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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魔王 #23] Structure, Rhythm, Melody : 한국 대중음악 사상 가장 다채로운 재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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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정보

90년대를 수놓은 아티스트들의 면면을 훑으며, 그 이름만으로 하나의 스타일이나 흐름을 상징했던 이름들, 그 중에서도 대중성과 음악성이라는 가장 난해한 과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해 낸 인물을 떠올려 보면 생각보다 단촐한 리스트만을 얻을 수 있다. 예의 그 압도적인 물량을 바탕으로 사운드의 퀄리티 그 자체를 끊임없이 갈구했던 이승환, 음원과 음원이 어울리는 방식, 그리고 그것을 직조하는 노하우에 있어서 다른 누구도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소리’의 스펙트럼을 만들어 냈던 윤상, 대중들에게 프로듀싱의 개념을 각인시키며 재즈에 기반을 둔 독특한 웰메이드 ‘팝’을 만들었던 김현철, 새로운 것과 지나간 것을 조화시키며 끊임없이 비정격적 음악만들기를 의도했던 정석원, 그리고 그의 행보 그 자체를 대중음악의 역사로 이어나간 서태지가 바로 그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들국화와 어떤날이 만들어놓은 새로운 조류를 정교하고도 대범하게 확장시킨 이들의 이름만으로 90년대 한국팝의 사운드, 그 텍스쳐의 얼개는 얼추 그려진다.


단촐한 리스트.jpg


가만, 한 명의 이름을 더 언급해야 할 것 같다. 바로 신해철. 그러나 그의 이름이 소환되는 맥락은 위에 언급된 사람들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다른 이들이 각각 편곡자, 프로듀서, 작곡가로서의 개별적 전문성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졌던 것에 반해, 신해철은 곡과, 이야기, 프로듀싱 등 다양한 재능이 동시다발적으로 연상되는 뮤지션에 가깝다. (심지어 그는 한국 대중 음악 사상 전문 작사가를 포함해 가장 빼어난 문장가중 하나였고, 적어도 나쁘지 않은(?) 보컬리스트였다.) 산울림과 부활의 유산에서 자라나왔지만 통상적인 로커라기 보다는 그저 한명의 훌륭한 팝 뮤지션에 가까웠고, 그런 의미에서 그를 비범한 시대정신을 품은 전방위적인 음악감독이라 불렀던 누군가의 평가는 일견 설득적이다. 하지만 여전히 불만은 남는다. 가령 세간의 평가와는 달리 개인적으로 신해철의 음악의 정수는 가사보다는 사운드에 있었다고 보는데, 그의 의식화된 가사는 적어도 정상급의 작곡능력 안에서만 그 호소력이 담보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대중음악에서 노랫말의 역할은 록이나 포크를 먹고자란 평론가들에 의해 실제보다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그의 음악을 뒤돌아 보며 전형적인 뮤지션 담론에서 벗어나 한명의 재능있는 팝 및 록의 작곡가이자 편곡자로서 신해철의 면모에 - 다소 의도적으로 - 접근했다. 그리고 뜻밖의, 사실은 너무도 당연한 결론을 뒤늦게 얻었다. 신해철은 한 세대가 목도한 가장 재능있는 송라이터중 한 명 이었다는 사실이다.

 

사운드의 어떤 정점



Structure: 대조의 미학


신해철의 작법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도입부와 코러스의 멜로디를 종종 노골적으로 대비시켜 구조적으로는 버스-코러스, 사운드적으로는 콰이엇-라우드 라는 일종의 클래식한 포맷이 가질 수 있는 쾌감을 극대화 시키는 것, 그리고 이 구조의 성공적인 수행을 책임지는 코러스부의 명쾌한 흡인력이다. 기술적으로는 70년대의 프로그레시브 록과 헤비메탈에서 영향 아래 담금질된 것이나, 이 같은 양식을 「껍질의 파괴」 와 같은 복잡다단한 헤비 록이나 「불멸에 관하여」 와 같은 클래시컬한 소위 아트 록 등의 장르 음악뿐 아니라, 「내 마음 깊은 곳의 너」 와 같은 발라드, 심지어 「일상으로의 초대」 와 같은 신스팝에도 일관적으로 적용시킨 것은 선배들의 음악에서는 여간해서 찾기 어려웠던 면모다. 흔히 ‘기승전결’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신해철은 멜로디적인 면에 있어서는 종종 명백한 종결(resolution)을 생략하는 때가 많은데, 덕분에 악보를 통해 느껴지는 전개에 있어서 정교하다는 느낌은 약하지만 실제 레코딩을 통해 확인될 때의 임팩트는 예외없이 빼어나다. 가령 「70년대에 바침」 은 회고조의 전반부와 성찰적인 후렴의 극명한 대비를 편곡 뿐이 아닌 멜로디적으로도 완벽하게 구현한 작품으로 신해철의 비범한 곡만들기 재능을 가늠할 전범과도 같은 작품이다.


