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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홍 #1. 내 음악은 손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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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정보


‘포크’야말로 우리 대중음악신에서 유구한 전통과 명맥으로 끈질긴 자취를 남겨온 장르다. 어떤 이는 풀밴드 구성으로, 다른 이는 전자음을 머금은 채, 누군가는 스트링 세션을 더해 자신만의 ‘포크’를 직조해낸다. 하지만, 외피가 어떻든 핵심은 ‘아티스트 자신의 말’을 노래한다는 것일테다. 어떤 장르의 음악보다도 아티스트의 생각이 도드라져 보이기에 포크는 깊고 은근한 매력이 있다.

지난 8월, 기타 한 대와 목소리만으로 오롯이 ‘자신만의 포크’를 만들어낸 아티스트가 있다. 얼핏 너무나도 단촐한 구성인데, 초록빛 손바닥이 인상적인 자켓과 함께 아르페지오의 고즈넉한 배음이 더해진 노래로 몽글거리는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

그래서, 《음악취향Y》는 앨범 발표 직후 그, 민수홍을 만나서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 인터뷰이 : 민수홍, 이상훈 (con tempo) 
○ 인터뷰어 : 차유정, 정병욱 (음악취향Y)
○ 일시/장소 : 2023년 8월 7일 14:00~16:00, 스튜디오 콘템포
○ 사진 : 민수홍
○ 녹취 : 차유정 (음악취향Y)


 

각자의 해답으로 각자의 방식으로 들었으면 좋겠어요.
강요하고 싶지는 않아요.”


 

차유정 (이하 '차') : 앨범 얘기부터 시작해 볼까요? 첫 정규음반이에요. 8곡으로 음반을 채우는 작업을 하고 나니 어땠어요? 그 과정에서 느꼈을 기분 같은 거요.
 

민수홍 (이하 '민') : 공개적인 자리에서 자주 얘기하는데요. 실감이 안 나요. 여덟 곡을 ‘그냥 하는구나.’ ‘아 했다.’ 이런 과정을 말로 설명하기 어려워요. 그냥 다 처음이고 어렵다 보니.
 

: 그러면 좋았던 것보다 어려운 게 뭐였는지 한번 얘기해 볼까요? 솔직하게.
 

: 일단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웠어요. 제가 이 녹음을 통해 어떤 소리를 만들고 싶은지 질문이 들어올 때마다 그 대답이 너무 어려운 거예요. 제 음악이 워낙 감정적인 스타일이기도 하고, 이게 어떻게 나올까 전혀 상상이 안 가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사람을 믿고 맡기는 방향으로 갔고, 또 도와주신 분들이 워낙 잘하기도 했고. 결과적으로 굉장히 좋은 작품이 나왔다고 생각해요.
 

정병욱 (이하 '정') : 결과적으로 좋다는 건 나오기 전에 예상하고 그렸던 그림대로 잘 나왔다는 걸까요?
 

: 반대로 너무 다르게 나왔어요. 더 좋게 제가 상상할 수 없었던 방향으로요.
 

: 다르지만, 만족스러운 방향으로 나왔다는 얘기죠.
 

: 네. 어려웠던 것 하나만 또 얘기하자면 (정말 어려웠던 건데) 녹음하면서 자꾸 제 기타 소리를 제가 감상하게 되더라고요.
 

: 네?
 

: 공연할 때도 제가 그런 버릇이 있어요. 혼자서 빠져들어서 다음에 뭘 해야 할지 몰라요. 녹음할 때도 이런 버릇이 튀어나와서 좀 힘들었죠.
 

: 막상 녹음은 굉장히 빨리 끝내신 걸로 알고 있어요.
 

: 시행착오가 몇 번 있었는데 그게 1년 정도 걸렸어요. 중간에 코로나도 걸렸고. 그래서 다시 녹음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 보니 저도 좀 적응이 됐고, 막상 마지막에 빨리 진행되지 않았나 싶어요.
 

