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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언니네 #10] ‘순간’을 믿어요

언니네이발관 『순간을 믿어요』
by. 정병욱 | 2017.07.25
정병욱 | 2017.07.25

#1. 언니네이발관의 깊은 한숨


생애 귀하지 않은 순간 없고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하나 없다지만 4집 『순간을 믿어요』는 언니네이발관에게 유난히 아픈 손가락이 아니었을까 싶다. 상업적으로 실패했다고 자평한 2집의 경우와 다르게 4집은 알다시피 비평에 있어 유독 평가가 박하거나 없기까지 했던 음반이기 때문이다.


언니네이발관의 전작들에 대한 평가는 ‘인디’나 ‘아마추어리즘’이라는 용어를 통해서든, ‘모던록’이나 ‘얼터너티브’ 등의 장르 언어를 통해서든 주로 국내 ‘최초’라는 상징성에 방점이 찍혀 왔다. 2집이 훗날 재평가를 받기는 했지만 좋은 곡과 훌륭한 연주로도 1집만큼의 반응을 얻지 못했던 것은 '1집의 상징성을 고스란히 계승하지 않았다'는, 청취자 중심의 배신감이 깔려 있었던 탓이다. 『순간을 믿어요』 역시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장조의 밝은 멜로디, 기승전결이 뚜렷한 서사, 자극적이고 강렬한 사운드와 트랙마다 조금씩 분위기를 달리하는 다채로운 소스 등 3집 『꿈의 팝송』을 중간다리로 이해한다손 쳐도 꽤나 파격적이었던 4집의 ‘변신’은, “대중의 취향에 영합했다”는 모종의 배신감이 4집의 비평적 성취를 가려 누군가에게는 “깊은 한숨”을 낳았다. 그러나 같은 시(詩)를 같은 사람이 읽어도 늘 같은 감상일 수 없듯 마치 시처럼 예민한 감성과 분별의 언어로 정화하고는 했던 이들의 음반 역시 작금에 바라보는 시각은 그때와 사뭇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구태여 사족을 달고 보니 본문이 13년 전 평가가 분분했던 음반에 대한 차가운 리뷰 글이어야 할지,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을 마치 추모하는 듯이 대하는 따뜻한 회상의 글이어야 할지부터 고민이 된다. 다행히 갈 곳 모르는 마음을 부여잡을 수 있는 것은, 이제 우리가 언니네이발관을 떠나보내야만 하게 된 마당에 이 음반이 바로 그 “놓음”에 대한 이야기라는 사실 덕분이다. 각 잡고 마지막을 준비한 6집보다 어쩌면 더욱 솔직한 이별에 대한 이야기가 여기 4집에 담겨 있으며 뒤바꾸어 이들은 늘 이별과 고독을 심상에 품고 살았으니 그 일관적임을 나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2. 시간의 바람이 부는 대로


다시 말해 매 앨범 누가 뭐라 하든 언니네이발관은 늘 언니네이발관이었다. 아무리 창작자에게 무한한 창조의 기회와 가능성이 주어졌다고 하더라도 대중과의 소통이 성공을 위한 보장처럼 따라붙는 시대라도, 언니네이발관은 ‘영합’이라는 단어보다 무조건 창조적 ‘소신’이라는 단어에 훨씬 잘 어울리는 팀이었다. 소통에 있어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는 했지만 적어도 음반 작업에 있어서 이석원은 자기 주관을 언니네이발관 음악에 고스란히 관철했다. 물론 조금씩 변화는 있었지만 밴드 구성원의 교체 속에서도 결과는 인공적 ‘변전(變轉)’이기보다 수년에 걸친 시간의 흐름 속에 답습을 거부한 채 자연스레 표현의 방식이 유기적으로 변화하는 ‘생장(生長)’에 가까웠다.


