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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홍 #2. 소리를 따라가는 본능적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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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정보



“그냥 저는 생각하는 대로 쓰고,
그 안에서 제가 생각한 느낌을 최선을 다해 내보내요.

 

: 빵에서는 언제부터 공연하셨죠?
 

: 제가 2021년 6월부터 시작했어요. 2년 좀 넘었죠.
 

: 그때 처음 공연할 당시 코로나19가 한창 심할 때여서 공연장에 사람을 못 불렀어요.
 

: 그렇죠. 유튜브에 영상만 올렸어요.
 

: 빵이 유튜브를 할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요. 당시에는 유튜브에서 라이브 공연장 실황을 그리 자주 하는 상황이 아니었거든요.
 

: 그 전에 음악가로 처음 활동하던 시기는 어땠나요?
 

: 기억이 너무 많아서 어디부터 얘기해야 할까요?
 

: 민수홍이라는 음악가의 활동을 돌아보면, 기타를 처음 잡고, 밴드 활동도 하다가 지금의 포크 싱어송라이터 경력으로 이어지게 됐잖아요. 이러한 경력 속 여러 기억의 단편 중 첫 장면 정도면 어떨까요.
 

: 일단 저는 원래 프로그레시브 록과 아트록을 좋아했고요.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밴드음악도 좋아했죠. 지금도 노래를 잘하진 못하지만, 예전에는 더 못 했어요. 당시 내가 노래한다는 건 상상하지 못했고, 일렉기타와 베이스로 출발해서 밴드 음악만 계속했죠. 밴드 음악을 하던 20대 초반에는 제 스타일이 제대로 있지도 않았고, 쓴 곡도 (지금 봤을 때) 되게 좋은 곡들도 있지만 정말 부족했어요. 여러 사람이랑 함께하는 게 딱히 쉽지도 않고, 곡이 많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먹고사는 것도 힘들었고요. 일하면서도 음악은 좋으니까 일도 제대로 못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까 뭔가를 꾸준히 유지하는 게 힘들었어요. 막상 팀을 하더라도 오래 못 가서 깨지고요. 그러다가 양병집 형님을 만났는데, 그분이 저한테 자꾸 포크를 알려주셨어요. 제가 포크를 하면 좋은 음악가가 될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자꾸 노래해라 억지로 계속 시키고 저한테 어울리는 음악이라고 해서 Bread 같은 밴드도 알려주시고 여러 유명한 옛날 팝, 포크 같은 거 많이 알려주셨어요. 그렇게 하다 보니까 포크의 길로 왔는데, 아무래도 제가 음악을 해온 환경이 과정이 이렇다 보니 포크 음악에도 제가 거쳐온 취향이나 색채가 많이 들어갔고, 기타를 오래 연주했다 보니 기타 사운드도 좀 더 다양하게 들어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아까 아트록을 얘기했는데 아트록에도 포크 뮤지션이 꽤 있잖아요. 제가 좋아하는 Harmonium도 있고, Lucio Battisti도 있고요.
 


Lucio Battisti 「Giardini di Marzo」(1972)

: 루치오 바티스티 빼놓을 수 없죠.
 

: 포크와 밴드의 경계를 넘나드는 재미도 있고, 그런 사운드를 지금도 굉장히 좋아해요. 사실 저한테는 아트록이 포크로 들리는 노래가 꽤 많거든요.
 

: 그렇죠. 확장성이 있는 포크처럼 들리죠.
 

: 제가 진짜 좋아하는 앨범이 하나 있었는데 기억이 안 나요. ‘5 계절’이라는 뜻인데 영국팀이고.
 

: Magna Carta 인가요?
 

: 아아 맞아요.
 

: 소프트록과 프로그레시브록을 넘나들죠.
 

: 밴드 활동을 하다가 솔로 음악을 하게 된 거잖아요. 나 혼자서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의식적으로 중요했을까요?
 

: 의식했다기보다 항상 그랬던 것 같아요. 제가 주어진 상황에서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하고, 생각하니 그런 생각을 한 거죠.
 