: 소리와 관련한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워서 거의 맡기다시피 했다고 말씀하셨지만 그래도 만족을 느끼려면 어느 정도 통하는 게 있어야 하잖아요. 아무리 내가 모르고, 아무리 내가 처음이라고 해도요. 엔지니어님하고 어떤 정도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작업을 끌고 가셨는지 궁금해요.
 

: 그건 순전히 엔지니어 형님의 능력이에요. 제가 그런 과정에서 어려움을 느끼는 걸 아셨기 때문에 저라는 음악가에 관해 알려고 굉장히 노력을 많이 하셨고, 제 표현방식이나 진짜 표정만 봐도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연구하셨어요. 저한테 맞춰서 설명하려고, 제가 모르는 시스템이 있을 때 이해시키고 넘어가려고 많이 노력하셨죠.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요.
 

: 제가 수홍 씨의 라이브를 거의 1년 반을 봐서 그런지 녹음반을 듣고 상당히 놀랐어요. 사실 이 정도까지 나올 수 있을까 싶은 완성도였거든요. 말하자면, ‘이렇게 심플하면서 풍부할 수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포크 음악을 들으면 심플한 방향으로 아예 몰리든지, 아니면 자기가 드러내고 싶은 거를 대중없이 드러내거나 그걸 다 펼치던지. 둘 중의 하나인데, 이렇게 중심이 잘 잡힌 상태에서 심플하게 갈 수가 있을까 생각했어요. 또 어떤 곳에서는 포인트를 줄 수 있는 소품들을 적절히 활용하고, 볼륨 변화도 적절했고요. 효과음이나 소리에 대한 고민을 상당히 많이 하셨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수홍 씨가 저한테 자기는 더했으면 좋겠는데 더 빼라고 하는 부분이 더 많았다고 얘기를 살짝 했었잖아요. 이 엔지니어분은 심플함으로 승부를 보시는구나 생각한 거죠.
 

: 아까 말했듯 저는 이렇게 나올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도중에는 내용이 너무 비었다고 생각한 거죠. 이를테면 노래 도중에 기타 솔로나 첼로 솔로 이런 게 더 들어가야 하지 않나 했는데, “없어도 된다.” “없는 게 더 좋다.” 계속 얘기하셨어요. 사실 이런 사운드의 포크 음반을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 도대체 어떻게 나오려고 이러지? 걱정은 됐죠. 그렇지만 믿고 맡겼어요. 그리고 결과물을 들으니까 바로 이해했죠.
 

: 제 주변에서 이 음반을 감상한 다른 사람은, 가까이에서 속삭이는데 역겨운 느낌이 하나도 안 든대요.
 


『사소함』 앨범 발매 쇼케이스 (2023.8.23, 망원 벨로주) 


: 그건 어떨까요? 지난 쇼케이스 때 앨범을 구성하면서 곡의 순서는 내가 라이브 연주를 한다고 생각하고 그 셋리스트대로 했다고 하셨는데, 바로 그 셋리스트의 흐름이라는 게 생각하기에 따라 다양한 기준이 있거든요. 주제적인 측면이 될 수도 있고, 사운드적인 측면이 될 수도 있고요.
 

: 주제적으로 묶기에는 전체 노래가 완벽하게 묶이지 않고, 사운드적으로는 어느 정도 묶이기는 하는데 그것도 완벽하지는 않아요. 다만 사운드적으로 최대한 교집합을 찾아가면서 구성한 것 같아요. 짜는 건 사실 금방 짰어요. 그냥 “이렇게, 이렇게 어때요?” “어, 괜찮은 것 같아.” (모두 웃음) 엄청 깊이 생각하지 않았어요. 다만 이 순서였을 때 주변에서 괜찮다고 했고... 다만 (마지막 곡) 「떨어질 계절」의 위치가 좀 어려웠어요. 제가 느끼기에 이 곡이 트랙 리스트 중간에 들어가기에는 다른 곡들과 이질감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 곡의 위치를 정하는 게 어려웠고,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됐어요.
 

