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우] 하드코어라는 장르의 본질은 사실 에로티즘의 역상이다. 죽음까지 인정하는 삶이 아니라, 삶이 인정하는 죽음이다. 자극적인 단어, 자극적인 장면들은 사실 그것들에 봉사하는 매개체에 지나지 않는다. 하드코어도 결국 삶을 지향한다. (하드코어와 범죄를 헷갈리는 사람들이 종종 이러한 역설을 이해하지 못한다.) 강한 발음과 뉘앙스, 제스처, 이미지만으로 하드코어가 성립이 된다면, 그 나라는 정말 좋은 나라이겠지만, 불행히도 여기는 대한민국이다. 극사실주의 하나만으로도 호러가 되는 이 나라에서 과연 진정한 하드코어 사운드가 성립이 될까? 날섬보다 견고함을 생각해야한다. 이 곡에서 유달리 떨어지는 가사 전달성, 바로 거기서부터 차근차근히 고민해야 할 지점이다. ★

[김정원] 헝거노마는 트랩이나 래칫(ratchet)과 같은 최근 미국힙합의 트렌드인 스타일을 좋아할 법한 세대에 속해있다 (1994년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The Grim Reaper』(2013), 『Violent Rage』(2014)라는 믹스테입을 통해 하드코어 힙합을 지향해왔다. 이그니토가 수장 격으로 있는, 하드코어 힙합을 지향하는 집단 바이탈리티(Vitality)에 소속된 건 그다음의 일이다. 즉, 빅딜레코즈가 씬의 중심이었던 때의 영향권 안에 속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헝거노마는 격렬한 톤이나 거친 단어 선택 등 하드코어 힙합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면서도 어딘가 모방의 정도에서 그친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아직 단어들의 조합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완벽히 표현해내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적의 유무와 상관없이 자신의 강함을 드러내는 섀도복싱과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는 배틀랩과 하드코어 힙합 스타일을 구현해내는 데 있어서 다소 결점으로 작용한다. 「Pray Hard」는 이러한 지점들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앨범과 동명인 트랙이다. 하지만 지향하는 바가 남다르고, 앞서 언급한 어설픈 정도가 민망한 수준까지는 아니라서 앞으로의 활동을 기대해봐도 좋을 듯하다. 적어도 이 나잇대에 속해 있는 많고 많은 비슷한 스타일의 래퍼들보다는 낫지 않을까. ★★★

[박상준] ‘하드코어’라는 명제 자체에 휘둘릴 필요는 없다. 메시지에 집중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지만, 대외적으로 어느 정도 각인된 ‘하드코어한(?) 사운드’, 거세게 뱉어내는 날 선, 진짜 하드코어의 요소, 어쨌거나 헝거노마는 우리가 아는 바로 그 노선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다만, 바이탈리티의 적자라는 식의 과도한 낭만은 금물이다. 불명확한 발음과 너저분한 플로우는 어쩐지 믹스테잎보다 완성도가 뒤처지는 느낌이다. 결국, 그마저도 가뿐히 즈려밟는 사운드의 난감한 부조화로 인해 고통스런 감상을 강요받는 것과 의미 있게 반짝이는 씬의 또 다른 흐름을 지켜보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의미만으로 수작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데뷔작이다. 정규를 고대하자. 그거면 됐다. ★★☆

[정병욱] 분위기 있게 치고 들어오는 비트와 뒤이어 읊조리는 이름 ‘헝거노마’, 그리고 ‘그림 리퍼’라는 ‘아이 엠 그라운드’식 날 서린 톤의 자기소개가 곧 스스로가 지향하고 생각하는 하드코어 힙합의 양태인 듯하다. 현대판 《파우스트》라 불러도 될 만큼 서술적 묘사가 돋보이는 가사와 (그 원리를 일일이 분석할 순 없어도) 마치 단어의 첫 음절 자음들을 모조리 무성음으로 소리내고 있는 듯한 발성, 그리고 특유의 톤 등을 어울러 소속 크루인 바이탈리티의 색을 그대로 가져가면서도 동시에 자기만의 분위기를 통일감 있게 유지하고 있다. 분명 장점과 개성이 돋보이는 신인이다. 정제된 가사를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성 있는 보컬을 거치며 딜리버리가 다소 힘을 잃는 점은 보완해야 할 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