: 상황이 먼저 있고, 그 상황에 수홍 씨를 맞춘다는 얘기죠?
 

: 그렇죠. 밴드는 당시에는 할 여력이 안 됐으니까요. 포크를 좋아하기도 하고, 지금 제 음악을 하는데 할 수 있는 건 지금 상황에서 포크였으니까요. 포크라고 얘기하기도 그렇고요. 그냥 기타 하나 가지고 혼자 하는 거니까. 그걸 그 안에서 최대한 하다 보니까 제 스타일이 생겼고요. 사실 밴드 활동 시기에는 주로 카피를 많이 했어요. 그것도 굉장히 즐거웠죠. Pink Floyd, Yes, Led Zeppelin. 이 형(이상훈 콘템포 대표)이랑 같이 밴드를 할 때예요.
 

: 어제 제 유튜브 알고리즘에 수홍 씨가 비틀스 카피해서 본인 계정에 올린 영상이 딱 뜨더라고요.
 

: 롤링홀에서 한 연주. 제가 베이스를 치고.
 

: 사실 저는 사실 비틀스를 안 좋아합니다. (웃음) 형 베이스 잘 쳤지. 밴드 활동도 굉장히 유익했고. 자작곡은 별로 못했고.
 


Beatles 「Love You To」Cover (가이스트(Der Geist) 롤링홀 공연, 2012)

: 밴드는 어떻게 함께하시게 됐죠?
 

: 우연히 뮬에서 알게 됐어요.
 

: 저는 리더하는 친구의 친구였고, 영입에 영입을 거치면서... 이후에 저희가 이렇게 되리라고는... 상상 못 했죠.
 

: 그렇죠. 세상 일이라는 게... 대표님이 함께하자고 하셨다고 했나요?
 

: 제가 하자고...
 

: 아냐.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더 정확히 얘기하면 저희가 밴드를 하다가 밴드가 깨지고, 한동안 연락하고 지내다가 몇 년을 연락을 안 했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한번 어디 가서 만난 적 있을 뿐 그 뒤로도 계속 연락 안 하고, 음악을 하는지도 몰랐고요. 그러다가 우연히 클럽 빵의 공연 포스터를 봤는데 거기에 ‘민수홍’이란 이름이 있더라고요. 흔한 이름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제가 아는 수홍인가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유튜브 실황이 풀 버전으로 올라가 있더라고요. 영상을 봤는데 곡도 좋고 공연도 잘하는 거예요. 저는 그때까지 노래도 하는 걸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노래도 꽤 잘하고. 그걸 본 이후에도 한 몇 달 연락 안 하고 생각을 많이 좀 했어요. 저 나름대로. 콘템포라는 곳이 추구하는 음악과 어느 정도 결이 맞는데 이 친구한테 직접 연락해서 같이 하자고 할까. 특히 저는 원래 더 알던 사이니까요. 엔지니어인 엡마 형이랑 소속사 크루인 김아일한테도 보여주면서 의견도 물어보고. (민수홍에게) 이런 스토리가 원래 있었어.
 

: 수홍 님이 연락하기 전에...
 

: 마침 그러고 있었는데 (수홍이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죠.
 

: 저희가 만난 후에, 회의해보고 괜찮다고 했었는데, 회의를 먼저 했던 거네요.
 

: 제가 그때 수홍이한테 연락을 DM으로만 했어요. 전화번호도 바뀌었을지 모르는 일이고요. 오랜만에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수홍이가 먼저 그런 얘기를 꺼내더라고요. ‘잘됐다. 이거다.’
 

: 레이블 찾고 있었죠. (차유정 필자와) 상의도 많이 했어요.
 

: 처음에 (이상훈) 대표님에게 말씀을 드렸지만 저는 국내 레이블에 굉장한 염증을 느끼던 차였어요. 마침 제 귀에 매우 잘하는 사람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그 사람이 제게 레이블에 관한 상의를 하니까 두말할 것 없이 혼자 하라고 했죠. 혼자서 다 할 수 있는 사람을 오랜만에 봤으니까 굳이 사람한테 치이지 말고 혼자 밀고 나가라고 한 거죠. 알고 보니 생각보다 마당발인 데다가 처세술도 좋더라고요. 아웃사이더인 줄 알았더니 인사이더고. 사람을 잘 구슬리기도 하고, 타협도 잘 하고.
 