: 수록곡에 관한 얘기를 이어서 해볼까요.
 

: 음반 첫 곡 「사소함」부터 시작하죠. 이 노래는 이번 앨범의 제목이자 첫 곡인데, 마침 제가 수홍 씨를 공연장에서 처음 봤을 때 들었던 노래예요. 2021년 6월이었죠. 수홍씨 에게 이 노래는 어떻게 시작됐나요?
 

: 버스요.
 

: 버스요?
 

: 어디를 가는 버스였더라. 빨간색 버스였어요. 사람이 사색하는 순간이나 포인트들이 있잖아요. 그게 사람마다 다른데 저는 대중교통을 탈 때 좀 그래요. 제게 있어 대표적인 사색의 공간이에요. 지금은 차를 타고 다녀서 그럴 시간이 좀 없는 것 같기는 하지만요. 버스 창가를 보는데 갑자기 멜로디와 가사가 딱 떠오르더라고요. 그럴 때가 별로 없는데, 가끔 그분이 오실 때가 있거든요. 5~10분 만에 가사와 멜로디가 다 떠올랐어요. 그래서 핸드폰에 적고 대충 멜로디 흥얼거리고 고민하고 집에 가서 시작과 끝의 합이 딱 맞아떨어져서 완성했어요. 가사는 왜 쓰게 됐느냐? 사실 잘 모르겠어요. 그분이 쓰신 거라 뭐. 제 안에 어딘가 그런 내용이 있었겠죠.
 

: 「사소함」의 가사를 봤을 때 무슨 뜻인지는 알겠는데, 전체적으로 전하는 메시지는 사소한 게 아니에요.
 

: 저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이 노래가 나온 뒤 제가 노래에 관해 설명할 때, 사소한 게 소중해지는 순간들로부터 이 노래가 비롯됐다고 꼭 얘기해요. 노래가 나온 지 꽤 됐지만 저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좋은 단어이기도 했어요.
 


「광합성」 뮤직비디오


: 막상 앨범의 타이틀곡은 「광합성」이에요. 앨범과 같은 제목이자 중요한 주제를 담고 있는 「사소함」를 제치고 이 노래가 타이틀곡이 된 이유가 있을까요?
 

: 사운드적으로 가장 감성이 풍부한 음악 중 하나가 아닐까요. 저 개인적으로 말고도 주변 사람들 대부분 타이틀곡이라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이냐에 상관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가 광합성이었어요. 자연스럽게 타이틀곡이 됐죠. 물론 다른 게 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그냥 적당히 다양한 사람들이 좋아하고, 곡 자체의 대중성도 적당히 좋고, 그렇다고 스케일이 작은 것도 아니고. 여러모로 그랬어요. 그리고 제가 앨범에 담았던 곡 중에 제일 마지막에 쓴 노래이기도 해서, 지금의 저를 가장 잘 대변해 줄 수 있는 노래이기도 했고요. 다른 곡은 좀 오래전에 쓴 노래지만, 「광합성」은 여기서 앨범 작업을 하면서 나온 노래거든요. 그래서 그러지 않았나 싶어요.
 

: 많은 포크 음악가가 약속이나 한 듯이 자연을 바라봐요. 저는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어요. 수홍 씨도 자연에 대해 느끼는 감정, 자연과 나에 관해 든 생각들을 노래에 담았다고 보이거든요.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자신이 일방적으로 사랑하기보다 자연 자체를 객관적으로 관찰하려고 한다고 느꼈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 저는 자연을 객관적으로 관찰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 네. 관찰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연은 자연이고, 나는 그저 나라는 관점이 느껴지는 거죠.
 

: 그거야 사람과 자연이 다르니까요.
 

