파토리와 함께 단독 콘서트를 할 예정이에요.
 

: 아, 네. 『The Middle』(2019)이랑 같이 해서요?
 

: 네. 70~90분 정도의 공연을 할 생각이고요. 쇼케이스 같은 형태, 그러니까 앨범에 있는 트랙들을 그대로 연주만 하는 공연 말고, 복합적인 형태였으면 좋겠어요. 음악 스타일도 그렇고, 뭔가 무대를 향하는 시선도 그렇고, 여러 다른 방면으로 감각을 느끼게 하는 게 훨씬 좋을 것 같아서 그런 것들을 구상하는 중이에요.
 

: 제가 알고 있기로 1집의 경우, 발매 후 좀 뒤늦게 쇼케이스를 하지 않았나요?
 

: 맞아요. 원래 바로 하려고 했는데 연주자가 갑자기 다쳐서 겨울로 미뤘죠.
 

: 음반의 경우 1집은 종이 케이스로 발매했는데, 이번에는 쥬얼 케이스로 하셨더라고요. 특별한 이유나 계획에 의한 것일까요?
 

: 사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기보다 쥬얼로 한 번 해보고 싶었어요. 종이 패키지를 한 번 해봤으니까. (웃음) 음반 디자인도 계속 유행이 변하잖아요. 1집 당시에는 종이가 유행이었던 것 같은데 다시 좀 회귀하는 것 같더라고요. 뭐랄까. 더 정통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고, 마침 아트워크도 형광색으로 나와서 쥬얼 케이스가 느낌이 어울리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번에는 소량 찍었어요. 일부러.
 

: 각각 몇 장씩 찍으셨나요?
 

: 『The Middle』 때는 1,000장 찍었고, 이번에는 300장이요. (웃음) 1집 CD가 아직도 너무 많이 쌓여 있더라고요. (웃음) 내고 나서 CD를 구매해 주신 분들이 생각보다 많기는 했는데 워낙 CD를 예전처럼 꾸준히 사시지는 않으니까 결국 '적게 찍을까?' 한 거죠. 그런데 아직도 모르겠어요, 생각보다 많이 팔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웃음)
 

: 음반 형태 말고도 디자인도 고민하신 흔적이 많더라고요. 디자이너분하고 같이 커뮤니케이션을 직접 하셨나 봐요.
 

: 네. 이번 앨범 디자인은 주로 사진을 레이어로 많이 활용했는데요. 그래서 디자인 작업에 앞서 사진 작가분과 먼저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전윤영 작가와 촬영만 네 차례 정도 했고요. 진짜 더운 여름 때부터 한 달에 한 번 정도 만났어요. 제가 만들어낸 이야기에 음악을 맞추는 게 아니라 음악 스스로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존재한다고 생각했고, 그러한 가능성을 끌어내는 게 앨범의 목적이었거든요? 사진에서도 그런 식으로, ‘내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어떤 이야기나 사연이 담기는 컷이었으면 좋겠다.’라고까지만 얘기를 하고, 작가님과 즉흥적으로 계속 사진을 찍었어요. 음반 메인 커버 이미지도 작가님이 굉장히 집중적으로 손을 강조해서 찍어보고 싶다고 해서 찍은 거예요. 촬영 이후 디자이너에게도 마찬가지로 ‘이 곡들이 짧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보니 아트워크에서도 뭔가 그러한 영화필름 같은 느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어요. 그렇게 해서 나온 이미지의 색이나 분위기가 좀 가라앉아 있다 보니까 타이틀 같은 부분은 좀 밝은색으로 했죠. 사진 선택도 제가 한 게 아니라 디자이너가 다 했어요. 세세한 부분은 작업해주는 분에게 맡기는 편이에요.
 

: 저는 사실 아트워크 내지 이미지 같은 경우 아이디어에 어느 정도 깊숙이 관여하신 부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어요. 예를 들어 대부분의 이미지에서 얼굴을 돌리고 있거나 가리거나 하더라고요. 음반 타이틀이 『Short Film』인데 결국 영화적 서사라는 게 연출자든 배우든 ‘자기’를 완전히 드러내지는 않잖아요.
 

