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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과 슬픔의 언덕

이권형 『수봉공원』
by. 차유정 | 2018.02.14
차유정 | 2018.02.14

인간이 지닌 감성에 기대어 봤을 때, 장소를 통해 과거의 기억을 불러오는 방법에는 크게 두가지 도구가 있는 듯 하다. 하나는 자신이 겪었던 과거의 시간에 서사를 입혀 감정 이입을 하는 것. 이것이 너무 처량하게 느껴진다면, 머리에 담백하게 저장된 작은 조각들을 폐허가 된 현실에 대입하면서 지나간 시간을 불러보는 방법이 있다.


「수봉공원」이 쓰는 방식은 두 번째다. 그 자리에 존재했던 것들이 갑자기 사라진듯한 쓸쓸함을 기초에 깔아 두고, 하나씩 호출하며 조용히 기억을 그려나간다. 팔다리가 잘려나간 현재에 과거의 부산물을 하나씩 불러세우면서 현대와 개발이 만들어놓은 상실의 단면도 함께 생각해보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추억이라는 것이 한때 모두 현존하는 시간 위에 존재했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것은 추억으로 남지만, 기억의 연결고리를 어떤 설득의 과정없이 지워가는 욕망들, 그 자체가 슬픔임을 이권형은 주저하지 않고 말한다. 그래서 아련한 추억의 슬픔보다는 갑자기 지워진 것에 대한 아픔을 최대한 날카롭게 표현한다.


간소한 사운드로 단순한 노래의 미덕을 알려줬던 라이브 공연도 좋지만, 레코딩 버전은 보다 환상적인 질감과 시간의 모호함을 살려낸다. 이런 녹음의 방식은 보통 사라진 공간을 환상적으로 끌고 가고 싶을때 자주 쓰는 테크닉이지만, 이 곡에서는 모호한 시간과 애매하게 남아있는 공간의 이질감을 좀더 구체적으로 드러내는데 쓰였다. 그래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것을 넘어선 초월적인 아픔에 근접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느낌을 주는것이다.


영국 포크 밴드 Trees는 트래디셔널 포크의 작법으로 60년대 말의 고요하고도 슬픈 선율을 잘 뽑아낸 밴드였다. 특히 『The Garden Of Jane Delawney』(1969)에 수록된 동명의 곡은 '공간 안에서 펼쳐지는 개인의 시'라는 점에서 「수봉공원」과 묘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갇혀있는 인공의 시간인 수봉공원 안에서 갑자기 「The Garden Of Jane Delawney」의 선율이 떠오르는 순간 개인과 슬픔의 실마리가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듯 모든 몽환의 신경과 슬픔을 전재로 하는 아름다움은 기억에서 출발한다는것을 「수봉공원」은 조용하고 강렬하게 드러낸다. 오랜만에 만나는 환상이 지닌 부드럽고 까칠한 단면이 살아나는 느낌이다.


Track List
  • 01. 수봉공원 L이권형 C이권형 A이권형, 서준호
태그 | 이권형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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