: 제가 느끼기에는 일반적인 의미의 자연보다는, 생명이나 ‘살아있음’에 대해 얘기를 많이 하시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아까 전 「사소함」이 탄생할 때도 버스 안에서 영감이 피어난 것처럼, 평상시 작업도 무언가를 구체적으로 계획해서 소재로 삼는 게 아니라 주변의 것들을 체화하고 들리는 소리를 따라감으로써 곡이 완성된 것 같거든요? 결국 자연을 꼭 소재로 하려 한 게 아니라요.
 

: 일단 자연이 제 앨범에 많이 담겼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잘 안 가요. 자연보다는 사실 자아 성찰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어요.
 

: 감각에 더 입각해 있다고 하면 어떨까요?
 

: 그 와중에 자연이라는 게 하나의...
 

: 큰 틀?
 

: 어쨌든 사색하고, 감각을 느끼고. 그렇게 하게 하는 것 중 하나가 자연이라는 것이기는 하고요. 20대 때는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도대체 삶이라는 게 뭐고, 지구라는 게 뭐고, 우주라는 게 무엇일까? 이에 관한 거창한 답을 찾으려고 많이 노력한 거죠. 그걸 음악에 담으려고 하고요. 그런데 결국 쓸데없는 것 같더라고요. 질문의 답을 알 수도 없고, 당연히 한마디로 정의 내려지지도 않고. 그래서 그 과정을 그대로 담아내려고 했던 것 같아요.
 

: 자연을 처음부터 겨냥하거나 구체적인 대상으로 삼은 건 아니다. 그러나 듣는 사람이 어느 정도 그렇게 느낀 건 일상의 감각을 통해 자아 성찰하는 데 있어서 그것이 일부 소재가 되었다. 정도인 것 같아요. 한편으로 수홍 님은 분명 구체적이기보다 추상적으로 가사를 쓰시는 편이고, 그 속에서 그나마 구체적으로 드러난 소재가 자연에서 보이는 것들이니까 아무래도 듣는 사람은 그게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 그게 제 능력의 한계이지 않을까... (웃음)
 

: 어렸을 때도 삶과 우주에 관해 생각하시고. 자아 성찰을 가사에 담아내고. 어찌 보면 혼자서 하시는 생각이 많기도, 구체적이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한편으론 그걸 거창하거나 어렵게, 구구절절 얘기하는 사람이 또 아니어서 나온 표현들이지 않을까요.
 

: 앞으로 음반이 나오면서 더 거창하게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웃음)
 

: 반대로 더 구체적인 것들이 소재가 될 수 있을 것도 같고요. 어쨌든 첫 번째 앨범이다 보니 지금까지의 수홍 님을 완성한 가장 자연스러운 가사와 내용이 담긴 것 같아요. 그것 자체로 특별하고요.
 

: 저는 이번 앨범의 역작으로 두 곡을 꼽고 싶어요. 하나는 「사소함」. 다른 하나는 「시체꽃」이요. 「시체꽃」이야말로 민수홍이라는 음악가의 기운과 화법이 가장 잘 집약된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시체꽃」은 정말 ‘시체꽃’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처럼 느껴져요. 어떤 한 인간이 그려지기도 하고요. 마치 타협이 없고 자기 혼자 독야청청하지만 그래도 나는 나 나름대로 세상을 바라보고 느끼다가 아름답게 전사하겠다. 이런 꼿꼿한 사람이요. 이런 모습은 수홍 씨의 평소 인생관이나 철학도 약간 녹여져 있는 걸까요? 쇼케이스 무대에서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본 ‘시체꽃’에 관해서만 말씀하셨는데, 단지 그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 시체꽃이라는 게 다양한 비유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 자신이 될 수도 있고, 혹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데, 제가 생각하는 몇 가지가 있지만, 자세한 건 비밀로 하고 싶어요. 저는 그것 정도는 듣는 사람이 자유롭게 감상하기를 원해요. 어쨌든 ‘시체꽃’이라는 게 말씀하신 대로 그냥 단순히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나온 (생태적인) 꽃만을 이야기한 것은 아니에요.
 