: 사실 그 아이디어와 관련해서 별도 커뮤니케이션은 없었어요. 다만 제가 이 디자인을 확인하고 얘기를 나눈 입장에서, 직접적인 의견을 서로 주고받지 않아도 이해하고 동의하는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특정한 표정이나 얼굴이 정면에 보이는 순간 굉장히 강한 서사가 생겨버리잖아요. 그런데 제가 이 음악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원했던 건, 듣는 사람이 음악에 자신의 서사를 대입하기를 바랐거든요. 그러면 이제 그 서사는 굉장히 개인적인 서사들이 될 것이고요. 그래서 나의 표정이나 내가 전달하고 싶은 직접적인 것들을 가리는 걸 저도 선택했던 것 같아요. 디자이너도 마찬가지의 의견이었고요.
 

: 이 앨범에 언급한 “누구나 자신만의 영화 하나쯤은 있다”라는 코멘트와 말씀하신 맥락이 이어지네요.
 

: 네. 음악을 하면서 조금씩 바뀌고 있는 성향 중 하나인데, 특정한 것을 느끼게끔 강요하는 방식이 불편한 지점을 만들 때가 있더라고요. ‘이 음악을 듣고는 무조건 행복해져야 해’, ‘엄청 슬퍼졌으면 좋겠어’ 같은 생각이요. 물론 곡마다 의도는 분명히 있지만, 그게 적당한 선이었으면 좋겠더라고요. 스스로 어떤 상황을 겪을 때도 내 생각이 들어갈 만큼의 공간이 남아 있으면 좋겠는데, 그런 생각이 이번 앨범의 음악과 아트워크에도 담긴 것 같아요.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저와 청자의 입장이 다른 만큼, 제가 의도한 만큼 안 될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이 음악이 굉장히 강렬한 메시지처럼 들릴 수도 있잖아요. 그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모든 걸 다 관장할 수 없으니까요. (웃음)
 

: 그렇죠. 아티스트가 의도하고 관장할 수 있는 영역이 있고. 않은 부분이 있으니까요. 저는 이번 앨범 타이틀에서도 그런 인상이 좀 느껴지거든요? 1집의 『The Middle』이라는 타이틀은 분명 그 안에 담고자 한 의미가 있고, 거기서 지향하는 주제 의식이나 메시지가 분명하다고 여겼어요. 그런데 이번 『Short Film』 같은 경우 아무래도 제목 자체가 일종의 내용이 아닌 그릇을 지칭하고 있다 보니까 그것이 의도하는 바가 분명 있다고 하더라도, 청자가 담을 수 있는 상상력이나 서사는 폭이 확연히 넓어지게 되잖아요. 이 같은 생각이 제작하는 과정에서 나온 걸까요? 아니면 처음 이번 앨범을 계획할 때부터 있었던 걸까요? 지금까지 연주 활동을 하고, 1집도 내고 활동을 해보니까 다음 스텝은 이렇게 해야겠다는 구체적인 그림이나 생각이 있었는지 궁금해요.
 