: 콘템포 소속 음악가들(김아일, 제이클레프, 민수홍) 중에 MBTI가 유일하게 ‘E’로 시작해요.
 

: 아~
 

: 제가 보기에 수홍 씨가 사람들과 관계하는 데 있어 맺고 끊는 것도 정확하고, 자신이 선택한 일에 대해서 책임도 명확하게 지더라고요. 이런 음악은 한국에서 잘 받아들이기 힘든 점이 있을 텐니 혼자서 자체 제작하는 게 편하지 않을까 얘기했는데 알아서 잘 한 거죠.
 

: 콘템포에 들어오고 나서 와서였는지, 들어오기 전이었는지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게 있어요. 여기서 제가 제일 대중적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요. 아,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그 말에 지금은 동의하지 않지만요.
 

: 민수홍의 음악, 이 앨범 자체가 이해받고 있다고 느껴서, 그게 좋은 거 같아요.
 

: 이해를 넘어서 저보다 제 음악을 더 잘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감사하죠.
 

: ‘대중적’이라는 표현 자체가 조금 어폐가 있기는 하지만, 민수홍이라는 음악가가 하는 음악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충분히 대중적인 방향으로 다듬어 주고 있는 걸 수도 있고요.
 

: 뭐가 됐든 일단 저는 제 판단을 100% 믿지 않아요. 제 음악이 더 좋아질 수 있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게 좋아요. 그러다 보니까 믿고 맡길 수 있는 데가 있다는 게, 제 자신의 주장을 좀 내려놓더라도 괜찮지 않았나 싶죠.
 

: 음반이 나온 후 처음 생각했던 것과 그림이 달랐다고 하셨잖아요. 방금 말씀하신, 내 음악이 좋아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측면에서, 앞으로 음악을 하시는 데 있어 달라질 부분이 있을까요? 이번에 내가 여기서 다르게 느낀 부분을 반영해서 다음에는 작업 자체가 지금과 다를 수 있다고 미리 생각할 만한 포인트요.
 

: 아무래도 한번 해 봤으니까 이번에 한 것보다 조금 더 대화와 소통을 잘 할 수 있겠고요. 소리를 비워도 되겠구나. 싶어요. 노래하는 방식이 약간 바뀔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좀 더 편해지지 않을까 싶어요. 음을 쌓는 게 점점 자유로워질 수도 있고. 장점이 많이 생긴 것 같아요.
 

: 경험이 주는 익숙함과 편안함.
 

: 곡이 나오고 나서 후처리하는 과정에서 이성이 들어가는데 이성적 고민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 같아요.
 

: 이성적인 측면의 고민에 그렇게 매이는 스타일은 아니지 않나요?
 

: 원래 매이는 스타일이에요. 매이는 스타일인데 여기서 같이 작업을 해 보니까 안 그래도 되겠는 거죠. 그래서 편안해진다는 얘기였고요. 작업 이후 후처리하는 과정에서 얼마든지 이걸 살릴 수도 있다는 걸, 좀 더 다양한 방법이 있다는 걸 경험을 한 거예요. 제가 하나하나 신경 썼던 이성적인 부분이 작업 과정에 다 안 들어가도 그걸 그대로 살려서 좋은 작품으로 나올 수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앞으로 그런 면에서 달라질 것 같아요.
 

: 다른 얘기를 좀 해볼까요? 보컬 관련해 얘기를 좀 들어보고 싶어요. 원래 기타를 연주하고, 노래는 전혀 안 하다가 자연스럽게 혼자 활동하며 노래하게 됐잖아요. 저는 보컬 운용도 무척 흥미롭게 들었어요. 전형적인 보컬 스타일은 아니거든요. 보컬에 관한 개인적인 생각이나 평소 신경 쓰신 부분에 관한 얘기 부탁드려요.
 