그렇다. 마치 “바람이 부는 대로 떠나가겠다”는(「바람이 부는대로 나는 떠나갈거야」) 노래의 가사처럼, 발 가는대로 걸어가는 한 사람의 인생처럼 언니네이발관의 음반은 그렇게 자기만의 발자국을 더해갔다. 레퍼런스 없는 고유의 매력으로 모던록의 정수를 우리에게 소개했던 1집 『비둘기는 하늘의 쥐』가 천부적 재능을 지닌 10대의 신선한 패기와 같았다면, 생동감 넘치던 채도를 다소 잃은 채 조금은 다듬어지고 세련되어진 2집은 20대의 성숙과 허무주의를 연상시켰다. 3집 『꿈의 팝송』은 보다 화려하게 확장된 30대의 꿈과 미래에 대한 희망이, 4집 『순간을 믿어요』에는 성공가도를 힘차게 달리게 된 40대의 다채로운 야망이 펼쳐졌다. 각 음반이 다른 듯 같은 모습으로 언니네이발관 역사의 일부를 대변할 뿐 『순간을 믿어요』는 영락없는 언니네이발관이었다.


앞서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키워낸 1, 2집에 뒤이어 지난 3집이 피워낸 이파리가 광합성을 통해 상업적 성공을 거두게 하였음에도 언니네이발관은 밴드가 해오던 그대로 (3집의 성공에 고스란히 머물지 않고) 4집의 개화(開花) 단계로 자연스레 나아갔다. 피워낸 꽃의 모습이 각자의 기대와 다를 수 있을지언정 혹은 급작스러운 개화의 단계가 의외일 수는 있어도, 그것이 언니네이발관이 아닌 것은 아니었다. 전에 없이 화려해 보이는 꽃의 비주얼은 언니네이발관이라는 식물이 이후 5집에서의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한 유혹의 필연일 뿐이었다. 따스한 톤과 시린 정서가 혼재하는 이석원의 보컬, 지난 음반부터 함께 한 이능룡의 영롱하면서도 리드미컬한 기타 톤이 여전히 아름답기만 한 수록곡의 멜로디를 더욱 빛내주었다.


#3. 사라지지 않는 슬픔과 함께, 언니네이발관은 조금씩


언니네이발관 특유의 외로움과 슬픔의 정서는 여전한 것을 넘어 더욱 깊어졌다. 2집 당시 밴드의 베이시스트이자 음악적 동반자였던 이상문의 ‘죽음’과 사랑해서 결혼까지 했던 사람과의 ‘이별’이라는 경험은, 리더 이석원과 밴드 멤버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했다. 작별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의 인정과 원망이 공존하는 「깊은 한숨」(“잘가 이젠 안녕 … 너무도 쉽게 너무도 쉽게 아주멀리 가슴아프게”)의 정서와 잊어야 한다며 스스로 괜찮다고 위안하면서도 결국 아파하는 「천국의 나날들」(“그대를 잊을게요. 나는 괜찮아요. 그대 나를 잊고서 어디로 그리 멀리 가나요.”)의 모순적인 정서는 이전에도 그래왔고 이후에도 결코 사라진 적 없던 언니네이발관의 슬픔이 가장 짙은 농도로 드리워진 광경이었다.


강한 부인은 강한 긍정이라고 하지 않던가.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마치 별난 차이나 노골적인 탈 인디 경향으로 읽히거나 결코 부정적인 어조로 느껴지지 않았을 본 음반의 유독 밝고 강력했던 사운드가, 비가역적 관계의 끝과 불가항적 생의 끝을 비슷한 시기 동시에 목도해야 했던 이석원의 슬픔으로 이해되는 순간, 그것은 결코 이전과 비교해 대수롭지 않은 차이처럼 내게 느껴졌다. 풋풋한 햇살을 내리쬐든(『비둘기는 하늘의 쥐』) 무던하고 나른한 공기를 뿜어내든(『후일담』) 굵고 세찬 소나기로 쏟아지든(『순간을 믿어요』) 그것은 한 가지 정서나 다름없다. 이전 음반을 통해 밴드 스스로 구축하고 전승한 정서에 대해 낯설고 생경한 아름다움을 대하는 듯한 청자의 경의가 있었다면, 3집과 라이브 활동의 소통을 거치고 어려서 언니네이발관을 듣고 자란 세대들이 성장하는 동안 축적된 청자와 밴드 공통의 서정에는 앞선 공감의 관점을 뛰어넘을 발전된 메시지가 필요했을 뿐이다.