: 이 콘셉트의 경우 거의 앨범 작업 초반부터 있었던 생각 같아요. 구체적으로 의도해서 ‘이번에는 영화음악 같은 사운드를 만들 거야’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음악을 만들면서 제가 그렇게 느끼기도 했고, 제 음악을 들어주는 분들도 음악으로부터 ‘어떤 장면을 상상하게 된다’라는 식의 피드백이 굉장히 많았어요. 실제로 제가 음악을 만들 때도 특정한 장면을 상상하면서 만들 때도 있고, 만드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상상이 생겨날 때도 있는데, 어쨌든 제가 이 음악이 ‘완성됐다’라고 느끼는 시점은 그 장면이 뚜렷해질 때였어요. 1집의 「게토」 같은 경우에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그림이 선명했고, 당시 그게 명확했을 때 음반에 실을 수 있었어요. 저 같은 경우에 (무대와 상황에 따라 느끼는 감각이 좀 달라서) 음악을 세상에 내놓으면 그걸로 끝이 아니라 좀 더 발전시켜 가는 편인데, 그러다 보니 명확한 그림이 완성됐을 때여야만 음악이 완성된다고 생각하는 편이거든요. 그런 과정을 1집 활동 때 거치다 보니 이번에는 애초부터 음악 자체에서 특정한 감각을 만들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어요. 그렇게 곡을 차곡차곡 만들다 보니 그중에 「Short Film」이라는 곡이 나온 거죠. 마침 이 제목이 내가 생각하고 있는 주제를 하나로 묶고 관통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전체 앨범의 주제로 선택했죠.
 

: 이번 앨범에 2년 걸렸잖아요. 마침 2년 전에 미디(MIDI)를 시작했다고 들었어요. 어떤 계기가 있었을까요?
 

: 미디 시작도 2집을 겨냥한 거였어요. 그러니까 1집을 만들 때는 제 성향이라든가 음악가로서의 황진아를 찾아가는 시간이었는데, 오로지 거문고 하나로 무언가를 계속 만들어내다 보니까 이 모든 게 중첩되더라고요. 저희는 ‘떡 진다’라고 얘기하는데요. (웃음) 모든 게 불분명해지는 순간이 무척 많았어요. 그게 비단 아무리 좋은 프레이즈를 잘 만들고 다듬더라도, 녹음이라는 시스템 안에 들어가면 주파수가 겹쳐버려서 마스킹(Masking)이 되는 상황이 많더라고요. 이걸 언제까지나 음향 감독님에게, 혹은 그날 나의 운에, 그날 공연장 상황에 맡길 수는 없다는 생각을 계속했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 라이브 셋을 계속 바꾸기도 했는데, 결국 그 모든 라이브 셋이 어떤 식으로든 좀 불안정했어요. 그래서 이렇게는 안 되고, 내가 이것들을 직접 컨트롤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미디를 배우기 시작했고 그게 첫 번째 이유였어요. 두 번째 이유는, 이전부터 거문고를 활용해 만들고 싶은 소리가 이것저것 무척 많았는데, 그 방법을 ‘모른다’, ‘모른다’, ‘하고 싶다’, ‘하고 싶다’라고만 생각하다가 ‘해보자’라고 정말 결심을 한 시점이 2년 전이기도 했어요. 내가 만들고 싶은 소리의 레이어를 쌓기 위해서 음향적으로, 음악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미디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전자음악에 활발하게 쓰이는 일종의 음악 장르에 관한 공부를 함께 많이 곁들였어요. 미디를 활용하는 대중음악 장르가 굉장히 광범위하고 다양하잖아요. 팝, 힙합, 전자음악 장르는 말할 것도 없고요. 그래서 이러한 음악이 주로 지향하는 서사라든가, 빌드업 하는 방식, 분위기를 반전하는 방식 이런 것들을 같이 공부하고 많이 들으면서, 뭔가 이전까지 내가 뻔하게 계속 해왔던 것들을 깨고 싶었어요. 그동안 발표한 곡들은 연주 활동을 하면서 만든 음악을 모으고 모아서 음반을 냈다면, 이번에는 오히려 반대로 ‘음악을 먼저 만드는 작업을 해보자’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익숙한 것에서 벗어났을 때 상상하지 못했던 소재들을 찾아내고, 예상하지 못했던 구성들을 만들어내고 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 어떻게 보면 다른 언어를 배우는 과정이잖아요. 이전에는 거문고와 전통음악이 내 모국어로서 이를 활용한 내 표현과 문법을 찾고자 했던 시간이라면, 미디를 배우고 다른 장르의 서사나 방법론을 깨우치는 과정이 마치 외국어를 배우는 것처럼 생소했을 텐데요.
 