: 저는 제 보컬을 얘기하자면 그냥 계속 어렵고 고통인 거 같아요.
 

: 할 때마다.
 

: 제가 북유럽 음악을 좋아하다 보니까 들어간 스타일 같아요. 기타는 18년을 쳤지만, 노래하겠다고 한지는 얼마 안 됐거든요. 한 5년 정도 됐어요. 아주 미숙하기도 하고, 그렇다고 트레이너에게 레슨을 받거나 혼자서 엄청난 연습을 하거나 한 것도 아니어서 어려워요. 아직도 계속 배워가는 중이고, 활동하면서 늘고 있지만, 가야 할 길이 멀죠. 그리고 하나 더 얘기하면, 기타 치면서 노래한다는 게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사실 마이크만 잡고 부르면 굉장히 쉽거든요. 그런데 제 노래의 기타 연주가 좀 쉬운 편이 아니다 보니까 기타 연주만으로 많은 호흡과 체력이 들어가고, 그걸 노래와 같이 운용한다는 게 너무 힘든 것 같아요.
 

: 곡 쓸 때는 주로 기타가 먼저 나오고, 연주와 함께 노래를 이렇게 저렇게 불러보시면서 곡이 나오는 거죠?
 

: 그렇죠.
 

: 실은 아까 북유럽 음악 얘기하셨는데, 거기서도 이제 북유럽 포크 메탈의 에스닉한 뉘앙스나 조금 더 아래쪽에서는 켈틱 음악에서 쓰이는 보컬 표현들이 있잖아요. 순간순간 보컬에서 그런 게 느껴지더라고요. 사실 뭔가 계산적으로 넣어야지 생각해서 그런 게 아니라 그간의 취향이나 경험이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간 거죠?
 

: 도리어 그걸 빼려고 노력하죠. 누군가 저힌테 국악을 했었냐는 얘기도 들었어요. 그렇다고 제 음악이 완전 100% 켈틱이나 에스닉은 아니잖아요. 중간을 좀 잘 지켜야 하는데.
 

: 지금 노래하시는 이런 음색이나 표현을 쓰기 전, 클럽에서 노래하는 걸 유튜브로 몇 번 본 적 있어요. 지금 음반에서 하는 거랑 목소리가 완전 다르거든요. 전 그게 궁금해요. 그때의 음색이 지금처럼 변하게 된 과정이요.
 

: 저는 그냥 노래 실력을 키우려고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어요. 발성도 완전히 달라요. 그때는 발성이 지금보다 안 좋았어요. 완전히 생목으로 노래했어요. 그런데 노래를 자꾸 연습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변한 것 같아요. 요즘 담배를 자주 피워서 목소리가 바뀌었는지는 모르겠지만.
 

: 예전에 약간 모래알이 굴러가는 것 같은 목소리가 있었어요. 수홍 씨 과거에 노래할 때 모습 중 Bob Dylan의 「Just Like A Woman」(1966)을 부르는 걸 본 적 있거든요.
 

: 아.
 

: 당시 목소리는 완전히 달라요. 모래알이 씹히는 것 같은 목소리가 나오던데 지금은 전혀 안 그렇거든요. 어떻게 보면 소프라노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을 정도로 맑고 깨끗한 소리가 나와요. 트레이닝을 따로 하신 건지 아니면 노래를 연습하면서 목청이 트인 건지, 일종의 득음을 했다고 하는 (모두 웃음) 그런 경지에 오른 건지.
 

: 밥 딜런 얘기를 하셨는데, 그때는 제가 한창 Arlo Guthrie나 그런 노래를 할 때였어요. 좀 억지로 소리를 찌그러트려서 내기도 했었고. C.C.R.(Creedence Clearwater Revival)이라든가 왜 그런 거 있잖아요. 하기 쉬운 블루스는 아니고, 컨트리도 아니고. 아메리칸 포크에서도 Neil Young 같은 음악을 하고. 그런 소리가 어울리다 보니 보컬도 좀 그런 쪽으로 내려고 했던 것도 있어요. 갑자기 기억이 안 나는데, Neil Young 하고 세 명이서 모인 그룹 있잖아요.