: 쇼케이스 얘기가 나왔으니 이 얘기를 하고 싶어요. 당시 긴장을 안 하려고 많이 노력하신 것 같던데, 저는 영상을 찍느라고 사실 수홍 씨 얼굴을 제대로 못 보기도 했어요. 특별히 크게 긴장한 순간이 있었어요?
 

: 맨 처음이요. 왜냐하면 쇼케이스 진행할 때 처음부터 제가 나가서 공연을 시작한다고 생각 못 했거든요. 어떻게 한다고 얘기도 못들었고. 처음에 제가 나가는 게 아니라 저를 소개도 좀 하고, 제 이름을 부르면 나가겠구나 예상했는데, 갑자기 올라가라고 해서 당황했죠. 아무도 없는 무대에서 조용해 시작해야 하는 건가? (웃음) 왜 사회자님이 없지...
 

: 거기서 사회자 나오면 되게 웃기는 그림이었어요.
 

: 마음의 준비 없이 갑자기 시작하는 건가 보다. 했죠. 그런 분위기를 예상 못해서 조금 더 당황하고, 그래서 조금 더 긴장을 많이 한 것 같아요. 뒤로 가면 갈수록 점점 긴장이 좀 풀리기는 했고요.
 


「시체꽃」 (클럽 빵, 2023.7.16) 


: 이건 좀 웃긴 질문일 수 있는데, 자기 음악이 어떻게 들리기를 혹은 잔상으로 남기를 바라세요. 전 그게 가끔 궁금하거든요.
 

: 어떻게 들리기를? 남기를?
 

: 대중에게요.
 

: 쓰면서 아, 이 사람들이 이렇게 들었으면 좋겠다. 크게 생각하진 않아요. 일단 사색하면서, 혹은 산책하면서 들어주면 좀 더 좋을 것 같다 정도예요. 사람들에게 좀 더 다가가기 위해서는 제 음악을 어떻게 받아들이던 대중성이 있어야 한다고 자꾸 그런 의식이 좀 남아있는데. 그 정도지 어떻게 들렸으면 좋겠다는 것까지는 없는 것 같아요. 각자의 해답으로 각자의 방식으로 들었으면 좋겠어요. 강요하고 싶지는 않아요. 
 

: 어떤 뮤지션은 대중이 자기 음악을 너무 제멋대로 들어서 열 받기도 하잖아요.
 

: 저는 그런 걸 너무 싫어해요. 자기 생각대로 듣고 해석하는 게 좋아요. 제 음악은 그렇게 들었으면 좋겠어요.
 

: 그래서 「시체꽃」도 신비주의로 남겨진 채...(웃음)
 

: 신비주의까지는 아니고요.
 

: 그것도 자유니까.
 

: 맞아요.
 

: 저는 「광합성」 연주할 때 좀 놀랐어요. 굳이 끊지 않아도 되는데 끊더라고요. 긴장해서 숨도 제대로 안 쉬는 것처럼 보이고.
 

: 그때 제가 튜닝을 좀 잘못해서 끊었던 거기도 해요. 그거 계속했으면 큰일 났을 거예요. 그리고 긴장하면 숨 쉬어야 할 타이밍을 놓치기도 하죠.
 

: 그래도 괜찮은 쇼케이스였다.
 

: 민수홍이라는 아티스트를 잘 소개하는, 있는 그대로 잘 보여준 무대인 것 같아서 좋았어요.
 

: 긴장 안 하는 무대가 거의 없어요. 클럽 ‘빵’은 그나마 연주를 오래 해서 긴장을 안 하고요.
 

: 긴장하는 와중에도 자기 색깔이 드러나니까 괜찮아요.
 

: 저는 긴장하면 손에 힘이 들어가요.
 


「바람이 태어날때에」(2022)


: 앞서 싱글을 하나 냈잖아요. 「바람이 태어날 때에」. 이 노래의 싱글 버전이랑 이번 앨범 수록 버전을 계속 비교해서 들었는데.
 