: 맞아요. 그래서 사실 너무 더디게 발전했고, 활동과 공부를 병행해서 하다 보니까 시간을 쪼개도 굉장히 모자랄 때가 많았어요. 그때마다 이번 음반의 공동 프로듀서이기도 한 뮤지션 ‘랙조’(Lackjoe)가 이러저러한 굵직한 아이디어들을 굉장히 많이 던지면서 도움을 줬어요. 저와 랙조의 아이디어들을 재조합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이전과 다른 방향의 작업을 할 수 있었어요.
 

: 그렇군요.
 

: 제가 어느 정도 스케치를 해갔을 때 여러 가지 발전 방향에 대해서 제시해 준 것들도 었고요. 저 같은 국악 베이스의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관점들이 되게 많았어요.
 

: 예를 들면 뭐가 있을까요?
 

: 예를 들면 첫 곡 「새벽」의 중간에 브레이크가 있어요. 그런데 그 곡은 이전에 원래 브레이크 없이 그냥 쭉 빌드업 돼서 확 변하는 형식이었거든요. ‘거기에 브레이크 한번 줘보는 게 어떨까?’, ‘아예 다 소리를 빼버리면 어떨까?’ 이야기를 듣고, 실제로 빼봤더니 좋더라고요.
 

: 뒷부분 말고도, 브레이크에도 있는 채집한 빗소리 말씀이시죠?
 

: 네. 원래는 채집한 사운드로 뒷부분에 하모니 만드는 섹션이 있엇고, 그 앞에 A 섹션이 바로 붙어 있었어요. 쭉 연결되는 형식이었는데, ‘중간에 아예 소리를 확 비우고 가보면 어떨까?’ 해서 해보니 좋더라고요. 그런데 이걸 실제 앨범의 수록곡으로 들으려고 하니 그 부분이 조금 어색해서 뒤의 빗소리를 당겨 넣은 거예요. 랙조의 손길이 제일 많이 간 곡은 「휘몰이」인데, 이 곡은 제가 스케치를 하는 과정에서도 상의를 많이 했고, 마지막 믹스 과정에서 제가 짜놓은 드럼 비트를 가지고 좀 더 IDM(intelligent Dance Music) 장르 분위기가 나도록 랙조가 편곡했어요. 그런 면에서 도움을 굉장히 많이 받았죠.
 

: 작업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일까요? 아니, 언제였어요?
 

: 매 순간, 매분, 매초? (웃음) 일단은 금전적으로는 괜찮았어요. (서울문화재단) 기금을 받은 게 엄청난 수혜이고 특혜였죠. 1집은 기금 없이 클라우드 펀딩으로 모금한 돈으로 제작해서 사실 뭔가를 더 해보고 싶고, 참여하시는 분들 지원을 더 하고 싶어도 어느 정도 맞춰야 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아티스트들에게 (엄청 많이 주지는 못했지만) 그들이 받아야 할 각자의 권리를 최대한 제가 챙겨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마음이 너무 좋았어요. 금전적인 면에서는 정말 음반을 만들기에 충분했어요. 그래서 남은 활동도 충실하게 최대한 해보려고 해요. 다만 작업에 있어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 이 앨범에 실린 곡 중 오로지 이번 작업을 위해 새로 만든 곡은 2~3곡 정도밖에 안 되고 나머지는 원래 있던 곡에 대한 편곡인 경우가 많아요. 앞선 음반에 실리지 않은 곡들이요. 이 곡들을 다시 끄집어내어 편곡하면서 과거의 저와 엄청나게 부딪히더라고요. 과거의 황진아는 분명히 여기에서 차근차근 빌드업 하는 서사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그렇게 만들었던 것 같은데, 당시의 제가 이 음악들을 1집에 싣지 않는 선택을 했을 때는 분명 이유가 있었을 거란 말이에요. 그게 저는 캐릭터의 애매함이었다고 생각해요. 캐릭터가 애매해서 1집에 싣지 않았던 그 곡들에 이번에는 캐릭터를 주고 싶었던 거죠. 아무리 오래전에 연주했던 곡이라도 계속해서 듣게 되고, 끄집어내게 되는 곡이라면 분명 그 음악이 제게 의미하는 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 「바람」이 오래 된 곡인 걸로 알아요.
 