: America...
 

: America 말고 “Teach your children...” (약간 허밍) 그리고 Simon & Gafunkle.
 

이, : (동시에) Crosby, Stills, Nash & Young.
 

: 아, 맞아요. Crosby, Stills, Nash & Young. 그런 음악을 하면서 미성으로, Bread 이런 거 하면서 미성을 썼죠. 아무래도.
 

: 재밌는 건 지금 말씀하신 뮤지션들은 어떻게 보면 정말 1960년대 포크 팝에 완전
 

: 소프트 록에 걸쳐서.
 

: 딱 틀이 잡혀있는 목소리잖아요. 기존 본인의 목소리와 전혀 다르기 때문에 재밌더라고요.
 

: 그러니까 이것 역시 마찬가지 않을까요. 특정 방향을 구상해서 거기에 맞춘 게 아니라 알고 있었던 것, 취향이었던 것들이 요소마다 자기 것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뒤섞이다 보니까.
 

: 왜냐하면 한참 배우는 과정이고, 지금도 그렇기 때문이에요. 아, 이 스타일로 해야겠다. 해서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냥 좋아하는 것들을 하다 보니까 그런 거죠.
 


「Just Like A Woman」 Cover (2015.7, 음유시인 밥딜런 북콘서트)
 

: 기타 얘기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기타의 바디를 두드리는 방식, 그러니까 보통 포크 음악에서 잘 살아나기 힘든 리듬감이 처음부터 끝까지 살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본인이 그걸 의식하시나요?
 

: 글쎄요. 제가 사실 틀에 안 얽매이려고 특별히 노력하지는 않는데, 본능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정확히는 애초에 제가 포크 음악가가 아니었잖아요. 물론 양병집 형님이 같이 있으면서 많이 알려 주시기는 했는데 그게 제가 느끼기에 진짜 포크였고, 제가 하고 싶은 건 특정한 장르 음악이 아니라 그냥 음악이었어요. 아니, 그냥 음악이라고 하기보다는 장르를 떠나서 제가 하고자 하는 음악. 제가 생각했을 때 이랬으면 좋겠다. 상상하게 되고 그대로 표현하려고 하는 음악. 리듬을 강조한 건지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제가 느끼는 대로, 들리는 대로,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흔드는 거기 때문에. 그런데 그래서 어려운 부분도 있어요. 편곡이 어렵기도 하고. 누구와 같이하기도 어렵고요.
 

: 어려움을 느끼면서도 그걸 어떻게든 끝까지 매듭 짓잖아요.
 

: 매듭을 끝까지 짓는다는 것도 사실 잘 모르겠어요. 어떤 부분이 그렇게 느껴지는지요. 그냥 저는 생각하는 대로 쓰고, 그 안에서 제가 생각한 느낌을 최선을 다해 내보내요. 매듭이 지어졌는지 어땠는지는 듣는 사람마다 다를 것 같아요.
 

: 본인이 계속 끌고 가는 느낌이라고 하는 게 어떤 건지 좀 더 풀어서 얘기할 수 있을까요?
 

: 그냥 본능적인 것 같아요. 음, 그걸 설명하자면 각자 지닌 음악성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스스로 생각했을 때 좋은 것, 아름답게 들리는 것, 그 소리를 따라가는 거죠.
 

: 소리를 따라가요?
 

: 네.
 

: 본인이 소리를 만들기보다 본인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걸 그냥 쫓아가는 쪽이라는 건가요?
 

: 그걸 생각하고 만드는 게 아니라 들리는 대로 따라가는 거죠. 뭔가 계산하고, 생각하고, 이성적으로 만들어가는 건 한참 후의 단계고요. 음, 음악가들 대부분 그렇게 곡을 쓰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일단 들리는 소리를 따라가는 거죠. 상상력 안에서. 그래서 창작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좀 그런 상상을 많이 해요. 특정한 공연장에서 누군가 노래를 부르고, 기타를 치는데 그 소리가 어떻게 들릴까? 저는 관객석에 앉아 청자 입장이 되는 거죠. 무대에서 어떤 소리가 들리나? 이 음악이 어떻게 시작하고 끝이 날까? 그런 상상을 해요.
 

