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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앞의 별이 떠나갈 때 #19] Prince : 프린스는 나에게 무엇이었나

전자인형 | 2016.08.23

무엇이었긴. 그냥 가수지. 요즘 전설들이 많이들 돌아가시고 있어서 음악계는, 특히 《음악취향Y》는 거대한 부고 사이트가 된 것 같은 생각마저 든다. 이분 저분 다들 돌아가시니, 그리고 다들 진정성 넘치는 헌사들을 바치다보니 내 슬픔과 사랑이 옅어지는 것 같아 조금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린스에게만은 특별한 헌사를 해도 좋을 것 같다.헌사라기 보다는 케케묵은 기억을 꺼내놓는 정도겠지만.



Take Me With U

중학교때였다. 전승우라는 친구 집이었다. 별로 친하지도 않았는데 그 놈 집엔 왜 갔었을까? 전후 과정은 전혀 기억 나지 않지만 회색 카세트 테이프는 또렷이 기억난다. 당시 오아시스 레코드는 라이센스 팝 음악 테이프를 회색으로 디자인하고 가운데 조그맣게 원래 커버를 넣었었다. 그 집 선반에 프린스의 『Purple Rain』(1984) 테이프가 있었다. 보라색을 뒤덮은 회색이라… 왠지 한국적인 느낌이지 않은가? 당시 라이센스 팝 음반엔금지곡이 비일비재했는데 『Purple Rain』도 마찬가지였다. A면 첫 곡은 「Let’s Go Crazy」가 아니라 「Take Me With You」였다.


소니가 적혀 있는 카세트데크, 까만 사각형의 그릴이 양 옆에 매달린 납작한 붐박스였다. 거기서 천둥같은 드럼이 두그두그두그하며 울려퍼졌다. 지금은 『Purple Rain』을 세 가지 버전으로 가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내게 오리지널은 「Take Me With You」로 시작하는 수년전의 그 회색 테이프다. 결박당했다. 꼼짝달싹 할 수 없이 빨려들어갔다. 뭔가 다른 분위기였다. 뒷골목에 피어오르는 수증기 사이로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드는, 그런 곳에 처음 와 본 긴장감이 감싸고 뭔지 모르겠지만 죄를 짓고 있는 느낌이 들었달까? 거진 이십 몇 년 전 일인데 지금도 프린스를 들으면 그 순간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언젠가 프린스에 대해 쓴다면 이 기억, 이 느낌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기억의 시작


Lovesexy


나는 프린스를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두 가지 기억이 난다. 1987년 Michael Jackson과 George Michael의 빅매치 이후 나는 팝 음악에 몰입하기 시작했고 없는 돈을 털어 《음악세계》 구독자가 되었다. 《음악세계》는 팝음악의 기초지식을 쌓는데 매우 유용한 매체였다. 그리고 신화를 들려주는 이야기책이기도 했다. 당시 내가 가장 끌렸던 신화는 Doors와 Prince였다. Doors는 저항과 퇴폐의 끝판왕이었고 Prince는 외설의 제왕이었다. 당시 머리 속에 각인된 이미지가 하나 있는데, 『Lovesexy』(1988) 앨범 커버였다. 아! 발가벗은 Prince, 기사에 의하면 Prince는 당시 투어 시장의 최고봉이었고 무대 장치가 화려하기로 소문났는데 심지어 무대 위에서 샤워를 하는 수준이란다. 홀딱 벗고 말이다. (유투브로 확인해 보니 바지는 입었더라)


청계천에서 해골그려진 앨범들만 골라내느라 그랬는지 Prince의 음악은 좀처럼 들어볼 수 없었다. 그래서 Prince는 음악이 아니라 벗은 몸으로 더욱 각인되었는지 모른다. 재미있는 것은 이것과 연관된 한 기사가 머리속을 떠돈다는 것이다. James Brown이 음주 교통사고를 내고 도주하다가 경찰이 그를 체포했다는 기사. 중년의 James Brown이 경찰 손에 이끌려 추한 모습으로 끌려가고 있는 사진역시 뇌리에 생생하다. 누가봐도 그 기사에는 거장에 대한 리스펙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왕년의 댄스가수의 가십일 뿐이었다. 그 기사를 번역한 기자는 한 술 더 떠 청소년에게 영향을 미치는 팝 스타들의 행태가 실망을 금치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유교적 평론을 더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런 기억들을 왜 끄집어내느냐하면 Prince에 대한 환상, 혹은 무지가 어디에서 기인했는가 더듬어보자는 취지다. Prince의 벗은 몸과 경찰에 연행되는 James Brown 사이에는 아무 연관이 없는 것 같지만 한국에서는 특별한 의미를 생성해낸다. 여전히 예를 숭상하는 이 근대화된 조선에서, 외설과 범죄를 벌인 팝 가수는 결코 받아들여질 수 없는 금기에 다름 아니었다. 더군다나 그들은 흑인이었다.


