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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언니네 #12] 그들이 던지는 어려운 질문

언니네이발관 『가장 보통의 존재』
by. 김용민 | 2017.07.27
김용민 | 2017.07.27

어느 뮤지션이나 그들을 표현하는 특별한 단어가 있겠지만, 언니네 이발관을 표현할 때 특히 자주 사용하는 단어들이 있어요. 완벽주의, 고집, 장인...... 하나같이 숨이 턱 막히고, 까칠하고 빡빡하지만 많은 존경을 담은 표현들이죠. 그런데 저는 이 단어를 조심스레 끼워 넣어보고 싶습니다. ‘우연’이란 다소 느슨한 요소 말이죠.


생각해보면, 이제는 너무나 유명해진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날린 ‘뻥카’부터 2집 『후일담』의 실패와 후의 재평가, 멤버의 잦은 변동 등. 언니네 이발관이란 밴드의 운명을, 정작 스스로 결정지은 사항은 많지 않습니다. 그중에서도 아마 본인 입장에서 가장 당혹스러웠을 것은, 앨범의 창작 의도, 기대치와 대중들의 반응이 매우 상반됐다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민망한 연주력을 기반으로 한 1집에 그렇게 찬사가 나올 줄은, 훨씬 향상된 실력을 바탕으로 만든 2집에 일제히 대중이 외면할 줄은, 그리고 대중적으로 만들지 않았다고 수차례 밝힌 3집과 4집이 상업적으로 이렇게 성공할 줄은 (물론 사람들이 멜로디를 따라 부를 것이란 자신감은 있었지만) 모르지 않았을까요. 참으로 얄궂습니다. 이런 저런 희망과 절망, 많은 오독이 결국 언니네 이발관을 여기까지 이끈 원동력이었으니까요.


그래서인지 다음 앨범인 6집이 나왔음에도 아직 홈페이지 게시판 머리말을 차지하고 있는 ‘『가장 보통의 존재』를 듣는 법’은 일종의 의지마저 느껴집니다. 순차적으로 듣고, 음질 면에서 가장 좋은 환경에서 들어달라는 단 두 가지 부탁. 단순하지만 오독하지 말아달라는 의미의 가이드라인은 청자에 대한 일종의 도전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대중음악 시장과 이곳을 지배하고 있는 관념들에 대한 것 일수도 있겠네요. 흔히 요리만화에서 이런 풍경을 자주 봤을거에요. 이건 어떤 방식, 순서대로 먹어야 하고 그렇게 먹지 않는 손님은 쫓아내거나 ‘요리를 소중히 할 줄 모르는 무뢰한’ 취급하는 장면이요. 물론 각자의 해석은 정말 상이합니다. 장인의 손길로 여길 수도, ‘자의식 충만한 건방진 요리사’ 취급을 할 수도 있습니다. 현재 뮤지션 이석원에 대한 양면적인 평가처럼 말이죠.