: 맞아요!
 

: 확연하게 달라요. 소리가 아주 심플하고, 많이 절제되어 있다는 게 어떤 건지 느껴져요.
 

: 그때 싱글 관련해서 더 얘기하고 싶은 부분이 있어요. 싱글 「바람이 태어날 때에」는 이대로 가다간 아무것도 못 내겠다. 생각해서 낸 곡이에요. 레이블 들어가기 전에 어떻게든 대충 해서라도 내가 뭔갈 내야 하겠다. 언제까지나 만족을 바랄 수도 없고. 그래서 한 녹음이에요. 한 시간가량 제 장비로 녹음했고, 믹싱과 마스터링도 거의 공짜로 했죠. 후다닥 내버렸어요. 그러다 보니까 아무래도 아쉬움이 무척 많지만, 그 덕분에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상훈 (이하 '이') : 수홍이 앨범을 준비하면서 (느끼셨을진 모르겠지만) 녹음이나 마스터 작업할 때도 그렇고, 쇼케이스 준비할 때도 그렇고, 수홍이는 한 명이나 두 명쯤 세션을 더 쓰고 싶어 했어요. 저나 엔지니어는 수홍이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무척 많기에, 오히려 다른 게 추가되었을 때 방해나 리스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빵에서도 항상 얘기했던 게 자기 혼자 다 절제할 수 있고, 조절을 잘하는 사람인데 굳이 항상 같이하는 걸 선호하더라고요. 왜 그럴까? 생각했는데 그 부분에 관해 지금 얘기 들으며 좀 속이 시원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 그 이유는 아시잖아요. 제가 왜 그런지.
 

: 이유 얘기해 주세요.
 

: 자신감이 없어서예요.
 

: 개인적으로 그런 부분이 좀 아쉬웠어요. 막상 무대를 겪고 나면, 못하는 게 없는 사람으로 보이는데, 그걸 스스로 믿거나 드러내지 않으니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제가 항상 “못하는 게 없다.” “혼자서 잘한다.” “거의 원맨밴드 수준이다.”라고 얘기를 해도 안 믿으시더라고요.
 

: 콘템포도 유정 님과 동일한 생각을 했어요.
 

: 맞아요. 「바람이 태어날때에」에 관한 얘기를 마무리하자면, 결국 소리에 대한 이해가 좋다는 게 확연히 느껴져요. 절제하면서도 곡이 많이 풍성해졌어요. 《베로니카의 이중 생활》(1991)이라는 영화가 있어요. OST에 옛날 건반 사운드를 굉장히 잘 써서 중세 고전의 인상을 효과적으로 주는 트랙이 많았는데, 이 곡 「바람이 태어날때에」의 사운드를 들으니 그 음악이 많이 생각나더라고요. 소리가 고전적으로 풍성하게 나와서요.
 

: 엔지니어 형이 굉장히 연구를 많이 했더라고요. 저는 이렇게 심플하게 빼는 것 자체를 하실 줄 안다는 것도 굉장히 감동했지만, 주어진 상황을 고치거나 적절히 더하는 건 더 어려운데 그걸 다 하시는 걸 보고 엄청나게 놀랐어요. 포크를 처음 하셨거든요.
 

: 보통 특정 음반을 작업하면, 스타일이 비슷한 음악을 레퍼런스 삼아 많이 듣잖아요. 이 엔지니어 형도 포크 음반을 많이 들었는데, 듣는 이유가 반대였어요. 지금까지 있었던 포크 음악과 다르게 하려고 듣더라고요. 최대한 겹치는 사운드를 피했어요. 그래서 포크 음악이기도 하지만, 포크 음악과 다른 음악이 나오기도 했죠. 수홍이와 맞는 사운드를 잘 찾고, 잘 피해서 완성된 사운드라고 생각해요. 엔지니어 형이 수홍이의 음악을 수홍이보다 더 많이 들은 사람이죠.
 

