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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리뷰 #06] 자우림 『Ashes To Ashes』 : 잿빛 판타지, 한 곳만을 바라보다

자우림 『Ashes To Ashes』
482 /
음악 정보
발표시기 2006.10
Volume 6

나는 오래전부터 자우림의 팬이었다. 정확히는 1999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세종대 대양홀에서 자우림의 공연을 처음 보았던 때부터다. 그 날 공연의 1부를 잊지 못하는데, 미지의 세계처럼 꾸며진 무대 위에서 음산한 붉은 조명을 받으며 등장한 김윤아는 길게 늘어뜨린 붉은 망토를 입고 있었다. 마녀처럼 망토에 달린 커다란 모자도 쓰고 있었다. 그렇게 등장해서는 1부가 끝날 때까지 관객석을 몇 번 바라보지 않았다. 무대 측면을 바라보고 노래하거나 피아노 앞에 앉아서 열심히 건반을 두드릴 뿐이었다. 우스개 소리와 프러포즈 이벤트 따위로 도배되어 있는 한국 공연 현실에서 참 독특한 공연이 아닐 수 없었다. 공연이 끝난 후, 친구와 술병을 기울이며 자우림의 판타지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그들의 판타지는 사랑과 증오의 역설적 진실(「미안해 널 미워해」(1998), 「새」(2000))을 담고 있고, 소통할 수 없는 끝없는 수평선 같은 인간관계의 비극(「파애」(1997), 「마론인형」(1997))을 이야기하고, 열렬한 사랑을 두 눈과 맞바꾼 소년의 슬픈 시놉시스(「마왕」(2000))이며, 지리멸렬한 삶의 지독한 우화(「격주코믹스」(1997), 「김가만세」(1998))이기도 하다. 자우림의 본색은 이렇게 상처받아 서글프거나  아귀가 맞지 않는 관계 속에서 처절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이런 다양한 면면을 편의상 하나로 묶어 잿빛 판타지라고 지칭하도록 하겠다. 때문에 신나고 발랄한 「매직카펫라이드」(2000)와 「하하하쏭」(2004)이 TV에서 울려 퍼질 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이건 아니잖아’를 외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그 곡들조차도 발랄한 사이키델리아와 공동체를 위한 단순한 후렴구의 판타지를 표현한 것이긴 했지만.

잿빛 판타지라는 측면에서 여섯 번째 앨범 『Ashes To Ashes』는 가장 자우림스러운 앨범이다. 앨범 전체가 상실과 허무, 이별과 체념이라는 공통된 정서로 짜여져 있으며 그 세세한 음악적 면면도 잿빛 판타지를 지속적으로 부추긴다. 이런 음악에 성숙이라는 표현이 정확히 어울리겠다. 여기에 「하하하쏭」같은 넌센스는 깨끗이 사라졌다. 그동안의 상업적 성공이 사색과 표현의 여유를 제공했는지 음반시장의 몰락이 히트곡에 대한 강박을 체념케 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소통 부재의 가사들은 현학하기를 멈추고 현실의 쉬운 언어로 청자에게 자분히 이야기되며 가사를 모두 지워버린다고 해도 사운드가 결국은 메시지와 같은 감상을 일으키게 잘 만들어졌다.

첫 번째로 귀에 들어오는 것은 아무래도 지옥 바닥을 기어다니는 듯한 감상을 불러 일으키는 각종 프로그래밍의 사용이다. 이것은 이 앨범에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이란 도시를 황량한 사막으로 만들어 버린 첫 곡 「Seoul Blues」의 모래바람 같은 소리부터 시작하여 「Beautiful Girl」의 위태로운 시계 초침 소리, 「Blue Devil」은 아예 음산한 소리들로 음악의 절반 이상을 만들었다. 이런 방식은 자우림이 추구하는 잿빛 판타지를 불러 일으키는데 아주 적격이다. 상상력을 자극하고 음악적 다양함도 선사한다. 전 세계 음악을 풍성하게 하고 순교해버린 트립합(triphop)이란 장르의 공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자우림을 폄하하는 사람들은 자우림을 ‘김윤아와 그녀의 아이들’ 따위의 수사로 집어삼키곤 하는데 김윤아의 카리스마와 송라이팅이 유독 도드라지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자우림의 본령이라고 할 만한 잿빛 판타지는 김윤아의 내면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어쩌면 5집의 대단히 키치스러웠던 펑크 록은 이런 비판에 대한 밴드 자우림의 토라짐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여섯 번째 앨범에서 그런 비판은 0으로 소급되어도 좋다. 밴드 포맷을 내세운 밴드 음악이 아니라 같은 곳을 보고 나아가는 밴드 음악을 하고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송라이터인 김윤아, 김진만, 이선규가 모두 프로그래밍을 담당하고 있고 각 포지션이 두드러지기보다 음악적 뉘앙스를 최대한 이끌어 내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점을 확인한다면 김진만이 작곡한 「죽은 자들의 무도회」나 이선규의 작품인 「위로」, 「Old Man」이 얼마나 자우림스러운(혹은 김윤아스러운) 곡인지 동의할 것이다. 특히 수록곡 중에 가장 드라마틱한 선곡인 「죽은 자들의 무도회」는 자우림의 또 하나의 판타지인 우화적 표현을 통해 극적인 감정을 한층 고양시킨다. 그동안 이선규의 기타에 대해서도 간과된 부분이 많았는데 「죽은 자들의 무도회」 앞부분에서 낡은 아코디언 소리를 흠모한 표현이나 「Beautiful Girl」에서 한껏 이완된 솔로는 그가 솔리스트라기보다 곡을 표현해내는 상상력 넘치는 밴드 기타리스트라는 정체성을 확인시켜주고도 남음이 있다.

