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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le-Out #85-5] 정미조 「귀로」

정미조 『37년』
by. 음악취향Y | 2016.03.07
음악취향Y | 2016.03.07

[김병우] 목소리에 세월이 들어가 있다는 말은 상투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이 곡에서만큼은 예외다. 세월이 만들어낸 목소리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기교나 술책없이 그저 자신의 목소리를 놔준다. 곡을 쓴 손성제나 가사를 쓴 이주엽은 바로 그 점을 온전히 가져오려고 했다. 말로의 앨범에서 좋은 가사를 제공한 이주엽은 여기서 상당히 흔한 가사를 쓰고, 손성제는 곡을 간소한 편곡으로 다룬다. 그러나 이들이 정미조의 목소리와 만나는 순간, 그것은 정미조의 노래가 된다. 이러한 사려 깊음이 결과적으로 굴곡진 정미조의 목소리를 일정부분 떠받쳐준다. 두 손에 받은 물 한 움큼을 십리 밖까지 나르는 공력이, 그리고 목소리를 위해 그들의 자리를 비워두는 배려가 이토록 아름다운 곡을 만들고, 이러한 목소리가 고스란히 곡 안에 스며든다. 이토록 아름다운 순환 덕에 나 같이 그녀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조차도 가만히 귀기울이게 만든다. 좋은 가수가 좋은 곡을 만나, 이토록 깊은 잔향을 남긴다. ★★★★☆

 

[박상준] 듣는데 절로 새해에 봤던 아레나 프랭클린의 무대가 생각났다. 전설, 거장, 귀환 등의 지긋지긋한 수사가 없어도 이 노래는, 앨범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 손성제가 만든 곡 위로 흐르는 목소리에는 더 이상 계승되지 않으며 길을 잃어버린 것 같던 정서와 단어들이 고고하며 우아한 몸짓으로 서성인다. 김추자의 놀라웠던 신보와는 다른 방향으로 추억을 씹으며 한낱 낡고 오래된 영혼으로 스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흘러넘친다. 정말 놀라운 건, 이주엽하면 떠오르는 말로, 십수년을 달려온 그이에 지지 않을 만큼 분위기가, 모든 역량들이 무척이나 꼿꼿하다는 점이다. 진지한 열정, 겸손한 탐구, 귀환의 본보기로 남을 만하다. ★★★☆

 

[정병욱] 예나 지금이나 미술과 음악 사이 공감적 교량을 자유로이 오가는 천부적 예술가들은 언제나 존재해왔지만, 젊은 시절 시대에 방점을 찍고 37년간 미술계로 훌쩍 떠나 있다가, 고희가 넘어 돌아온 정미조의 음악 세계는 유난히 더 관심이 기울여진다. 단지 잠깐의 외도나 기획이 아닌 스스로 공백 기간 “37년”이라는 타이틀을 사용할 만큼의 온전한 ‘귀환’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결과물이 쉬이 지나칠 만큼 가벼운 무게를 품지도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 싱글이, 그리고 싱글이 속한 앨범이 결코 가수의 세월이나 명성에 빚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노래에 맞는 여러 음색을 연기하면서도 뚜렷한 음정·발음과 고아한(高雅) 분위기, 절정에 이르러 자연적 비브라토와 울림 큰 발성으로 엄격한 통제의 미감을 발휘하던 장점이 여전할뿐더러, 손성제의 송라이팅에 묻어나는 그만의 감성은 또한 이번 싱글만의 것이다. 이주엽의 가사 역시 마치 가수의 이야기 그대로인 듯, 정미조의 미술 세계가 품었던 고독과 신비로움이 아름답게 모사(模寫)된다. 어쿠스틱 기타와 현악의 서두르지 않는 뒤따름은 「귀로」의 보컬에 가장 이상적인 백업이 되고 있다. 구태의 번복이나 무모한 도전 아닌 그녀의 지난 세월에 대한 가장 깔끔한 모작이라고 할만하다. ★★★★

 

[조일동] 이제 JNH는 한국 대중음악계 거장의 재활 혹은 재발굴 프로젝트의 가장 믿을만한 명가로 자리 잡았다는 생각이다. 최백호의 『다시 길 위에서』(2012)를 시작으로 정미조의 37년만의 복귀작인 본 앨범, 말로의 『동백아가씨』(2010), 권진원의 『엄마의 노래』(2016)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걸음이다. 영미 팝스타, 그 중에서도 스탠더드 팝을 추구하던 거장이 장고 끝에 복귀한 작품들을 생각해보면, 재즈와 오케스트라를 동원하여 아티스트의 품격을 높이는 편곡(?)을 시도한 손성제(와 JNH)의 스탠스는 상당히 낯익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허나 그간 한국 대중음악판은 과거에 소울이나 훵크를 추구했던 아티스트가 아님에도 복귀작에 어설픈 랩이나 샘플링 리듬범벅을 이상하리만치 요구하곤 했다. 이는 한국 대중음악계가 얼마나 트렌드라는 미명 하에 유행하는 장르에 편중되어 있는지 반증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본 앨범은 정미조의 과거의 경력을 존중하는 동시에 새로운 시작에 더할 나위 없이 걸맞은 훌륭한 결과물이다. 김추자의 복귀가 사이키델릭 록에 너무 방점을 찍다보니 보컬의 장악력이 들쭉날쭉한 한 두 트랙으로 인해 앨범 전체의 완성도에 균열을 냈던 아쉬운 경험도 비교치로 떠올려 볼 수 있을 것이다(개인적으로 사이키델릭을 바탕으로 한 소울-훵크 스타일이 그녀의 목소리를 더 강하게 뒷받침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김추자와 과거에 추구했던 스타일도 전혀 달랐던 만큼, 정미조는 긴 공백을 자연스레 상쇄시키는 과거와 친연하면서도 한 발 모던해진 스타일을 택해 매끄럽고 멋진 연착륙에 성공하고 있다. 어쿠스틱을 밑그림으로 두고 가벼운 탱고 리듬과 현악을 투명하게 덧칠하면서 메인 보컬리스트의 목소리의 생기와 깊이를 심어주고 있다. 반갑고 고맙고 따스한 앨범의 적절한 트랙이다. ★★★★

 

[차유정] 흔히 절창과 청아함이라는 이분법으로 분류되었던 70년대 여성포크 가수 씬에서 정미조의 위치는 이를 살짝 뛰어넘는 것이었다. 거칠게 표현하면 방황하는 여성, 아니면 고독한 여성? 고요하지만 반항이 숨어있는 목소리 탓인지, 그 시대에 맞아떨어졌던 히트작 「개여울」(1972)에서도 시련을 감당하기보다는 운명에 절규하는 여성의 목소리가 좀더 큰 여운으로남았다. 그래서 「개여울」 보다 록 적인 성향을 드러낸 「휘파람을 부세요」(1974)가 내겐 베스트 트랙이다. 「귀로」는 그 시대를 지나온 '여성 가수의 컴백'이 아니라, 지금의 현실을 오롯하게 받아들이고 소화한 '노장 가수의 귀환'임을 들려준다. 예전의 고독함과 정적인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시간의 두려움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조합인데, 이를 굉장히 자연스러운 어투와 특유의 여백으로 노래를 꽉 채우고 있다. 잊혀지는 것을 방어하는 여가수의 호기가 돋보인다. ★★★★

 

Track List
  • 02. 귀로 L이주엽 C손성제 A손성제
태그 | 싱글아웃,정미조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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