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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리뷰 #12] 이적 『나무로 만든 노래』 : 피카소가 그린 수묵담채화

이적 『나무로 만든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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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정보
지난 10년 사이에 가장 많은 음악적 시도와 끊임없는 활동으로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해 준 부지런한 뮤지션을 단 한명만 꼽으라면? 패닉을 시작으로 카니발 프로젝트, 긱스, 솔로엘범을 거치고 다시 패닉으로 돌아왔던 이적이라면, 그 해답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앞에서 열거한 일련의 음악활동을 함에 있어서 공백기간이라는 걸 찾기가 힘들다. 이번 엘범만 해도 2005년 11월 발매된 패닉 4집엘범 이후 1년 정도의 준비기간을 가졌을 뿐, 그의 창작력은 마르지 않는 샘처럼 시나브로 듣는 이들의 마음을 쉼없이 적셔주었다.

햇수로 꼭 4년만에 솔로로 돌아온 그의 엘범 타이틀이 『나무로 만든 노래』다. 어라? 여기서 나는 의문부호를 강력하게 가졌다. ‘이적’하면 의례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무언가를 함축하고 있는 단어 ‘나무’가 전면에 내세워져 있다니. 어떤 이야기를 꺼내고 싶어서 저런 타이틀을 붙였는지 일단 호기심이 드는 게 사실이다. 어찌 되었든 그는 현역 최고의 싱어송라이터 중 한명이기에….


나무로 만든 악기로 빚어낸 그의 세 번째 이야기

패닉시절의 메가히트송인 「달팽이」(1995)가 그랬고, 그의 솔로 1집에서 「Rain」(1999)이 그랬으며, 가장 최근작이었던 패닉 4집의 「로시난테」(2005) 까지, 그는 어찌보면 어쿠스틱음악의 혜택을 제법 많이 본 사람이다. 그러나 어쿠스틱 트랙들은 어디까지나 그의 진보, 파격적인 음악의 뒤를 받치는 조연의 역할이었을 뿐, 주연으로 한번도 올라서본 적이 없었다.

드디어, 노골적인 엘범 타이틀이 말해주듯 그는 '나무(악기)로 (연주해서)만든 노래'를 전면에 내세웠다. 어쿠스틱 기타와 피아노 선율이 중심을 잡고 그 위에 살포시 포개지는 그의 목소리는 힘주어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기보단 흘러간 세월과 끊임없는 음악인으로써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으레 뮤지션들이 나이를 먹으면 기본으로 돌아가려는 시도를 하곤 하지만, 그럼에도 이적의 이런 시도는 그 자체로 파격으로 느껴진다. 마치 앙드레김 선생님께서 자신의 유니폼이 아닌 흰 한복을 입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썩 잘 어울리는 건 그만큼 기본기가 충실하고 능력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가가 쓴 수필

그가 쓴 책 『지문사냥꾼』(2005)처럼 그의 음악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항상 비범했고, 날카로웠으며, 한편으론 신경질적이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이제야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담백하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아주 소소하고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이야기들을 마치 친구에게 털어놓듯 편안하게 읇조리고 있음이다. 화려한 색감과 구성이 특기였던 그가 크로키만으로 완성시켜놓은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뮤지션 이적의 껍질을 벗어던지고 알몸이 된 인간 이적은 우리에게 한걸음 앞으로 다가와 있다.


아직 벗지 못한 때

본작에서 왠지 아쉬웠던 건 오히려 그가 완전히 헐벗지 못했다 느껴졌기 때문이다. 타이틀곡인 「다행이다」와 「비밀」에 일부 들어가있던 전자기타음까진 그나마 괜찮게 넘어갈 수 있었는데, 「얘, 앞산에 꽃이 피면」이나 「자전거 바퀴만큼 큰 귀를 지닌」과 같은 곡들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연주와 전자음의 사용은 기존의 그에게서 보아 온 재기발랄함은 느낄 수 있을지언정 그의 본연의 모습에 다다가고자 하는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아쉬운 트랙이다. 이 트랙들에 뒤이어 나오는 「소년」은 앞선 트랙들에게 훈계라도 하듯 심플한 구성으로 가슴팍을 울리게 하는데 말이다. 영화 황산벌의 대사처럼 기왕 이렇게 나갈 꺼 “아쌀하게 거시기 해불자”는 식으로 엘범 전체를 어쿠스틱이 지배했더라면 더 괜찮은 엘범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아직 이적은 손이 닿지 않아서인지 등에 있는 때를 덜 벗겨낸 것 같다.

이 엘범을 이적의 최고작이라느니, 졸작이라느니 이런 평가를 내리긴 힘들다. (다른 뮤지션들의 작품 역시 마찬가지겠지만…) 다만 현재진행형의 싱어송라이터가 뒤를 돌아보는 여유를 가졌다는 점과 그 시도가 꽤나 묵직하게 가슴팍에 감동을 안겨다 주었다는 점, 인간 이적을 잘 느끼게 해주는 엘범이지만 역설적으로 전혀 그답지 않은 엘범이라는 점에서 그의 디스코그래피에서 아마 가장 이질적인 엘범으로 남지 않을까?

너무 잘 알고 지내던 친구의 또 다른 일면을 10년여 만에 알게 된 듯한 유쾌한 순간이었다.

Credit

[Staff]
Produced by 이적
Recorded by 이면숙, 송주용 at T studio
Mixed by 노양수 at T studio
Mastered by 전훈 at Sonic Korea mastering studio
Designed by 이관용 at Sputnik
Strategy & Public relation department: 강태규 for Music farm
Artist management: 임무섭, 김민성, 조재민 for Music farm
Executive producer: 이국현 for Music farm

Track 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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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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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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