그렇기에 언니네이발관의 풋풋한 서정을 기대했던 이에게 4집은 뜬금없이 헤비해진 기타 ‘록’이었고, 거칠고 신선한 아마추어리즘을 기대했던 이에게 4집은 지나친 세련미를 입은 기타 ‘팝’일 수밖에 없었다. 진화에 가까운 극단적 변화를 기대한다면 다른 시대 다른 음악을, 똑같은 음악을 원한다면 들었던 음악을 고스란히 들으면 되겠지만, 『순간을 믿어요』에서 우리가 들은 것은 진보나 답보가 아닌 같은 밴드의 다른 깊이, 다른 모습이었다.


#4. 다채로운 꿈의 팝송


『순간을 믿어요』가 상업적 경향을 의식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밴드 스스로 “우리는 상업적인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줄기차게 주장하던 시기이기도 했고, 2집의 실패 이후 3집에서 이를 갈았던 시도들을 통해 인디 씬의 역사를 바꾸어갈 정도의 음반 판매와 라이브 공연을 갔던 시기이기도 했다. 인디밴드의 신곡 타이틀이 세븐이나 조성모와 같은 주류 가수들과 가요순위 수위에서 경쟁하던 시기이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의식적 시도 덕분인지 출중한 연주를 기반에 두면서도 유독 밝은 멜로디와 편안한 편곡, 거기에 조금이라도 보컬에 생기를 더해 잔뜩 호소력을 끌어올린 타이틀 「순간을 믿어요」는, 시기를 1년 여 앞선 델리스파이스의 『Espresso』(2003)을 뒤이어 주류음악과 비주류음악 간 물리적 경계를 무화하는 접점이 될 것으로도 여겨졌다.


그러나 전술했듯 언니네이발관의 변화는 자연스러운 생장과도 같았으며, 작업물의 대중성에 대한 기본적 태도 또한 이 음반에서만 유별났다기보다 결국 항상 같은 기조였기에, 음반 전체의 어조 역시 대중 취향에 온전히 포커싱을 두기보다 밴드 입장에서 회심의 노림수를 두고 ‘다양성’을 선택하는 수준이었다. 실제로 이석원은 “3집에서는 앨범의 분위기를 일관되게 통일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번에는 수록된 11곡 모두 다른 분위기”라고 말했다. 곧 앨범 동명의 타이틀 「순간의 믿어요」와 대조해 훨씬 강하고 슬프게 휘몰아치는 노래들(「바람이 부는 대로」, 「태양 없이」)이나 라이브 공연 당시의 상황을 더빙한 「셋넷」의 시도, 루프스테이션을 활용한 「해바라기」, 정순용(토마스쿡)이 불러 더욱 색달랐던 착하고 청순한 발라드 넘버 「키다리 아저씨」 등 한 음반 안에서도 이례적으로 다채롭게 펼쳐냈던 꿈의 팝송은, 이제 와 생각할 때 『꿈의 팝송』에서 확보한 기능적인 통일을 거름으로, 『가장 보통의 존재』 속 유기적 내러티브를 열매로 성취하기 위한 꽃의 향연과도 다름이 없었다.


물론 꽃이 피어나는 순서에는 논리와 사연이 무의미하다. 첫 번째 트랙 「바람이 부는 대로」부터 퍼즈 톤의 소란스러운 기타가 화려하고도 몽환적인 포문을 여는가 싶더니 이내 장조의 경쾌한 코드로 진행되는 기타의  멜로디 연주가 서두와 다른 당황스러움을 선사한다. 그렇게 밝음의 층을 더욱 쌓아가던 서사가 잔득한 그루브를 타는 합주를 하거나, 뒤늦게 합류하는 보컬이 처연한 톤과 마이너 코드의 멜로디로 가사의 구슬픈 서정을 쏟아낼 때에도 이는 마찬가지이다. 재삼 화사하게 강하게 스트로크를 이어가는 기타의 간주, 또 다시 서글픈 보컬이 덧입히는 ‘단짠’은 언니네이발관 역사상 가장 다이내믹한 스타트로서 손색이 없다. 스스로의 슬픔과 위로를 오가는 가사와 후반부 심각함을 더하는 연주가 본 앨범에서 한껏 풍요롭게 확장된 정서를 가늠하게 했을 뿐이다.