: 수홍님이 포크 싱어송라이터가 되는 데 역할을 한, 이제 세상을 떠나신 중요한 두 분의 음악가인 故 양병집 님, 故 조덕환 님과 교류하기도 했어요.
 

: 양병집 님은 저에게 아버지 같은 분이었어요. 제 모든 걸 다 알고 계셨고, 다 파악하고 계시고, 표정만 봐도 대화가 가능할 정도였죠. 같이 살기도 했고요. 그런 분이에요. 양아버지 같은 분 그리고 친구.
 

: 음악적 교류는 어땠나요? 배운다고 얘기했지만 상호 오고 간 대화 같은 게 있잖아요. 저는 그분이 다른 분을 지도하시는 걸 한번 본 적이 있는데요. 수홍 씨는 어땠나요?
 

: 친구였어요. 완전히 친구였고, 세대 차이가 안 느껴질 정도였죠. 그냥 저보다 나이가 좀 많은 친구. 병집 형님은 물론 프로그레시브를 정말 좋아하셔서 동서남북 같은 팀의 음반도 만들고 하셨지만 아무래도 포크에 기틀이 좀 많으신 분이었죠. 덕환 형님은 저랑 ELP(Emerson, Lake & Palmer), Yes 같은 거 부르고.
 

: 아... 이 두 사람의 ELP라니 너무 환상적인데, 그걸 못 보다니...
 

: 덕환 형님에게 배웠던 것 중에 아직도 기억에 남는 건 “기타는 노래하듯이 쳐야 한다.”예요. 제가 20대 중반쯤 뵀었던 것 같아요. 그 한마디에 정말 모든 게 담겨 있어요. 제 가슴에 아직도 깊게 남아있는 것 같아요. 그때부터 제 음악이 많이 바뀐 것 같고 병집 형님은 항상 저와 함께하셨죠.
 

: 기타는 처음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어요? 모든 것의 시작은 기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 좀 웃기긴 한데...
 

: (웃음)
 

: 기타 얘기 나오자마자 표정이...
 

: 환하게 웃으시네요.
 

: 뭔가를 알고 계시는가 보죠? (웃음)
 

: 제가 열다섯 때부터 청소년 시설에서 혼자 살았거든요. 그때는 집도 없었죠. 제가 원래 꿈이 있었어요. 유전공학자, 천문학자. 공부도 많이 했고. 그런데 갑자기 인생이 그렇게 되니까 너무 허탈한 거예요. 시설에 있을 때 기타가 있었거든요. 찬송가 코드가 그려져 있는 책을 집어 들고 치기 시작했죠. 그러다가 X JAPAN을 알게 됐는데 (대표를 바라보며) 그것 때문에 웃으신 거 맞죠? 아니에요?
 

: 아냐. 아냐.
 

: 아무튼 X Japan을 알고 나서 제가 완전히 꽂힌 거예요. 그전까지 매일 듣던 음악은 SG워너비 같은 노래였고요.
 

: 「Endless Rain」(1989)이었나요?
 

: 아뇨. 「Week End」(1990)였어요. 와, 록이라는 걸 태어나서 처음 들은 거죠. 이게 도대체 뭘까? 거기에 통기타밖에 없었거든요? 통기타로 「Week End」를 미친 듯이 치기 시작했어요. 눈을 뜨면 기타를 잡고, 자면서 기타를 안고 잤어요.
 

: 이건 완전히 Jimi Hendrix 얘기랑 똑같아.
 

: 제가 하루에 기타를 몇 시간이나 연주하나 세어 봤는데 12시간이더라고요.
 

: 어, Jimi Hendrix보다 많이 쳤어요.
 