하지만 자연스레 오른 기대와는 다르게 프롤로그 격인 1번트랙 「가장 보통의 존재」는 당시의 기준으로 결코 좋지 않은 시그널을 뿜어냅니다. 거대한 한 장으로 된 앨범 속지를 펼쳐서 확인 할 수 있듯이, 황당하리만치 수다스럽고 장황한 가사에 ‘당신을 애처로이 떠나보내고’ ‘무슨 서운하긴’과 같이 일반적이거나 세련되지 않은, 엉성한 표현들까지 들어있습니다. 시적 표현이라고 하기도 애매하고요. 게다가 사운드는 아날로그부터 시작해 끝에는 로우파이까지 뚝 떨어뜨리기까지 하죠.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2008년이라는 시기는 「Tell me」 등 후크송과 오토튠이 대중화 되던 시기란 걸 상기하면 첫 입맛은 그렇게 상큼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정말로 텁텁해요. 불투명한 사운드가, 화자가 말하는 내용도, 그리고 무신경해 보이는 멜로디 까지도. 물론, 보컬 위주로 맞춰진 밸런싱과 스스로 밝힌 철학적인 목적을 단서를 삼을 수 있겠지만 그것만으론 명쾌하게 풀리진 않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맴도는건 무엇일까요. 보컬의 발음이나 발성이 좋은 것도, 그리고 각 파트가 명료하게 들리는 것도 아닌데, 멜로디와 가사의 중요한 순간들이 마음속을 맴돕니다. 아니, 정확히 말해선 어느 것이 내 마음을 흔드는지 전혀 알 수가 없게 만들어 놨습니다. 「가장 보통의 존재」의 불안감은 「너는 악마가 되어가고 있는가?」에서 본격적으로 터져버립니다. 앞선 모호함들이 일제히 처절한 칼날이 되어 우리에게 일제히 향하거든요. 적극적인 기타 스트로크, 잔잔하게 긴장시키는 드럼페달과 눈빛이 바뀌어버린 메시지 만큼이나 음악과 마음이 심하게 요동 치는것은 비단 저만의 느낌이 아닐 겁니다. 이 잔인한 메시지들. 가슴속에 한번쯤은 품은 모습들이잖아요. 철저히 수동적인 변명으로 일관하는 이 모습이 낯설지가 않잖아요. 마냥 피해자이고 싶은 마음이 낱낱이 파헤쳐지는 것이 매우 고통스럽게 다가오는걸, 어찌할 수가 없네요. 도망쳐 버리고 싶을 만큼.


그렇게 고통스런 과정을 지나 정해놓은 대로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마지막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10곡짜리 앨범에서 3번째에 마지막이라니” 하시겠죠. 나머지 트랙을 들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아름다운 것」은 애초부터 애정관계에 존재하는 자아로서 모든 감정을 탈진할 만큼 쏟아내도록 유도하고 있어요. 원망인지, 한탄인지, 후회인지, 무엇인지 모를 감정들이, 영원히 기억될 물음 ‘사랑했었나요, 사랑했나요’에서 모두 섞이고 녹아 무너져 내립니다. 3곡, 10분 남짓한 시간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요.


앞선 긴 언급에서 알 수 있듯이 1,2,3번 트랙의 존재감은 너무나도 압도적이고, 이 트랙들만으로도 훌륭한 기승전결을 구성할 수 있습니다. 후반부의 힘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반문이 존재하는 것도 그 때문이겠죠. 그러나 「작은마음」부터는 편곡이 미니멀해지고 가사가 소소해질지언정 오히려 삶의 카테고리는 확장되어 버립니다. 앞선 곡들은 연인관계가 비교적 명확하지만, 이후에는 연인인지 아니면 다른 상대인지 혹은 남이 되어버린 옛 연인인지 불명확 하거든요. 「작은 마음」 「100년동안의 진심」 「나는」의 공허함과 중얼거림에 가까운 독백은 누군가에게 참을 수 없는 잔향일수도 있고요.


후반부의 타이틀이라고 할 수 있는 「인생은 금물」은 그래서 더 헛헛합니다. 기껏 잡다한 고민들과 볼품없으면서 진중한 풀이들을 거쳤더니 함부로 태어나지 말라니. 가장 대중적이고 흥겹고 다채롭게 만든 멜로디 위로 경쾌한 결론들이 들썩들썩합니다. 그런데 방심할 때 즈음에 ‘그러나 너는 결국 말을 듣지 않고 어느 누군가를 향해서 별이 되어 주러 떠나게 될 걸’이 불쑥 튀어나옵니다. 이 앨범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구절이 있다면 바로 이 문장이 아닐까요. 가장 보통이면서 가장 특별한 존재를 만들어주는 바로 그 지점. 수많은 오답속에 존재하는 명확한 답의 시원한 순간이네요. 그리고 마지막 트랙인 「산들산들」을 거쳐 덤덤하게 자신이 있던 그 자리로 돌아갑니다.


