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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

모하비 (Mojave) 『물체주머니』
by. 김병우 | 2017.05.11
김병우 | 2017.05.11

다분히 크라프트베르크 스러운 첫 곡을 지나 두번째 곡에 진입한다. 전 곡의 모티브가 다음 곡을 불러온다. 이 앨범이 그런 구조였구나라고 생각하며 듣는다. 그렇게 세번째 곡까지 이어진다. 후반부에 신디사이저가 느닷없이 전혀 다른 맥락을 들려준다. 곡이 그 전환 하나로 인해 다른 영역으로 진입한다. 그렇게 모티브의 빛과 그림자를 넓게 감싸 안는다. 사운드 구조의 변동만으로 이렇게 넓은 감수성을 취할 수 있는 뮤지션은 이제 대민민국에 몇 없다. 미련스럽게 우직한 방법론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견고하다. 이런 음악은 확실히 야심가의 몫일 것이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앨범은 모하비의 야심작이다.


그는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신 자체의 본질을 가지고 논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뮤지션이다. 그의 음악은 댄스에 빚지지 않고, 팝에 빚지지 않았다. “한국의 엠비언트란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서 그의 디스코그래피가 빠진다면, 그 대답은 불완전할 것이다. 그의 디스코그래피는 바로 그 질문에 대한 실천적 탐구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의 노력으로 인해, 우리는 한국의 일렉트로니카가 유행과 첨단에 대한 강박으로만 이뤄진 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떳떳하게 증명할 수 있다.


정규작에서 보여줬던 장난기는 이 앨범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되도록이면 무덤덤하게 자신의 곡을 풀어놓는다. 그렇게 다른 맥락이 움직인다. 사운드 스케이프다. 이 앨범에서는 킥이라고 불릴만한 소스도, 베이스 리듬이라고 불릴만한 소스도 마땅치않다. 이 앨범의 바탕에는 사운드 스케이프의 루프와 왜곡만으로 이루어져있다. 배음과 노이즈가 앨범의 주제를 관통하는 두 가지 실천적 요소인 셈이다. (이런 앨범의 장르를 굳이 정의내리자면, IDM이랄 수 있겠지만, 이 앨범은 딱히 Dance에 방점을 찍고 있지는 않다. 외려 Intelligent와 Music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그가 미적 엠블렘으로 소환한 제목들이 그 사실을 직시한다. 「과학과 석양」이라는 사실은 실은 기계와 감정에 대한 모하비 특유의 대유다. 「과학과 석양」이 지닌 뉘앙스의 거리가 이 앨범의 전체적인 구조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는 노이즈와 신디사이저 소스를 통한 사운드 스케이프를 통해 이러한 주제들을 끊임없이 뒤섞는데 골몰한다. 그리고 질문한다. 기계는 어떻게 사람을 감동시키는가. 우리는 어떻게 기계에 경탄하는가. 우리가 일렉트로니카를 들으면서 잊고 있었던 대답을 그는 태연스럽게 소환한다. 혹자는 그 장난기가 상쇄되어서 아쉽다고 할 수 있을 것이지만, 사실 그건 이 앨범에 대한 큰 오해다. 이 앨범이 말하는 다층적인 구조가 워낙 탄탄하기 때문에 장난이 들어올 여지가 없어진 것이다.


이 앨범은 단순한 80년대의 찬가가 아니다. 80년대의 찬가를 90년대와의 결별이라는 맥락 속에 수놓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 앨범에서 자신의 사운드에 그토록 따라다녔넌 소위 90년대의 전자음악이 지닌 정형성을 탈피하는 데 성공한다. 90년대 전자음악이 댄스뮤직과 만나면서 생긴 시너지를 그는 적폐로 생각하고 폐기처분했다. 그렇게 전자음악의 맨얼굴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이러한 탈피는 어지간한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단순히 작법을 안쓴다고 될 문제가 아니다. 작법을 다른 대안으로 교체할 수 있는 사색이 필요하고, 감각을 새로 발견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며, 자신만의 서사를 발견하기 위한 몸부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장난기를 거둔 그의 음악은 어쩐지 짠하다. 이 앨범의 후반부는 근 5년 동안 들어본 일렉트로니카 앨범 중 가장 넓고 깊은 감정을 펼쳐보이고 있다. 하나하나의 곡의 시야가 아니라, 파노라마적인 관점(앨범의 관점)로 바라볼 때 느껴지는 감동이 앨범의 후반부를 수놓는다. 일렉트로니카에 대한 가장 진솔한 고해성사가 그 안에 깃들어있다.


마지막 곡인 「보통사람의 찬가」는 사운드의 왜곡으로 이루어져있다. 브런들과 파리의 합체가 실패로 끝났던 것처럼 우리의, ‘보통사람들’이라고 불리던 집단의 찬가는 왜곡된 서사, 왜곡된 역사의 산물인가. 이 곡은 그에 대한 조소인까.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그가 그런 동경과 경의조차도 거리를 둔다는 점에 있다. 그렇게 자신만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이 거대한 서사를 마무리짓는다.


돌아와 다시금 생각한다. 지금 한국 일렉트로니카에서 이정도로 거대한 바탕의 서사를, 거대한 사운드의 서사를 고전적인 방법론으로 마련한 뮤지션이 있었던가? 적어도 내가 아는 범주 내에서는 없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앨범은 모하비의 걸작이다.


(편집자 註. 본 앨범의 CD 및 음원은 오디오로그 사이트(http://mojave.audiolog.kr/Something_the_Braun_tube_left_us) 에서만 판매됩니다.)

Track List
  • 01. 모든 타원곡선은 모듈러이다 C모하비 A모하비
  • 02. 브런들-파리 분자융합 C모하비 A모하비
  • 03. 잔상과 글리치 C모하비 A모하비
  • 04. 과학과 석양 C모하비 A모하비
  • 05. 브라운관 C모하비 A모하비
  • 06. 신디로퍼 C모하비 A모하비
  • 07. 씨퀀스 베를린 C모하비 A모하비
  • 08. 과학과 석양 II C모하비 A모하비
  • 09. 와우플러터 C모하비 A모하비
  • 10. 남준 백 C모하비 A모하비
  • 11. 보통 사람의 찬가 C모하비 A모하비
태그 | 모하비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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