이 앨범의 킬링 트랙은 두 곡이다. 먼저 「You And Me」는 관록의 밴드 자우림의 실력을 가감 없이 모두 드러내는 멋진 트랙이다. 단연 대표곡으로 삼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팝적인 감각과 자신들의 정체성을 온전히 쟁취해내고 만다. 특히 구태훈의 간소화된 반복 리듬과 이선규의 감질맛 나는 기타는 종종 감정과잉으로 치닫는 김윤아의 송라이팅을 적절히 컨트롤해내고야 만다. 두 번째 킬링 트랙은 마지막 수록곡 「샤이닝」인데, 진지한 삶을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신새벽에 이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리지 않기란 여간 힘들 일이 아닐 것이다. 이 곡 역시 단촐한 피아노와 감정 선을 제어하는 기타가 아니었다면 효과가 반감되었을, 10년 밴드의 연륜이 묻어나는 곡이 되겠다. 이 두 곡으로 다시 한번 확인 하는 것이지만 좋은 음악, 오래 사랑 받는 음악은 비워내고 간소화하는 미덕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잣대로, 가사에 멜로디를 껴 맞춘 듯한 「Loving Memory」나 실속 없는 트립합 따라하기인 「Over And Over Again I Think Of You」는 자우림이 가지고 있는 맹점, 지나친 정서 과잉의 문제점을 그대로 노출시키고 있는 수어사이드 트랙이다. 감정 과잉이라는 점에서 「6월 이야기」도 지나치게 흐느낀다는 지적을 하게 되지만 리듬을 살려내려고 애쓴 송라이팅이라는 측면에서 호의적인 결론을 낼 수 있겠다.

이렇게 자우림 10년을 결산하는 앨범은 참 기분 좋은 결과물로 던져졌다. 노래방에서 가장 많이 불리는 록 밴드, 성공한 인디밴드라는 오명으로 10년이란 세월을 보냈던 자우림이다. 이제 그만 오명을 벗겨주어도 좋겠다. 음악의 좋고 나쁨은 그들이 성공했네 실패했네를 가지고 판단되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ps) 최근에 나의 일상에서 자우림에 관한 에피소드가 있었다. 음악을 좋아하는 지인과 김치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너무 신이 난 나는 노래를 흥얼거렸고 그는 무슨 노래냐고 물었다. 요즘 듣고 있는 자우림의 신보에 실린 곡이라고 설명을 해주었더니 그는 피식 썩소를 날리는 것이 아닌가? 왠 냄새나는 썩은 미소냐고 꼬치꼬치 캐 묻진 않았지만 그 썩소의 행간엔 자우림에 대한 피맺힌 저주가 묻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홍대에서 산울림을 카피하던 시절을 생각 못하고 운 좋게 영화 사운드 트랙을 불러서 히트한 돈 냄새 풀풀 나는 2류 밴드의 노래를 왜 불러제끼느냐…’ 뭐 대강 행간은 이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Credit

[Member]
김윤아 : Vocals, Programings, Keyboards, Piano
이선규 : Guitars, Programings, Vocals
김진만 : Bass Guitars, Programings, Vocals
구태훈 : Drums, Percussions, Vocals

[Staff]
Producer : 자우림
Executive Producer : 김태은
Recording Engineer: 김동훈
Assistant Engineer: 이면숙, 윤기섭
Mixing Engineer: Yoshimura Kenichi
Mastering Engineer: Yasuji Maeda
Recorded and Mixed at Studio T
Mastered at Bernie Grundman Mastering Studio in Tokyo
A&R Director: 강지훈
A&R: 윤홍은
Design/Artworks : byul.org

Track List

  • No
    곡명
    작사
    작곡
    편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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