사실 앨범 리뷰에서 이렇게 감상을 길게 꺼내는 것이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닙니다. 각자의 삶의 시기도 다르고, 모습도 다르고, 무엇보다 사람은 많이 변하는 존재니까요. 더군다나 앨범이 나온 직후가 아닌, 자그마치 9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그런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가장 보통의 존재』를 수백번 들어도 딱히 이 앨범이 대중음악사적, 혹은 장르의 권위를 바라보는 것을 좀처럼 느낄 수가 없어요. 인정받고자 하는 개체가 창작자 본인이라면 모를까요. 커리어 시작부터 이석원을 쫓아다니는 Pet Shop Boys의 멤버, Neil Tennant의 모습, 혹은 미국 인디록을 연상케하는 스탠스를 의심할 수 있겠지만, 결국 앨범 한 바퀴를 돌다보면 궤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많은 인디밴드들이 장르, 밴드 레퍼런스를 가지고 나름대로의 영역을 구축해 나갔다지만, 1세대 인디 밴드인 언니네이발관은 『가장 보통의 존재』에서 그 이전의 흔적을 벗어나 버립니다. 반면 비참하지만, 이 앨범이 폭로하는 모습에서, 9년 동안 저의 삶은 얼마나 벗어났는지 잘 모르겠어요. 많은 사람들이, 새로워지는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 앨범을 찾아 듣고, 기억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자각에서 시작한 청승맞은 여정은 애초부터 무엇을 참고할 만한 성격의 것이 아닐지 모릅니다. 어쩌면, 언니네 이발관이 그리는 ‘가장 보통의 존재’를 표현함에 있어서, 음악으로 그릴 수 있는 방향이 단 하나였을 수도 있다는 다소 황당한 추측마저 하게 만듭니다. 완성을 셀 수없이 뒤엎었던 그 경악스런 과정들 또한 점 하나도 안되는 작은 부분을 찾아내려는 무모한 시도에서의 필연적인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어요. 완성도를 차치하고 과연 이 음반이 10만장 넘게 팔릴 정도로 대중들이 찾을 만한 앨범이었는지요.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듭니다. 『가장 보통의 존재』에서 우리가 찾고자 하는 것은 정답이 아닌, 그들이 던지는 어려운 질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요. 저에게 이 앨범은 단 하나의 앨범이면서 가장 불편한 앨범이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계속 듣고 싶어요. 그러나 답을 찾지는 않겠죠.


‘사랑했었나요? 사랑했나요?’


  • Credit
  • [Member]
    이석원 : 보컬
    이능룡 : 기타
    전대정 : 드럼
    유정균 : 객원 베이스

    [Musician]
    피아노 : 임주연 on 「산들산들」, PC2X on 「인생은 금물」
    트럼펫 : 배선용 on 「의외의 사실」, 「알리바이」

    [Staff]
    프로듀스 : 언니네이발관 with 김대성
    녹음 : 톤스튜디오
    레코딩엔지니어 : 김대성, 이태섭
    어시스턴트 엔지니어 : 고정은, 신봉원, 유상재, 신경범
    믹스 : 김대성
    마스터링 : 김대성@톤스튜디오

Track List
  • 01. 가장 보통의 존재 L이석원 C이석원, 이능룡
  • 02. 너는 악마가 되어가고 있는가? L이석원 C이석원, 이능룡
  • 03. 아름다운 것 L이석원 C이석원, 이능룡
  • 04. 작은 마음 L이석원 C이석원, 이능룡
  • 05. 의외의 사실 L이석원 C이석원, 이능룡
  • 06. 알리바이 L이석원 C이석원, 이능룡
  • 07. 100년 동안의 진심 L이석원 C이석원, 이능룡
  • 08. 인생은 금물 L이석원 C이석원, 이능룡
  • 09. 나는 L이석원 C이석원, 이능룡
  • 10. 산들산들 L이석원 C이석원, 이능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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