여기서 바로 Jim Morrison과 Prince의 차이가 발생한다. 똑같이 벗었지만 Jim Morrison은 뭔가 권위에 투쟁하는 전사로 받아들여졌고 Prince는 그냥 퇴폐, 미 제국주의 더러운 자본이 만들어낸 외설적인 스타시스템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아닐까? 얼추 그렇다는 것이다. 적어도 방송이나 음악잡지를 통해 소비되던 한국의 팝 시장에서는 말이다.


벗었으면 같이 취급해야지 말이야


Lady Cab Driver


그렇다면 방송이나 매체를 뛰어넘어 팝음악을 소비하던 매니아들은 어땠을까? 음악을 오래 좋아했다면 몇몇 늙은 덕후들에게 'Prince는 최고지' 라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그러고는 음악카페 DJ에게 신청하는 게 고작 「Purple Rain」이었던 기억도 있을 것이다. 「Purple Rain」 은 Prince의 대표곡이긴 하지만 그의 시그니쳐 곡이라고 볼 수는 없다.


사실 Prince의 음악은 시그니쳐라고 고정할 수 있는 스타일이 없다. 워낙 다작이기도 하고 그 안에서도 자기만의 색깔로 스타일을 뒤죽박죽해 놓기 때문이다. 그러니 '신촌 사운드', '홍대 음악'처럼 '미네아폴리스 사운드'라고 퉁칠 수 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꿰 맞추자면 하드한 일렉트로 훵과 록 기타의결합이라고 할 수 있겠다.


80년대의 메인스트림 팝은 흑인적인 것이 백인적인 것과 결합해 느슨해지면서 상업적 폭발을 가져온 시기다. Michael Jackson의 『Thriller』(1982)도 그랬고 Lionel Rich의 『Dancing On The Ceiling』(1986)도 그랬다. 『Purple Rain』도 마찬가지다. Prince가 그들과 다른 것이 있었다면 그들중 가장 흑인적인 뮤지션이었고 또한 가장 백인적인 기타리스트였다는 점이다. Prince의 메인 악기가 기타라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리드 기타란 관습적으로 록음악의 배경을 깔고 있기 마련인데 거칠게 말해 록적인 기타가 흑인적인 일렉트로 훵과 결합한 것이 바로 Prince 음악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이런 조합은 Sly And The Family Stone이나 George Clinton의 직접적인 영향이긴 하다. 그러나 Prince는 그들보다 록킹한 기타 솔로를 들려주었다. 마치 Jimi Hendrix처럼 말이다. 나름 록음악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한국이기 때문에 「Purple Rain」이나 『Around The World In A Day』(1985)에 수록된 「The Ladder」는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의 반쪽, 그러니까 하드한 일렉트로 훵은 그렇지 않았다.


Prince를 Prince이게 만드는 것은 거침없는 일렉트로 훵이다. 린(Linn) 드럼머신과 오버하임(Oberheim) 신시사이저가 지배하던 꺄무륵한 세계. 『Dirty Mind』의 수록곡 「Head」(1980)부터 시작해 『Art Official Age』(2014)에 수록된 「The Gold Standard」에 이르기까지, 「Musicology」(2004)를 듣고서야 우리는 Prince의 부활을 믿기 시작했지 않나? Prince를 수퍼스타로 만든 것은 「Purple Rain」의 기타 솔로지만, 그에게 열렬한 존경을 보내는 이유는 그가 신시사이저와 드럼머신의 구루(guru)이기 때문이다. 첫 앨범부터 마지막 앨범까지 그의 사운드는 그야말로 다양했고 복잡했고 또한 신선했다. 암흑기라 불리는 90년대조차 그랬다. 지금의 힙합, 일렉트로니카와 비교해도 Prince의 솜씨는 전혀 후지지 않다. 아니 아이디어와 에너지라는 면에서 현재를 능가한다. 「Sign O’ The Time」(1987)의 은근한 레이백을 들어보라. 그는 이곳에서 비로소 천재였다.