「태양 없이」에서도 웃어도 웃는 게 아닌 언니네이발관 본연의 정서와 헤비한 연주 및 처절한 서정의 1번 트랙의 기세가 지속된다. 단순하지만 들어찬 사운드와 한껏 증폭된 볼륨으로 인상적인 하강미학을 그리는 전·후주의 기타 리프는 언니네이발관이 들려줄 수 있는 역대 가장 빡센 순간이다. 인트로의 빗소리, 가사의 “기나긴 홀. 당신과 나만의 끝없는 터널.”과 혼연일체가 된 기타 연주와 톤은, 이석원 스스로 “달리는 애수”라고 표현하던 슬픔의 질주를 너무나도 잘 표현하고 있다.


「셋넷」은 또 어떤가. 네 번째 트랙으로 향하는 인터미션이자, 매서운 출력을 뿜어내며 그간의 이미지를 지우고 당황스러움을 선사했던 1, 2번 트랙에 대한 친절한 해설이자 소통의 매개로서 이 노래가 위치한다. 3집과 4집 사이 공연장에서 이능룡과 정무진이 함께 연주하던 곡을 그대로 더빙한 이 노래의 존재 및 “셋넷”이라는 청중과의 합동 추임새 역시 똑같은 언니네이발관이지만 일전에 듣지 못했던 기억될만한 시도였다.


비록 『후일담』의 수록곡 「꿈의 팝송」의 리메이크지만 2004년의 「꿈의 팝송」은 본 앨범 본격적인 주제로의 진입로이기도 하다. 발랄한 기타 스트로크와 통통 튀는 리듬 파트의 훵키한 편곡이 표면적으로 원곡의 무게감을 덜어내는 것 같지만 연주와 대비되는 아련한 보컬의 감성은, 거꾸로 같은 가사와 더욱 밝은 장르로의 전환으로도 지워낼 수 없는 더욱 애절한 감성을 대변한다. 당시 부인이었던 아내에게 헌정하는 곡으로서 과거의 「꿈의 팝송」이 ‘만남’에 대한 노래이고 지금의 「꿈의 팝송」은 ‘이별’에 대한 노래라고 하니 그와 같은 감상이 이상하지는 않다.


듣기에 따라 조금은 밝고 건강하게 포장된 이 음반에서 타이틀 「순간을 믿어요」는 유독 긍정적이고 직선적인 매력을 풍겨냈다. 톤은 여전했지만 기타 스트로킹이 과거 로큰롤과 컨트리 시대의 그것마냥 유난히 경박했고 예의 나른한 이석원의 보컬마저 생기있게 들려왔다. 추상적인 단어를 쓰면서도 낯설게 직설적으로 풀어내는 가사에는 최초로 영어가 쓰이기까지 했다.(“I saw you something.”) 음반 제목이 명사형태가 아닌 술어형태인 것도 동명의 타이틀이 유일하다. 그러나 그와 같은 변별점이나 어디까지나 만들어낸 것일 뿐, 이 노래 역시 우리에게 익숙한 상실의 이야기이며 나름 낯선 방법론들은 멜로디의 아름다움을 강화하는 도구에 불과했다.


