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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장, 네 시간, 장르 불문.

지미스트레인 (Jimmy Strain) 『찰나 : The Fleeting Moment』
by. 김성대 | 2017.05.16
김성대 | 2017.05.16

CD(LP) 여섯 장. 러닝타임 네 시간. 뉴에이지, 트로트, 포크록, 헤비메탈이라는 장르 불문. '살인의 추억' 오프닝 씬에 석양이 깃든 듯한 지미 스트레인의 네 번째 앨범이 뽐내는 스펙이다. 4시간이면 Sergio Leone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의 3시간 49분 보다 길고 Mahler의 교향곡 3번을 세 번 연달아 연주해야 도달할 수 있는 시간이다. 5년만의 신작에 6장이니까 10달에 한 장씩 완성한 셈인데 만든 당사자는 정작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듯 “음악적 영감과 에너지를 그때그때 저장하고 기록하는 것에 큰 만족감”을 느낀다고만 전했다.


솔직히 음악 자체로만 본다면 인디 씬을 뒤집거나 지구를 뒤흔들 만한 파격 같은 건 없다. ‘헬조선’으로 요약되는 한국 사회의 어둡고 불안한 면은 Metallica의 박력과 Doors의 염세를 담은 데뷔작 『Emotion Frequency』(2009) 때부터 꾸준히 다뤄온 주제이고, 그 시기 “장장 70분”을 강조하며 데뷔했기에 시간 단위로 끊어야 하는 이번 러닝타임도 사실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어쿠스틱 피아노와 기타, 스트링, 그리고 헤비메탈에 어깨를 나란히 한 「백수의 과로사」 같은, 조금은 엉뚱해보이는 트로트 역시도 「Fight of Fathers」(2009) 같은 곡에서 이미 들려준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쟁점은 여섯 장이라는 피지컬 음반의 숫자인데 나는 이것이 지미스트레인을 넘어 한국 인디의 몸부림, 심지어 발악처럼 느껴졌다. '이래도 안 봐줄 거고 이래도 안 들어볼 거야!' 라는. 그는 아니라고 했지만 30년 이상 장인들 손을 거쳐 314개 LP 박스를 내놓는 행위를 과연 단순한 창작자의 만족감에만 기대어 설명할 수 있을까. 자본에 종속되지 않으려 닥치는대로 ‘생계형 아르바이트’를 하며 이 앨범을 준비했다는 사실과 “창작의 사전에 '가성비'란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멋스런 자기 선언 역시 본작에 담긴 관심 전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앞서 ‘발악’이라고 썼지만 나는 이 단어가 가진 부정적인 뉘앙스로 지미 스트레인의 전략을 폄훼하려던 것이 절대 아니다. 되레 그 발악을 응원해주고 싶었고 그 발악을 세상에 더 알리고 싶었다는 게 진심에 가까울 것이다. 그의 고민과 정성은 분명 되새길 만 하고 한편으론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아쉬운 것은 그의 보컬이다. 마치 X-Japan의 팬이 스튜디오에 놀러와 재미삼아 부른 듯 들렸던 데뷔작 때부터 지미 스트레인의 목소리는 알게 모르게 그의 음악을 아래로 끌어내리는 요소처럼 보였다. 바로 그가 고집스럽게 ‘인디 원맨밴드’를 강조하는 뜻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이다. 도무지 나는 「봄」이라는 곡에서 목을 덜 푼 김장훈 같은 그 힘겨운 고음 처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난감했다. 악기 연주는 그렇다 쳐도 보컬 파트 만큼은 피처링으로 처리했다면 어땠을지 하는 생각이 계속 드는 것이다. 이마저도 ‘인디’의 영역이고 정신이라면 더 할 말은 없지만 어쨌든 나는 그랬다. 그의 보컬은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든다.


“개선과 개혁이 몽상으로 끝나고 마는 현실”을 담았다는 파트6 〈Screaming〉을 끝으로 앨범은 길었던 시간의 문을 닫는다. 아마도 정권이 바뀌기 전 만든 앨범이라 개선과 개혁의 유예를 짚은 듯 한데, 알다시피 이제 우리의 현실은 이 앨범이 묘사한 지옥 같은 곳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위한 출발선에 다시 섰다. 부디 ‘찰나’는 오랜 희망과 행복에서 비롯되리라는 역설이 이 앨범의 운명이라면 좋겠다. 내가 이 앨범에 관심을 가진 건 바로 그 때문이다.


Track List
  • 01. Sunrise
  • 02. Wind
  • 03. Coming Home
  • 04. Breathing
  • 05. Suicide Anthem
  • 06. From Hair to Eternity
  • 07. Mr. Fairy
  • 08. Lachrymal Canal
  • 09. Stare to Dare
  • 10. Emotion in Motion
  • 11. Angels of #308
  • 12. March
  • 13. Tell Me a Lie
  • 14. The House I Loved
  • 15. Happy Birthday
  • 16. See You on the Other Side
  • 17. Kite
  • 18. What Time Does to Us
  • 19. Adobe
  • 20. I
  • 21. Maybe
  • 22. 백수의 과로사 : Death of an Overworking Jobless
  • 23. 공항 : Airport
  • 24. 홍옥 : Ruby-Red Apple
  • 25. 어른 : The Grown-Up
  • 26. 찰나 : The Fleeting Moment
  • 27. Vagabond
  • 28. 봄 : Spring
  • 29. 상자 : Boxes
  • 30. 거인 : The Giant
  • 31. LGBTQIA
  • 32. Dick
  • 33. Time 2 Cry
  • 34. Genie
  • 35. Today
  • 36. Anti-Social
  • 37. Don
  • 38. Crazy Strange Love
  • 39. Clouds and Heaven
  • 40. Peace of Mind
  • 41. War
  • 42. 은과 네온과 유황의 시 : AgNeS
  • 43. Roadkill
  • 44. Strangers in Heaven
  • 45. Marionette
  • 46. Lake
  • 47. Oando
  • 48. This Beat
  • 49. All the Saints
  • 50. Finally
  • 51. No Country for young Man
  • 52. Strain
  • 53. AGARI
  • 54. Crossing
  • 55. Reds!
  • 56. Fever Land
  • 57. Fascists
  • 58. I, Failure
  • 59. Revolution Anthem
  • 60. Screaming
태그 | 지미스트레인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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