: 네. 「바람」은 정말 옛날 곡이고, 마지막 곡 「고독」 같은 곡도 너무 아까운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던 중) 이번에 아예 마음을 먹고 캐릭터를 부여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런 면에서 굉장히 힘들었어요. 아예 없는 걸 만들어내는 것보다 있는 곡을 원래의 모습에서 변화시키는 것, 그러니까 이게 평면적이고, 쉬운 편곡이 아니라 만족할 만한 캐릭터를 부여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또 하나 어려웠던 점이 있어요. 이 음반을 만드는 게 제 내면적으로는 활동 과정의 하나의 방점 같은 거였는데, ‘황진아’가 만들어오던 음악을 황진아가 봤을 때 ‘비슷하다’라는 생각이 어느 순간 든 거예요. 스타일이나 방식이 발전해가는 방식을 나는 너무 잘 아니까요. 이를테면 제가 지닌 몇 가지 성향이 있어요. 잘 깨지지 않는 특징이 있는데, 그것을 깨고 보려고 하는 게 사실 제일 어려웠어요. 분명 내가 만드는 건데 이전의 나와 다른 태도로 만든다는 것은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사실 어려운 일이었고, 저는 그래도 이 음반에서 60% 이상은 변하려고 했다고 생각하는데, 이처럼 다른 시점으로 본다는 사실이 어려웠어요. 사실 어려운 점을 말하면 끝도 없어요. (웃음) 이 음악에 전자 음향들이 많이 들어가잖아요.
 

: 네.
 

: 그런데 샘플을 쓴 것도 있지만, 그런 건 정말 몇 개 안 되거든요. 웬만하면 거문고 소리를 가지고 다 왜곡해서 만들어낸 소리예요. 앰비언스 사운드도 한 다섯 단계 정도를 거쳐서 만들어냈어요. 거문고 소리를 리버브도 시키고, 리버스도 시키고 이렇게 저렇게 해보는 거죠. 이런 과정을 거치며 비중을 정하는 것도 어려웠어요. 아무리 그래도 이 앨범은 거문고 음반인데 전자음악 소스가 어느 정도 들어가야 적당할까. 녹음하기 직전까지 스스로 판단했어야 했어요. 만들어 놓고 이번에 싣지 못한 곡들은 대부분 미디의 비중이 너무 높아서, 그래서 어쩌면 듣기에는 괜찮지만, 이 음반에 하나로 묶기에는 어렵다는 판단이 들어서 포함하지 않은 곡들이었어요. 믹스 과정도 쉽지는 않았어요. 같은 악기로 사운드를 계속 만지다 보니까 주파수가 자꾸 부딪히더라고요. 계산을 잘 해야 했어요.
 

: 말씀하신 작업의 고민 지점이나 어려움은 결국 거문고 연주자로서의 정체성이 더 강했던 ‘황진아’라는 아티스트가 이제 거문고를 베이스로 한 ‘창작자’에 훨씬 더 가깝게 변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고민이나 부딪히는 지점들이라고 저는 느껴지거든요?
 

: 맞아요. 너무 정확해요. 저는 이 앨범이 황진아의 연주 앨범보다는 황진아 프로듀싱 앨범에 더 가깝다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 프로듀싱 앨범이라고는 해도, 그냥 미디로 찍은 게 아니라 거문고를 활용한 사운드잖아요. 이번 앨범에 미디 비중에 따라 취사선택한 곡이 있다고 한 것처럼 단순히 연주자, 프로듀서로서를 떠나 음악의 정체성을 잡아가는 측면에서도 계속 고민의 지점이 있으실 것 같아요.
 

: 맞아요. 이제 다시 원점으로 또 돌아온 측면이 있어요. 이 앨범을 내고 나서는 다시 연주자 황진아로서의 고민을 하고 있더라고요.
 