『1999』(1982)는 내게 신세계를 보여준 앨범이다. 순전히 「Purple Rain」의 명성만으로 산 앨범이었다. 록음악에 빠져 있던 소년이 접한 새로운 세계였다. 10분 가까이 이어지는 단순한 리듬, 그게 구렁이처럼 몸을 타고 넘어가며 사타구니를 간질거리던 느낌, 거기에 비하면 「Take Me With You」의 죄의식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더블 앨범을 두 곡을 자르고 한 장에 구겨넣은 라이센스 LP, 어리둥절하면서도 새우깡처럼 자꾸만 손이 가던 앨범, 그렇게 결국 「Lady Cab Driver」를 듣고 만다. 택시기사에게 당신의 맨션으로 데려가 달라는 (Prince의 대표적 드립이다), 은근하게 시작했지만 결국 교성을 내지르던 여자, 시종일관 베이스가 꿀렁대는 이 아름다운 해방의 세계, 「Lady Cab Driver」가 아니었다면 나의 음악취향은 결코 소울과 힙합으로 넘어가지 못했으리라.



영접하라 새로운 세계! (1999 Era)


A Love Bizarre


Michael Jackson이 홀로선 고독한 슈퍼스타였다면 그는 언제나 동료들과 함께였다.  Wendy And Lisa는 물론이고 Sheila E도 있었다. 영화 《퍼플레인》(1984)의 중요한 감초였던 Morris Day도 있고 풍만한 Apollonia 6가 란제리 입고 춤을 추던 Vanity6도 있었다. 일명 미네아폴리스 커넥션이라 부르는 일련의 팀들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있다. 검은 파스텔톤이랄까? 분명 흑인 특유의 끈끈한 커뮤니티를 근간으로 하지만 James Brown 시대처럼 날 선 분위기는 아니고, 당대 신스팝의 나긋나긋함이 있지만 나약한 팝에 머물지 않는 특유의 이미지가 있다. 80년대 Prince의 무대 매너를 보면 명명백백하게 James Brown의 후예임을 자처한다. 마이크 스탠드를 가지고 다리를 찢는 모습은 물론이고 무대 세션들이 하나의 공동체처럼 움직이는 모습들이 그렇다. 그러나 James Brown의 무대에서 보이던 흑인 공동체의 불같은 투쟁의식이랄까? 강한 연대감이랄까? 어떤 진지한 자긍심 같은 것이 빠져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대신 보이는 것은 세대가 바뀐 흑인 청년세대들의 기쁨이다. 이들은 마치 새시대를 맞이한 즐거운 흑인들처럼 보인다. 영화 《퍼플레인》은 이런 미네아폴리스 커넥션의 경향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는 일종의 다큐멘터리다.


(좌측 위부터 시계방향) 미네아폴리스 커넥션 : Wendy & Lisa, Sheila E, Vanity6, Morris Day


Prince는 개인작업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동료들과 함께 공연할 때는 아이돌의 모습을 마음껏 드러냈다. 이 시절 프린스에겐 뭔가 10대스러운 귀여움이 있다. 「I Would Die 4 U」(1984)의 손동작은 물론이고 「A Love Bizarre」(1985)에서 드러나는 표정들을 보라. 90년대 「Cream」(1991)이나 「My Name is Prince」(1992)처럼 진정 힙합이던 NPG (New Power Generation)도 좋지만, 내게 Prince는 80년대 시절의 이 예쁘면서 카리스마 있던 모습으로 각인되어 있다. 우리 써니 세대들은 Michael Jackson이나 Madonna는 받아들여졌지만 왜 Prince는 빼놓았을까? Joy나 A-ha 같은 맥아리 없는 클럽 음악도 받아들였으면서 왜 Prince는 빼놓았을까? 그랬다면 나이트클럽에서 「A Love Bizarre」처럼 다함께 공동체를 이루면서 춤을 출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그의 찬란한 업적 때문에 Prince가 작고 귀엽고 재기 발랄한 아이돌이었다는 사실을 종종 잊는 것 같다. 그들의 동료들과 만들었던 다시올 수 없는 80년대적 흑인공동체. James Brown의 유산이면서 동시에 힙합에게 물려주는 어떤 세대의 모습. 소울과 힙합, 디스코와 일렉트로 훵을 통틀어 Prince는 가장 뛰어나고 가장 찬란한 순간을 살았던 뮤지션 아닐까? 「A Love Bizarre」의 라이브 버전을 들고 있자니 더욱 그의 죽음이 사무친다.

태그 | 추모,Prince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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