: 물론 그게 이제 피크일 때죠. 평균은 아니지만 그렇게 기타를 지기 시작한 거죠. 처음부터 옛날 팝이나 록을 한 건 아니고, X Japan 으로 시작해서 메탈도 좋아했다가, 연주 음악들 좋아했다가, Jeff Beck을 알고 나서는 메탈 뽕이 조금 빠졌다. 아, 훵크가 좋아졌다가 Jeff Beck을 들은 후에는 그게 너무 신비로운 거예요. 이게 뭐지? 기타가 왜 저런 소리가 나지?
 

: 이펙터에서 나오는 소리들.
 

: 저는 Ampero에 굉장히 꽂혔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이제 옛날 블루스, 델타 블루스...
 

: 기타로 할 수 있는 건 다하셨네요.
 

: 갑자기 확 델타 블루스로 갔다가 점차 올라가서 1970년대에 머무르게 된 거죠.
 

: 소프트록, 포크, 프로그레시브...
 

: 아트록에 빠졌다가 Pink Floyd부터 다시 시작했죠. 올드록을요.
 

: 록의 정석을 듣고 있는 느낌이 드네요.
 

: 기억나는 게 한창 그러고 있을 때 누가 저한테 바비킴을 아냐고 물어서 B.B. King이요? 그랬어요. (전원 폭소) 그 사람은 ‘야, 이거 미친놈이구나.’ 속으로 그랬을 거예요.
 

: 그 나이에 그러기 쉽지 않거든.
 

: 20대 초반에도 술 먹을 때 기타 껴안고 쳤죠.
 

: 그게 얘 주사예요.
 

: 그것 때문에 웃으셨나요?
 

: 그건 아닌데...
 

: 그냥 옛날 생각나서?
 


X Japan 「Week End」(Tokyo Dome Live, 1993.12)
 

: 기타가 또 결정적으로 많이 는 계기가 있어요. 제가 열여덟, 열아홉, 스무 살 때쯤 떠돌이 생활을 했어요. 기타 들고 집 없이 노숙하면서 그때는 홍대 놀이터나 이런 데 버스커들이 있기도 전이에요. 물론 그전에도 있긴 했겠지만, 제가 떠돌던 당시에는 아예 그런 문화가 없었던 때였는데, 몇몇 친구들이랑 기타 들고 맨날 놀이터에서 기타치고 그랬어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버스커가 점점 하나둘식 나오더니 홍대를 다 덮어버리더라고요. 그때부터는 일렉 기타랑 앰프를 들고 가서 다른 버스커 옆에 가서 계속 즉흥을 하는 거예요. 일종의 잼을 하는 거죠. 오부리를... 그런 연주를 하다 보니 나름대로 기타가 많이 늘었고, 그러다가 병집이 형과의 관계를 포함한 다양한 인연을 거쳐을 포함한 다양한 인연들을 거쳐 지금까지 오게 된 거죠.
 

: 음악도 고전적이고, 살아온 과정도 굉장히 고전적이야.
 

: (웃음)
 

: ‘야생’이란 말을 굉장히 많이 들었어요.
 

: 음악가들이 겪는 야생의 정석을 밟는 느낌이 들어요. 저는 이 이야기를 처음 듣는 게 아니지만, 굉장히 정석이에요. 데뷔 이후부터 음반 내고, 사람하고 엮이고... 이런 과정이 전통적이지 않을 게 하나도 없어요. 음악만 전통이 아닌 거죠.
 

: 옛날에는 전통이 그랬지만, 지금은 아닌 거 아니에요?
 

: 지금은 아니지만. 물론 세대가 다르니까 아니라고 할 수 있네요.
 

: 요즘 전통은 실용음악과...
 

: 요즘은 처음 배울 때부터 실용음악과에서 오디오 인터페이스를 쓸 수 있잖아.
 

: 그렇게 따지면 제가 이단 아니에요?
 

: 그냥 말 그대로 옛날 전통인 거죠.
 

: 그 옛날 전통에 입각한 록커의 삶. Jimi Hendrix와 B,B. 킹을 연주하고, 노숙 생활과 백밴드를 전전하다가 자기 밴드를 꾸려서 빵 뜨고.
 

: 아, 동질감이 드네요.
 