이후 반복되는 리듬과 점멸하는 사운드가 사이키델릭한 효과를 더하는 「사라지지 않는 슬픔과 함께 난 조금씩」이나 생글생글한 「#1」, 이상문에 대한 추모곡으로서 나레이션을 삽입한 「천국의 나날들」 등 앨범의 서사는 조금씩 예상을 빗겨간다. 물론 「사라지지 않는 슬픔과 함께 난 조금씩」이나 「깊은 한숨」과 같은 내성적인 노래에서도 앞서 초반부 곡들과 타이틀이 품고 있는 증폭된 볼륨과 견고하고 밀도 높은 사운드의 프로덕션이 이어져 이와 같은 특징들을  『순간을 믿어요』의 가장 명징한 외면적 변화로 인지할 수는 있다. 「셋넷」이나 「천국의 나날들」의 시도가 취향상 조금 낯간지러울 수도 있음에 동의한다. 그러나 그것이 언니네이발관 고유의 정서를 상실하고 착해졌기 때문이라고 뭉뚱그리거나 그저 상업성에만 목적을 둔 커리어 최저점으로 손쉽게 평가하는 것에는 불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늘 변해왔던 이들의 생장 가운데 소통의 접점을 좀 더 고민했던 것이고 선곡과 배치를 통한 앨범을 구성에 있어 트랙의 개별적인 매력에 보다 집중했을 따름이다.


#5. 돌이킬 수 없는 천국의 나날들


돌이켜볼 때 우리 대중음악사에서 근래 중요한 축으로 언급되는 인디음반 가운데 이만큼 공공연연하게 상업음반을 표방하면서도 또 그만큼의 성공을 거둔 음반은 없는 것이 사실이다. 언제부터 대중성이나 성공이라는 것이 붙잡으려 한다고 붙잡을 수 있는 것이었나. 그래서인지 언니네이발관이라는 거대한 이름을 품었던 지난 시간 가운데 그들이 비평적으로 가장 박한 평가를 받아야 했던 나날들이 꽤나 그립기도 하다.


이전의 어떤 음반보다도 여백 없이 소리를 꽉 채워냈지만 최근작 6집의 풍성한 사운드보다는 한결 비어있고 연주가 선명하다. 이후보다 편곡이 깔끔하지는 않았지만 이펙터의 게인을 여느 때보다도 늘려내 볼륨과 함께 거칠고 순수한 매력도 가득한 음반이기도 하다. 앞 선 음반의 상징이 기초를 세우고, 뒷 선 음반의 상징이 다른 누구도 넘보지 못할 높은 첨탑을 올렸다면, 기둥 사이 문을 통해 청자를 유인했던 4집의 실용은 반드시 거쳐야만 했던 언니네이발관 생의 순간으로 존재한다. “이제 와서 꿈속을 헤매어본들”(「순간을 믿어요」) 본작의 감성은 유별나게 굴기만 하면 가질 수 있는 손쉬운 방법론이 아니라 오롯이 그 시절만이 지닐 수 있었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노래의 가사처럼 “영원한 것은 없다 생각하지” 않고 그저 “기억 속에 남은” “기쁨”의 하나로 이 음반을 “헤아려” 본다.


  • Credit
  • [Member]
    이석원 : 보컬, 기타
    이능룡 : 기타
    정무진 : 베이스, 프로그래밍
    전대정 : 드럼

    [Musician]
    키보드 : 폐인
    코러스 : 이지형, 정순용

    [Staff]
    프로듀스 : 김재준, 언니네이발관
    녹음 : 톤스튜디오
    - 드럼 : 김대성 (Assistant 오성근, 이제형)
    - 보컬 : 김대성, 오성근
    - 기타, 베이스 : 김재준
    믹싱 : 김대성
    마스터링 : 전훈@소닉코리아
    아트워크 : Nayona
    일러스트 : 데이트리퍼
Track List
  • 01. 바람이 부는대로 L이석원 C이석원, 이능룡
  • 02. 태양없이 L이석원 C이석원, 이능룡
  • 03. 셋넷 C정무진, 이능룡
  • 04. 꿈의 팝송 L이석원 C이석원
  • 05. 순간을 믿어요 L이석원 C이석원, 정무진
  • 06. 사라지지 않는 슬픔과 함께 난 조금씩 L이석원 C이석원, 이능룡
  • 07. #1 L이석원 C정무진
  • 08. 깊은 한숨 L이석원 C이석원, 이능룡
  • 09. 키다리 아저씨 (feat. 정순용) L이석원 C정무진
  • 10. 해바라기 C이능룡
  • 11. 천국의 나날들 L이석원 C이석원, 정무진, 이능룡
태그 | 언니네이발관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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