회고와 성찰의 극명한 대비


Rhythm: 로큰롤, 그루브, 그리고 (노)땐스


신해철의 음악에서 흔히 간과되는 면모는 리듬에 대한 그의 지속적인 탐구다. 직접적으로는 댄스에 대한 관심이라고 잘라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의 리듬에 대한 관심이 장르의 틀 안에 묶인 적은 없었다. 그가 동시대의 이현도처럼 ‘춤’이라는 배경을 갖지 않은 뮤지션임을 감안할때 그 결과물의 수준은 인상적이었다. 그는 시퀀서와 밴드 플레이의 편곡에 모두 능했고, 「안녕」 이나 「재즈카페」 처럼 얌전한 음악으로도 대중들에게 충분한 리듬감을 일깨웠다. 「영원히」 나 「Hope」 처럼 시원하게 내달리는 경쾌함은 록 특유의 경쾌한 다이나믹은 물론이요, 70-80년대 빈티지 계열의 신스팝들인 「나에게 쓰는 편지」 와 개인적으로 신해철의 베스트 트랙중 하나로 꼽는 「일상으로의 초대」, 프린스 부럽지 않은 「Money」 나 「니가 진짜로 원하는게 뭐야」 , 혹은 「도시인」 , 「외로움의 거리」 등의 가벼운 훵큰롤들, 댄스뮤직의 탈을 쓴 펑크 록 「아주 가끔은」 , 심지어 Kylie Minogue와 Madonna를 깜찍하게 해체/재인용한 「너무 어려워」 등 신해철에게 있어 리듬은 필수불가결한, 하지만 상대적으로 과소평가된 요소였다. 90년대 중반 ‘댄스가요’의 범람속에 『노땐스』, 혹은 『Techno Works』 라는 이름을 걸고 다분히 의도적인 차별화의 벽을 치긴 했지만, 그의 의도가 고급스러운 감상용의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 혹은 이전시대 서구의 리듬의 인자들을 추적, 60년대 이후 국내에선 명맥이 끊긴 리듬 본위의 음악, 재밌게 놀 수 있는 잘빠진 가요를 남기고 싶어했던 것은 아닐까도 짐작한다. 「A.D.D.a」 를 들으며, 그에게 조금 더 많은 시간이 허락되었더라면 소망대로 퀸시 존스처럼 훵키한 할배로 커리어를 마감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과소평가 된 리듬 본위의 음악


Melody: 직관적인, 너무도 감성적인


멜로디 자체의 풍부한 울림, 진한 감정의 응집 및 소모를 겪게 만드는 음율이 아니고 신해철의 음악을 온전히 설명할 수 있을까? 그는 건반 중심의 소위 ‘작곡가’들이 가지는 고급스러운 보이싱이나 화성의 전개에 입각한 논리적인 전개 대신에 직관적인 멜로디의 감수성을 앞세우는 작곡방식에 보다 익숙한 인물이었고, 이는 종종 투박한 느낌을 주기는 했어도 결과적으로 악기가 아닌 입으로 불려 전달되는 보컬 음악의 본질적인 호소력이라는 측면에 있어서 무시못할 이점으로 작용했다. 특히 지나치게 논리적인 전개를 취하거나 도입이나 전개를 반주처럼 관습적으로 펼쳐놓지 않았기 때문에 도입부나 전개부다 상투적으로 낭비된다는 느낌보다는 곡의 초반부터 묵직한 느낌을 전해주는 경우가 많았다. 마치 John Lennon이 죽고 나서 재발견된 「Imagine」 이나 Michael Jackson의 사후 가장 많이 언급된 「Man in the Mirror」 처럼 고인이 된 신해철에게 가장 특별하게 남을 곡 「민물장어의 꿈」 은 그 대표적인 사례로, 특별한 음의 도약이나 장식이 없이도 감정의 골을 건드리는 음들을 만들어 내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Here I Stand For You」 나 「그저 걷고 있는거지」 와 같은 장중한 슬로우 템포 곡들에서 더욱 분명히 확인되듯, 그는 곡의 도입과 후렴에 이르기까지 작위적이지 않으면서도 감정을 충분히 끌어올려 전개시키는 데에 있어서 부활의 김태원과 함께 동일 장르에서는 가장 탁월한 감각을 보여주었다.


......


마왕 신해철, 한국 대중음악 사상 가장 다채롭고 재능있던 뮤지션 중 한명으로 기억될 그는 모순적이게도 음악외적 활동, 가사 몇줄이 환기 시키는 사회 및 정치적 이미지에 의해 규정되며 오히려 다양한 음악적 스펙트럼이 과소평가된 뮤지션이기도 했다. 물론 그를 이해하는데에 있어 다양한 시선이 존재하는 것은 정당하다. 신해철의 작곡가적 면모만을 떼어내어 집중하는 것 역시 그의 음악을 조금 더 재미있게 풀어 듣기 위한 의도적인 노력의 한가지에 불과하다. 다만 그의 죽음을 계기로 새삼 다시 발견하고 싶었던 것은, 신해철은 장르에 대한 배경 지식 혹은 음악에 대한 구조적인 이해를 동반하지 않아도 무리없이 공감을 이끌어내는 직관적이면서도 감성적인 ‘곡’ 만들기의 장인이었다는 점, 그리고 그것은 생각의 여지를 남기는 지적인 사색과 태도를 통해서만이 아닌 독창적이고 빼어난 음악적인 문법으로 늘 구체적이고도 명쾌하게 표현되어 왔었다는 사실이다. 장르나 스타일에 구애받지 않고 품고 있던 그림을 거침없이 음으로 옮겨 쓸 수 있었던 곡쓰기 능력, 분명 그것은 한명의 대중음악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싶어할 수 밖에 없는 드문 재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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