: Jimi Hendrix가 처음에는 미국이 아니라 영국에서 성공했어요. 이전에는 일반적인 삶이 아니었지.
 

: 그 시대에 태어났으면...
 

: 아, 너무 거칠게 살았을 것 같아요. 지금도 야생 얘기를 듣는데...
 

: 일찍 죽었을 수도 있어.
 

: 이미 한국에서도 얼어 죽을 뻔한 적이 몇 번 있어요. 모르는 건물에 올라가다 보면 창고 같은 데 있어요. 그런 데 들어가서 자고 그랬거든요.
 

: 앨범 발매 이후 일정도 좀 묻고 싶어요. 활동 계획이라든지 잡혀있는 일정이 있으신가요?
 

: 연말에 싱글을 하나 내는 게 다음 목표예요. 다른 구체적인 계획이 아직 없어서, 아무래도 섭외를 많이 받고 싶네요. 다양한 콘텐츠에 많이 출연하면 좋고, 행사나 공연도 많이 하고 싶고. 이제 막 본격적인 데뷔를 했으니까요.
 

: 꼭 해보고 싶은 무대가 있을까요? 관객석 많은 큰 공연장에서 단독 무대라든지, 페스티벌 무대라든지.
 

: (망원동) 벨로주 쇼케이스도 굉장히 좋았어요. 사실 페스티벌 같은 경우는 세션으로 해봤지만 힘들더라고요. 지연이 심하고 그러다 보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벌써 힘들 것 같기는 한데요. 그래도 평생 해보고 싶은 공연이 있기는 해요.
 

: 뭔데?
 

: 솔로가 아니라 밴드로, Pink Floyd의 ‘Pulse Live’ 같은 공연이요. 아, 저런 공연 한번 해보면 좋겠다. 그런데 그건 너무 이상적이니까.
 

: 그러면 밴드를 하셔야죠.
 

: 밴드를 하고 싶은 밴드 뽕이 계속 좀 올라오고 있는 것 같아요. 밴드 정말 하고 싶다. 그런데 또 포크는 포크대로 놓치고 싶지 않고.
 

: 자연스럽게 밴드 활동으로 흘러가지 않을까요? 여태까지 해오셨던 것도 있고.
 

: 밴드 곡도 있기는 하거든요.
 

: 제가 기대하는 건 지금 음반으로 나온 곡들을 밴드 스타일로 편곡해서, 사운드도 더 진하게, 연주 시간도 길게 하는 거죠. 나올 수 있는 효과가 있는 곡들이 많잖아요.
 

: 그런데 포크 음악가들이 그런 식으로 작업 이어가는 루트는, 그건 또 너무 전형적이에요. (모두 웃음)
 

: 그렇지. 전형적이긴 하지.
 


Pink Floyd 《Pulse Live》 (Earls Court, 1994)
 

: 수홍 님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 있으실지요.
 

: 네. 수고 많으셨습니다. (모두 웃음)
 

: 인터뷰 읽어주시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
 

: 앞으로 곡 많이 만들고 싶어요. 앨범도 많이 내고 싶고요. 좋은 레이블 만나서 굉장히 만족하고, 정말 곡만 쓰면 된다는 사실이 제게 행운인 것 같아요. 이 기회를 잘 살려서 음악 활동해야 할 것 같습니다. 기다려 주신 분들 다 앞으로 기대 많이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이번 앨범은 지금까지 쌓여왔던 곡들로 만들어졌고, 앞으로는 새로 만드는 곡들일 테니까요. 좀 더 다양한 음악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며, 저도 기대 많이 하고 있어요.
 

: 기대를 아주 많이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있는 그대로 음악에 담아보려고 할 것 같아요. 그게 무슨 의미가 있거나 어떤 목적을 가지고 하는 음악도 아니라요.
 

: 오늘 인터뷰에서 그걸 여실히 말씀해주셨기 때문에 충분히 전달 됐으리라 생각해요.
 

: 음악을 그만두는 일은 없을 것 같아요. 제가 유일하게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이고.
 

: 손 보험이라도 드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 (웃음)
 

모두 : 수고하셨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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