: 엔지니어가 이번 앨범 지분의 70%를 가져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70%는 심하고 50%로 합시다. 50%도 많은 거니까.
 

: 그래서 CD 크레딧 보시면 ‘Tonmeister’(톤 마이스터)라는 역할로 엡마(Aepmah) 형 이름이 들어가 있어요. 김아일 앨범에도 동일하게 들어가 있거든요. 원래 톤마이스터는 보통 클래식에서 스코어와 녹음 사운드 사이에 있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잖아요. 저희가 하는 게 클래식 음악은 아니지만, 엔지니어 형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 톤 개념을 또 록에서도 잡잖아요. 이번 음반은 확실히 톤을 생각할 수 있는 음반이었어요. 예전에 일렉 기타나 통기타를 잡았던 사람이 강렬하게 느낄 수밖에 없는 사운드와 지점요.
 

: 포크인데 밴드 음악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요. 이 얘기를 엔지니어 형한테 드렸더니 마침 자기가 그걸 생각하셨다고 하시더라고요. 밴드처럼 들리는 걸 염두에 두셨다고요.
 

: 뭔가 잘 융합되고, 그 융합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큰 스케일로 움직이는 음악이에요. 음악 자체가 매우 터프한 편이기도 하고. 그것이 기존 포크와 가지고 있었던 답답함을 많이 상쇄시켜 주기 때문에 요즘 포크 음악들 가운데 유독 돋보이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 다른 레이블에서 녹음했으면 어떻게 나왔을까...
 

: 쓸데없는 걸 많이 요구했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너무 선입견에 갇혀서 포크를 보나 봐요. 막상 나온 결과물을 들어보니 본인의 장점을 살려 주기도 하면서, 이 사운드를 더하고 빼기 위해 거의 완벽에 가깝게 곡을 해석한 게 놀랍습니다.
 

: 알아봐 주는 분들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 앨범 재킷에 그려진 ‘손’에 대한 얘기를 묻고 싶어요. 지난 싱글 「바람이 태어날때에」의 앨범 재킷도 손이고, 이번 정규앨범도 손이에요. 이번에 나온 그림이 좀 더 투박한 손이기는 하고요. 저는 이 ‘손’ 하나에도 많은 의미가 있고, 그와 관련해서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손에는 노동의 도구로써 손, 누군가와 대화할 때 제스처로써의 손, 수홍 씨에게는 기타를 연주하는 손 등 다양한 의미가 있을 거잖아요. 이전에 “내 음악은 손에서 시작한다.”라는 이야기를 한 적도 있으시고요. 왜 손일까요?
 

: 저한테는 그냥 이게 전부잖아요. 손에 대한 애착이 있어요. 손이라는 게 모든 감각을 일으키는 것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그 모든 걸 대변할 수 있으니까 선택한 게 손인 것 같고요. 이건 처음 얘기하는 건데... 앞으로도 나오는 모든 앨범의 커버를 손으로 할 생각도 있어요.
 

: 그림이 시각적으로 강렬해요. 짙은 물감이 칠해진 채로 손을 펴고 있는데요. 수홍 씨가 느끼기에 이 그림의 의미는 무얼까요? 이미지는 뭘까요?
 

: 손은 곧 감각이잖아요. 그게 시각적으로 담겨 있는 것 같아요.
 

: 저는 이 그림에 찌든 생각과 새롭고 다시 태어나고 싶은 욕망이 같이 얽혀 있다고 느껴져요. 힘이 없는 상태에서 손을 폈을 때 느끼는 지금의 현실, 그런 게 담겨 있는 것 같거든요.
 

: 그걸 정답이라고 일단 얘기할게요. 정답은 여러 개니까. 다양하게 담겨 있기도 하고, 아무것도 안 담겨 있기도 하고.
 

: (웃음) 아무것도 안 담고 있다고 한다면 참 어려운 음반이네요.
 

: 어디까지나 해석은 해석하는 이의 몫이니까...


(... 다음 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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