: 계속 부침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번 앨범이 하나의 시작이자 방점이었으니까. 연주, 창작 외에도 워낙 병행하는 프로젝트나 협업도 많이 있으시니까요.
 

: 그래서 이번 앨범은 일종의 정반합의 ‘합’이라 생각하고 있는데, 음반을 다 만들고 나니 저는 이 ‘정’에 대한 ‘반’의 관점이 다시 고개를 드는 것 같아요. 퍼포머로서 음악을 어떻게 보여줄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이 앨범을 만들 당시에 창작자, 프로듀서, 음악가로서 소리에 대한 고민에 집중했다면, 세상에 나온 음악들도 그렇고, 다른 음악도 퍼포머의 모습을 어떻게 보여줄지 고민하는 시점인 거죠. 제가 “2악장에 접어든 것 같다”고 말한 적 있는데 이 말이 그런 의미였어요. 그런데 아무리 내가 노력하려고 해도 진짜로 그렇게 느끼지 않는 이상 잘 안 되더라고요. 지난 2년은 정말 (퍼포먼스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보여주는 것보다 내실에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에 너무 강렬히 사로잡혀서 그것에 온전히 집중했다면,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이걸 하면서 그게 어느 정도 채워졌다고 생각이 들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봤을 때 정말 좋은 퍼포머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 어찌 됐든 결과물로서 2집은 이미 세상에 나왔고, 이제 한동안은 이걸 잘 보여주는 일에 관심이 쏠리시는 거잖아요.
 

: 맞아요. 사실은 아직 2집에 관해 이야기하는 게 한창 초반부이기도 하고, 제게 쉽지는 않은 일이에요. 지금 이 순간도 이야기하면서 머리에 정리하고 생각하고 하는 것들이 있어요. 1집은, 그것도 처음에는 그랬지만 너무 많이 얘기했으니까 나중에는 정해진 비슷한 답변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그 생각을 여러 번 얘기하다 보면 ‘이 생각이 정말 내가 생각하는 게 맞았구나.’라는 확신이 생겼는데 지금은...
 

: 아직이신 거군요.
 

: 그렇기도 하고 이 음반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워낙 혼란스러운 과정 안에서 만들었잖아요. 연주자, 예술가로서 제 성향이 한 곳만 보고 달려갈 수 있는 성향은 아닌 것 같아요. 계속 흔들리면서, 그 흔들리는 과정을 극복하면서 찾아내는 것들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러다 보니 이 음반을 만들 때 유난히 많이 흔들렸고, 심지어 데뷔할 때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어요. 오히려 1집보다도요.
 

: 이렇게 힘들게 탄생한 음반에 대해 얼마나 만족하실까요?
 

: 저는 일단 음반으로서는 만족해요. 이렇게 만족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그러니까 그게 막 이 음반이 최고라고 자랑하려고 하는 얘기가 아니라 스스로 정말 만족해요. 잘 해낸 것 같고요. 누구보다 제 자신이, 한 개인으로서 황진아의 2집을 가장 기대했던 사람 중 한 명이었거든요. 그러니까 저는 계속해서 저를 객관화하여 보는 연습을 하는 중인데, 이 음반을 만들면서 ‘황진아의 2집이 너무 궁금하다.’라는 생각이 그냥 한 사람으로서 계속 들었거든요? 그리고 이 같은 생각이 (많지는 않지만) 내 음악을 좋아해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몇몇 분들에게도 같은 느낌으로 다가올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어요. 그래서 대충 만들 수 없었어요. 머릿속에 애매하게 맴돌던 소리를 목격하고 이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도 상당히 만족했지만, 만들어 놓은 결과물을 다른 어디엔가 내놓을 때도 부끄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굉장히 만족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 다음 편에 계속 ...)

Editor

  • About 정병욱 ( 114 Article )
SNS 페이스북 트위터
TOP
Error Message : Query was emp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