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Review

[이상은 30주년 특집 #04] 고요한 데생

이상은 『더딘 하루 : Slow Days』
1,331 /
음악 정보
발표시기 1991.10
Volume 3
장르
레이블 서울음반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들국화 I」은 마치 연극 음악처럼 들린다. 태엽을 감는 소리가 몇 차례 들리다 끝나면, 이펙터를 건 현악 연주가 등장한다. 이상은은 스타카토를 강조하는 허밍으로 멜로디를 훑는다. 별안간 연주곡이 멈추면서 갑작스레 보컬이 멈춘다. 곡은 다시 한 번 태엽을 잔뜩 감는 소리와 더불어 마무리된다.
 
연이어 이어지는 이상은의 곡들은 2집의 이상은을 기억하는 이들에겐 상당히 낯선 모습이었다. 피아노과 다소곳한 심벌, 그리고 어쿠스틱 기타의 멜로디를 차근하게 쌓은 멜로디를 바탕으로 일순간 도약하는 「영원히」, 재즈 풍으로 단조와 장조의 전조를 액자식으로 부드럽게 구성한 「너에게 주고 싶은 것」, 파도 소리와 하모니카에 에코가 걸린 보컬만으로 이뤄진 「초승달」, 단조의 클래식으로 시작해 록 세션으로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더딘 하루」, 재즈 콰르텟의 구성으로 이뤄진 「너무 오래」, 두 대의 어쿠스틱 기타를 중심으로 이뤄진 포크 곡 「어느날 아침」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음악적 색채는 앨범이 뉴욕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암시한다. 편곡자인 Tom Semanski는 당시 발레 음악의 작·편곡을 주로 하던 색소포니스트였다. 세션들 또한 주로 재즈나, 클래식을 기반으로 팝과 록에 접근한 세션들로 이뤄져있었다. 앨범의 음악적 색채는 이러한 바탕에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물론 이것만이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었다. 보컬 멜로디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자면 이 앨범에 수록된 이상은의 곡은 유달리 다이나믹한 곡 구성을 띠고 있다. 이러한 구성은 자칫 유려함을 헤칠 수 있기 때문에, 안정적인 장르로 보완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이상은의 프로듀싱이 적절한 균형감각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다.
 
이상은의 프로듀싱은 특히나 보컬 면에서 빛을 발한다. 기복이 심하다 싶은 첫 세 곡의 멜로디 구성은 이상은의 저음을 위주로 한 보컬 덕분에 이질적이지 않고 자연스레 녹아든다. 「너에게 주고 싶은 것」에 장조로 흥얼대는 "나나나"는 다른 코러스와 더불어 부르면서 흥겨움과 공간감을 동시에 유지하는 효과를 거둔다. 「초승달」에서 하모니카의 멜로디와 같이 노래 부르는 이상은의 보컬은 절제를 바탕으로 차곡차곡 감정을 쌓아올린다. 「영원히」에서 성량을 높이다 별안간 속삭이는 감정들은 곡의 맥락에 맞추어 타당한 당위를 지니고 있다. 첫 송라이팅 작품인 이 앨범서부터 이상은은 이미 특유의 역동적인 멜로디 라인을 선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앨범의 가장 빛나는 지점은 아무래도 「더딘 하루」를 위시한 후반부의 곡들이리라. 「더딘 하루」에서 낮은 음으로 독백을 읊조리는 장면에서 후반부의 샤우팅을 예상한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너무 오래」에서 이상은이 선보인 보컬 디렉팅은 나름대로 정교하고 그윽하다. 「어느날 아침」은 이 두 곡에 비해 소품에 지나지 않지만, (사실 이 앨범 전체가 일종의 소품집처럼 느껴지는 면도 있지만) 자신의 보컬에 숨을 넣고 빼는 기술로 무시할 수 없는 향취를 만들어냈다. 그녀는 자신의 곡에 맞은 목소리를 부르기 위해, 자신의 세션에 걸맞는 목소리를 부르기 위해 애썼던 것이다. 그녀가 이 앨범의 작업에 얼마나 세심하게 임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다소 변칙적인 구조이긴 하지만, 소나타 형식의 제시부 구조로 이뤄진 기악곡 (「들국화 II」) 까지 듣고 나면 이 앨범의 소박한 인상에 은은한 만족감이 든다. 이상은은 자신의 음악을 과대평가하지 않았다. 자신이 곡을 쓴다는 사실에 자만하지도 않았다. 이러한 미덕을 첫 송라이팅 작품서부터 지닌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이상은의 3집은 얼핏 기존 두 앨범의 에필로그 혹은 지난 시절에 대한 자그마한 결론처럼 보인다. 그러나 에필로그는 새로운 출발이 되었고, 이상은은 이를 기점으로 변화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 앨범은 이상은이라는 가수가, 자신이 만든 곡을 불렀을 때 가장 매력적인 가수가 된다는 점을 처음으로 통쾌하게 증명했다.

 

Credit

[Musician]
Guitar : Gene Bertoncini
Electric guitar : Igor Seversky
Bass : Robert Nowak
Double Bass : Robert Nowak, Pat O'Leary
Drum : John Bacon Jr., Edie Ornowski
Piano : James Weidman, Rob Bargad
Violin : 김경아, 티나최, 제임스임 (From Juliard)
Cello : 신디박 (From Juliard)
Saxophone : Tom Semanski
Soprano Saxophone : John Scarpulla
Trumpet : Joe Magnarelli
Oboe : Jack Bashkow
Harmonica : William Galison
Back Vocal : Yvette Doughty

[Staff]
Producer : 이상은
Recording Studio : 900 Studio, Mo Studio
Mixing Engineer : Tim Hatfield, Vince Johnson

Track List

  • No
    곡명
    작사
    작곡
    편곡
  • 1
    들국화 I
    이상은
    이상은
    이상은, Tom Semanski
  • 2
    영원히
    이상은
    이상은
    이상은, Tom Semanski
  • 3
    너에게 주고 싶은 것
    이상은
    이상은
    이상은, Tom Semanski
  • 4
    초승달
    이상은
    이상은
    이상은, Tom Semanski
  • 5
    더딘 하루
    이상은
    이상은
    이상은, Tom Semanski
  • 6
    너무 오래
    이상은
    이상은
    이상은, Tom Semanski
  • 7
    어느날 아침
    이상은
    이상은
    이상은, Tom Semanski
  • 8
    들국화 II
    이상은
    이상은
    이상은, Tom Semanski

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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